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대왕비 조작한 일본 우익을 추종하는 한국 역사학 교수들
-언론들은 일본 우익에게 돈받지 않은 이상, 제대로 알고 다뤄야

사진;이덕일 역사TV
*사진 출처=이덕일 역사TV

한국의 올바른 역사학이 그나마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오류가 있다고 생각하면 그것을 찾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집요하게 파는 '비판적사고'를 하는 사람들이 존재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떤 학문이든지 비판적사고력은 매우 중요합니다. 식민사관에 뿌리를 둔 한국 강단(대학교) 역사학계의 분위기는 우리 초중고 학생들이 비판적사고력을 향상 시킬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역사는 흐르고 학문도 시대에 따라 변함니다만 유독 한국 역사학계는 식민지시대의 그것을 그대로 따르고 유지하고 있습니다. 한편에서는 식민지시대보다 더욱 일본스러운 역사관이 신세대라고 등장했으니 아연 실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반 시민들이 아는 역사지식과 식민사학자들이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한국역사학계의 괴리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이제 그들을 단죄할 시간이 하루라도 빨리 다가오길 기대합니다. <이덕일의 한국통사>의 저자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의 말을 전합니다. _ 편집자주 


“비류 백제가 396년까지 제4제국으로 존재하고 있다가 광개토대왕에게 공격을 당해서 일본열도로 쫓겨 가 집단으로 이주해서 응신천황이 됐다”라고 하는 게 김성호 박사가 이야기한 비류백제와 일본의 국가기원의 핵심 논리입니다. 

이진희라는 제일교포 역사학자가 있습니다. 와세다 대학교에서 역사학을 공부한 분인데요. 그는 처음에는 조총련계였다가 나중에 김일성 개인 우상화로 가는 것에 반대하며 조총련계에서 세운 조선대학교 교수로 활동했습니다. 1971년까지 교수로 재직하다가 다음해 학교를 떠났습니다. 

그는 상당히 진보적인 입장을 견지했던 학자입니다. 그래서 1974년에 김지하 시인이 오적을 쓰고 나중에 사형 구형까지 받지 않습니까? 그때 이진희 교수가 이에 항의해서 두 차례나 항의단식을 하고 그가 발간한 ‘계간 삼천리’라는 잡지 1975년도 창간호에 김지하 특집을 냈을 정도로 일본 내에서 상당히 진보적인 활동을 했던 그런 학자입니다. 

그는 1972년에 광개토대왕릉비의 연구라는 책을 도쿄의 ‘길천 홍문관‘이란 출판사에서 출간하면서 국제적인 논쟁을 불러일으킵니다. 핵심은 신묘년조, 391년에 왜가 바다를 건너와서 백제와 신라를 신민으로 삼았다 라고 하는 “도해파, 바다를 건너 와서”. 이 구절이 “일본군 참모본부가 조작했다”라고 하는 내용인데요. 이 부분이 한국과 중국 일본 사이에 엄청난 논쟁을 불러일으키게 됩니다. 

이 논쟁에서 남한강단 사학의 입장은 간단합니다. 

기경량 가톨릭대 교수가 JTBC(차이나는 클래스)나 한겨레21 등에 나와서 “(광개토대왕릉비) 거기에 신묘년조, 이것은 맞다 왜가 바다를 건너와서 백제 신라를 신민으로 삼았다 하는 것이 맞다. 이것이 한국학계 통설이다”라는 식으로 이야기한 것처럼 남한 강단사학계는 지금 광개토대왕까지도 부정하는 쪽으로 아주 퇴화하고 있는 중이죠. 

이 부분에 대한 이진희 교수의 주장에 대해서 정인보 선생은 “왜를 주어로 삼지 말고 고구려를 주어로 봐야 된다”라고 바꿨고 그것이 북한학계 입장이고 북한학계나 연변 학계나 이런 쪽은 전부 다 비문 조작설에 동의를 하고 있는 그런 상황입니다. 

그런데 남한 강단사학자들의 의견은 일치되지 않다가 비문 조작설에 동의하는 학자도 있고, 아닌 학자도 있었는데, 지금 차세대라고 볼 수 있는 ‘무서운 아이들’이 등장하면서 광개토대왕릉비에 나오는 ‘왜가 위대하다’라는 것은 맞고,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적은 부분은 뻥이다’라는 식의 아주 새로운 논리를 만들어내서 대한민국 국민들의 역사관을 좀 먹고 있는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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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사학을 추종할 것 같은 사람만 제자로 받는 일본 역사학자들
그런데 이진희 교수의 자서전을 보다가 재밌는 걸 발견했습니다. 자서전에 ‘쓰에마스 야스카즈’란 인물이 나오는데, 쓰에마스 야스카즈가 '임나흥망사'란 책을 써서 임나가 가야고, 지금의 경상도뿐만 아니라 충청도, 전라도까지 전부 다 차지한 거대한 제국이었다 라는 책을 출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임나가야 라고 하는 그 자체가 식민사학인데, 그 전에는 ‘임나 가야가 경상남도 김해 일대였다’라던 것을 쓰에마스 야스카즈가 충청도, 전라도까지 대폭 확대시켰습니다. 

이것을 김현구 고려대 명예교수는 "쓰에마스 야스카즈의 학설은 아주 고전의 위치를 점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위치 비정은 쓰에마스 야스카즈 설을 따른다"라고 해서 쓰에마스 야스카즈가 임나가야를 전라도까지 확장시킨 것을 고스란히 추종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진희 교수가 쓰에마스 야스카즈한테 가서 공부를 좀 가르쳐 달라고 한 거예요. 그러니까 쓰에마스가 면접을 해봤더니 일본 극우파 입장에서 볼 때는 이진희 교수가 안 맞는 겁니다. 이 사람은 아무리 공부시켜도 친일쪽으로 돌아올 가망이 없는 그런 인물인 거죠. 

그러니까 하는 말이 "내가 널 가르칠 아무 이유가 없다. 내가 의무가 없다"고 해서 거절 했다는 거예요. 여기에서 그들의 구조를 알 수 있습니다. 일본 극우파들이 면접을 해 봐서 자신들 쪽으로 넘어 올 가능성이 있는 인물들은 바로 끌어당겨오는 거죠. 

극우파의 자금은 일본 도요타자동차, 사사카와재단과 일본 문부성 
우리나라에 망국적인 역사관이 생긴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고대사 분야에 식민사학자들 불러들여서 사사카와 재단이라든지, 일본문부성 이런 데서 장학금과 생활비까지 대주면서 학위를 받게 하고, 사람들은 국내에 다시 귀국 시켜서 각 대학의 사학과를 장악하게 한 점. 또 하나는 소위 식민지 근대화론을 한국인의 입으로 주창하게 한 것입니다. 

서울대 교수였다고 하는, 한 때 운동권이었다고 하는 안병직 교수 같은 사람을 불러다가 일본인들이 세뇌교육 시켜서 일본 극우파 역사관으로 바꿔서 안병직교수의 제자인 이영훈 같은 사람들로 하여금 낙성대 연구소를 만들게 한 거죠.  그런데 일본 극우파 돈이 도요다 자동차측에서 지원하는 게 있고, 사사카와 재단에서 지원하는 게 있는데 이런 자금을 받아서 "식민지 시대가 아주 위대했다"라는 이야기들을 하게 하는 거죠. 

"일제 식민지시대가 좋았다"라고 하는 이야기를 하게 하는데 이들이 서로 교류 안하는 것 같지만, 이미 같은 편인 것을 서로가 다 압니다. 국민들을 속이기 위해서 마치 다른 집단인 것처럼 행동하는데, 이 두 세력은 완전히 같은 세력입니다. 

광개토대왕릉비 연구에 또 하나의 문제를 던진 한국의 김성호 박사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는 1986년에 '비류 백제와 일본의 국가기원에 대한 책을 펴냅니다. 

그런데 이 책은 원래 조선일보에서 연재했던 거예요. 조선일보가 이 당시만 하더라도 한국고대사에 관해서는 뭔가 밝혀 보려고 하던 신문사였어요. 한 가지 에피소드로 말씀 드리면 당시 조선일보 주필이 선우휘란 기자였는데 선우휘 주필이 환단고기를 필사해서 공개 했다는 이유립씨를 찾았다고 합니다. 

그가 대전에 살고 있다 라는 이야기를 듣고 선우휘 주필이 대전까지 갔지만 만나지 못했습니다. 다시 수소문해 보니까 의정부에 살고 있다는 말을 듣고 그곳에 가서 그를 인터뷰 한 다음 전면에 걸쳐서 기사를 실었어요. 

당시만 하더라도 이런 이야기를 김성호 박사의 비류백제와 일본의 국가기원 이라든지 아니면은 일본 만엽집이 사실은 우리 한국 고대 가요다 하는 그런 여러 한국 고대사에 관해서 관점이 올바른 글들을 조선일보에서 여럿 실었었죠. 

그러다가 어느 순간 조선일보 문화부가 친일 역사학으로 돌아서더니 한겨레와 그 부분에 대해 완전히 같은 입장을 취하게 된 거죠. 그러면서 사실상 영향력을 많이 상실하게 된 겁니다. 

한국 언론사들의 추락지점은 '친일'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한국 언론들이 추락하는 지점을 정확히 봐요. 일본 극우파의 역사관을 갖고 현대사 이전의 역사를 설명하기 시작하면 신문이고 방송이고 일정한 흐름으로 추락합니다.  

그런데 김성호 박사가 비류백제와 일본의 국가기관에서 한 이야기를 보면, 광개토대왕릉비에 광개토대왕이 6년, 영락(永樂)6년에 396년에 점령한 성들 이름이 나오는데 그 성중에 하나가 미추성이입니다. 미추성 하면 비류백제의 수도였던 미추홀이니까 여기에서 김성호 박사는 제4제국설을 제시하죠.  

이 이야기가 뭐냐면 당시 한반도와 만주쪽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 외에 제4제국인 비류백제가 있었다. 비류백제의 중심지는 바로 현재의 미추성인데 그것이 지금 충청도 아산의 밀두리 일대였다. 그런데 396년에 광개토대왕의 공격을 받아서 비류백제가 무너지고 미추성이 함락되면서 한반도에 있던 비류백제 마지막 왕이 일본열도로 건너가서 야마도 왜를 수립. 그가 바로 일본의 15대 응신천황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일본 고대사를 보면 일본서기에 여러 왕들이 나오는데 일본의 학자들도 15대 천황부터 실제 살았던 왕이고 그 이전에는 가짜라고 이야기 합니다. 15대 천황이 응신인데 이 15대 천항이 비류 백제가 396년까지 제4제국으로 존재하고 있다가 광개토대왕의 공격을 당해서 일본열도로 쫓겨 가서 집단으로 이주해 응신천황이 됐다라고 하는 게 김성호 박사가 이야기한 비류백제와 일본의 국가기원 핵심 논리입니다. 

여러분께 당부드리고 싶은 것은 결국은 책을 좀 보셔야 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 방송을 하면서 말로 쉽게 설명을 드리는데 사실은 여러 사료들을 보여 드리면서 글자들을 보면서 설명해야 되는데 그런 부분에선 한계를 느낍니다. 

여러분들이 이런 이야기 할 때 보다 많은 공부를 하고 싶으신 분들은 책을 좀 보셔야 돼요. 책을 읽고 스스로 알아야 합니다. 한국은 스스로 역시 전문가가 돼야 강단사학자들, 일본 극우파 총독부 역사관을 추종하는 사람들의 이 사람들의 사기술에 넘어가지 않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 김성호 박사가 이야기한 이 설은 남한 강단사학계에서 "한 마디로 말도 안 되는 얘기야"하고 없는 걸로 치부하면서 아무도 후속 연구를 안 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 책을 읽어 보면 상당히 타당성 있는 부분도 있고 어떤 부분은 조금 설명이 필요하다, 무리다 하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연구를 해야 됩니다. 

이런 한권의 책으로 이런 논리를 펼쳤으면 이 부분을 더 연구해서 후속 연구를 해야 되는데 "아 이건 일말의 가치도 없다"며 덮어 버리고 무시해 버리니까 안 하게 되는 겁니다. 그러다보니 역사에 관심이 있는 일반 국민들과 자꾸 괴리가 발생하고 있는 거죠.

자기들끼리만 똘똘 뭉쳐서 성을 쌓고 있는 그런 형국인데 빨리 이 성도 무너트리고 모든 한국 고대사의 여러 수수께끼를 공개하고 어떤 것이 맞는지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그런 풍토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한국, 일본 극우파와 남한의 강단사학만 빼놓고 전세계 모든 역사학계가 걷는 그런 길을 걷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위 기사는 유튜브 '이덕일 역사 TV' 방영 내용의 일부를 발췌한 것입니다.  

*에듀진 기사 URL: http://www.eduj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3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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