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높이 맞춘 이해와 소통이 먼저

   
▲ 집단 상담을 하고있는 학생들과 전문상담교사

학교에서 흡연과 선생님께 대들기 그리고 빈번한 폭력 등으로 벌점이 누적된 대표적 문제아들이 모여 있는 대안학교에서 매주 월요일과 수요일 오전에 아이들을 만난다. “오늘은 또 어떤 아이들이 올까?"

강의실에 들어서자 아이들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잠을 청하고 있다. 언제나 그렇듯 익숙한 모습이다. “자 고개를 들어보자” 필자의 밝고 큰 목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뭉개는 아이도 있고 부스스 기지개를 켜는 아이, 힐끔 힐끔 쳐다보는 아이 등 다양한 반응이 펼쳐진다.

요즈음 아이들은 여타한 넋두리와 잔소리로 자신들을 괴롭(?)게 할 짜증나는 시간을 메꿀 그날의 강사가 어떤 성향의 강사인지 간(?)을 본다. “아이 졸려요! 대충하시죠?, 피곤합니다, 배고파요...” 초반에 아이들의 이런저런 멘트에 대립하면, 정말 피곤한 시간이 되어 버린다.

일단, 녀석들이 마음을 걸어 잠그고 생각이 콩밭에 가 버리면, 그 어떤 말로도 분위기를 바꿀 수가 없다. 그간의 수 없는 시행착오에서 얻어낸 필자의 경험에서 일단은 아이들의 말을 수긍하며 가볍게 다가서는 것이 중요했다. 경계심을 허무는 것이 바로 첫 단추다.

비록 학교에서 낙인(?) 찍힌 문제아라고는 하지만 그들도 분명 우리의 미래인 청소년들이다. 그들은 어린 시절부터 저마다의 부정적인 환경에 짓눌리고 내면의 상처를 치유할 틈도 없이 방치된 채 자라버린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어떻게 보면 또래 아이들보다 부정적인 우리 어른들의 사회(?)를 조금 먼저 안 것뿐이다.

그런데 우리사회는 그 아이들을 백안시하고 ‘학생이면 학생다워야 한다.’는 모범과 표준을 정해놓고 혹독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그들의 입장과 사정을 들어 주고 그들의 눈높이에서 이해와 소통이 먼저다.

다수의 학생들을 위해 소수 문제아들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벌점이 최선일까? 자포자기한 아이들에겐 벌점은 더 이상 고려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어떻게 하면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까? 필자가 수 십 년 학교 현장에서 교육해오면서 가졌던 화두다.

먼저 그들을 이해하고 알고 처방해야 한다. 아이들이 공감하지 않는 어른들의 모범답안으로는 아이들이 결코 치유될 수 없다. 문제 아이들은 학교보다 학교 밖 생활을 더 즐긴다는 점을 어른들이 알아야 한다.

그들이 갈 데가 어디겠는가? 이들이 학교에서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는 좀 힘들다. 그렇다고 학교에서 교육을 포기해야 할 상대도 아니다. 그렇다면 이들을 어떻게 하면,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하게끔 할 수 있을까?

그 동안 겪은 필자의 경험으로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가 선결, 고려되어야 한다고 본다.

첫째,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들의 생활태도는 이미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여러 행태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예를 들어 노래방 다니고, 술집 다니고, 담배 피우고, 이성 친구 사귀고, 심지어 알바까지 하면서 자체 용돈을 조달하고 있다. 이들을 일반 학생의 범주로 보기는 어렵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둘째, 눈높이에 맞는 화법을 활용하라.
이들의 언어는 어른들이 듣기에는 좀 민망하다. 욕설은 기본이고 각종 그들만의 은어로 범벅이 되어 있다. 그들 간의 대화를 들어보면 무슨 말인지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경우도 많다. 좋지 못한 환경에서 자라고 부정적인 환경을 누구보다 우선 접한다. 그렇기 때문에 점잖은 화법으로 그들과 소통하기는 힘들다. 그것은 나와 다른 사람, 이질감을 전제한 대화시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의 언어로 질문하거나, 답변해야 관심을 갖는다.


셋째, 자존감을 지켜주어야 한다.
그들은 자기중심적인 면이 강하기 때문에 상대방의 입장보다 늘 자신의 입장이 먼저다. 학교에서 벌점을 주더라도 당사자와 충분한 의견을 교환하고 인정한 후에 벌점을 주는 것이 옳다. 이미 벌점을 받을 줄 알면서도 일탈행동을 한다. 갈 데까지 가보자는 식이다.

또한 그들은 분노를 참지 못한다. 여러 친구들 앞에서의 책망은 자존심과 분노를 자극한다. 가능하면 여러 친구들 앞에서 야단치고 훈계하기보다는 개인적으로 조용한 곳에서 타이르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넷째, 아이들을 다룰 수 있는 롤 모델을 선정하고 지속 관심을 주어라.
문제 아이들을 다룰 수 있는 선생님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학교마다 비교적 녀석들을 충분히 이끌어갈 수 있는 노련한 선생님이 있게 마련이다. 담임선생님이 관리하면 좋겠지만 담임선생님의 역량으로는 버거운 아이들도 많다. 무조건 짜증내게 만들어서도 안 된다. 아이들 입장을 충분히 헤아려주고, 함께 뒹굴 수 있는 선생님이 필요한 것이다.

개념은 약해도 의리가 있다. 자신을 인정해주는 사람(롤 모델)의 말에는 귀를 기울인다. 지속적인 관심과 더불어 기대치를 주면 훨씬 효과가 크다.

마지막으로 학교는 이들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아이들 눈높이에 맞는 별도의 프로그램으로 아이들을 이끌어준다면 효과적이다. 아이들은 바로 교육하기 위해서는 각자의 성향에 따라 반을 구분해야 된다. 크게 자아가 약해서 부적응하는 아이, 너무 나대고 개념이 부족한 아이들로 나누어 교육하면 훨씬 지도하기가 쉽고 교육효과도 높다.

필자는 여러 학교를 교육하면서 무엇보다 학교의 의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단 한명의 학생도 포기할 수 없다.”는 선생님들의 각오와 관심이 전제되어야 한다.

또래 학생들이 모여 있는 학교라는 울타리에서 이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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