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학생부서 학교 이름 지우라’ 고3 교사에 수작업 정정 지시
-학종 블라인드, 대입 부익부 빈익빈 공고화 
-고교명 지워도 과목 이름만 보면 특목·자사고 인 것 다 알아 
-지역 후광효과 볼 수 있는 지역명은 그대로 둬…'일관성 없는 탁상행정' 비판 

한양대 2020 수시 논술고사일 [사진=한양대]
한양대 2020 수시 논술고사일 [사진 제공=한양대]

교육부, ‘학생부서 학교 이름 지우라’ 고3 교사에 수작업 정정 지시 
9월 16일 수시 학교생활기록부 작성 마감일을 두 달여 앞둔 상황에서, 고교 현장에 날벼락이 떨어졌다. 

교육부는 7월 7일 일선 고교에 ‘고교 정보 블라인드 처리를 위한 학생부 정정 방법 안내’ 공문을 보내, 고3 재학생의 학생부에서 고교 정보를 짐작할 수 있는 모든 문구를 ‘블라인드’ 처리하라고 지시했다.

올해 개학이 늦어져 가뜩이나 학사일정을 맞추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교사들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다.  

공문에는 대입 전형에서 평가 자료로 활용되는 수상 기록, 창의적 체험활동, 교과학습발달상황 등에서 학교 이름이나 학교 별칭 등을 다른 표현으로 고치라 내용이 담겼다.

이는 지난해 11월 발표한 '대입제도 공정성 강화 방안'에서 학생부종합전형 선발 시 출신 고교의 후광효과를 차단한다는 명목으로 '서류 블라인드 평가'를 대입 전형 전체로 확대하겠다고 밝힌 데 따른 조치이다. 

하지만 서류 블라인드 평가는 학교 현장에 업무 과중과 혼란을 야기할 뿐, 실효성이 없는 제도란 것이 현장 교사와 대학 입학처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교육부 공문 중 일부
교육부 ‘고교 정보 블라인드 처리를 위한 학생부 정정 방법 안내’ 공문 중 일부

학종 블라인드, 대입 부익부 빈익빈 공고화 
학종에서 출신 고교 후광효과를 차단하겠다는 것은 교육부가 특목·자사고 출신 학생들을 대학이 우선 선발한다는 것을 전제로 해서 나온 발상이다. 하지만 교육부의 판단에는 명확한 근거가 없다. 

오히려 학종은 학생부 기록을 통해 학생 개인의 교육 환경을 감안해 정성 평가하는 전형이다. 대학은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고 학업과 활동을 진취적이고 성실하게 수행해 온 학생들을 학생부 기록을 통해 알아보고, 이들의 역량을 높이 평가해 왔다.

하지만 서류 블라인드 평가가 실시되면 이 같은 ‘맥락 읽기’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서울과 지방 간, 부유한 가정과 가난한 가정 간의 교육 격차가 엄연한 상황이지만, 블라인드로 인해 정보를 알 수 없는 대학은 학생이 처한 교육 환경에 대한 고려를 전혀 할 수가 없다.

고교 정보 블라인드 제도가 특히 지방의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치명타가 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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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명 지워도 과목 이름만 보면 특목·자사고 인 것 다 알아 
더구나 고교 이름을 지운다고 해도 학생이 속한 고교가 일반고인지 특목고인지 자사고인지를 알 수 있는 방법은 많다. 

먼저, 고교 유형별로 교육과정이 다르게 운영되기 때문에 배우는 과목도 다 다르다. 따라서 대학 입학사정관들은 학생부의 교과이수 과목명만 봐도 학생이 속한 학교 유형을 한눈에 알아본다. 

이뿐 아니다. 일반고와 특목·자사고의 창체활동 내용, 동아리 개설 현황, 특색 프로그램명 등은 질과 양 모든 면에서 큰 차이가 난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쟁을 해야 하는 학생들의 상황을 고려해 선발한 것이 그동안의 학종이었다면, 올해 학종부터는 이런 고려는 사라진 채로 과정은 무시하고 결과만으로 학생을 선발하게 됐다.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특목 자사고 학생들의 합격 비율이 전보다 훨씬 높아질 것이란 건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특목·자사고 출신 후광효과를 차단하겠다며 도입한 제도가 오히려 특목·자사고 학생들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격이 됐다.  

지역 후광효과 볼 수 있는 지역명은 그대로 둬…'일관성 없는 탁상행정' 비판 
교육부의 이번 지시가 고교 교사들에게 과중한 업무 부담이 된다는 것도 문제이다. 고3 담임교사와 교과 교사들은 당장 코앞인 수시 준비를 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 코로나19 사태로 개학 등 학사일정이 밀리면서, 교사들은 수업하랴 학생평가하랴 행정업무하랴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만큼 힘든 상황이다. 

그런데 교육부는 고3 교사들에게 학생들의 지난 2년 반 동안의 학생부 전체를 읽고 일일이 수작업으로 학교명을 지우라고 일을 떠넘긴 것이다. 

공문을 보면 고3 담임교사는 학생의 1~2학년 학생부에서 ▲수상명 ▲창의적 체험활동상황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에 학교명이 들어간 것을 일일이 찾아 ‘교내’ 또는 ‘OO’으로 고쳐야 한다. 학교명이 아니더라도 학교 정보를 유추할 수 있다면 별칭까지도 모두 수정 대상이다. 

예컨대 학교명이 ‘한강고’라면 수상명인 ‘한강고 과학탐구대회’를 ‘교내 과학탐구대회’로, ‘큰가람 예술제’는 ‘교내 예술제’ 등으로 일일이 수정해야 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교사는 수정한 항목이 무엇인지를 학생부 정정 대장에 기록해 일일이 교장의 결재를 받아야 한다. 수업과 학생 상담, 거기에 코로나 방역 지도까지 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란 고3 교사들에게 학생부 정정 지시는 부담스러운 짐이 될 수밖에 없다. 

한편, 교육부에 따르면 현 고3은 1·2학년 학생부를, 고2는 1학년 학생부를 정정해야 한다. 1학년의 경우, 교육부가 올 초에 미리 학교 이름과 별칭 등을 학생부에 기재하지 않도록 안내해 수정할 것이 없다. 정정 기한은 고3의 경우 학생부 마감 시한인 9월16일까지이며, 고2는 오는 12월31일까지이다. 

교육부는 학생부 정정 시 ‘지역명은 블라인드 처리할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치동, 강남 같은 지명이 들어갈 경우 ‘지역 후광효과를 볼 수 있지 않냐’는 지적도 나온다. 학교 후광효과는 인정하면서 지역 후광효과는 무시하는 교육부의 일관성 없는 태도에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결국 교육부의 탁상행정 결과로 탄생한 ‘학종 서류 블라인드 평가’가 학생과 교사, 대학까지 혼란에 빠뜨리고 있는 상황이다. 학종을 개선하겠다며 내놓은 조치가 오히려 학종을 왜곡시키고 근본 취지를 훼손하고 있다는 비판에, 교육부는 하루 빨리 답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에듀진 기사 URL: http://www.eduj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3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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