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군은 파르티잔을 이길 수 없다”

매카시즘으로의 부활
미국인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스의 ‘독재’에 맞서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 믿음은 1949년 6월 위스콘신 출신의 초선 상원의원인 조지프 매카시가 정체불명의 서류 한장을 들고 나와 “국무부 안에 200여명의 공산주의자가 있다”고 주장하고 나서면서 깨진다.

매카시는 곧 의회의 ‘반미활동조사위원회’를 통해 수십만명을 증언대에 세우고 공산주의자라는 ‘고백’을 강요했다.

매카시즘이 겨냥한 목표는 두 가지이다. 미국 체제는 공산주의를 허용할 수 없다는 것과, 국가를 공산주의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양심과 사상의 자유까지도 침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논리는 당시 국가가 위기에 처해 있다는 상황 논리로 정당화됐다. 당시 중국대륙을 공산주의의 손에 ‘넘긴’데다가 소련도 원자탄을 개발하는 등 미국이 풍전등화에 놓여 있다는 식의 주장이 먹혀 들어갔다.

사실상 매카시즘의 논리는 카를 슈미트가 꿈꾸었던 ‘전체국가’(total state)의 복제판이었다. 개인과 공동체를 일치시키는 논리에다가 국가가 위기에 처한 ‘예외적 상황’이라면 헌법의 수호를 위해 구성원들의 권리가 일정 부분 제약될 수 있다는 주장… 대단히 빼닮았다.

   
▲ 매카시(위)의 논리는 카를 슈미트가 꿈꾸던 '전체국가'의 복제판이었다. <제공=한겨레21>

나치즘의 ‘게르만주의’와 매카시즘의 체제수호론은 현실이나 이론에 있어서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전쟁을 통해 문제를 확대해나간 과정도 비슷하다. 독일이 체코와 폴란드 침공을 통해 2차 세계대전의 문을 열었다면, 미국은 한국전을 통해 소리 없는 3차 세계대전-냉전의 문을 연 셈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20세기는 외면적으로는 평화로워 보였지만 그 100년 내내 전쟁의 논리 아래 움직였던 셈이다. 민주주의는 전쟁의 공포 아래 허용된 일종의 ‘게임의 규칙’에 지나지 않았다는 논법도 가능한 셈이다. 그 어느 순간에라도 민주주의는 중단되거나 포기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카를 슈미트가 1920년대 <독재론>에서 “독재는 민주주의의 반대가 아니라 (예외적 순간의) 한 과정”이라고 썼을 때 그는 자유민주주의의 본질을 정확하게 통찰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 카를 슈미트(일러스트레이션: 장광석) <제공=한겨레21>

“정규군은 파르티잔을 이길 수 없다”
2차 세계대전 뒤 거의 모든 공식적인 활동을 금지당한 카를 슈미트는 1960대 초반 파르티잔(빨치산)에 관한 논문 하나를 발표했다.

프랑스와 싸운 알제리 파르티잔의 사례를 분석하면서 그는 파르티잔의 정치적 성격에 주목했다. 파르티잔은 정복당한 민중들의 저항으로부터 나온다. 그러나 일반 정규군과 달리 그들은 민중과 구분할 수 없다. 낮에는 농부였다가 밤에는 전투원으로 바뀐다.

여기서 정규군의 어려움은 ‘적’을 식별하기 곤란하다는 데 있다. 정규군의 전쟁은 그것이 아무리 처참하더라도 일정한 전쟁의 규칙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파르티잔 전투는 그런 규범을 모두 뛰어넘는다.

파르티잔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정복자의 모든 부분은 ‘적’으로 규정된다. 정복국가의 민간인 공격도 정당화된다. 파르티잔에게는 손에 잡히는 모든 것이 무기다. 모든 수단이 가능하다. 오늘날 테러라고 비난되는 행위들도 파르티잔의 입장에서는 ‘정당한’ 자기방어일 뿐이다.

한쪽에서는 ‘적’을 식별할 수 없고, 다른 한쪽에서는 모두를 적으로 규정할 수 있다는 이 치명적인 불일치가 바로 파르티잔 전투의 핵심이다.
 

   
▲ “미군은 이길 수 없다.” 이라크 게릴라에 의해 폭파당한 미군 차량.(사진/ GAMMA)

슈미트가 내놓은 결론은 충격적이다. “정규군은 결코 파르티잔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정규군은 적이 누군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규군은 제도화된 ‘정치’를 통해 지배하려 하지만, 파르티잔은 ‘정치적인 것’을 통해 저항하기 때문이다.

슈미트의 이런 주장은 베트남전이 본격화되기 훨씬 전에 제기됐다는 점에서 놀라움을 준다. 1980~90년대 소련이 아프간의 수렁에서 패퇴한 것이나, 2004년대 미국이 이라크에서 고전했던 것은 슈미트의 통찰력이 아직도 유효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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