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과학실험을 좋아하나요? 과학실험 중에서도 가장 많은 학생들이 흥미를 가지는 실험은 마치 연금술사가 된 것처럼 신기한 가루나 액체들을 섞으며 반응결과를 알아보는 실험일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에 존재하는 물질들에 대해 탐구하는 과학을 바로 ‘화학’이라고 하는 과학이지요.

화학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라고 하면 ‘라부아지에’를 첫 번째로 꼽을 수 있습니다. ‘화학의 아버지’라고도 불리는 라부아지에는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했던 천재적인 두뇌의 소유자였어요. 그런데 이렇게 똑똑하고 연구밖에 몰랐던 그가 무시무시한 단두대에서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함께 그 과학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 봅시다.


-이 기사는 초등 잡지 <톡톡> 10월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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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의 아버지, 라부아지에

   
 

1743년 8월 26일 프랑스에서 태어난 앙투안로랑 드 라부아지에(Antoine-Laurent de Lavoisier, 1743년 8월 26일 ~ 1794년 5월 8일)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과학계의 ‘엄친아’였습니다.

라부아지에의 아버지는 유명한 변호사였는데 라부아지에 역시 아버지의 영향으로 법학을 공부하기도 했지요. 그러나 그는 자연과학에도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다른 일을 하면서도 과학아카데미 회원으로 활동하는 등 과학 연구를 계속 했지요.

고등학교에 들어가면 반드시 배워야 하는 라부아지에는 ‘화학의 아버지’라고도 불립니다. 그만큼 화학의 발전에 엄청난 기여를 했기 때문인데요.

그가 남긴 업적 중에 가장 많이 알려지고, 우리가 반드시 배우는 것은 바로 ‘질량보존의 법칙’입니다.

“우리는 사실에만 의존해야 한다. 사실이란 자연이 준 것이라서 속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실험결과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억지로 진리를 찾으려고 하지 말고, 실험과 관찰이 주는 자연적인 길을 따라야 한다.”

-앙투안로랑 드 라부아지에


라부아지에, 과학계를 뒤흔든 ‘질량보존의 법칙’ 발견!
질량보존의 법칙은 화학반응이 일어나기 전 물질의 질량과 화학 반응이 일어난 후 물질의 질량이 같다는 법칙인데요. 말로는 어려워 보이는 이론이지만 직접 실험을 해본다면 금방 이해할 수 있어요. 초등학교에서 관련된 실험으로 ‘앙금생성반응’이라는 실험을 하기도 하는데요. 필요한 준비물과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 실험을 해보면 ①과 ④에서 측정한 무게가 같다는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하얀 앙금이 생기기 전과 생긴 후의 무게가 같다는 것이지요. 이는 화학반응이 일어나더라도 있던 물질이 없어지거나, 없었던 물질이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단지 화학반응이 일어나기 전 물질이 반응 후 다른 물질로 변하는 것이지요.

라부아지에가 질량보존의 법칙을 발견하기 이전에는 과학자들이 실험을 할 때 정확한 측정 없이 눈짐작으로 반응물질을 다뤘습니다. 따라서 정확한 결과를 얻기가 어려웠죠. 하지만 라부아지에는 정확한 양을 측정해 객관적인 실험결과를 이끌어냈고, 1774년 정립된 이 법칙은 기초과학의 근간이 되었습니다.

또 다른 발견, “물질이 타는 것은 ‘산소’ 때문이다!”
질량보존의 법칙 말고도 라부아지에는 과학사에 매우 중요한 업적을 세웠습니다. 그것은 바로 ‘산소’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사용했다는 것이지요.

사실 산소는 라부아지에 이전에도 다른 과학자들에 의해 발견됐습니다. 현재 과학에서 알려진 최초의 발견자는 1772년경 스웨덴의 칼 빌헬름 셸레입니다. 또한 같은 해 영국의 화학자 조지프 프리스틀리도 ‘탈플로지스톤 공기’라는 이름으로 산소를 발견했습니다.

‘플로지스톤’이란 불에 타는 모든 물질에는 ‘플로지스톤(phlogiston)’이라는 입자가 있어 연소 과정에서 플로지스톤이 소모되고, 플로지스톤이 모두 소모되면 연소가 끝난다는 옛 학설입니다.

그러나 라부아지에는 프리스틀리의 ‘탈플로지스톤 공기’에 대해 추가적으로 연소에 대한 연구를 실시하며 결국 ‘플로지스톤’이라는 입자는 존재하지 않으며, 물질이 탈 수 있도록 연소 반응에 필요한 기체는 ‘산소’라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또 산소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며 지금까지 원소인줄만 알았던 물이 원소가 아니라 수소와 산소가 결합한 화합물이라는 것도 밝혀냈지요. 이밖에도 라부아지에의 실험을 통해 이 세상을 구성하는 수많은 물질들이 발견됐습니다.

이 많은 물질들을 정리하기 위해 각각의 물질에 화학적인 이름이 붙기 시작했고 ‘원소’의 개념 역시 재정립됐습니다. 그야말로 현재 우리가 배우는 화학의 기초를 세운 ‘화학의 아버지’라 불릴 만한 업적을 남겼지요.

청년 라부아지에, 13살 소녀와 결혼하다
이렇게 많은 업적을 세운 라부아지에는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라부아지에는 자신보다 13살이나 어린 아이와 결혼을 한 것으로도 유명한데요. 그는 26세의 나이에 겨우 13살밖에 되지 않은 여자아이, 매리 앤 폴즈(Marrie Anne Paulze)와 결혼했습니다.

   
▲ 자크 루이 다비드가 1788년 그린 라부아지에와 그의 부인 [사진 출처=wikipedia]

현재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어떻게 다 큰 어른이 어린 여자 아이와 결혼을 할 수 있죠!?”하고 버럭 화를 낼 수도 있지만 사실 이 결혼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당시 13살밖에 되지 않은 매리 앤은 마흔이 넘은 아저씨에게 시집을 가야 할 위기에 놓여있었습니다.

재력가였던 남자는 매리 앤의 집안을 협박하며 자신을 딸과 결혼시켜달라며 요구했고, 결국 매리 앤의 아버지는 이 결혼을 피하기 위해 라부아지에에게 딸과 결혼해 달라 청했습니다. 그리고 라부아지에는 이를 받아들였지요.

결국 13살에 라부아지에에게 시집을 온 매리 앤은 ‘매리 앤 라부아지에’라 불리게 됐습니다. 당시에는 여자가 시집을 가면 성을 남편의 성으로 바꾸는 풍습이 있었기 때문이죠. 매리 앤은 라부아지에를 위해 영어로 된 문서를 번역해 주며 다른 과학자들과 교류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또한 함께 연구를 하며 실험을 도식화하거나 연구 결과를 문서로 정리해주기도 했습니다. 라부아지에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그 동안의 연구 성과를 모두 정리해 책으로 출판하기도 했죠.

라부아지에도 이런 아내를 존중하며 함께 연구에 매진했습니다. 과학사의 환상의 커플이 탄생한 셈입니다. 매리 앤은 라부아지에가 죽은 후에 다른 남자와 재혼했는데요. 그러나 매리 앤은 라부아지에에게 받은 ‘메리 앤 라부아지에’라는 자신의 성을 바꾸지 않았다고 합니다.

프랑스혁명의 거대한 파도에 죽음을 맞다
그럼 ‘엄친아’에, 똑똑하고 멋진 아내를 얻고, 과학계에도 뛰어난 업적을 남긴 라부아지에는 평생 행복하게 살다가 세상을 떠났을까요? 안타깝게도 라부아지에의 죽음은 매우 비극적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프랑스 혁명’ 때문이지요.

   
▲ 외젠 들라크루아 작품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사진 출처=wikipedia]

프랑스 혁명은 1789년부터 프랑스에서 일어난 자유주의 혁명입니다. 당시 프랑스는 극심한 사치와 낭비를 일삼는 왕정 때문에 민중들이 엄청난 세금과 폭정에 시달리고 있었어요.

또 넓은 토지와 면세 특권을 가진 귀족들도 민중들의 고통을 모른 채하며 국가의 모든 부담을 시민들이 떠안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계속되는 왕실의 사치와 부당한 대우로 고통 받던 민중들은 마침내 왕실과 귀족에 반기를 들고 일어나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며 혁명이 시작됐지요. 그 결과 귀족의 특권을 폐지하고 시민의 권리를 쟁취하며, 국민의회에서 세계 최초로 국왕을 처형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린 역사적인 사건이 되었죠.

그러나 프랑스 혁명 당시 세금징수원이었던 라부아지에는 부패의 온상으로 몰렸습니다. 그리고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당시 그의 나이는 51세였는데요. 라부아지에는 사형을 당하기 전까지 재판장에게 “중요한 실험을 할 수 있도록 2주일만 더 시간을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재판장은 “프랑스 공화국은 과학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하며 그를 단두대에 세웠습니다.

결국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라부아지에. 그러나 그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이 재판이 완전히 잘못됐다는 여론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공동묘지에 버려졌던 시신을 찾아 매우 성대한 장례식을 치루기도 했죠. 그의 동료였던 수학자 조제프 루이 라그랑주는 그의 죽음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머리를 베어내는 것은 한순간이지만, 같은 두뇌를 만들기 위해서는 족히 100년 이상이 걸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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