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는 삭감, 실제로는 증가, ‘사교육걱정’ 비판서명운동 본격화

   
▲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송인수 대표와 안상진 부소장 외 시민들

그동안 수학교육문제는 수학계와 교육부만의 ‘싸움’이었다. 수학계는 늘 자신들의 독자적인 생각에 의해서 움직였고 심지어는 정부의 방향을 무시하는 양상을 보였다. 이번에도 정부는 공식적으로 “수학의 학습량을 20% 경감하라”고 수학계에 요구했지만 수학계는 사실상 ‘줄일 게 없다’는 입장으로 맞섰다. 학부모의 고통이나 시민의 요구를 받아들일 마음이 전혀 없는 것으로 보일 정도다.

이런 수학 때문에 고통 받는 학부모의 입장을 대변하고 나선 게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다. 수학문제에 대해서 이처럼 시민단체가 본격적으로 발 벗고 나선 것은 처음이다. 학부모들은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해야 사랑하는 자녀들이 수학의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는지 생각해보고 행동할 때가 되었다. 현재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온라인카페에서 10만인 서명운동까지 전개하고 있다.

(10만 서명운동: http://happymath.or.kr/?page_id=174)

  
근로자의 날부터 어린이날까지 총 5일에 이르는 황금연휴가 시작된 지난 5월 1일,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가운데 향후 5년-10년의 수학교육을 판가름하는 중요한 토론회가 건국대 법학관 국제회의룸에서 ‘조용히’ 열렸다. 주최측이 최대한 조용히 열려고 했던 이 행사는 그러나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보도자료 배포로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됐다.

앞으로 수학교육을 어떻게 바꿔나갈지를 결정하는 문제는 학생과 학부모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데도 왜 누군가가 이렇게 연휴을 골라 최대한 조용히 치르려 했을까? 수학이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중고등 과정 6년의 개인별 사교육비만도 작게는 수백만 원에서 많게는 수천만 원에 이를 수 있고, 나아가 앞으로 10여년 정책방향을 자칫 잘못 잡으면 수학 때문에 고통 받을 학생들이 간단히 수백만 명에 이를 수 있을 정도로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 이렇게 넘어갈 뻔했던 것이다.

이 토론회에서 밝혀진 내용을 보면 보다 더 충격적이라고 할 수 있다. 중고등학생과 학부모들의 지대한 관심을 모으고 있는 ‘쉬운 수학’이 정부의 공언에도 불구하고 훨씬 더 멀어질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동안 교육부가 우리 사회의 심각한 교육 이슈 가운데 하나로 부각돼 있는 ‘수포자’(수학포기자)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추진하고 있는 수학학습량 경감 지침이 사실상 수학 교육과정 개정 연구진들에 의해 외면당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 박경미 연구위원장(홍대 수학과 교수)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교육부와 한국과학창의재단이 이날 공개토론회를 통해 밝힌 ‘2015 개정 수학과 교육과정 시안 개발 정책 연구’를 분석한 결과 개정 시안이 수학학습량을 줄이기는커녕 중3학년의 경우 학습량 10% 정도, 고교 문과의 경우도 10% 정도 오히려 늘어났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즉각 ‘수포자 없는 입시 플랜 서명운동’을 확대하는 등 사회적으로 반발여론이 크게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애초 교육부는 수학과 시안과 관련해 수학학습량을 20%를 경감하라는 총론 지침을 정했지만, 37명으로 이뤄진 시안 연구진들(위원장 박경미 홍익대 수학교육과 교수)은 개정 시안을 통해 사실상 이 지침을 지키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교육부는 수학을 포기하는 수포자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상하자 ‘쉽고 재미있는 수학’, ‘수학 학습량 20% 경감’ 등의 정책을 발표하고 별도 연구진을 꾸려서 2018학년도부터 적용될 수학교과서 개편 연구사업를 추진해 왔다. 교육부의 총론에 따르면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 학생 중심, 핵심 역량 반영 교육과정이 이루어지도록 수학 학습량을 현재보다 20% 줄일 것을 권고했다.

이때 학습량을 줄일 때는 △기존 내용 가운데 적합하지 않은 것과 주변적 내용의 과감한 삭제, △유사 개념의 통폐합, △불필요한 과잉 학습 유발 내용 삭제 축소, △대다수가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은 상급학년으로 이동하고 최소 적정 수준에 맞추어 하향 조정, △학년 간 학교 급간의 단순 반복 내용 감축 조정 등 내용의 축소를 강력히 권고했다.

   
▶ 출처 : 2015 교육과정 개편 총론 보고서 중

그런데 이번 공개토론회 때 수학 연구진이 발표한 개편 시안에는 수학 교과 학습량은 전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늘어난 부분이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고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주장했다.

첫째는 초등 수학은 2009 교육과정과 비교 검토해 보니 전혀 감소하지 않았고, 오히려 중학 3학년은 10% 증가, 고교 문과는 10% 증가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시안 내용을 구체적으로 보면 중학 수학에서 이차함수 최댓값과 최솟값의 경우, 2009 교육과정에서 중3, 고1에 분산하여 가르치던 것을 앞으로는 중 3 때 몰아서 배우도록 배치했는데, 이는 “어려운 내용(내용 수준이 ‘최대’)은 상급 학년으로 올리라”는 총론의 권고사항을 위배한 것이다.

또한 ‘상관관계’라는 새로운 단원도 추가되었다. 아울러 중학생 수포자를 만들어내는 대표적인 영역인 ‘기하 도형의 형식 논증(증명하라)’ 부분은 그대로 두었다는 것이다. 사교육걱정은 이런 점을 종합할 때 중학 수학의 학습량은 10% 이상이 늘어나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나아가 고등학교 과정의 수학1(고2 학생들이 배울 범위)의 경우 문과는 2009 교육과정에서 삭제되었던 △지수함수와 로그함수 △삼각함수가 추가되고, 이과는 삼각함수의 활용이 추가되었다고 비판했다. 또한 수학Ⅱ의 경우는 기존의 미∙적분1에 해당되는 내용이 그대로 수학Ⅱ 안에 들어와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는데, 이는 문과생에게 미∙적분을 가르치는 것이 수포자를 만든다는 그동안의 비판여론을 외면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사교육걱정은 문과에는 필요도 없고 대학이공계에서 배우는 ‘미∙적분 Ⅰ, Ⅱ’를 지금처럼(문과: 미∙적분Ⅰ, 이과: 미∙적분 Ⅰ, Ⅱ) 가르칠 것이 아니라 “문과는 미∙적분을 빼고, 이과는 미∙적분 Ⅱ를 대학과정 혹은 고교 진로 선택과정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과의 경우도 선행교육의 주범인 기하와 벡터는 여전히 남는 것으로 됐고 오히려 삼각함수 활용 부분도 더 추가했다는 것이다. 사교육걱정은 축소된 영역과 증가된 영역을 함께 고려하더라도 고교 이과생들은 내용이 다소 줄기는 했으나 학습량 20% 경감이라는 지침으로부터는 한참 동떨어져 버리게 된다고 비판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이런 점들을 종합해 수학 연구진의 이번 수학 교육과정 개편안은 수포자 감소 대책이 아닌, 사실상의 증가 대책이라고 단언했다. 나아가 이번 수학 연구진이 내놓은 개정안 시안을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정부는 국민의 수학 고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요구하고 나섰다.

한편 이번 개정안 시안 연구의 책임자인 박경미 연구위원장은 국가경쟁력과 수포자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다고 인정하고, 시안연구진의 수학교사 비율을 30%에서 40%로 늘려 현장교사들의 의견을 더 많이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런 방침에 대해서도 연구진에 수학교사의 참여를 늘린다고 해서 현장의 의견이 반영되는 구조가 아니라는 점을 들어 비판하는 여론이 커지고 있다. 오히려 수학계가 나아가려는 목표점에 들러리를 세워 책임을 현장교사들에게 전가하겠다는 것이 아니냐고 의심하는 분위기이다.

 
   
▲ 방청객과 취재진들의 열기
 
 

수학교육의 올바른 방향 설정을 위해 현재 불붙고 있는 수학학습량 문제, 나아가 수포자 문제는 오는 9월로 예정된 시안 확정을 앞두고 보다 뜨겁게 가열될 것으로 전망된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수학사교육포럼’ 최수일 대표는 '5월 12일에는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연구진과 토론회가 예정되어 있으며, 5월 28일에는 백범 김구 회관에서 장관 및 교육계 원로를 초대해 공청회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최 대표는 수학으로부터 고통 받는 학생과 학부모를 위해 이 문제를 더욱 이슈화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나타냈다.

이제는 학부모들도 정책이 정해지면 '이제 학원비가 많이 들겠구나', '우리 아이가 힘들어지겠구나' 라고 자포자기하기 이전에 나쁜 정책은 만들어질 수 없도록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하고 행동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 아이들이 수학으로 멍들어 가는 시간에 인문학 책이라도 한 번 더 읽을 수 있고 나아가 제대로 된 날개를 펼수 있다. 

수학계도 대한민국의 경쟁력은 수학만 잘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잘해야 한다는데 동의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지나치게 수학 위주로 되어 있는 교육시스템을 개선할 수 있는데 협조해야 한다. 그래야 더 이상 수학계가 '자신들의 밥그릇 싸움으로 인해 전 국민이 고통받고 있다' 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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