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레드 다이아몬드 <총, 균, 쇠>

   
 

현대 세계의 불평등에 대한 의문을 푼다
-이 기사는 진로진학 매거진<나침반 36.5도> 9월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20세기 초, 근대에는 인종을 사회 성립·발전의 기본적인 요소로 보는 견해인 ‘인종주의’가 만연했던 때이다. 과학자들은 생물학적, 생리학적 요인에 따라 문화의 질적 특성이 나타난다고 보았고 이에 따라 인종이나 민족의 우열을 등급화 했다.

그들은 ‘열등하다’고 분류된 유색인종들은 혈통적으로 우수한 민족에 의해 지배당하는 것은 불가피하다며 지배나 정복을 정당화했다. 이러한 주장은 나치스 독일 세계관의 기초를 이루었고, 1967년까지 미국에서 신체·정신 장애인들이 강제로 불임수술을 받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 주장은 과학적인 근거가 전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두개골이나 피부색, 머리색 등은 선천적인 지능과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많은 통계자료를 보면 오히려 열등한 민족으로 매도됐던 유대인, 한국인, 중국인 들은 ‘우수한’ 인종에 비해 높은 교육적 성취와 소득 수준을 유지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우연’이 만들어낸 문명 발달 수준 차이의 ‘우열’
역사적으로 힘과 부, 기술로 세계를 지배해 온 ‘강한’ 인간들은 상대적으로 더 ‘약한’ 인간들을 정복하거나 심지어는 말살시켰다. 예를 들면 유라시아인들이 아메리카, 오스트레일리아, 아프리카 원주민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하고 식민화 한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어떤 민족들은 총기, 병원균, 쇠를 비롯한 여러 요소들을 발전시켜 남보다 먼저 정치적, 경제적 힘을 얻었는데, 왜 어떤 민족들은 그러지 못하고, 정복과 지배의 대상으로 전락한 것일까?

   
▲ 재레드 다이아몬드 (1962~) [사진 출처=ted.com]

<총, 균, 쇠>의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그러한 결과가 나타나게 된 원인이 민족 간의 생물학적 차이가 아니라, 환경적 차이에서 기인한다고 말한다. 선사 시대로부터 환경적으로 유리한 지역에서 살게 된 ‘우연’이 오늘날 문명의 ‘우열’을 가리게 됐다는 것이다.

따라서 만일 남북아메리카와 아프리카 남단의 원주민과 유라시아의 민족들이 선사 시대 때부터 거주 지역이 바뀌었더라면 오늘날의 사정은 정반대가 됐을 것으로 단정하는 흥미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 <명문대 합격생 학생부 대공개> http://365com.co.kr/goods/view?no=4


다양한 전공의 보고 <총, 균, 쇠>

   
▲ 재레드 다이아몬드 <총, 균, 쇠>
[사진 출처=newsroom.aua.am]

이 책은 제목처럼 무기(공학), 균(생리학), 쇠(과학)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다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각 주제를 인류학, 역사학, 과학이라는 다양한 관점에서 분석하고 있다. 즉, 문·이과를 막론하고 수많은 전공 관련 지식을 접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이 책의 각 챕터는 독서활동이나 탐구활동으로 자연스레 이어질 수 있는 모티브를 제공하는데, 예를 들어 ‘식량 생산의 기원’ 챕터를 읽고 ‘인류학’이라는 학문에 관심을 갖게 됐다면 ‘지리학’과 관련된 또 다른 책을 읽어보거나, ‘정말로 인간에게 가치 있는 식량 자원이 전 세계 1%도 되지 않는지?’ 의문점을 갖고 탐구활동을 해 볼 수도 있다.

진로 변경을 할 때나 어떤 진로를 선택해야할지 고민될 때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내용을 떠올려보고, 그 내용과 관련된 학과를 찾아본다면 자신에게 맞는 진로에 더욱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지금부터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 본문의 일부를 읽어보자.

<총, 균, 쇠> 본문 읽기
제 1부 | 인간 사회의 다양한 운명의 갈림길

제 2장. 환경 차이가 다양화를 빚어낸 모델 폴리네시아
폴리네시아는 환경과 관련하여 인간 사회가 다양화되는 모습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좋은 예다. 그러나 여기서 유추해 낼 수 있는 것은 폴리네시아를 통해 다른 대륙도 그러한 변화를 겪었으리라는 개연성뿐이다. 과연 다른 대륙에서 다양화를 야기시킨 환경적 차이에는 어떤 것들이 있었으며 그 결과는 어떠했던가를 철저하게 밝힌다.

*폴리네시아의 섬들
뉴질랜드, 마르키즈 제도, 사모아, 소시에테 제도, 이스터, 채텀 제도, 쿡 제도, 통가, 투아모투 군도, 피지, 핏케언 섬, 하와이, 헨더슨 섬 등

…(중략) 뉴기니와 멜라네시아 너머의 태평양에 흩어져 있는 수천 개의 섬은 각기 그 면적, 고립성, 고도, 기후, 생산성, 지질적 생태적 자원 등이 크게 다르다. 인류 역사에서 대부분의 기간 동안 그 섬들은 배로 건너갈 수 있는 범위에서 훨씬 벗어난 위치에 있었다. 그러다가 B.C 1200년경 뉴기니 북쪽 비스마르크 제도에서 농경, 어업, 항해 등에 종사하던 사람들이 마침내 일부 섬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들의 후손은 그 이후 몇 세기에 걸쳐 사실상 태평양에서 주거가 가능한 모든 육지에 이주하여 살았다. 그러한 과정은 A.D. 500년에 이르러 거의 완수되었으며 1000년경 또는 그 직후에는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몇 개의 섬에도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길지 않은 기간 동안 엄청나게 다양한 환경을 가진 여러 섬에 이주민이 정착하게 되었으며, 그들은 모두 동일한 이간 사회에서 파생된 집단이었다. 모든 현대 폴리네시아인의 궁극적인 조상은 근본적으로 동일한 문화와 언어, 기술, 가축화·작물화된 동식물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폴리네시아의 역사는 우리가 인간의 적응력을 연구할 수 있게 해주는 자연 발생적 실험인 셈이다. 더구나 거기에는 우리가 그 밖의 다른 곳에서 인간의 적응력을 이해하려고 할 때마다 흔히 방해가 되는 요소, 즉 여러 부류의 이주민들이 차례차례 밀려 들어와서 상황을 복잡하게 만드는 일도 전혀 없었다.

…(중략) 폴리네시아의 여러 섬 사회는 그렇게 각기 경제적 전문화, 사회적 복잡성, 정치적 조직, 유형 생산품 등이 크게 달랐다. 이는 인구 규모 및 밀도와 관련되어 있었고 그것은 다시 섬의 면적, 분열, 고립성, 그리고 먹거리를 구하거나 식량 생산을 강화할 수 있는 기회 등에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폴리네시아의 여러 사회는 원래 동일한 하나의 조상 사회에서 갈라져 나왔지만 각기 다른 환경으로 인해 얼마 안 되는 지표면적에서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그 사회의 차이점들이 다양하게 발전했던 것이다. 폴리네시아 내부의 그러한 문화적 차이의 범주들은 본질적으로 세계의 다른 모든 지역에서 나타난 것들과 일치한다.

…(중략) 간단히 말해서 폴리네시아는 환경과 관련해서 인간 사회가 다양하게 변화하고 발전하는 모습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하겠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폴리네시아가 그랬으므로 그러한 관련성이 있을 수도 있다는 개연성뿐이다. 과연 다른 대륙에서도 그랬을까? 만약 그렇다면 다른 대륙에서 다양화를 야기시킨 환경적 차이에는 어떤 것들이 있었으며 그 결과는 어떠했을까?

1부에 앞서 프롤로그에는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 ‘민족마다 역사가 다르게 진행된 것은 각 민족의 생물학적 차이 때문이 아니라 환경적 차이 때문이다’가 등장한다. 저자는 지리 환경은 분명히 역사에 영향을 미치며 문제는 그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그리고 과연 역사의 광범위한 경향도 지리적 환경으로 설명할 수 있는지를 밝혀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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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는 아프리카에서 기원한 인류의 조상들이 차츰 다른 대륙들로 퍼져 나간 과정을 더듬는 것을 시작으로 폴리네시아 사회의 역사를 통해 인간 사회가 얼마만큼 다양한 모습으로 분화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폴리네시아인들은 서로 간 교류가 거의 없다시피 한 데다 상이한 자연환경을 지니고 있어서, 단순한 부락에서부터 제국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의 사회변이를 보여주었다.

저자는 폴리네시아를 분석모델로 삼은 이유를 외부와의 교류가 적고 비교적 고립된 사회여서 다른 여러 변수들에 영향을 받지 않고, 사회 간 발달수준 차이의 원인을 찾아내기 쉬웠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어 폴리네시아 사회 간 문명 발달 수준에서 차이가 나타난 원인은 지리적인 환경의 차이로 인한 식량 생산 능력에서 차이가 있었기 때문임을 지적한다.

제 2부 | 식량생산의 기원과 문명의 교차로

제 4장. 식량 생산의 기원
식량 생산은 간접적으로 총기, 병원균, 쇠가 발전하는 데 필요한 선행 조건이었다. 그러므로 깍 대륙의 민족들이 언제 어떻게 농경민이나 목축민이 되었는가 하는 시기와 지리적 차이는 그 이후 각 민족의 대조적인 운명을 결정한 주요 원인이었다.
…(중략)

정복과 식량 생산 사이의 주요 연관성
첫 번째 연관성은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으로, 소비할 수 있는 열량이 많다면 그만큼 사람들도 많아진다는 사실이다. 야생 동식물 중에서 인간이 먹을 수 있고 사냥 또는 채집할 만한 가치가 있는 종은 소수에 불과하다. 나머지 대부분의 종은 음식으로서 쓸모가 없다. 다음과 같은 이유 중에서 한 가지 또는 그 이상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소화가 안 되거나(나무껍질), 독이 있거나(모나크나비와 광대버섯), 영양가가 낮거나(해파리), 까서 먹기가 따분하거나(아주 작은 견과류), 채집하기 어렵거나(대부분의 유충), 사냥하기엔 위험한 경우(코뿔소) 등이다. 육지에 존재하는 생물 자원(현존 생물의 총량)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목질과 잎인데, 그 대부분은 우리가 소화시킬 수 없는 것들이다.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동물종과 식물종들만 선택하여 키움으로써 그것들이 일정한 넓이의 땅에서 전체 생물 자원의 0.1%가 아니라 90%를 차지하게 한다면 단위 면적당 얻을 수 있는 식품 열량은 훨씬 더 많아진다. 따라서 같은 면적의 땅에 의존하여 먹고 살 수 있는 사람의 수도 수렵 채집민보다 목축민이나 농경민이 훨씬 더(대략 10배에서 100배 정도) 많아진다. 이 같은 숫자의 힘은 바로 식량을 생산하는 부족이 수렵 채집민 부족에 비해 유리했던 여러 가지 군사적 이점 중에서 첫 번째로 꼽을 만했다.

…(중략) 가축화된 대형 포유류는 작물화된 식물과 더불어 두 가지 방식으로 상호작용을 하여 수확량을 증대시킨다. 첫째, 현대의 정원사나 농부들도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듯이 분뇨를 비료로 사용하면 수확량이 크게 증가한다. 현대에는 화학 공장에서 합성 비료를 만들지만 대부분의 사회에서는 아직도 동물(특히 소가 중요하지만 아울러 야크나 양 따위)의 분뇨가 농작물을 재배하는 비료의 주원료로 사용된다. 전통 사회에서 분뇨는 불을 피우기 위한 연료로서도 귀중한 것이었다. …(중략) 가축화된 대형 포유류는 19세기에 철도가 개발될 때까지 육상 운송의 주요 수단으로 이용됨으로써 인간 사회를 더욱 혁신시켰다. 동물을 가축화하기 전에는 육지에서 물자나 사람을 운반하는 수단이라고는 인간의 등밖에 없었다. 대형 포유류가 그것을 바꿔놓았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육지에서 사람뿐만이 아니라 무거운 물자까지 대량으로 멀리 신속하게 운반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중략) 간단히 말해서 동식물의 가축화와 작물화는 곧 훨씬 더 많은 식량과 조밀한 인구를 의미했다. 그 결과 잉여 식량이 생겼고 또한 일부 지역에서는 동물을 이용하여 그와 같은 잉여 식량을 운반할 수 있는 수단이 생겨났다. 그 두 가지는 정치적으로 중앙 집권화되고 사회적으로 계층화되고 경제적으로 복잡하고 기술적으로 혁신적인 정주형 사회로 발전하는 데 필요한 선행 조건이었다. 그러므로 가축화·작물화된 동식물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는, 유라시아에서 제국, 문자, 쇠 무기 등이 제일 먼저 발달했고 다른 대륙에서는 그보다 늦어지거나 끝까지 발달하지 못했던 이유를 설명해 주는 궁극적 원인이 된다. 말과 낙타의 군사적 쓰임새와 동물에게서 얻은 병원균의 살상력을 마지막으로, 우리가 앞으로 자세히 살펴보게 될 식량 생산과 정복 사이의 여러 연관성들이 모두 드러났다.

 

   
▲ 대림대학교 입학처 https://www.daelim.ac.kr


제 3부 | 지배하는 문명, 지배받는 문명

제13장. 발명은 필요의 어머니
기술 혁신과 발명은 한 사회가 아직 충족되지 못한 어떤 필요를 느낄 때, 즉 어떤 기술이 불만스럽거나 부족하다는 인식이 만연할 때 이뤄지며 발명된 이후 그 용도가 새로 발견된다. 그리고 상당 시간 사용된 후에야 비로소 소비자들은 그 발명품에 대한 ‘필요’를 느끼게 된다.

식량 생산 시작과 확산의 난이도, 인구 규모 따라 다른 기술 발전
…(중략) 유라시아(실질적으로는 북아프리카도 포함)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땅덩어리이며 서로 경쟁적인 사회의 수도 가장 많다. 또한 식량 생산이 가장 먼저 시작된 두 중심지, 비옥한 초승달 지대와 중국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유라시아 대륙은 주요 축이 동서 방향이므로 한 지역에서 받아들인 발명품은 비슷한 위도와 기후를 가진 다른 지역 사회로 비교적 빠르게 전파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곳의 폭넓은 2차 축(남북 방향)은 남북아메리카의 비좁은 파나마 지협과 대조적이다. 그리고 유라시아에는 남북아메리카와 아프리카의 주요 축을 단절시킨 것과 같은 심각한 생태적 장애물이 없다. 그러므로 기술 확산에 대한 지리적, 생태적 장애물이 다른 대륙에 비해 심하지 않았던 셈이다. 이와 같은 요인들 덕분에 유라시아는 홍적세 이후의 기술 가속화가 가장 먼저 시작된 대륙이었으며 결과적으로 가장 많은 기술을 축적하게 되었던 것이다.

…(중략) 각 대륙의 면적, 인구, 확산의 난이도, 식량 생산의 출발 시기 등에서 나타난 이 같은 차이에 따라 기술 발전의 격차는 더 크게 벌어졌다. 기술은 자가 촉매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라시아는 처음부터 상당히 유리한 입장에 있었지만 1492년에 와서는 엄청나게 앞서게 되었다. 그것은 유라시아인들의 지능이 탁월해서가 아니라 유라시아의 지리적 요건이 탁월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뉴기니인들 중에는 잠재적인 에디슨이라고 할 만한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그들은 그 천재성을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서 필요한 기술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활용했다. 즉, 축음기를 발명하는 문제보다는 뉴기니의 정글에서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않은 채 살아남는 문제에 주력했던 것이다.

2부와 3부에서는 1부의 논리를 바탕으로 에스파냐의 피사로 원정대가 잉카 제국을 일방적으로 유린할 수 있었던 원인을 살펴본다. 거기에 더해 식량생산과 문명발달은 구체적으로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설명한다. 예를 들면 식량의 생산력이 늘면서 인구도 늘어나고, 이를 위해 늘어나는 인구와 식량생산 등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필요성이 생겨 정치제도가 탄생하게 되고, 인구와 생산규모가 점차 커질수록 이를 관리하는 정치체계도 갈수록 발달하게 되면서 국가와 제국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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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부 | 인류사의 발전적 연구 과제와 방향

제 15장. 대륙 간 불균형 이론과 원주민들이 낙후된 원인
오스트레일리아는 최근까지도 지극히 단순한 기술만을 가진 인간 사회가 존재했던 곳이고 식량 생산의 토착화가 이루어지지 못했던 유일한 대륙이다. 이곳은 인간 사회의 대륙 간 불균형에 대한 이론을 검증하는 결정적인 판단 기준이 된다.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이 계속 수렵 채집민으로 남아 있었던 이유를 확인할 수 있다.

고립성과 인구 규모가 오스트레일리아의 기술 퇴보에 미친 영향
…(중략) 오스트레일리아는 어째서 금속기, 문자, 정치적으로 복잡한 사회 등을 탄생시키지 못했을까? 한 가지 중요한 이유는 원주민들이 계속 수렵 채집민으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제12~14장에서 보았듯이 다른 대륙에서 그러한 발전들이 이루어진 사회는 한결같이 인구가 많고 경제적으로 전문화된 식량 생산자의 사회였다. 더욱이 오스트레일리아는 건조하고 척박하며 종잡을 수 없는 기후 때문에 수렵 채집민들의 인구는 수십만 명 수준을 넘지 못했다. 고대 중국이나 중앙아메리카의 수천 만 인구와 비교했을 때 오스트레일리아의 기 같은 인구 규모는 잠재적인 발명가의 수가 훨씬 적었다는 뜻이며 새로운 발명품을 받아들여 실험하려는 사회의 수도 훨씬 적었다는 뜻이다. 더구나 이 수십만 명의 사람들로 이루어진 여러 사회가 서로 가깝게 상호 작용을 하도록 조직되어 있는 상태도 아니었다. …(중략)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사회를 창조한 사람들은 원주민들이었다
이제 이 장의 도입부에서 제기했던 문제로 돌아가 보자. 원주민들에게 결함이 있었던 게 아니라면 영국의 백인 이주민들은 불과 몇십 년 만에 문자를 갖고 식량을 생산하고 산업화된 민주주의 사회를 창조할 수 있었는데, 그 대륙에서 40000년이 넘도록 살고 있던 원주민들은 여전히 문자를 모르는 유랑형 수렵 채집민으로 남아 있었다는 사실은 과연 무엇으로 설명해야 할까? 이것이 인간 사회의 진화에 대한, 완벽하게 제어된 하나의 실험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그저 간단하게 인종 차별적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지 않을까?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단순하다. 영국의 백인 이주민들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문자를 쓰고 식량을 생산하고 산업화된 민주주의 사회를 창조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 사회의 모든 요소들을 오스트레일리아의 외부에서 가지고 들어왔다. 가축, 마카다미아 너트를 제외한 모든 농작물, 야금술 지식, 증기 기관, 총, 알파벳, 정치 제도, 심지어는 병원균도 마찬가지였다. 이 모든 것은 유라시아에서 10000년에 걸쳐 이루어진 발전의 최종 산물이었다.

1788년 시드니에 상륙한 이주민들은 지리적 환경이라는 행운을 타고난 덕분에 그 모든 요소들을 상속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물려받은 기술 없이 오스트레일리아 또는 뉴기니에서 생존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로버트 버크와 윌리엄 윌스는 글을 쓸 수 있을 만큼 똑똑한 사람들이었지만 원주민들이 살고 있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사막에서도 생존할 수 있을 만큼 똑똑하지는 못했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사회를 창조한 사람들은 다름아닌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이었다. 물론 그들이 창조한 사회에는 문자도 없었고 식량 생산도 없었으며 산업화도 민주주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바로 오스트레일리아의 환경이 지니고 있는 특징들 때문이었다.

4부는 1부에서 3부까지 진행된 논리를 바탕으로 ‘대륙 간 불균형 이론과 원주민들이 낙후된 원인’, ‘동아시아의 운명과 중국 문화의 확산’, ‘동아시아와 태평양 민족의 충돌’, ‘남북아메리카가 유라시아보다 낙후됐던 원인’, ‘아프리카는 왜 흑인의 천지가 됐는가’ 등 인류사의 발전적 연구 과제와 방향을 제시한다.

끝으로 에필로그에서는 인간의 역사를 보다 체계적이고 과학적으로 분석해 역사학을 자연과학처럼 대해야 한다는 주장을 피력하고 있다. 저자는 몇몇 분야에서는 이미 역사적인 문제들을 분석하는 데 효과적인 방법론들을 얻어냈기에 역사 연구 또한 공룡이나, 성운, 빙하 등과 관련된 연구 못지않게 과학적 연구가 가능하다고 본다.

역사를 과학적으로 연구해 과거와 현재를 면밀히 분석하면 오늘날 우리 사회가 나아갈 길을 제시할 수 있음을 낙관하며 이야기를 끝맺는다.


*사진 출처=클립아트코리아
*에듀진 기사 원문: http://www.eduj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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