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목고, 자사고에 밀린 아픈 지난 몇 년 멋지게 극복

   
▲ 압구정고등학교

중학교 학부모들에게 특목고와 자사고의 광풍이 몰아친 것이 엊그제 같다. 이제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지’ 싶을 정도로 상황이 변했다. 오히려 일반고를 선호하는 지역도 나타나고 있으며 일반고의 인기가 자사고를 누른 지역도 있다. 대학 진학에 있어 특목고와 자사고가 일방적으로 유리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런 변화는 시작됐다. 역량 있는 일반고의 선택은 오히려 대학 진학에 훨씬 유리할 수 있다는 것이 진학실적으로 증명됐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서울 압구정고이다. 일반고로서 학생부 종합전형에 적극 대응하여 다시금 명문고의 명성을 획득한 강남 1번지 압구정고의 사례는 일반고 성공신화의 하나로 곱씹어볼 만하다.

우리 사회가 인식하고 있는 강남의 이미지는 무엇일까? 먼저 강남 불패 신화를 창조했던 높은 부동산 가격과 두 번째 가라면 서러워할 만한 높은 교육열일 것이다. 그렇다면 강남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부동산과 교육 중에서 어느 것에 더욱 가치를 두고 있을까? 강남 명성의 중심인 압구정은 어떨까?

압구정고등학교(교장 김영윤)는 강남 사교육열의 특성을 반영하여 성적제일주의를 추구하며, 정시 위주의 입시전략을 반영한 교육과정을 운영할 것이라는 선입관이 있었다.

압구정고는 2009년에 구정고에서 교명을 개정하였고, 한때 강남 개발 붐이 일어나던 시절 압구정중학교와 연계하여 서울 명문으로 급부상하였으며, 고교평준화 시행 초기에는 전국 최고의 명문학교급에 속했다.

이명박 정부의 고교 체제 개편에 따라 특목고와 자사고가 지정 운영되기 시작되었고, 압구정고는 일반고의 체제를 유지하게 되었다. 새로운 고교 운영 제도에 따라 특목고와 자사고가 학생 선발의 우선권을 갖게 되자, 일반고인 압구정고는 상대적으로 신입생 선발에서 우선순위를 확보할 수 없었다.

이러한 제도의 운영 결과로 압구정고는 진학과 입시 경쟁에서 추진 동력을 발휘하기 어려운 제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고, 과거 명문의 위치는 퇴색되었다. 매년 언론을 통하여 발표되는 유명대학교 입학생의 출신고교 리스트에서도 서서히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참담한 일이었다. 물론 이전 평판이 좋을 때라고 해서 모든 학생이 다 공부만 하고 모범적인 것은 아니었다. 이곳 역시 공부를 잘 못하는 학생들도 있었고 학교생활에 부적응을 보이는 학생들도 있었다. 그래도 학교가 잘 나갈 때는 학교의 위상과 품격이 그런대로 유지되었지만 학교교육의 만족도와 선호도가 저하될 때는 명문고의 명맥을 이어나가는 데 한계가 있었다.
 

   
▲ 토론대회

아무리 강남의 압구정고라고 해도 여느 일반고와 다를 바 없었다. 학교 바로 앞에서도 학생들의 일탈행동이 심심찮게 일어나기도 하였다.

학교는 학교대로 변화된 상황에 맞서 새로운 비전과 희망을 주지 못했다. 결단을 내리지 못한 채 끌려가기만 했다.

물론 중간 중간 서울시교육청도 나름대로 능력 있는 교장들을 엄선해서 임명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교장의 경영능력만으로 학교를 변화시키고 개혁해 나가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2011년 같은 지역의 인문계 고등학교인 현대고가 자립형 사립고로 지정되어 압구정고와 다른 교육과정을 운영하게 되었다. 2009년 인근 지역의 세화고와 신반포고의 자사고 지정과 연동하여 현대고의 자사고 지정은 압구정고를 둘러싼 지역사회에 혼란과 술렁임을 불러왔고, 압구정고에 진정한 변화를 유도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변화의 시작은 교칙에 있었다
변화는 곧 시작됐다. 2012년 9월 새 학기를 맞이하여 학교 앞에서 담배를 피우던 학생을 적발하여 과감하게 퇴학 처분을 내렸다.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학생이 교칙을 심하게 위반해도 학부모들의 사회적 영향력에 눌려 처벌하는 것조차 쉽지 않던 학교였다. 그런데 이처럼 무더기 퇴학 처분을 단행한 것이다. 그것도 한두 명도 아니고 6명씩이나...

“어? 학교가 퇴학까지 막 시키네!”

이제껏 학교의 처벌에 대해선 거의 무시하거나 무감각하게 지내오던 학생들이 놀라움과 함께 깨달아갔다. 현실은 자명했다. 학생들은 이해하기 시작했다. 이제 여기 압구정고에서 밀려나면 자신들이 어느 지역, 어느 학교에 가서 어떻게 될 것인지를... 학부모들도 학교가 늦게나마 이처럼 원칙을 지키고 나서자 새로운 상황을 점차 받아들여갔다.

새로운 비전 제시
하지만 처벌은 학교가 더 나빠지는 것을 막을 수는 있어도 학교 교육력을 향상시키기에는 부족하였다. 이미 지역의 중학졸업생 가운데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은 제1차로 외고, 과학고로 빠져나가고, 다시 현대고, 세화고 같은 자사고가 또 한 차례 우수 학생들을 쓸어가는 상황이었다. 그런 뒤에야 남은 학생들과 다른 지역에서 일부 배정받은 학생들이 압구정고로 오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성적으로 특목고나 자사고로 간 학생들에게 밀리는 학생들이 승부할 수 있는 방향은 전혀 다를 수밖에 없었다.
 

   
▲ 사생대회

학교는 새로운 가능성의 신대륙으로 수시 전형을 주목했다. 수시는 학생들의 재능과 적성, 그리고 학습역량 등을 총체적으로 평가해주고 있었다.

때마침 사회적으로도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유명대학들이 기술적으로 특목고 학생들을 우대하는 문제가 국회와 언론을 통해 불거지고 있었다. 동시에 그 해소책의 하나로 일반고의 역량강화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시기였다.

이러한 시점에서 학교는 학교 교육 여건을 고려한 맞춤식 교육과정과 진학지도, 입시전략을 수정하여 학생과 학부모를 설득하였고, 지역사회에 적극 홍보하였다.

“새롭게 변화하는 입시 제도에 대응해 학생들을 조기에 수시에 걸맞은 역량을 강화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게 일반고가 살 수 있는 길입니다. 아니, 우리 학교가 바로 일반고 가운데서도 그걸 가장 잘할 수 있는 학교입니다. 믿고 함께 가십시다!”

학교는 각종 동아리와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개설하면서 학생들의 관심과 열정을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예술 특화반, 음악 영재반, 수학·과학 영재반, 논술 특화반, 각종 심화반, 각종 R&E 활동, 각종 스포츠 동아리 등 특목고나 자사고 같은 데서 개설한 것들을 곧바로 따라잡기 시작했다. 학부모들은 금방 학교의 전략이 옳다는 것을 이해했다. 그리고 적극 호응하고 나섰다.

학교는 새로운 수시 역량을 총력적으로 키워나가는 한편 학교 분위기를 다잡는 일도 함께 펼쳐나갔다. 인성을 바로 갖춰야 학생도 살고, 학교도 살고, 학교가 지향하는 수시역량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교장과 교사, 학부모들이 함께 ‘등교맞이 활동’을 펼치고 학생들을 격려했다. 학부모들은 한발 더 나아가 ‘안전지킴이’로 나서 학교 안팎에서 학생들의 일탈행위가 벌어지지 않도록 지도하는 일에 앞장섰다. 나아가 자녀들이 학교 밖에서라도 일탈행동을 하지 않도록 이끌고 가르쳤다.

   
▲ 교장 선생님과의 대화

인성교육은 기본, 수시형 인재양성소로
이렇게 몇 년 전부터 서서히 시작된 압구정고의 변화는 최근 들어 가속도가 붙었다. 2015년 3월 교육부 국장과 지역교육지원청 교육장 경력을 가진 김영윤 교장이 부임하면서 학교는 보다 체계적이고 안정적인 모습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학교장의 경영관을 바탕으로 학생, 학부모, 교직원들이 바람직한 한마음 학교공동체를 만들고자 노력했기 때문이다. 특히 서울시교육청의 장학사로 있다가 지난해 9월 압구정고에 부임한 백미원 교감은 교육청과의 협조를 잘 이끌어내면서 이러한 압구정고 혁신의 선봉장 역할을 해왔다.

압구정고의 혁신은 매우 놀랄 만하다. 현재 압구정고는 학생들의 지적 역량을 키우기 위해 글로벌 리더십캠프와 수학․과학영재학급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책 읽는 압구정인'이라는 주제로 선생님과 학부모가 함께하는 독서클럽활동도 운영한다. 부모가 앞장서서 책 읽는 일에 나서 학생들에게도 모범을 보이면서 독서에 참여토록 이끄는 방식이다.

올해는 3학년을 대상으로 처음으로 음악․미술 심화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예술반까지 도입했다. 서울대, 홍대 등에 입학할 수 있도록 집중적으로 예술적 역량을 키워주기 위해서다. 그동안 활발하게 진행해온 스포츠클럽은 이제 탁구, 배드민턴, 골프까지 종목을 확대했다.

강남 1번지 압구정고, 교장·교감·교사·학부모가 하나가 되어
이밖에도 압구정고는 대학입시로 인해 소홀히 할 수 있는 인성교육을 위해 체육대회도 성대히 진행하였고, 학년말에 실시되는 합창대회 및 영화제 개최를 위해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

아울러, 학생회 주관으로 진행되는 ‘느티나리제(압구정고 축제)’를 통하여 학생들의 꿈과 끼를 발산할 수 있도록 하고, 학급회 및 학생회를 통한 자율적이고 민주적인 학생문화 조성, 학생 및 학부모, 지역주민의 재능기부 활동을 통한 각종 봉사활동 및 나눔활동으로 함께 성장하고 있다.

나아가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한양대 등 명문대학을 진학할 때 비교적 높은 평가를 받는 것으로 알려진 서울시교육청의 협력교육과정(음악·바리스타)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맞춤형 교육과정을 운영하기 위하여 학교 자체의 음악, 수학, 과학 분야 영재반도 활발하게 운영하고 있다.
 

   
▲ 체육대회

학교의 총체적인 학습 분위기는 매우 좋다. 자기주도학습실이나 장원당이라는 도서관 등 학생들의 자유의지 학습을 뒷받침하는 시설도 잘 갖춰져 있고, 진학 상담도 개인․집단 등으로 나누어 학생 수요를 충족시켜주고 있다.

학교의 이 모든 노력은 직·간접적으로 수시 모집을 겨냥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수시 모집인원이 계속해서 증가일로에 있는 입시 환경의 변화에 발 빠르게 대처해가고 있는 것이다.

맨 처음 압구정고가 변화를 모색할 때 초기부터 이런 변화를 염두에 두고 시작한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학교를 제대로 되살려야 한다는 열정과 노력이 대학입시의 개혁과 잘 맞아떨어져 가면서 저절로 시너지를 내기에 이르렀다고 해야 맞다. 나름대로 치열한 노력을 기울여온 결과 이제 압구정고는 ‘수시형 진로전략’의 메카로 새롭게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이러한 진로지도의 결과로 압구정고 졸업생의 수시 진학비율은 지난 3년 동안 80%를 넘어 거의 90%에 육박할 정도로 정시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다.

이전에는 압구정고에 온 우수학생들 가운데 일부는 자사고 등으로 빠져나가는 경우도 없지 않았으나 요즘은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오히려 특목고, 자사고에 갔다가 다시 압구정고로 전학을 오는 학생들도 생겼다. 특목고, 자사고로부터 일반고로의 전학 역류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엄청난 변화가 아닐 수 없다.

교육열에서 가장 앞서간다는 서울, 그 서울에서도 가장 앞서간다는 강남, 그 강남에서도 압구정동에 있는 일반고인 압구정고의 이처럼 높은 수시 진학률은 우리나라의 대입 진학 진로 교육에 있어 새로운 시사점을 제시해 주고 있다.

압구정고의 이런 입시 전략은 아직도 정시중심전략에 매달려 있는 일부 학교와 지역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교육열과 경제력, 정보력에서 한국 최고로 앞서가는 압구정의 선택을 주목하여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 학부모총회

이런 압구정고의 변화에는 교장, 교감, 교사, 학부모, 학생의 상호 이해와 공감, 그리고 실천이 성공의 필수요건이었다.

압구정고는 학교장을 중심으로 여러 교직원들이 혁신의 물꼬를 텄지만, 결정적으로 학부모들의 적극적인 이해와 지지, 결단이 밑거름이 되었다.

학생들도 학교와 학부모의 선택을 믿고 흔들리지 않고 학교 혁신에 적극 동참하였다. 그래서 학교 구성원들은 모두 압구정 교육신화의 주인공이 되어나갔다.

‘압구정고 모델’은 한국 입시관련 이해당사자들에게 적지 않은 공감과 교훈을 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시중에 이런 이야기가 회자될 날이 멀지 않았다는 확신이 든다.

“아직도 정시의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면 이제 고개를 들어 강남 1번지 압구정고를 주목해 보십시오. 압구정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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