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적, 수많은 분서사건들
사마천은 왜 죽음보다 더한 치욕의 궁형을 당하면서도 살아남는 길을 선택했는지, 왜 끝내 <사기>를 남겼는지에 대한 자신의 심정을 편지 하나에 담아 후대에 남겼다.
사형수로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던 익주자사 출신의 임안에게 보낸 편지는 그 처절한 문학성으로 동양 최고의 명문장으로 꼽히기에 손색이 없다.
“죽음은 단 한번이지만, 다만 그 죽음이 어느 때는 태산보다도 더 무겁고, 어느 때는 새털보다도 더 가볍습니다. 그것은 어떻게 죽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먼 옛날 주나라 서백(문왕)은 제후의 신분이면서도 유리에 갇힌 몸이 되었으며, 이사는 진의 재상까지 지냈으면서도 다섯 가지 형벌을 다 받고 죽었고, 팽월 장오는 한때 왕의 칭호까지 받았으나 갖은 문초를 받아야 했고, 강후 주발은 한나라 가문과 원수지간인 여씨 일족을 주살해 권세가 비할 데 없는 몸이면서도 취조실에 들어갔습니다. 협객으로 유명한 계포는 노예로 팔려가기까지 했습니다….
예로부터 어려움을 극복해 고난 속에서도 남달리 뛰어난 일들을 이뤄낸 인물들은 몇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그 이름이 칭송되고 있습니다.
▲ 후세에 출간된 <사기>. 사마천은 왜 끝내 <사기>를 남겼을까. <사진 제공=한겨레21> |
주나라의 문왕은 감옥에 갇혀서 <주역>을 연구해 글로 남겼으며, 공자는 곤액을 당하고 나서 <춘추>를 썼습니다. 좌구명은 두 눈이 먼 뒤에 <국어>를 지어냈고, 손빈은 두 다리를 잘라내는 형벌을 받고서 그 유명한 <병법>을 완성시켰습니다.
여불위는 촉에서 유배생활을 했기 때문에 <여씨춘추>가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으며, 한비자는 진나라에 갇혔기에 <세난> <고분>의 글을 썼습니다. <시경>에 실린 시 300편도 대부분은 성현께서 분발해서 지으신 것입니다.
이렇게 모든 훌륭한 일들은 생각이 얽혀서 잘 풀리지 않고 마음이 통할 곳을 잃었을 때 이루어집니다. 즉 궁지에 몰려 있을 때라야 지나간 일을 돌이켜보면서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지혜를 얻기 때문입니다.
좌구명이 시력을 잃고 손자가 다리를 절단당했을 때 세상 사람들은 그들이 다시 일어서게 되리라고는 상상조차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그러한 참혹한 고통을 당했기 때문에 물러나서 글을 쓰고, 방책을 저술했으며, 울분을 토로했고, 문장을 남겨서 자신의 진정을 표현했습니다.”
인류의 적, 수많은 분서사건들
서양에서도 분서사건은 역사를 거치며 꼬리에 꼬리를 물고 벌어졌다. 대표적인 것 가운데 하나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무대로 벌어졌던 일련의 방화와 약탈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
::온 + 오프 항해지도::
▶ 중고생
-<사기열전> 여러 종류 나와 있음.
-<역사의 혼, 사마천>천퉁성/이끌리오
▶▶ 대학생 이상
-<사마천과 함께 하는 역사여행> 다케다 다이준/하나미디어(오래된 책)
-<위대한 역사가 사마천>버튼 워슨/한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