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퇴행시키는 교육부 역사책 만들기

   
▲ 한국교육정책교사연대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피켓

교육부는 공식적으로는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 여부는 현재까지 결정된 게 없다"고 발뺌 중이지만, 올 초부터 정부와 여당이 줄기차게 부르짖어온 '한국사 국정 교과서'의 부활이 9월 24일 교육과정 개정 고시와 함께 이뤄질 것으로 보여 사실상 초읽기에 들어간 것으로 관측된다.

정부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에 대한 구실로 '시대별 적정화'와 '학습부담 감축'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집필기준을 살펴보면 임시정부의 법통성에 관한 내용이 제외되거나 시대별로 사회·경제사가 빠지는 등 정부 입맛에 맞추는 한국사 국정화의 '사전 정지 작업' 성격을 띠고 있다.

90%가 넘는 역사 교사와 전공교수들은 물론 전국 대다수 교육감과 학부모들, 여기에 독립운동가 후손들까지 더해 일제히 강력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지만 정부는 요지부동이다. 역사 인물의 친일행각 등 근현대사의 굴곡은 최대한 배제하고 정부 입맛에 맞는 '하나의 시각'으로만 역사를 정리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많은 교육관계자와 국민들이 반대하고 친일·독재 옹호 논란을 야기하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는현행법 안에서는 교육부장관의 고시만으로 가능하도록 돼 있다. 그렇다면 역사책 국정화를 시도하는 세력은 누구인가. 그들은 지난 이명박 정부 때도 교학사가 집필한 역사책을 옹호하며 큰 논란을 야기한 바 있다.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는 기존의 교과서가 잘못됐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정설로 널리 인정받고 있는 기존 학계의 학설과 배치되며 한국사의 재해석을 들고 나왔다. 교학사 교과서를 관통하는 논리는 독재와 친일까지도 ‘긍정’이라는 명분으로 합리화하는 ‘친일·독재 미화론’이라고 역사학계는 입을 모으고 있다.

그들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교과서, 가르치고 싶어 하는 교과서는 어떤 것인가. 교학사 역사교과서를 분석한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교학사 교과서는 오류와 사실왜곡이 298건에 이르고 특히 일제강점기에 125건이나 집중되어 있어, 친일 인사의 비판을 최소화하고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 일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위안부
“위안봉사를 시킬 위안부를 큰 돈벌이, 빚 갚기, 쉬운 일 등의 말로 모집하였다”며 위안부 할머니들이 강제가 아닌 자발적 모집인양 할머니들의 피맺힌 증언을 무시한 채 일본 제국주의의 입장에서 기술함으로써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며 일본 극우집단의 편을 들고 있다.

2. 친일
“일제 강점기는 억압과 투쟁의 역사만은 아니었다. 근대 문명을 학습하고 실천함으로써 근대 국민국가를 세울 수 있는 사회적 능력이 두텁게 축적되는 시기이기도 하였다”고 기술하면서, 백범 김구 선생의 설명에 이르러서는 “이후 한인애국단을 조직하여 항일테러활동을 시작하였다”며 독립운동을 ‘테러’로 정의해 이 역사책이 일본의 것인지 한국의 것이지조차 헷갈리게 하고 있다.

‘사료탐구’ 편에서 을미사변을 기술하는 과정에서는 “당시 시행하는 정책은 전부 민비의 계책이었으며…국왕은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았다”며 한성신보의 편집장 고바야카와 히데오의 을미사변 회고록 “민비 조략사건”을 인용해 싣고 있다. 대한제국의 황후인 명성황후를 민비라고 하칭하도록 편집하고, 한 줄도 허투루 쓰기에 아까운 역사책에 장장 9줄에 걸쳐 일본제국주의를 대변해주고 있다.

그러면서 ‘생각해보기’ 편에는 “당시 일본은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과격한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까?”라는 질문으로 학생들로 하여금 일제식 사고를 하도록 유도하는 대목이 있어 이 책이 과연 한국의 역사책인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게 했다.

3. 근대사
민간인 3만여명, 경찰 등 1,000명 정도의 희생을 치른 제주 4·3사건은 4.3특별법의 정신에 따라 기술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민간인의 희생이 있었고, 많은 경찰과 우익인사가 살해당하였다‘며 누가 피해자이고 누가 가해자인지 구분이 안 되게 두루뭉술하게 기술되어 있다.

이외에도 국민은 안중에도 없이 전쟁 내내 도피와 거짓말로 일관한 이승만 전 대통령을 지나치게 미화하며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하고 있다. 또한 일제에 의해 강제로 체결된 강화도조약을 불평등 조약이 아닌 평등조약이라고 우기고, 일제가 식민지배와 수탈의 필요에 의해 건설한 철도를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었다고 하는 식민지근대화론을 펼치며 일제의 식민사관을 사실인 양 기술하고 있다.
 

   
▲ 한국교육정책교사연대에서는 http://www.edupol.net 에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서명을 받고 있다.

이외에도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사에서 논란의 여지가 많은 이승만은 42회나 이름을 언급하고 5장이나 되는 사진을 할애했지만, 헌법에 명시된 대한민국의 법통을 이어받은 임시정부의 마지막 주석 김구의 사진은 1장뿐이며, 윤봉길 의사의 사진은 아예 1장도 없다.

거기다 일제강점기 시대를 정리한 연표에는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이나 1932년 이봉창·윤봉길 의거 등 굵직한 사건이 모두 빠져 있다.

또한 일제하 민족운동사에는 수없이 많은 작은 단체와 운동들이 있었는데도 이를 무시한 채 미국의 윌슨과 소련의 레닌을 등장시켜 좌우 대립구도로 편집하고 1945년 자주독립의 역사를 폄하하고 있다.

이승만에 대한 미화는 지난 이명박 정부에서 본격화된 뉴라이트의 건국절 논란과 맥이 닿아 있다. 뉴라이트는 대한민국 역사의 시발점으로 1948년 건국을 꼽으며, 광복절을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을 기리는 건국절로 바꾸자고 주장하는 단체이다. 정부 수립 이후 반공은 강력한 무기가 된다. 이승만의 독재도 북한의 위협 때문이라는 식의 서술이 교과서 곳곳에서 나타난다.


4. 현대사
“5·18 광주에서는 민주화를 요구하는 대학생의 시위가 늘어났다. 하지만 진압군이 투입되면서 대규모 시위로 번지게 되었다. 충돌은 유혈화되었고 시위대의 일부가 무장을 하고 도청을 점거하였다”로 표기되어 있다. 진압군은 당연히 투입될 것이 투입된 것처럼 그리고, 정작 신군부의 민간인 학살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이처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황우여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등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는 교학사의 역사관에 준하는 내용으로 추진될 것으로 예상하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미 지난 이명박 정부 때 정부의 비호를 받았던 교학사 교과서가 그 중심에 있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역사학자들은 박근혜 정부가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부분만을 들춰 다른 역사 교과서에 대해 친북좌파 교과서, 자학적인 교과서라고 비판하고 있지만, 오히려 그들이 긍정사관의 이름으로 친일과 독재 등을 합리화한다고 주장한다.

정부가 원하는 역사책에는 독립운동의 역사는 지워진 채 친일이 미화되고, 반공과 경제발전이 중요한 가치로 자리 잡고 있다. 반공과 경제발전이 도움이 됐다면 일제는 물론 일제의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한 친일파도 긍정적으로 보자는 주장이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김태년 의원이 전국 중고교 사회과 교원 2만 4,195명을 대상으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찬반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 1만 543명 중 77.7%인 총 8,188명이 반대라고 답했다. 또한 17개 시·도교육감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울산을 제외한 모든 교육감이 반대라고 응답했다.

국민들의 생각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정부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를 당장 중지해야 한다는 것이 대다수 국민들의 시각이다. 한국의 역사책이 일본제국주의와 친일파의 시각으로 기술되고, 그것이 국정 교과서가 되어 학생들이 의무적으로 공부해야만 하는 사태는 막아야 한다는 것이 올바른 역사관을 갖고 있는 정상인의 사고방식이기 때문이다.

이미 국정화된 초등학교 6학년 역사 교과서에는 ‘의병 대토벌’(93쪽), ‘의병을 소탕하고자’(94쪽), ‘쌀을 수출하는’(96쪽) 등의 표현이 나와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이 교과서에는 친일 논란을 빚은 고교 ‘교학사’ 교과서에서도 지적됐던 부분이 그대로 나오며, 심지어 ‘을사조약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이토 히로부미’(95쪽)라는 기술도 등장한다.

초등학생들이 의무적으로 배워야 하는 이 책이 한국의 교과서인지 일본의 교과서인지 헷갈릴 정도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고등학교의 한국사 교과서까지 국정화된다면 그 교과서가 우리의 역사를 어떻게 왜곡할 것인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앞으로 정부가 국민적인 반대를 무시하고 끝끝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할 것인지, 아니면 여론에 밀려 포기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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