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계는 식민사학해야 밥 좀 먹고 사는 구조
-식민사학을 주장해야 역사학과 교수가 되는 구조

사진:이덕일의 역사TV 유튜브
사진:이덕일의 역사TV 유튜브

[이덕일의 한국통사] 광개토대왕릉비문에 나온 내용을 깎아 내리는 젊은 학자들 | 식민사학이 유지되는 비결

역사는 흐르고 학문도 시대에 따라 변함니다만 유독 한국 역사학계는 식민지시대의 그것을 그대로 따르고 유지하고 있습니다. 한편에서는 식민지시대보다 더욱 일본스러운 역사관이라는 신세대라고 등장했으니 아연 실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덕일의 한국통사>의 저자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의 말을 전합니다. 이글은 이덕일의 역사TV의 말을 글로 옮긴 것입니다.  _ 편집자주

한국의 강단사학은 역사관을 마치 종교교리인 것처럼 도그마를 만들었습니다. 이것을 주요대학 사학과를 통해서 확대 재생산하고, 지금은 국가기관인 국사편찬위원회인 국사관을 만들어 조선총독부 역사관으로 도배가 된 국사 교과서를 만들게 됩니다.

이것은 다시 교원 양성소를 통해서 교사들에게 주입시키게 됩니다. 올바른 역사를 배워야 하는 우리 학생들에게 총독부 역사관을 전수하는 구조가 만들어지게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광개토대왕 비문을 둘러싼 아주 오랜 논쟁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서 논쟁이 있다.”고 하면 그 논쟁은 항상 일정한 패턴이 있습니다. 일본극우파가 개입해 한국사를 축소하고 왜곡하고, 그에 맞서 민족 사학자들이 우리 역사의 올바른 것을 밝히고자 하는 그런 싸움입니다.

문제는 남한의 강단사학자들이 항상 일본 편을 든다는 것입니다. 일본 극우파  역사학자들과 남한의 강단사학자들은 일종의 같은 교리를 갖고 있는 같은 종교 집단입니다. 이들 모두는 일본 극우파의 논리에 따라 일본의 민족주의를 높이는 일본 민족주의자들과 같습니다.

남한 역사학계를 장악한 식민사학자들

어떤 분이 강당 사학, 강단 사학 하는데 강단 사학자가 뭐냐는 질문을 했습니다. 해방 공간에서 우리나라 역사학계는 세 개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하나는 민족주의 역사학계, 다른 하나는 사회주의 역사학계, 또 다른 하나는 조선총독부 역사학계 이렇게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민족주의 역사학계는 해방 공간에서 친일파들이 다시 득세 하면서 전부 다 제거가 됐습니다. 조금 남은 사람들조차 6.25 전쟁 중에 납북이 되면서 완전히 사라지게 됩니다. 사회주의 역사관을 추종하는 사람들은 북한으로 월북해 북한 역사학의 기초를 다지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 출신들 이병도와 신석호를 중심으로 한 조선사편수회 출신들이 남한의 학계를 완전히 장악하게 됩니다.

학계만 장악한 것이 아닙니다. 이들 식민사학자들은 조선사편수회 자료를 가지고 당시 국사관이란 걸 만들게 됩니다. 이 국사관이 지금 국사편찬위원회의 전신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주요한 대학의 사학과를 전부 장악하기에 이릅니다.

또 한편으로는 교원 양성소를 장악했습니다. 이 사람들이 주요대학 역사학과에서 식민사학, 즉 조선총독부 역사관을 그대로 반복했고, 이어서 총독부 사람들이 만든 역사관을 마치 종교 교리인 것처럼 도그마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주요대학 사학과를 통해서 확대 재생산을 하고 그 다음에 국사교과서를 만드는 국사관(지금의 국사편찬위원회)을 통해서 조선총독부 역사관으로 도배를 하고 있습니다. 

총독부 역사관이 아니면 석박사 탈락
교원 양성소를 통해서 교사들에게 주입시키고 학생들에게 총독부 역사관을 만들어 온 그런 구조, 그 구조가 지금도 전혀 안 바뀌었습니다.

교원 양성소라는 한국교원대학교 교수들을 보십시오. 역사학을 하는 교수들을 보면 총독부 역사관을 그냥 추종하는 사람들입니다. 서울교육대학교의 한국사 교수들을 보면 또한 마찬가지 상황입니다.

이 사람들은 총독부 역사관에 저해가 되는 학자들은 석박사 학위 논문 심사에서 철저하게 배제해서 학위를 주지 않습니다. 설사 학위를 받았다고 할지라도 대학 강단에 서지 못하게 철저하게 막음으로써 학계를 거의 100% 장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렇게 남한의 역사학계는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모두 총독부 역사관으로 똘똘 뭉쳐 있는 게 현실입니다.

진보 역사학자라는 사람들은 이승만, 박정희 두 대통령을 비판합니다. 비판하려면 이승만 대통령이 친일세력 끌어들여서 식민사관이 살아났습니다. 그럼 이 조선총독부 역사관도 같이 비판해야 되는데 이승만, 박정희만 비판합니다.

조선시대로 가면 이완용이 당수인 “노론 역사관이 옳다.”라고 하고, 그대로  “총독부 역사관이 옳다.”고 합니다. 이런 식으로 보수, 진보 모두 하나로 일치단결해서 총독부 역사관을 비판하면 양쪽에서 전부다 죽이려고 달려드는 상황인 것입니다. 이런 상황은 지금도 계속 돼 오고 있습니다. 

역사학을 하려면 식민사학을 해야 하는 구조

원래 사람은 양심이라는 게 있습니다. 굳이 양명학에서 왕양명이 말하는 양지, 양지란 사람은 마음속에 다 양지, 좋은 걸 알 수 있는 지식이 있어서 가지고 옳고 그른지를 자연히 구분할 수 있다라고 하는 것이 왕양명의 양명학에서 말하는 양지론입니다.

인간은 뭐 하나 잘못 했으면 처음에 혼나야 합니다. 한두 번 잘못했을 때 혼나야 되는데 혼나지 않으면, 이게 잘한 것인 줄 알고 계속 같은 형태를 반복하게 됩니다. 지금 남한 강단사학이 그런 상황인 것입니다.

사학과에 처음 들어왔을 때 다들 '나는 총독부 역사학 할 거야' 라고 들어오는 학생은 한 명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들어와서 보니까 총독부 역사관 이외에 윤내현 교수 책 보려고 하면 “보지마!”라고 합니다. 윤내현 교수는 심지어 하버드에서까지 공부한 역사학자이고 단국대학교 교수입니다.

그런데도 송호정 한국교원대 교수가 윤내현 교수를 '강단의 재야사학자 윤내현'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말하는 강단이란 의미가 총독부 역사관을 옹호하는 것이냐, 아니냐의 문제, 이게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윤내현 교수 같이 세계적인 대학인 하버드대학에서 공부한 사람도 총독부 역사관을 비판하면 강단의 재야사학자라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역사학을 계속 하려면 식민사학을 해야 되겠구나."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자기들끼리 어울리다 보니까 식민사학이 아주 올바른 것으로 자기 세뇌를 시키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들을 만들게 된 것은 조선총독부 역사학을 하는 사람들이 계속 잘 나가기 때문에 발생되는 것입니다.  이런 구조는 정권이 바뀌어도 잘 나갑니다.

식민사학의 태두 서울대학교의 이병도는 마지막으로 전두환 정권에까지 가담합니다. 박정희 정권에 가담한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은 어떤 정권이 들어서도 계속 잘됩니다. 김현구 같은 고대 명예교수, 이런 사람들이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이사를 합니다. 이러니 그 후배 제자들이 저 길로 가야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거구나라는 생각으로 식민사학의 그 길로 대거 가게 되는 것입니다.

식민사학을 주장해야 역사학과 교수가 되는 구조
광개토대왕릉비를 해석하는 상황에서도 마찬가지 상황에 있습니다. 그나마 과거에는 이병도나 그의 직계 제자 같은 경우에도 대놓고 광개토대왕비문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일본인들의 해석이 맞다” 는 이야기를 못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3세대, 4세대가 됐습니다. 제가 만약에 일찍 대학에 있었으면 저한테 배웠을 사람들, 이들 젊은 사람들이 지금 대학 교수가 되고 있는데 이들은 이제 거침없이 일본 우익의 식민사학을 대놓고 얘기합니다. 

그중에 한 사람이 기경량이라는 사람입니다. 지금 가톨릭대 교수가 됐습니다. 제가 1심에서 유죄 선고를 받으니까, '역사비평'이라는 책에서 여러 명의 젊은 역사학자를 내세워 “조선총독부 역사관은 영원하다”는 이런 식의 제목으로 '사이비 역사학과 한국 고대사' 이런 특집을 두 차례나 다뤘습니다. 

하나만 말씀드리면 “총독부 역사관은 영원히 우리를 지도하고 계시다”라는 컨셉인데, 그랬더니 여기 글 쓴 사람들에 대해서 조선일보에서 국사학계의 '무서운 아이들', 뭐 이렇게 치켜세워 줍니다. 이어서 한겨레, 경향, 한국일보에서 무슨 대단한 학자들이라도 나온 것처럼 전면에 걸쳐서 이 사람들을 띄워 줍니다.

총독부 역사관을 옹호하면 남한에서는 보수라는 조선일보, 진보라고 하는 한겨레, 경향 중도라고 하는 한국일보 할 것 없이 모두 대단한 역사학자가 나타난 것처럼 추앙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의 스승만 하더라도 사료 가지고 들이대면 대놓고 반론하거나 그런 건 자제하던 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 젊은, 무서운 아이들은 그야말로 앞뒤를 가리지 않습니다. 

기경량은 거침이 없습니다. 명색은 학자인데 역사비평에 쓸 때까지만 해도 강사였는데, 이렇게 대놓고 식민사학을 옹호하니까 곧바로 교수로 채용됐습니다. 이것이 아주 한국 사회에서 식민사학이 계속 유지되는 구조가 된 것입니다. 

참으로 이상한 역사학계와 한국의 언론사들
“총독부 만세”하고 들고 나오면 곧바로 교수가 됩니다. 기경량이라는 가톨릭대 교수가 JTBC의 '차이나는클라스' 에 나온 적이 있습니다. 여기에 나와서 일본의 야마토 왜가 신묘년에 바다를 건너서 도해파, 건너서 백제와 신라를 신민으로 삼았다는 나온 구절이 있는데 이 구절에 대해서 제일교포 역사학자 이진희 교수가 “위조됐다”고 했는데 자기는 “위조라고 생각 안 한다”고 말하면서 이것이 마치 역사학계의 통설인 것처럼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내용을 '한겨레21'의 길윤형이라는 기자가, 일본특파원 하고 와서 '한겨레21'의 편집장이 됐을 때 단군을 모욕하고 총독부 역사관 띄우고 하는 온갖 행위를 하게 됩니다. 

이때 “이것이 진짜 고대사다”라고 해 가면서 총독부 역사관 만세하는 특집을 했습니다. 여기에도 기경량이 나와서 광개토대왕비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결국 핵심은 광개토대왕비에 나오는 광개토대왕의 여러 공적들, 흔적들은 뻥이라는 것입니다.

광개토대왕의 업적은 뻥이라고 하고 반면에 광개토대왕비에 나와 있는 왜에 관한 이야기, 왜가 신묘년에 바다를 건너와서 백제와 신라를 신민으로 삼았다는 것은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 논리가 저는 너무 기막혀서 말이 안 나올 정도입니다. 광개토대왕 비문에 나와 있는 광개토대왕 공적들은 사실이 아니라 강자이고 싶은 고구려인들의 욕망이 투영된 것이라고 해석을 합니다.

기경량은 머릿속에서 발끝까지 조선총독부 역사관이 가득 찼습니다. 일본 극우파도 만들어내지 못 했던 논리를 만들어서 광개토대왕비문에 일본인들이 조작했다라고 하는 시비가 지금까지 계속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391년, 신묘년조에 야마도왜가 바다를 건너와서 백제 신라를 신민으로 삼았다”

이것은 사실이라고 주장하고 그 나머지 신묘년조에 나와 있는 이야기를 광개토대왕이 비려를 정벌 했다거나 숙신을 정벌했다거나 부여를 정벌했다거나 하는 여러 이야기들은 다 뻥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이것은 일본극우파들도 하기 어려운 사고방식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을 jtbc와 한겨레 21 같은 곳에서도 같이 띄우고 있지 않았습니까?

저는 초등학교 때부터 신문을 많이 봤습니다. 이제는 신문을 거의 안 봅니다. 역사관을 이런 식으로 난도질 하니까, "이래도 볼래?"하고 자꾸 시험하는 것 같아서 요즘은 거의 안 보게 됩니다.

저는 신문이나 방송이나 몰락하는 이유를 정확히 구분합니다. 역사관이 잘못되면 몰락하게 돼 있습니다.

우리 국민들은 이런 게 있습니다. 한국 국민들에게 좌우를 막론하고 아주 일부를 제외하고는 친일 문제, 일본 찬양 문제는 그야말로 역린입니다. 예를들어 일본이 한국에 무역보복을 했을 때, 일본이 몇 가지 물건 안 팔겠다고 했을 때 전 국민들이 일본 물건 사지 않기 운동에 가담하지 않습니까?

이것은 단순한 일본의 문제가 아닙니다. 35년간 일제 식민 지배를 받았을 때   독립운동가들 고문하고 죽이고 나쁜 짓 많이 했습니다. 당연히 해방되고 난 다음에는 독립운동가들이 정권을 잡아 민족반역자 숙청을 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거꾸로 민족 반역자들이 다시 정권을 잡아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 국민들이 보수고 진보고 할 것 없이 일본과 직접적으로 카르텔이 연결된 사람들에게 가차 없는 것입니다. 간첩들이 아니고서는 용납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언론계가 유독 심각하게 친일 역사학 카르텔과 결합돼 있는 듯 보입니다. 이러니 신문이고 방송이건 간에 별로 보고 싶은 생각들이 안 드는 겁니다.  제가 볼 때는 시대의 흐름도 있겠지만, 한국 언론들이 무너지는, 한국 언론들이 신뢰를 잃은 것은 어떤 특정 정치 집단에 가담해서 진영론 때문에 잃은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진영론 때문에 잃었으면 반은 남아 있어야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반이 아니라 언론 전체를 불신하는 것은 바로 이런 잘못된 역사관, 항상 총독부 역사관을 옹호하면 총독부 역사관을 만세하고 나오면 좌우언론 할 것 없이 다 단결해서 칭찬하는 구조, 총독부 역사관을 실제로 비판하면 죽이려고 달려드는 이런 역사관을 갖고 있는 언론들이 잘 될 리가 없습니다.

이런 게 있어요. 제가 많이 경험을 해 봤는데요. 한국에서는 식민사학을 비판하는 척만 해야 됩니다. 비판하는 척을 하면 좌우언론에서 다 띄워줍니다. 그런데 실제 식민사학을 해체해야 되겠다고 하면 좌우 언론이 다 죽이려고 합니다. 이것이 한국의 언론 카르텔 구조입니다.

그래서 또 다른 무서운 아이, 안정준이란 무서운 아이가 있습니다. 이 사람도 역사비평의 지면에서 '총독부 역사관 만세'라고 써서 조선일보, 한겨레, 경향이 칭찬 받은 일이 있습니다. 이때만 해도 강사였는데, 그것을 쓰고 나서 바로 서울시립대 교수가 됐습니다.

그는 "북한에서도 낙랑군은 평양에 있다.”라고 본다고 거짓말했다가 저 같은 사람에게 걸린 그런 학자입니다. 안정준도 삼국사기에서 바라보는 광개토왕과 광개토대왕릉비에서 말하는 호태왕이 다른가요? 이 사람은 “삼국사기가 맞고 광개토대왕릉비가 틀렸다“고 주장을 했습니다.

이 사람들에게는 어떤 맥락이 있습니다. 야마토왜는 무조건 띄우고 한국 고대사의 광개토대왕이 됐든 누가 됐든, 한국에서 정복 군주가 나오면 그건 다 거짓말이라고 깎아 내리는 패턴입니다. 현재 광개토대왕릉비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현상들도 같은 맥락입니다. 이것은 아주 새로운 현상들입니다.

이 '무서운 아이들'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이렇게까지는 하지 못 했습니다. 요즘 이 '무서운 아이들'이 등장해서 심지어 광개토대왕 비문에 나와 있는 '왜가 신묘년에 건너와서 백제, 신라를 신민으로 삼았다'는 것은 사실이라고 하고 광개토대왕릉비에 나와 있는 공적, 흔적은 거짓말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저는 아무리 이 사람들이 학문을 자기 밥줄로 생각한다고 할지라도 이렇게까지 할 수 있다는 게 대단히 놀랍습니다.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의외로 간단합니다.

그렇게 해야 잘 먹고 잘 사는 것입니다. 이렇게 역사를 팔아먹는 사람들은 나라를 팔아먹게 돼 있습니다. 역사를 팔아먹은 사람들이 계속 잘 되는 이런 구조를 빨리 깨지 않으면 이 나라가 어떻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에듀진 기사 URL: http://www.eduj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3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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