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학점제 첫해, “내신 붕괴·급우 관계 해체”는 사실 아냐

- 한국교육과정평가원, 『고교학점제 본격 적용 첫해 학교 교육과정 편제 경향』 보고서 분석 – 입시 중심 과목 구조가 본래 취지 훼손… 객관적 연구·제도 보완 시급

2025-11-19     문영훈 기자
[사진=과제 연구 하는 고양국제고 학생들/에듀진DB]

2025학년도부터 고교학점제가 본격 시행되면서 일부 언론에서는 “전 과목 내신 1등급 학생이 속출해 내신 변별력이 사라질 것”, “학생 이동이 잦아 급우 관계가 무너졌다” 등의 보도를 쏟아냈다. 하지만 최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발표한 『고교학점제 본격 적용 첫해 학교 교육과정 편제 경향』 보고서는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가 없다고 밝혔다. 실제 학교 현장은 언론이 묘사한 혼란과는 다른 양상을 보였다.

◈ 1학년 ‘이동 수업’ 논란은 허구
보고서는 전국 17개 시·도 68개 고등학교의 학교알리미(schoolinfo.go.kr)에 공시된 교육과정 편제표를 분석했다. 그 결과, 2025학년도 1학년은 기존 2015·2022 개정 교육과정과 동일하게 국민 공통 교육과정으로 운영되어, 선택 과목 비율이 1% 미만에 불과했다.

즉, 1학년 학생들은 사실상 지정 과목만을 수강하며, 이동 수업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언론에서 제기한 “1학년부터 이동 수업으로 인한 피로감과 혼란”은 근거가 없는 주장으로 드러났다.

◈ 2학년부터 본격 선택 확대… 과목 수는 늘고 학점은 줄어
2학년부터는 학생 선택 중심의 교육과정이 확대된다. 지정 과목 학점은 29학점에서 25학점으로 줄었지만, 과목 수는 7.8개에서 8.1개로 거의 동일했다. 반면 선택 과목 학점은 28.9 → 33.5학점, 과목 수는 8.3 → 10개로 증가했다.

과목당 학점도 지정 과목은 3.72에서 3.1, 선택 과목은 3.5에서 3.3으로 감소해, 결과적으로 학생들은 학기당 8과목에서 10과목을 이수하게 됐다. 이는 대학의 권장 과목 확대와 수능 탐구 영역의 다변화가 맞물린 결과로 분석된다. 보고서는 “과목당 학점이 줄면서 학생의 학업 부담은 오히려 증가했고, 교사들은 다과목 지도와 학생부 관리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고교학점제가 본래 추구한 ‘학습 여유와 자율성 확보’의 취지가 입시 중심 구조 속에서 훼손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로 꼽혔다.

[자료=한국교육과정평가원]

◈ ‘이동 수업 피로도’ 보도는 과장… 학급 중심 운영 여전
언론이 강조한 ‘학생 이동으로 인한 피로도와 급우 관계 해체’ 주장도 과장된 것으로 분석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2학년의 이동 수업은 전체의 약 50% 내외 수준이며, 상당수 학교가 계열별 선택 과목 중심으로 학급을 편성하고 있었다.

즉, 완전한 개별 선택형 이동 수업이 아니라 ‘부분 선택형 운영’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학급 개념이 사라지고 교우 관계가 무너졌다”는 주장은 실제 현장을 반영하지 않은 과장된 표현으로 평가됐다.

◈ 내신 변별력 약화? 오히려 3학년에서 강화
‘전 과목 1등급 학생 급증’이라는 보도 역시 사실과 다르다. 보고서에 따르면, 선택 과목 수가 많아질수록 모집단이 세분화되어 오히려 변별력은 커진다. 특히 3학년의 경우 지정 과목 학점이 8학점 → 13학점으로 증가하고, 선택 학점은 48학점 → 41학점으로 감소했다.

진로 선택 과목까지 상대평가 체제가 유지되면서 3학년 1학기 내신은 수능과 함께 입시에 절대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보고서는 “수능·내신·세특이 결합된 ‘공포의 트라이앵글’ 구도가 형성될 가능성이 있다”며 오히려 3학년 내신 경쟁이 심화될 수 있음을 경고했다.

◈ “입시 요인이 학점제 본래 취지 훼손”… 연구와 제도 보완 시급
결론적으로 이번 보고서는 고교학점제 시행을 둘러싼 언론 보도의 상당 부분이 사실과 다르거나 과장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다만, 평가원은 “상대평가 유지, 대학의 과도한 권장 과목 지정, 수능 출제 범위 확대 등으로 인한 학교 현장의 혼란은 여전히 존재한다”며 “학점제의 안착을 위해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현장 연구와 제도적 지원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혁선 전국수석교사협의회장은 “고교학점제가 진정한 학생 선택 중심 제도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입시 중심의 구조적 압박에서 벗어나, 학교와 학생이 주체가 되는 교육과정 운영 체계 확립이 시급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