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고군의 대학살로부터 개봉 백성 140만명 구해

800년 전, 세계 최강의 군대 몽고군은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다.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곳에서 갑자기 나타나 햇빛을 가릴 정도의 무수한 화살로, 성벽을 무섭게 때려부수는 공성무기로 유라시아 모든 민족을 얼어붙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저항하는 군대뿐만 아니라 어린이와 노인 부녀자를 가리지 않고 무수히 죽이고 또 죽였다. 그들의 이 학살은 ‘도성’(屠城)이라고 불렸다.

몽고군의 악명을 전 세계에 처음 알린 징기즈칸의 코라즘제국 침략(1219~1225년) 때 벌어진 끔찍한 대학살에 대해 역사가들은 이렇게 적고 있다.

이보다 더 잔인한 약탈은 없었다

   
▲ <일러=한겨레21> 야율초재 상상도 (일러스트레이션/ 장광석)

“헤라트가 함락되자 160만명이 도시 밖으로 붙잡혀 나왔다. 그리고 학살이 시작됐다. 한때 코라즘 제국의 수도이기도 했던 이 아름다운 도시에서 모두 120만명이 학살됐다. 몽고군 한명이 24명꼴로 죽인 것이다.

기독교 성서번역 도시로 유명한 메르브를 점령한 뒤 몽고군은 130만명의 인구를 남자, 여자, 어린애로 갈라 서라고 명령했다. 몽고군이 살려주곤 하던 기술자는 400명에 지나지 않았다. 몽고군은 사람들을 땅 위에 누우라고 명령한 뒤 난도질을 시작했다.

또 다른 도시 니샤푸르에는 174만7천명이 살고 있었는데 역시 대부분 학살됐다. 몽고군 대장 툴루이는 자기 매제가 화살에 맞아 전사한 것을 복수한다며 그렇게 한 것이다. 잘린 목은 아이는 아이대로 여자는 여자대로 남자는 남자대로 쌓아져 3개의 거대한 피라미드를 이뤘다.”

징기즈칸은 손자 무투겐이 마미얀 공략 때 전사하자 철저한 도성을 명령했다. “사람은 모두 죽여라. 나아가 모든 동물, 식물까지 죽여라.” 몽고군은 모든 나무란 나무까지 모조리 뽑아버렸다. 도시마다 살육 다음에는 방화가 이어졌다. 사마르칸트, 부하라, 메르브, 바그다드….

당시 세계에서 가장 번성한 도시들에서 수많은 이슬람교도와 기독교도들이 살해됐다. 한 역사가는 “인류 역사상 이처럼 인구를 격감시킨 적은 없다”고 탄식했다.

몽고군의 이런 잔혹행위는 약탈이 일상화된 유목사회에서 길러졌다고 할 수 있다. <몽골비사>에선 몽고군의 잔학성을 다음과 같이 조장하고 칭송하고 있다.

“많은 적에게 달려들어
전리품들을 노획하면
노획하는 대로 가져라!
도망 잘 하는 사냥감을
죽이면
죽이는 대로 가져라!”

징기즈칸의 4맹견이라 불리는 무장들에 대해선 이렇게 묘사하고 있기까지 하다.

“전투의 날
사람의 고기를 먹는다.
교전의 날
사람의 고기를 양식으로 하는 자들이다.”

1차 코라즘제국 침략전쟁을 끝내고 서하마저 정복한 뒤 몽고군의 다음 목표는 중국의 중원이 될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1232년 3월 몽고군이 중원에서 가장 큰 도시 개봉(開封)을 포위하기 시작했다.

원래 송나라의 수도인 이 도시는 여진족의 금나라에 함락돼 금의 수도가 돼 있었다. 개봉에는 한인을 비롯해 여진인, 거란인 등 147만명이 살고 있었다. 몽고군의 대장은 징기즈칸의 4맹견 가운데 한명인 수부데이였다.

   
▲ <일러=한겨레21> 몽고군의 잔혹한 전투 장면. 중국 중원의 백성들이 그들에게 살을 발라 죽이는 참극을 당하지 않은 것은 야율초재의 덕택이었다.


개봉 백성들은 처절하게 저항했으나…

몽고군은 코라즘제국에서 노획한 이슬람권의 가장 우수한 무기까지 총동원했다. 발석차로 거대한 돌을 성 안에 퍼붓는가 하면, 화통 등이 날아갔다. 불화살이 3층으로 된 개봉성의 4개 방어누각으로 날아갔다. 몽고군은 연자방아 맷돌 덩어리는 물론 대들보 덩어리까지 발사했다.

그러나 방어군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의 총공격을 결사적으로 막아냈다. 금의 황제 애종이 성 밖으로 탈출하고, 전염병이 창궐해 무더기로 죽어나가는 상황에서도 함락되지 않았다.

마침내 모든 보급품이 바닥나고 지칠 대로 지친 상황에서 금나라의 서면원수였던 최립이 쿠데타를 일으켜 성문을 열고 몽고군에 항복했다. 개봉 백성들은 그렇게 14개월 동안 몽고군에게 처절하게 저항했던 것이다.

이제 이 백성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군사령관 최립의 반란에 이은 항복 형식으로 종결됐지만, 그 백성들은 몽고군에 끝까지 격렬하게 저항한 것이다. 코라즘제국과 서하를 휩쓸었던 대학살의 악몽이 중원에서 가장 문명이 발달한 이 도시에서도 되풀이되는 것인가?

이미 몽고 공격군 대장인 수부데이는 대칸 오고타이에게 도성을 진언해놓고 있었다. 그는 항복을 권하러 개봉에 갔던 몽고의 국신사 일행 30명 가운데 29명이 무참히 살해됐다는 보고를 듣자 땅바닥에 칼을 꽂으며 ‘개봉성 전멸’을 다짐한 바 있다.

그렇게 개봉 백성 140만명의 목숨이 대학살의 처참한 운명 앞에 가물거리고 있을 때 한 사람이 오고타이 칸의 막사로 찾아가고 있었다. 거란인 출신인 그는 개봉의 도성을 완화해달라고 칸에게 호소하기 시작했다.

“몇년씩이나 전쟁을 벌이는 노고도 모두 땅과 백성을 얻기 위한 것입니다. 땅을 얻어도 백성이 없다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재물이나 공예품은 풍족함을 얻는 근원이지만, 그것을 만들어내는 것은 사람밖에 없습니다.”

   
▲ <사진=한겨레21> 야율초재가 남긴 글씨.

유라시아대륙 인민의 생사에 관한 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상 최강의 권력자 몽고의 칸에게 호소하는 그는 재상직인 중서령을 맡고 있는 아율초재(耶律楚材)였다. 전쟁으로 일어선 나라 몽고에서, 군국주의가 한창 맹위를 떨치는 전쟁판에서 초원의 법도에 따른 야만적인 살육을 막으려는 한 인간의 치열한 노력이 그렇게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우르츠사하리, 이번에는 절대 그럴 수 없다.”

오고타이 칸은 잘라 말했다. 우르츠사하리는 몽고말로 ‘긴 수염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으로 징기스칸이 야율초재를 아껴 붙여준 이름이다. 국신사 일행을 죽인 것은 몽고군에게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사태였다. 천산산맥 서쪽의 모든 유라시아 땅을 피와 공포로 물들인 코라즘 침략전쟁은 바로 징기즈칸의 국서를 가진 대상단을 코라즘 오트랄 성주가 살해하면서 벌어지지 않았는가?

수부데이에게는 이미 개봉 함락 뒤 ‘최후의 일’을 어떻게 할 것인지 맡기겠다는 약속까지 해놓은 상태였다. 게다가 개봉 공방전이 예상보다 훨씬 더 길어지는 영향으로 오고타이 칸과 그 동생 툴루이가 잇따라 병에 걸리는 사태까지 벌어졌기에 몽고 지도부에서는 모두들 도성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분위기였다.

야만으로부터 문명을 지키다

“풍성한 것을 만드는 기술자들과, 재화를 늘려주는 부자들이 모두 여기에 모여 있습니다. 모조리 죽여버리면 얻는 바가 없습니다.”

초재는 이마의 땀을 씻으며 간언하고 간언했다. 대칸은 충신의 호소로 고민에 빠졌다. 오고타이는 이튿날 개봉 백성의 운명에 대해 이렇게 발표한다.

“죄는 금나라 황족의 성인 완안씨를 가진 자들에게만 묻고 나머지는 목숨을 구해준다.” 중원 백성 140만명이 목숨을 구하는 일대 기적은 이렇게 해서 일어난 것이다.

대만 출신으로 일본에서 활약하는 역사소설가 진순신은 <중국걸물전>에서 야율초재가 살육으로 점철된 초원의 법도를 ‘야만’이자 ‘문명의 파괴’로 보고 그 야만으로부터 문명을 지키려 했다고 평가한다.

   
▲ <칭기스칸 일족> 1, 2권/진순신/한국경제신문사

확실히 그런 관점은 설득력이 있다. 초재는 이전에 사마르칸트 함락 때도 징기즈칸에게 “이제는 도성을 그만해야 합니다”라고 진언했다. 또한 징기즈칸의 4준마 가운데 한명인 무칼리가 “금나라 모든 땅으로부터 백성을 내쫓고 그 전답을 모두 초원으로 만든다”며 시도한 무모하고 파괴적인 정책에 대해서도 반대해 끝내 중단시켰다.

그는 그 뒤에도 긴급과거를 실시해 속전금이 없어 노예로 전락한 중원의 지식인 수천명을 구제하기도 했으며, 몽고에 학교도 세웠다. 나아가 과도한 징세를 목숨을 걸고 막는 등 군국주의적 무단 통치를 절차에 따른 법치로 바꾸기 위해 처절하게 노력했다. “제국은 말을 타고 건설할 수는 있지만, 말을 탄 채 통치할 수는 없다”는 믿음을 실천한 것이다.

야율초재가 죽은 뒤 몽고제국의 재상을 15년 동안 지낸 그의 집에선 거문고와 완함 같은 악기 10여개, 고금 서화 몇점, 서적 수십권 정도가 남아 있었다고 전해진다. 역사가들은 나중에 그에 대해 <신원사>에 이렇게 적었다. “중원의 백성들이 오랑캐에게 살을 발라 죽이는 참극을 당하지 않은 것은 모두 그의 덕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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