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한국의 과학미래 발목 잡고 있나

   
 

과학고 면접시험의 과학과 수학을 융합한 STEAM형 문항은 현재 정상적인 공교육만을 받은 중학생은 절대 대비할 수 없는 문항이다. 그런데도 많은 학생들이 면접시험에 거뜬히 통과해 과학고에 진학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이들 대부분이 사교육기관에서 선행학습을 하고 온 학생들이라는 것은 더 이상 놀라운 일도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공교육에서 가르치지도 않는 문제로 학생들을 선발하는 과학고 자체도 문제이지만, 오히려 더 큰 문제는 ‘2015 과학고 입학전형 운영 매뉴얼’을 과학고에 내려 보내 사실상 지필고사를 허용해 준 교육부에 있다는 비판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과학고를 준비하는 학생들이 많이 다닌다는 한 학원 관계자는 “융합형 문항이나 과학 실험 설계는 학생들이 학교에서 풀거나 실습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학원에 와서 지속적으로 지도를 받아야만 한다”며 “학원을 다니지 않는 아이들의 경우 주어진 시간 내에 거의 답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과학고를 지망하여 면접 평가를 준비하고 있는 학생들 중 많은 수가 사교육 과열지구의 과학고 입시 전문학원에 등록하여 고액의 사교육비를 지출하고 있는 것이다.

사교육 문제를 해결한다는 취지로 만든 과학고의 '자기주도 학습전형'을 교육부가 나서서 사교육에 의해서만 대비 가능한 입시 제도로 왜곡시켰다는 것은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교육부가 말로는 공교육을 정상화해야 한다면서도 뒤로는 과학고에 사교육을 받지 않으면 안 되는 문제를 출제하라고 부추기고 있는 꼴이기 때문이다.

상당수 과학고들은 융합형 문항을 출제하라는 규정이 없었던 작년까지도 해마다 면접에서 수학이나 과학 분야의 면접 문제를 공통 문항으로 출제해 학생들을 선발해 왔다. 교육부는 이를 눈감아 주었고, 올해는 아예 과학고 입학전형 매뉴얼까지 내려서 면죄부를 주고 있는 셈이다.

과학고는 1983학년도 입학전형부터 1996학년도 입학전형까지 지필고사를 치르다가 많은 문제가 발생하자 1997학년도 입학전형부터 지필고사를 없애고 구술면접고사로 학생을 선발해왔다. 그러나 구술면접고사 역시 사실상의 지필고사에 다름없는 문제점을 유발하자 2011학년도 입학전형부터는 자기주도 학습전형을 실시했다.

그런데 과학고는 자기주도 학습전형 시행 초기에는 면접 평가에서 수학, 과학의 공통 문항을 만들어 평가하지 않다가, 잠시 여론의 감시가 주춤한 사이 다시 사실상의 지필고사에 해당하는 공통 문항을 만들어 시간을 주고 학생들에게 풀게 하는 방식의 평가를 부활시킨 것이다.

<과학고 입학전형제도의 변화>

구분 기간 입학전형제도의 특징
제1기 1983년~1988년 과학고 자체적으로 선발고사를 실시함.
국어, 영어, 수학, 과학 과목의 서술형 필기시험
제2기 1989년~1996년 학력고사 시대: 과학고 간 공동 출제
제3기 1997년~2004년 구술면접고사 시대: 수학, 과학 과목의 문제를 미리 풀어서 면접관 앞에서 구술로 답하는 방식
제4기 2005년~2010년 탐구력구술검사 시대: 구술고사의 비율이 확대되고 올림피아드 입상성적이 반영됨
제5기 2011년~2012년 과학고 자기주도 학습전형+과학창의성전형 시대
제6기 2013년~ 현 재 과학고 자기주도 학습전형 시대

<자료 제공=사교육걱정없는세상>

이는 과학고 입학전형제도의 변화와 비교할 때 제3기와 제4기로 돌아가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구술면접고사가 사실상의 지필고사와 다름이 없다는 비판이 일자 구술면접고사를 없애고 자기주도 학습전형을 만들었는데, 이 전형에서 다시 공통 문항을 만들어 구술하게 하는 면접 평가가 부활한 것이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유은혜 국회의원실은 시·도 교육청으로부터 과학고의 면접 문항을 제출받아 총 7개 과학고의 면접 문항 38개에 대해 △중학교 교육과정 준수여부, △학교에서의 학습 가능여부 등을 기준으로 분석하여 1월 6일 결과를 발표했다.

사교육걱정 관계자는 전국 20개 과학고 중 7개 학교 문제만 분석하게 된 이유에 대해 "7개 과학고만이 자료를 제출했고, 13개 학교는 교장단이 ‘교육부와 협의 하에’ 문항 제출을 거부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사교육걱정이 면접 문항을 분석한 결과, 2015학년도 과학고 입학전형에서 출제된 면접 문항 38개(수학 26문항, 과학 12문항) 가운데, 수학은 34.6%(9문항), 과학은 8.3%(1문항)가 중학교 교육과정을 벗어난 문제가 출제되어 선행학습과 엄청난 사교육을 유발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과학고가 이렇게 선발방식을 바꾸게 된 계기는 교육부가 하달한 ‘2015 과학고 입학전형 매뉴얼’에 면접평가 항목을 제시한 것이 원인이 됐다.

교육부가 작성해 배포한 2015 과학고 입학전형 매뉴얼에 따르면 자기주도 학습전형을 추진한 배경이 “구술면접 등의 지식 위주 입시로는 차세대 과학기술 인재에 필요한 창의성 등에 대한 고려가 미흡하며, 선행학습과 과도한 사교육을 유발하는 요인을 배제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돼 있다.

그러나 매뉴얼에 담긴 내용은 그와는 정반대로 과거의 지필고사를 실질적으로 허용하겠다는 것이었다. 전형방법은 '자기주도 학습전형'이지만 수학, 과학과 관계된 문항을 출제하여 학생들을 선발할 수 있는 길을 터준 것이다.

이는 과거의 입시에서 선행학습을 유발하고 과학고 설립취지에 부합하는 학생 선발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꼽혀서 폐지한 지필고사 또는 지필고사와 다름없는 구술면접고사를 되살린 것과 다름없다.

<2015 과학고 입학전형 매뉴얼 중 ‘과학고 면접 평가’ 항목> (교육부, 2015)

󰊵 면접평가
◦ 자기소개서, 교사추천서, 학교생활기록부 등 제출 서류와 입학담당관 활동 결과 등을 바탕으로 면접 실시
◦ 과학‧수학 등에 대한 창의성, 잠재력, 소양 등을 종합적으로 확인 검증할 수 있는 방식의 면접평가 실시
◦ 과학, 수학 영역별 면접 평가를 통합 면접평가 방식으로 전환하여 평가 실시
※ 과학, 수학 영역에 구분하여 별도의 문항, 면접실과 면접위원을 구성한 면접평가 금지

면접평가에 관한 이 세 항목 중 첫 번째 것만 2014년에 있던 것이며, 나머지 두 항목은 2015년에 신설된 것이다. 2014년까지는 제출 서류에 근거한 개별 문항으로 면접평가를 진행하는 것이 원칙이었는데, 과학고가 공통 문항을 만들어 평가하는 것을 암암리에 허용했던 교육부가 올해는 아예 수학, 과학에 관한 공통 문항을 출제할 수 있도록 버젓이 길을 터준 것이다.

교육부는 이와 함께 면접문항 개발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까지도 명시해 과학고에 내려 준 것으로 밝혀졌다.

<2015 과학고 입학전형 매뉴얼 중 ‘과학고 면접문항 개발 원칙’> (교육부, 2015)

󰊵 면접문항 개발
◦ 면접문항은 평가의 타당도와 신뢰도 제고를 위해 제출서류의 내용을 바탕으로 응시자의 꿈과 끼, 인성, 잠재력을 평가할 수 있도록 작성
◦ 입학전형위원은 면접문항에 대한 세부 평가기준을 사전에 수립
◦ 과학, 수학에 대한 창의성, 잠재력, 자기주도학습 역량, 인성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할 수 있은 융합(STEAM)형 문항 출제
※ 과학, 수학 등 교과지식 중심의 문제풀이 식의 평가문항 작성 금지
◦ 응시자 간 공정성과 형평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문항 난이도를 조정

과학고는 이에 따라 면접평가에서 사교육을 받지 않으면 안 되는 내용으로 면접을 진행한 것이다. '남들보다 먼저 알아야 우수 인재'라는 교육부의 일차원적 사고방식이 결국 사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제공해준 셈이다.

과학고는 우리나라 미래 과학발전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 그럼에도 선행위주의 선발방식으로 한국의 미래를 교육부가 나서서 발목 잡고 있는 것이다.

사교육걱정의 관계자는 “문제가 많았던 과거 방식으로 출제 방식을 되돌리는 것은 창의성을 갖춘 과학인재 발굴의 중요성을 교육부가 인식하지 못한 것이며, 과학고 입학전형 관련 사교육비 부담을 경감하고자 하는 현 정부의 정책과도 어긋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과학고는 우리나라의 미래를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인적 자원을 교육시키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그 위상이 제대로 서지 못한 채 입시명문고로만 인식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이런 환경을 교육부가 나서서 제공하고 있다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

따라서 교육부는 과학고가 과학에 대한 열정과 꿈과 끼를 키우는 방향으로 창의성, 인성과 잠재력 등을 고려하여 과학고 설립 취지에 부합하는 학생선발 원칙을 준수할 수 있도록 하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많은 교육단체들과 교육관계자들이 "교육부가 과학고 자기주도 학습전형의 취지를 명확히 이해하여 2017학년도 입학전형부터는 면접 평가에서 공통 문항의 출제를 금지하는 매뉴얼을 만들어 시행해야 한다"고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저작권자 © 에듀진 인터넷 교육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