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시설, 도로망 등 각종 공공시설 건립도 활발

자야와르만 7세는 당연히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기리는 대사원도 건립했다. 어머니를 기려 세운 타 프롬(1186년 완공)에 대해 기록한 비문에는 이런 내용도 있다.

‘타 프롬에는 400명의 남성, 18명의 최고위 승려, 2,740명의 일반 승려, 2,232명의 일꾼, 615명의 여성 무희들이 있다. 이곳에 일시적으로 묵는 외부 사람까지 합치면 1만 2,640명에 이른다. 이 밖에 신에게 공역을 제공하는 남자와 여자가 6만 6,625명이 더 있다. 이 사람들까지 합치면 모두 7만 9,265명에 이른다. 버마인, 참파인까지 합치면 그렇게 된다. 이 밖에 무게가 5t이 넘는 금과 은의 항아리, 35개의 다이아몬드, 4만 620개의 진주, 4,540개의 보석, 947장의 중국제 스카프, 512개의 침대, 523개의 파라솔까지 사원의 재산으로 등록돼 있다.’
 

   
▲ 자야와르만 7세 때의 생활을 보여주는 부조 <사진=한겨레21>

엄청난 숫자다. 자야와르만 7세의 아버지를 기려 세운 프레아 칸(1191년 완공)도 같은 방식으로 계산하면 거의 10만명에 이른다. 모두 5,300개 촌락이 이 사원을 짓는 데 공역을 제공했다.

이 비문은 나아가 이 두 사원과 그 앞에 언급한 다른 한 사원에 종속돼 공역을 제공하는 사람들이 모두 1만 3,500개 촌락으로부터 차출됐다고 밝힌다. 이들은 이 사원을 위해 식량과 의복을 제공했다.

이런 숫자는 1960년대 캄보디아 경작지대 촌락의 평균 인구인 200명과 거의 비슷하게 맞아떨어진다. 각 사원에 귀속돼 있었다는 ‘버마인’이나 ‘참파인’은 전쟁포로로 노동을 제공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된다.

자야와르만이 건립한 각종 공공시설도 주목할 만하다. 치료시설은 중부 라오스까지 뻗어나갔다. 타 프롬 비문에 따르면 이 치료시설은 모두 838개 마을의 성인 인구 8만명에게 제공됐다. 각 시설에는 대략 100명씩의 관리인원이 있었다고 한다.

도로망은 전국 각지로 뻗어나가면서 약 16km 간격마다 숙식시설을 설치했다. 이에 따라 앙코르로부터 참파의 수도까지는 모두 57개의 숙식시설이 마련됐다고 기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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