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용은 72년 전에 지불하셨습니다” 참전 영웅을 담는 사진작가 ‘라미’ 
- 세월도 갈라놓지 못한 인연 ‘터키군 아빠와 한국인 딸’ 

▲[톡톡 매거진] '세모네모 생각상자'에 실린 콘텐츠 이미지 

2022년 2월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전 세계가 전쟁의 종식을 바라는 가운데 우리나라는 더욱 애타는 마음으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데요. 우리나라 또한 72년 전, 전쟁의 참혹함을 경험했기 때문일 거예요. 

6.25 전쟁은 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가며 가족, 친구 간의 인연을 끊어버렸어요. 하지만 그 전쟁 속에서 피어난 새로운 인연들도 있었는데요. 오늘은 전쟁이 맺어준 아주 특별한 인연에 대한 감동 사연들을 만나 봅니다. 

“비용은 72년 전에 지불하셨습니다” 참전 영웅을 담는 사진작가 ‘라미’ 

* 참전용사에게 사진 액자를 선물하고 있는 라미 작가 
* 참전용사에게 사진 액자를 선물하고 있는 라미 작가 

라미 작가는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해 세간에 입소문을 탄 특별한 사진작가예요. 그는 국내외 참전용사를 직접 찾아가 사진을 촬영해 선물하고 있습니다. 

과거 라미 작가는 28년간 군 복무 중이던 한 군인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요. ‘항상 가족보다 국가가 먼저였다. 만기 전역을 하는 2년 후 첫 가족여행을 간다.’라는 그의 말에 라미 작가는 큰 충격을 받았어요.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자신뿐 아니라 가족의 인생까지도 희생하는 사람이 군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거예요. 

라미 작가는 ‘어떻게 하면 내가 가진 재능으로 이들이 스스로 멋진 사람이라는 걸 느끼게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 군인들을 촬영하기 시작했고, 2016년부터 지금까지 약 1,400여 참전 용사의 사진을 찍어왔다고 합니다. 

라미 작가로부터 사진 액자를 받은 참전용사들이 비용을 물을 때마다 라미 작가는 같은 대답을 합니다. “비용은 이미 72년 전에 다 지불하셨습니다.”라고 말이에요. 그는 과거 참전용사들의 노고에 비하면 무료로 사진을 촬영하는 것은 아주 작은 일이라고 생각한답니다. 

라미작가는 한 참전용사가 “너희가 빚진 것은 없다. 우리가 한국전쟁에 참전한 이유는 자유를 지키기 위함이었고, 너희는 자유를 얻었으니 자유가 없거나 뺏긴 사람들에게 자유를 전달할 의무를 다해주기 바란다.” 라고 했던 말을 잊지 못한다고 해요. 

지금도 우리가 조금만 더 주의 깊게 주변을 살피면 ‘국가 유공자’ 모자를 쓴 참전용사들을 만날 수 있는데요. 이번 호국 보훈의 달에는 우리에게 자유를 선사한 참전용사 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해보면 어떨까요? 

참전용사(參戰勇士) | 전쟁에 참가한 용감한 군사 호국 
보훈 (護國報勳) | 나라를 지키고 나라를 위하여 힘쓴 사람들의 공훈에 보답함 


세월도 갈라놓지 못한 인연 ‘터키군 아빠와 한국인 딸’ 
포화 속에서 만난 달을 닮은 아이 ‘아일라’ 

터키에 사는 슐레이만 할아버지의 주머니에는 오래된 사진 한 장이 들어 있습니다. 사진 속에는 당시 젊은 군인이었던 할아버지와 그의 볼에 뽀뽀를 하고 있는 한국인 여자 꼬마의 모습이 담겨 있는데요. 할아버지는 왜 머나먼 한국 땅의 소녀를 그리워하며 사진을 간직하고 있을까요?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터키는 미국, 영국, 캐나다 다음으로 약 2만 2천 명이라는 대규모 병력을 한국으로 파병했어요. 1950년 6월,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던 터키군 슐레이만도 한국으로의 파병 명령을 받게 됐죠. 가족들은 그를 만류했지만 슐레이만은 ‘한국은 터키의 도움이, 터키는 자신의 도움이 필요하다’며 조국의 부름에 응했답니다. 

한국에 도착한 슐레이만은 전투 중 중공군의 공격을 피하던 중, 몰살된 마을의 시체 더미 속에서 나는 이상한 소리를 듣게 됐는데요. 그건 바로 마을에서 유일하게 목숨을 건진 어린 아이의 울음소리였어요. 아이를 혼자 두고 떠날 수 없었던 슐레이만은 결국 아이를 데리고 피신했답니다. 

부모를 잃은 충격으로 말을 하지 못하는 아이에게 슐레이만과 그의 동료들은 ‘아일라’라는 이름을 지어줬어요. 얼굴이 달처럼 동그랗고, 달빛 아래서 찾았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었죠. 비록 전쟁이라는 비극적인 상황이었지만, 슐레이만과 아일라는 특별한 인연을 맺게 된 거예요. 아일라는 슐레이만의 따뜻한 보살핌 속에 점점 일상을 회복했어요. 

1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 슐레이만과 아일라는 어디를 가든 늘 함께였습니다. 슐레이만은 전쟁이 끝나면 아일라를 터키로 데려가기로 마음먹었어요. 하지만 영원할 것 같았던 행복에도 끝은 있었습니다. 

포화(砲火) | 총포를 쏠 때에 일어나는 불 
파병(派兵) | 군대를 파견함 


“꼭! 다시 돌아올게” 60년 만에 지킨 약속 

* 2010년 다시 만난 슐레이만 부부와 김은자 씨 
* 2010년 다시 만난 슐레이만 부부와 김은자 씨 

전쟁이 휴전 상태가 되면서 터키군은 철수를 해야 했는데요. 안타깝게도 아일라를 터키로 데려갈 여건이 되지 않았어요. 결국 슐레이만은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남긴 채 아일라를 터키군이 세운 앙카라 고아원에 맡겨두고 떠나게 됩니다. 두 사람은 어쩔 수 없이 가슴 아픈 생이별을 해야만 했죠. 

터키로 돌아온 슐레이만은 아일라를 찾으려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전화와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고, 전쟁고아도 10만 명 이상이나 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슐레이만은 아일라를 찾는 걸 포기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얼마 후,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슐레이만의 소식을 접한 한 방송사가 수소문 끝에 아일라를 찾은 거예요! 

한국에서 ‘김은자’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었던 아일라는 슐레이만이 자신을 찾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어요. 한국에 두고 온 아일라를 위해 60년 동안 축복을 구하는 기도를 올린 슐레이만, 그리고 늘 가슴 한 곳에 터키군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간직하고 있었던 아일라는 각자의 나라에서 서로를 그리워하다 60년 만에야 만날 수 있게 됐습니다. 

60년의 시간은 스물다섯의 젊은 군인과 다섯 살의 코흘리개를 백발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로 만들었지만, 두 사람은 만나자마자 서로를 알아봤어요. 그리고 오랜 그리움의 시간만큼 서로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답니다. 세월도, 국경도 갈라놓지 못한 이들의 특별한 인연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오랫동안 기억될 거예요. 

생이별(生離別) | 살아 있는 혈육이나 부부간에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헤어짐 
전쟁고아(戰爭孤兒]) | 전쟁으로 인하여 부모를 잃은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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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듀진 기사 URL: http://www.eduj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9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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