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1 학생기자 '학생 혁명'을 제안하다

   
▲ 전남 장흥고등학교에서 1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진행한 ‘행복한 꿈을 찾아 떠나는 진로비전스쿨’ 모습 <사진 제공=전남교육청>

한국은 OECD 34개국 중에서 선거를 하거나 정당에 가입할 수 있는 연령이 만 19세 이상으로 정해져 있는 유일한 국가다. OECD 가입국뿐 아니라 전 세계 232개국 중 93%인 215개국의 선거 가능 연령이 만 18세 이상이며, 16세 이상인 나라도 오스트리아 등 6개국이나 된다. 한국의 차별적인 연령 제한은 학생들이 제 목소리를 내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된다. 이런 차별에는 “미성년자는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기엔 너무 어리기 때문에 투표권을 줄 수 없다”는 논리가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나이만으로 개인의 판단력을 논하는 것은 매우 불합리하다. 극단적인 비교를 하자면 치매, 정신적인 문제 등 보통 사람보다 결정 능력이 흐리다고 판단되는 사람이라도 만 19세 이상이면 누구나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다. 개인의 판단력만을 따진다면 이에 대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너희가 미래의 대한민국을 이끌어가야 해. 꿈을 가져, 희망을 가져, 치열하게 살아, 한계란 없어.

많은 어른들이 말하듯, 청소년은 미래를 이끌어나갈 세대이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은 어떠한가? 학생들은 학교폭력, 학업 스트레스, 청소년 자살, 학벌 지상주의 등 어른들이 해결하지 못한 여러 문제들에 노출돼 있다. 많은 어른들이 '청소년은 미래의 인재'라고 외치지만, 정작 우리 청소년을 둘러싼 환경과 여건은 문제투성이이다. 왜 그럴까?
 

   
▲ 고양국제고 1학년 김정연 학생기자

그 원인은 선거에서 제시된 공약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지금까지의 선거에서 다루어진 정책과 공약들은 청년 실업문제, 노인 연금 문제처럼 청년, 노인 등 청소년을 제외한 계층과 관련한 것들이 주를 이룬다. 반면 교육 정책 중 청소년의 입장을 고려한 공약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청소년을 위한 공약이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청소년에게는 ‘투표권’이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청소년의 지지는 선거 기간 전혀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사항이 됐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그나마 관련이 있는 게 대학입시 문제이다. 입시에서는 청소년이 주체가 된다. 학생부종합전형에 지원하는 것, 수능을 치르는 것, 논술전형에 지원하는 것 모두 학생이다. 그런데 학생을 대상으로 한 입시정책에서도 정작 주체인 학생들의 목소리는 반영되지 않고, 고려되지도 않는다. 그저 학부모들의 지지를 조금이라도 더 얻기 위해 학부모들을 위한 교육 정책이 만들어질 뿐이다. 이처럼 학생들의 의견 반영이 전혀 되지 않을 뿐더러, 조변석개식으로 계속해서 교육정책이 바뀌고 있기 때문에 학생들은 '실험실의 쥐' 대우를 받는다는 느낌을 피할 수 없다.

‘너희는 어려, 아직 세상 물정도 모르는 애들이….’

이런 문제의식을 가진 청소년들과 여러 단체들이 1997년, 2014년 그리고 최근인 2016년 3월 20일에도 청소년 참정권 행사와 정치참여 활동을 허가하라는 헌법소원을 제기했지만, 헌법재판소는 “미성년자의 정신적, 신체적 자율성이 충분하지 않다”며 기각한 바 있다.

어쩌면 우리나라 학생들은 어른들의 과잉보호 속에 갇혀있는 것일지 모른다. 특히 고등학생 정도면 각자 나름대로의 신념이 있고, 본인이 한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정도의 나이이다. “아직은 이르다, 장난 투표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는 주장도 대한민국 어른들의 과도한 걱정과 불안에서 나오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앞서 밝혔듯 세계 많은 나라들에서 참정권을 16세~18세 이상 국민에게 부여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본도 선거 연령을 낮추어, 우리나라만이 OECD 국가 중 유일하게 참정권 행사에 ‘성인만’이라는 조건을 내건 나라가 돼 버렸다. 세계 추세와 대한민국 어른들의 반응은 상당히 대조적인 것이다.

물론 학생들에게 참정권을 부여함으로 인해 문제점들이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불안 요소들이 있다고 참정권이라는 중대한 권리 행사를 학생들에게서 유리시키려고만 한다면,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발전과 인권 성장 역시 더딜 수밖에 없다. 사회의 변화 속도는 지금까지와 달리 점점 더 빨라질 것이고, 미래의 위험성을 핑계로 학생들의 참정권 행사를 반대하는 것은 구시대의 변명이 될 뿐이다.

우리나라도 만 17세, 고등학교 2학년 이상으로 선거권을 부여한다면 교육 현장의 현실을 반영한 효과적인 교육 정책을 세우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그들은 우리나라의 교육 정책을 바탕으로 교실에서 수업을 들으며 성장한다. 그들이야말로 실질적으로 학생에게 필요한 교육이 무엇인지, 어떤 부분이 개선되어야 하는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무엇보다 이들이 참정권을 얻게 된다면, 교육과 관련한 많은 변화를 이끌어낼 것이다. 선거 공약들 속에서 학생들을 고려한 것도 생길 것이고, 선거 과정에서 청소년 문제에 대한 근본 원인과 현실적인 해결 방안을 찾기 위한 구체적인 논의도 이루어질 것이다. 또한 선거권 행사 연령을 낮춘다면 청소년기부터 정치의 중요성을 알게 돼 전체 투표율도 높아질 것이다. 자신의 문제가 정책에 반영될 수 있다는 의식이 그만큼 생겨나기 때문이다. 

청년들의 투표율을 비난하며 젊은이들의 정치의식을 폄하하고, 그래서 선거권 연령을 계속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도 문제가 있다. 프랑스의 경우 대학 등록금이 한 학기 100만원, 대학생 투표율은 87%에 달한다. 프랑스의 대학생 투표율이 이처럼 높은 까닭은 대학생들이 자신의 입장을 대변해주는 후보를 찾아 투표권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프랑스의 대학생들은 87%의 투표율을 무기로 대학 등록금을 학기당 100만원으로 끌어내린 것이다.

그런데 한국은 대학 등록금이 한 학기 670만원, 투표율은 37%에 그칠 뿐이다. 투표율이 낮다고만 비난할 것이 아니라, 선거에서 대학생의 입장을 제대로 반영하는 공약이 제대로 제시되고 있는지도 면밀히 살펴야 한다.

많은 단체들과 정당들은 점점 청소년 참정권 부여에 관해 찬성하고 있다. 그만큼 청소년 참정권 부여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함께 애쓰고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학생들의 관심이다. 국가의 엄연한 한 구성원으로서, 학생들이 청소년 참정권 부여에 관해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어떤 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이제는 학생들이 일어나 ‘혁명’을 외쳐야 할 때이다.

*에듀진 기사 원문: http://www.eduj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4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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