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이 끝이 아니다! 끊임없이 고민하고 스스로를 믿어라!

내일은 11월 16일, 수능이다. 수험생들은 마음을 가다듬으려 해도 쉽사리 진정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수능이 인생의 종착점이 아니다. 수능을 보고난 후에도 끊임없이 무엇 대문에 대학에 진학하는 것인지, 이 대학을 통해 앞으로 어떤 길을 걸을 것인지에 대한 의식과 의지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시험 문제를 풀 때도 마찬가지다. 헷갈리는 문제가 나왔을 경우 이것 저것 찍다가는 원래 생각했던 자신의 답을 잃어버리게 된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끊임없이 자신을 믿으며 스스로 인생을 개척해나갔던 ‘마르틴 루터’의 사례를 살펴보자.

어릴 적 부모가 시키는 대로 교육받던 마르틴

   
▲ 마르틴 루터 [사진 출처=위키피디아]

마르틴 루터는 1483년 11월 당시 신성로마제국 삭소니의 아이슬레벤에서 아버지 한스 루터와 어머니 마르가레테 루터 부부의 첫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 한스는 자기 자신과 집안의 성공을 일구려는 야심을 갖고 있었다. 때문에 영민하고 똑똑한 맏아들 마르틴을 법률가로 크게 키우기로 마음먹는다.

그때부터 마르틴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아버지의 강력한 희망에 따라 학교를 옮겨 다니기 시작했고, 중세 유럽의 교육에서 필수적으로 가르치던 3과목(Trivium)인 문법, 수사학 그리고 논리학을 착실하게 배웠다.

1501년, 그는 17살이 되던 해 에르프르트대학에 들어갔다. 주입식으로 반복되던 3과목의 획일주의적이고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벗어나 극단적인 방종까지도 허용하는 듯한 당시의 대학 분위기에서도, 마르틴은 별다른 기쁨이나 즐거움을 얻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나중에 이 시기의 생활을 ‘연옥’이나 ‘지옥’에 비교하며 탐탁지 않았다고 토로했기 때문이다.

범생이 루터, 엉뚱한 계기로 진로를 찾다!
그의 ‘범생이’와도 같은 생활과 자세는 1505년 그가 졸업한 뒤 같은 대학의 로스쿨에 진학할 때까지만 해도 영원히 이어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는 범생이로부터 영영 결별하는 결단을 내린다. 로스쿨에 입학한 지 불과 1주일 만에 과감히 자퇴해 버린 것이다.

루터가 학교를 자퇴를 결심하게 된 이유는 같은 해 7월, 말을 타고 집에 갔다가 대학교로 돌아오는 길에 엄청난 천둥세례를 받고 동시에 번개가 그의 바로 앞에 내리치는 것을 목격하면서부터였다.

‘나는 누가 뭐래도 내 길을 가겠어!’
일반인이 보기에 루터는 전혀 엉뚱한 계기로 진로를 찾은 것처럼 보인다. 설사 그가 그런 경험을 실제로 했다고 해도 일생일대의 결단을 내리는 중요한 일을 공포심만으로 결정했다는 사실이 조금은 못미덥기도 하다.

그보다는 오히려 오늘날의 한국 부모님처럼 자신에게 거의 절대적인 기대를 품는 아버지를 어떻게든 납득시키고 자신의 길을 가고 싶다는 열망에서 이뤄진 스토리텔링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후 루터는 그길로 로스쿨을 떠나 에르프르트에 있는 성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에 들어가게 된다.
 

   
▲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 성 교회 정문에
루터가 자신이 작성한 '95개조 논제'를 붙이고 있다.
[사진 출처=www.americamagazine.org]

그는 자신이 선택한 가톨릭 사제의 길을 문자 그대로 충실하게 걸어갔다. 자신이 소속한 수도원의 성인인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가르침에 따라 금식과 장시간의 기도, 순례 그리고 규칙적이고 빈번한 고회성사를 행했다. 시간이 지나 신학박사, 비텐베르크대학 신학과의 평의회 이사, 정교수를 거쳐 작센, 투링기아 교구의 대목(代牧)이 돼 해당교구의 11개 수도원을 감독하는 자리에까지 오르게 된다.

이후에도 루터는 끊임없이 자신의 신념에 따라 인생을 설계해 나간다. 그렇게 자신을 믿고 옳다고 믿는 그 길로 계속 감으로써 기독교의 역사, 나아가 인류의 역사는 새로운 길을 걷게 된다.



*에듀진 기사 원문: http://www.eduj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74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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