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진 샘의 교단일기

   
▲ 강원 사대부고의 교정의 벚꽃 아래에서

우연히 TV를 틀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을 보게 됐다. 수학여행을 떠나는 장면이었는데, 극중 여주인공의 엄마가 수학여행 가는 딸에게 줄 용돈이 없어서 이웃 엄마에게 돈을 빌리러 갔다.차마 입이 안 떨어져 결국 빌리지 못하고 오는데, 눈치 빠른 이웃 엄마는 찐 옥수수를 먹으라고 여주인공의 엄마에게 바구니를 안겨 준다. 바구니 안에는 먹음직스런 옥수수들이 가득했고, 옥수수 무더기 아래로 용돈이 든 봉투 하나가 보일 듯 말 듯 숨어 있었다.

   
▲ 강원사대부고 김현진 교사

1990년. 중학교 2학년 때, 내가 다니던 학교도 경주권으로 수학여행을 떠났다. 3박 4일의 일정이었고 내 기억에 수학여행 경비로 당시 돈으로 4만 원 정도를 냈던 것 같다. 나는 도저히 그 돈을 낼 수 없어서 담임선생님께 수학여행을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왜? 돈이 없어?"
"네...."
"내가 낼 테니, 가자. 끝."
"네?"
"아, 끝!"

결국 수학여행을 갔다. 물론 용돈 한 푼도 없이 오로지 주는 밥만 먹으며 초라한 척하지 않으며 3박 4일의 일정을 보냈고, 전체 장기자랑 사회를 봤던 듯하다. 지금도 현직에 계신 정인희 선생님. 국어 선생님이었고 중 2땐 담임선생님이었으며, 중 3땐 옆 반 담임선생님으로 만났다. 국어 시간에 늘 감성 충만한 수업으로 감성을 흔드셨다. 가끔 우악스런 노처녀의 모습도 보였지만, 이렇게 알게 모르게 아이들에게 '진짜 선생님'이었던 분이다. 연락한지 꽤 오래됐는데... 사랑은 내리 사랑이런가?

   
▲ 선생님 생일에 칠판에 써놓은 학생들의 사랑 고백


나는 어떤 교사로 기억될까? 급하게 이런저런 돈을 대신 내주었던 몇몇 아이들, 그리고 1년 내내 계좌로 매달 3만원씩을 입금해 주며 '아무개 화이팅'이라고 입금자명에 격려의 메시지를 남겼던, 이제 어엿한 사회인이 된 T군.

내가 학생들에게 좋은 교사로 기억되기 위한 목적을 갖고 교사로 산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다만, 지금 이 순간 '너를 만날 때 내가 무엇을 해야 하겠니?'라는 질문을 늘 가지고 교사로 산 것이 그럭저럭 괜찮은 삶을 살게끔 했고, 앞으로도 그러하게 살아야 한다는 명분을 나에게 주었다. 어차피 교사는 그리고 우리 모두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삶'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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