-조선 르네상스를 뒤흔든 파격 
-천대받던 여인을 화폭에 담다 
-탁월한 색채 감각과 섬세하고 유려한 선의 조화 
-이성간 사랑도 적나라하게 담아 
-신윤복이 조선시대 사람이 아니었다면? 

*신윤복의 '단오풍정', 간송미술관 소장 [사진 출처=wikipedia]

음력 5월 5일은 우리의 4대 명절 중 하나인 단옷날이다. 이날에는 농사일을 잠시 내려 놓고 남자들은 씨름을 하고 여자들은 창포물에 머리를 감거나 그네를 뛰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단오 풍정을 그린 이 그림은 조금 특별하다. 개울가에서 멱을 감고 그네를 타는 기녀들의 모습은 300년 전, 조선 시대에 그려졌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선묘와 채색, 구도가 도시적이고 감각적이다. 이런 작품을 그린 화가 신윤복은 대체 어떤 인물이었을까? 

-이 기사는 <나침반> 6월호 '인문 다이제스트'에 8p분량으로 실린 내용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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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르네상스를 뒤흔든 파격 

*신윤복, '주사거배' [사진 출처=wikipedia]

혜원(蕙園) 신윤복(1758~1814?)은 김홍도, 김득신과 더불어 조선 3대 풍속화가로 알려져 있다. 신윤복은 1758년 집안 대대로 화원이었던 집안에서 태어나 일찍이 그림에 소질을 나타내 어린 나이임에도 궁에 들어가 도화서의 화원이 됐다. 

당시 조선의 그림은 중국 그림을 흉내 낸 것이 많았다. 그러나 김홍도나 정선, 신윤복과 같은 직업 화가들은 조선만의 독창적이고 개성 있는 화법으로 그림을 그렸다. 

특히 조선의 르네상스라고 불리는 정도 시대, 신윤복은 남들이 다 그린다고 그대로 따라 그리지 않았던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다. 그는 양반계층의 풍속도, 기생의 모습, 이성 간의 사랑을 적나라하게 담았으며, 독특한 소재를 주제로 뛰어난 묘사는 물론 감각적인 구도를 담은 많은 작품들을 남겼다. 

천대받던 여인을 화폭에 담다 

*신윤복 '미인도' [사진 출처=wikipedia] 

백성들의 생활모습을 그리던 신윤복은 주로 ‘양반층의 놀이’나, ‘남녀 간의 사랑’을 주제로 한 그림을 그렸다. 그의 그림에는 풍류를 즐기는 양반들의 모습, 기생들의 모습 등이 세련되게 표현돼 조선의 낭만과 멋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보인다. 

특히 신윤복의 그림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남성 위주의 조선 사회에서 ‘여성’이 주인공으로 그려지거나, 돋보이는 그림이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그림에는 양반과 함께 천한 신분이었던 기생들이 자주 등장한다. 

탁월한 색채 감각과 섬세하고 유려한 선의 조화 
'단오풍정'에서도 볼 수 있듯, 신윤복은 중국에서 들여온 파랑, 빨강, 노랑 물감으로 과감히 삼원색을 선택해 선명하고 밝은 그림을 그렸다. 여기에 세밀하고 부드러운 선으로 대상을 표현하면서 탁월한 색채 감각을 뒷받침해주었다. 

국보 135호 <혜원전신첩> 
모두 30장면으로 구성된 신윤복의 풍속화 화첩이다. 기생 및 양반이 주 모델로, 양반 문화와 복식 연구에 큰 도움을 주며, 현재 서울 성북구 간송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소년전흥, 춘색만원, 정변야화, 이부탐춘, 주사거배, 홍루대주, 연소답청, 상춘야흥, 쌍검대무, 무녀신무, 납량만흥, 노상탁발, 청금상련, 이승영기, 문종심사, 주유청강, 계변가화, 단오풍정, 휴기답풍, 월야밀회, 삼추가연, 쌍륙삼매, 기방무사, 노중상봉, 청루소일, 표모봉욕, 야금모행, 월하정인, 유곽쟁웅, 임하투호) 

이성간 사랑도 적나라하게 담아 

*신윤복 '월하밀회' [사진 출처=wikipedia]

두 그림은 모두 달이 뜬 한밤중에 서로 좋아하는 두 남녀가 만나는 모습을 담았다. 2020년에 살고 있는 우리가 보기에는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장면이지만, 당시 사회에서는 사랑하는 남녀의 모습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다. 

이런 그림을 그렸다고 도화서에서 쫓겨났다는 설이 있을 만큼 논란이 가득한 그림이다. 다들 창피하다고 여기고 숨기고 싶어 했던 주제의 풍속화들을 그릴 수 있었던 것은 조선 후기 사회가 차츰 변화하고 있었다는 것을 나타내 주기도 한다. 

신윤복이 조선시대 사람이 아니었다면? 
신윤복 같은 천재 화가가 있었기 때문에 조선 시대의 다채로운 풍속이 그림으로 전해질 수 있었다. 다만 아쉬운 점은 그 명성에 비해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 신윤복이 어떤 인물이었는지 추측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만약 신윤복이 보다 더 자유로운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다면 어떤 작품을 그려냈을까. 한국에서 세기를 뒤흔들 명작이 여럿 탄생하지 않았을까. 

정보 플러스+  <월하정인> 속 남녀가 만난 시간은? 

*신윤복 '월하정인' [사진 출처=wikipedia] 

신윤복의 작품은 제작 시기를 정확히 알 수 없다. <월하정인>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림 속 달을 분석해보니 남녀가 만난 시간 즉, 작품 제작 시기는 1793년 8월 21일 11시 50분경(정조 17년, 신윤복 35세)으로 밝혀졌다. 

우선 달이 위쪽으로 볼록한 것을 볼 때, 저 달은 초승달이나 그믐달이 아닌 월식이 일어나는 중인 달이다. 보통 밤에는 지평선 아래로 떨어진 태양이 달의 아랫부분을 비추기 때문이다. 이어 작품 속 글에 나오는 제작 시간대인 ‘야삼경’은 자시(子時)로 밤 12시를 전후한 시간대다. 

실제 이를 토대로 당시 개기월식 및 부분월식을 기록한 문서들을 찾아 본 결과 <승정원 일기(제1719책)>에서 “1793년 8월 21일(음 7.15)에 오후까지 비가 오다 그쳐서 월식을 관측할 수 있었다” 라는 기록을 발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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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듀진 기사 URL: http://www.eduj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3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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