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지식만을 얻어가는 장소가 아닙니다"

   
▲ 분당 수내고 '학부모선도어머니회' 활동

경기도 분당에 위치한 수내고는 학부모회가 여느 학교와는 다른 모습으로 공교육의 파트너로서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어 화제다.

학부모의 전문 직업을 활용한 직업탐색, 내 아이가 아닌 다른 집 아이의 심리상담, 19년째 이어지는 선도회 등 수내고의 선도적인 학부모회 활동은 장기적으로 학부모가 공교육의 파트너로서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모범사례이다. 

수내고 학부모회는 단순한 봉사 활동에 그치지 않고 공교육에서 부족한 부분을 채우며 학교 교육 발전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런 학부모회의 활동이 전국적으로 공유되어 다른 학교 학부모회의 활발한 활동을 견인한다면 공교육 발전과 행복한 교육 환경 조성에 한발 더 가까워질 수 있다.

경기도 교육청의 강력 추천으로 찾아간 분당 수내고등학교(교장 박강용) 학부모회. 수내고의 전 학부모회장이자 지금은 학교운영위원으로 활동 중인 최진 학부모를 만났다.


Q. 학부모회 활동 계기는?
A. 
저는 직장맘이라서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래 학부모회 활동을 할 수가 없었어요. 그러다가 큰아이가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는데, 성남은 지원한 학교와 상관없이 무작위로 추첨을 하는 형식이라 원하지 않은 신설학교에 배정을 받았죠. 학교가 역사와 전통도 없고 건물만 최신식이라 모든 것이 안정적이지 않은 느낌에 불안하기만 했어요.

   
▲ 상담 중인 최진 회장과 학생

그러다가 우연히 학부모들이 학부모회 활동을 하여 학교가 잘 자리 잡게 된 다른 지역의 신설학교 사례발표회를 접하게 되었어요.

거기서 학부모회 활동이 학교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되어 큰아이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학부모회 활동을 시작했으니 올해로 5년째네요.

고등학교는 사실 학부모회가 유명무실한 곳이 많아요. 저 또한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는 채로 학부모회 임원으로 학교를 들락날락하다가, 본의는 아니겠지만 학교의 주인의식을 가져야 하는 학생들이 부당한 일을 많이 겪는 것을 보고 학부모회의 역할이 무엇인지 그때 깨닫게 되었어요. 그 후로 열정적이고 자발적으로 학부모회 활동을 하게 되었죠.

Q. 학교에서 진행 중인 활동과 그 성과는?
A. 
진로 진학과 관련하여 작년부터 시작한 ‘SNS를 활용한 학부모 멘토 활동’을 소개해 드릴게요. 많은 학부모님들이 전문 직업을 갖고 있는 점을 활용하여 학생들의 진로에 도움이 될 학부모님을 학부모회에서 모집했습니다.

지금은 예전과 다르게 학교에서 부모님들의 직업을 수집할 수가 없고, 학교와 학부모 사이의 교류도 그리 활발하지 않아 부모님들의 직업파악이 어려운 게 사실이지요. 그래서 학교와 선생님들이 할 수 없는 학부모님들 섭외를 학부모회가 나서서 하게 된 것입니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직업선호도조사를 하여 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업을 선별했습니다. 그리고 이 직업에 종사하는 학부모님들을 모집하고 멘토를 원하는 학생들의 신청을 받았어요. 이렇게 모인 학부모와 학생들을 온라인상의 밴드(Band)를 통해 멘토와 멘티로 연결시켜 주었습니다.

   
▲ sns직업상담 아나운서 상담내용

학부모님들이 가장 걱정스러워하는 것은 직업을 가지고 있어서 자유롭게 학교에 오지 못한다는 것이었고, 그로 인해 학생들에게 지속적인 도움을 주기가 힘들다는 점이었죠. 수내고 학부모 멘토 사업이 특별한 점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학부모 멘토 사업은 일회성에 그치는 봉사 이벤트가 아니라, 온라인상에서 학생들에게 지속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는 큰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학부모님들은 직장 때문에 학교에 자주 올 수 없지만 밴드를 통해서라면 아이들과 언제 어디서든 소통할 수 있으니까요.

아이들이 진로에 대해 알고 싶은 부분을 밴드에 올리면 밴드의 특성상 학부모님들이 즉각적으로 답을 줄 수가 있지요. 질문과 답변을 공유한 학생들은 자신이 생각하지도 못한 직업 세계를 경험하면서 깊이 있는 진로 탐색의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되고, 또한 한층 더 성장할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을 쌓게 되는 것이죠.

학부모 멘토는 본인의 직업과 관련된 정보를 일주일에 하나씩 밴드에 게시해 주셨어요. 학생들은 멘토의 글을 참고하여 자신이 원하는 진로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진로에 어떤 학과가 적합한지를 구체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아이들이 올리는 질문도 단편적인 것에서 점차 깊이 있고 핵심을 짚는 질문으로 발전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오프라인에서의 학부모 멘토사업도 활발히 진행 중입니다. 상담 관련 활동을 하고 있는 학부모들이 방과 후에 학생들을 만나 진로상담을 하고 있어요. 고등학교는 진로상담 및 심리상담 선생님이 없는 학교가 더 많아요. 학생들은 처음엔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아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해 보니 답답한 마음이 뻥 뚫리는 기분이라며 정말 좋아해 주었어요.

처음에는 ‘진로상담’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는데, 학생들을 한 명 한 명 만나보니 마음에 힘든 문제들을 적지 않게 가지고 있었어요. 그 아이들에게는 진로상담보다 심리상담이 우선이라고 생각해, 먼저 아이들의 진심에서 우러난 이야기들을 듣고 이해해 주려고 노력했어요. 다행히 아이들의 반응도 참 좋았어요.

학교 선생님들께서도 밴드에서 함께하시고 상담예약을 잡아 주는 등 노력을 기울여주신 결과 전국 진로대회에서 큰 상을 받는 성과도 이루어 내셨어요. 여러 학교들이 진로진학 활동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지만, SNS를 이용한 사례는 수내고가 처음이라고 하더라고요. 작년에 이어 올해는 더 많은 학부모 멘토가 참여하여 진로멘토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 교복은행 학부모회 활동

선도어머니회 활동도 대단히 활발합니다. 올해로 19년째 활동을 하고 있으니 역사가 깊은 봉사활동이지요.

아이들이 학교 밖으로 외출을 할 때 외출증을 끊어 주며 확인을 하고, 외부인들의 학교 출입을 통제하는 등 학교 내외의 안전을 책임지는 역할을 합니다.

예전에 강남의 한 초등학교에 외부인이 들어와 초등학생을 상처 입힌 그런 일들은 우리 수내고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지요.

매일 아침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조를 짜서 봉사를 합니다.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 주고, 운동하다가 교복이 찢어진 아이들이 교복을 들고 찾아오면 어머니들이 반짇고리를 준비하여 옷도 꿰매주고, 안색이 어두워 보이는 아이들을 불러서 고민을 들어주기도 하지요. 정말 대단한 학부모님들이십니다.

또 학부모와 학생들을 위해 매주 월요일 교복은행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졸업하는 선배들이 교복, 체육복, 생활복 등을 기증하면 후배들은 작아진 교복을 바꾸어 가거나, 체육복을 잃어버린 학생들이 구입해 갑니다.

봉사에 참여하는 학부모님들은 더러워진 교복은 세탁도 해 오고 떨어진 단추는 달아주기도 하고 선배의 이름표는 떼어내기도 합니다. 학생들이 교복은행을 찾아오면 학생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학교생활의 어려움이나 고민을 들으며 학부모이기 이전에 인생선배로서 조언도 해 줍니다. 엄마가 아닌, 또 다른 모습의 엄마를 만나는 시간이 바로 교복은행의 문이 열리는 시간입니다.

Q. 학부모는 학교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A. 
학부모는 학교가 할 수 없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선생님들은 가르치는 일을 하십니다. 아이들의 고민을 들어 주실 마음은 있으나 시간이 늘 부족합니다. 학교는 또한 지식만을 얻어 가는 장소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큰 사회로 나가기 전에 사회를 경험하고 공부할 수 있는 ‘작은 사회’입니다.

   
▲ 학부모회인 두월회와 교장선생님의 모습

학교는 온갖 고민들에 싸여 성장통을 앓는 아이들의 마음을 읽고 어루만져 주며 성장시켜야 하지만, 그러기엔 수업시수를 맞춰야 한다는 현실 문제 때문에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

아이들에게 필요하지만 선생님과 학교가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해 주지 못하는 것들을 찾아, 누군가가 해 주기를 바라지 말고 우리 학부모들이 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학

부모들은 학교의 감시자가 아니라 동반자가 되어야 합니다. 학교가 어려워하고 힘들어 하는 부분들을 함께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는 것이 학부모가 할일이라고 생각해요.

Q. 학부모로서 학교, 교육청, 교육부 등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A.
세상에서 가장 변하지 않는 곳이 학교, 교육청, 교육부라는 말을 합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 가는 아이들이 사는 세상에서 너무 더디게 움직여서는 안 될 것 같아요. 그렇게 해서는 우리 아이들을 앞에서 끌어 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뒤를 쫓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죠.

학교는 더불어 사는 것이 무엇인지, 공동체가 무엇인지 모른 채로 급속도로 개인주의화된 사회에서 살고 있는 아이들에게 함께하는 삶과 그 즐거움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교가 수학 점수 1점에 울고 웃으며 성적으로 줄 세우는 곳이 아니라 학생들이 마음껏 꿈꾸고 개성을 살려나갈 수 있는 곳이 되도록 교육제도가 바뀌어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Q. 다른 학부모들이나 학교 학부모회에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A. 
학부모회의 활동은 우리 아이 하나만을 위한 활동이 아니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학교라는 공동체에 속해 있는 학부모회이기 때문에 내 아이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함께 생각하는 활동을 하였으면 합니다.

다른 아이들이 행복해 진다면 우리 아이도 그 속에서 함께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내 아이만를 위한 활동이 아니라 모든 아이들을 위한 활동이 될 수 있도록 많이 고민하는 학부모와 학부모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학교의 담은 그리 낮지 않아요. 특히 고등학교 학부모에게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 이유는 아마도 고등학교가 성적을 무시할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겠지요. 그렇다면 학교가, 학교장이 학교의 담을 낮출 수 있도록 노력해 주셨으면 해요.

수내고는 올 초에 박강용 교장선생님이 새로 부임해 오셔서 그 역할을 잘 하고 계세요. 공부 잘하는 아이만을 위한 학교가 아니라 모두에게 평등한 학교를 만들고 계십니다. 그런 분위기를 조성해 주는 것이 바로 학교의 담을 낮추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학교가 바뀐다면 아이들이 먼저 알아줍니다. 그리고 학교의 그런 변모를 아이들을 통해 학부모도 자연히 알게 됩니다. 이렇게만 된다면 학부모는 아이를 안심하고 학교에 보낼 수 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학부모도 학교에만 역할을 미루지 말고 열심히 학교 활동에 참여를 해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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