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얼이 살아있다! 알수록 더 잘보이는 아름다운 경복궁 이야기!

최근 SNS에서는 10대와 20대를 중심으로 한복 입고 궁궐을 체험하는 활동이 매우 핫하죠. 선선한 가을이 되자 감성에 취해버린 강서준 친구. 그도 인생 샷을 찍기 위해 친구들에게 경복궁에 놀러 가자고 합니다.

서준이는 광화문 앞에서 한복을 입고, 품위 있게 한 걸음씩 걸으며 이 세상엔 본인과 궁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 행동하는데요. 아련한 눈빛으로 셀카를 수십 장 찍어대는 서준이를 보고 친구들은 답이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죠.

그런데 갑자기 한 친구가 서준이에게 이렇게 물었어요. “서준아, 경복궁은 언제 세워졌어?” 서준이는 매우 당황했어요. 경복궁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죠.

누구든 이런 질문을 받으면 당황하긴 마찬가지일 거예요. 오늘은 조선의 얼이 담긴 경복궁과 그 안의 주요 건물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이 글을 읽고 나면 겉에서 보이는 아름다움을 뛰어넘어 궁의 ‘진정한 가치’를 마음 깊이 느낄 수 있게 될 거예요. 지금부터 경복궁 여행을 함께 떠나 볼까요?

-이 기사는 <톡톡> 10월호 '똑똑 라이브러리'에 8p분량으로 실린 내용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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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초의 궁궐, 경복궁의 역사
1395년,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5개의 궁궐 중 가장 먼저 지은 법궁(法宮)이에요. 법궁은 임금의 주요 활동 공간을 말하며, 법궁 밖에서 머물던 별궁은 이궁(離宮)이라고 불러요. 1592년 임진왜란 이후 경복궁은 완전히 불타버려 터만 남은 채 방치됐습니다. 그렇게 270년이 흐르는 동안 이궁이었던 창덕궁은 실질적인 법궁의 역할을 맡았죠.

경복궁은 1865년 어린 고종을 대신해 조선을 통치하던 흥선대원군이 원래 크기의 1.5배로 중건했어요.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에 의해 궐 내 전각 대부분이 훼손되거나 헐렸습니다. 광복 이후 현재는 21년간의 복원사업을 거쳐 고종 당
시의 25% 수준으로 복원됐어요.

조선 왕실의 상징 근정전
경복궁의 정문 광화문과 중문인 흥례문을 지나 세 번째 근정문에 들어서면, 파란 하늘과 경복궁을 든든히 감싸고 있는 북악산을 배경으로 웅장하고 거대한 건물이 우뚝 서있는 게 보여요. 바로 ‘근정전(勤政殿)’이에요.

조선왕실을 상징하는 건축물 근정전은 현존하는 국내 최대의 목조건물이에요. 근정전에서는 왕과 왕세자 즉위식, 신년하례식, 외국사신 영접 등 국가 공식행사나 굵직한 행사들이 주로 열렸습니다.

한 국 전통 건축에서는 궁궐의 정전과 같은 중요한 건물은 그냥 세우지 않아요. 땅을 넓게 다지고 그 위에 월대를 놓은 다음, 그 위에 건물을 올려 사람들이 우러러 볼 수 있게 만들어요.

그런데 궁궐에는 이 월대를 1층도 아니고 2층이나 올리니, 근정전에서 뿜어져 나오는 위엄이 배가되겠죠? 월대에는 십이지신을 상징하는 동물상이 장식돼 있고, 월대 층계에는 봉황이 구름 사이로 날아가는 형상이 조각돼 있어요.

▲근정전 일월오봉도

근정전에 들어가면 왕이 앉는 보좌(寶座) 뒤에 놓인 ‘일월오봉도’가 가장 먼저 눈에 띌 거예요. 만원 지폐 앞면에도 들어가 있어 친숙한 그림인데요. 조선시대 왕의 권위를 상징해 오직 왕이 앉는 자리 뒤에만 놓았어요.

일월오봉도 속 해와 달, 다섯 개의 봉우리, 골짜기의 폭포, 물결치는 파도, 네 그루의 소나무는 우주의 생성과 변화, 음양오행을 의미하며, 왕이 이 모든 우주를 주관하는 존재와 다름없다는 것을 상징한답니다. 중국이나 일본에는 없는 조선 고유의 문화와 사상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죠.

일월오봉도에서 눈을 떼지 않고 그대로 머리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면 근정전의 멋진 보개천장을 볼 수 있어요. 보개천장은 궁궐 왕의 자리 혹은 절 안 부처님의 머리 위 천장에서나 볼 수 있는 천장 양식이에요.

창덕궁 인정전과 덕수궁 중화전에서도 보개천장을 볼 수 있죠. 두 마리 용은 가운데 있는 여의주를 두고 오색구름 사이에서 날고 있는데, 여기서 용은 하늘로 오르는 능력을 지닌 모든 짐승의 으뜸으로, 국왕을 상징합니다.

왕의 일터 사정전
근정전 뒤편에는 왕이 평소에 거처하면서 정사를 보살피고 정무를 수행하던 공식 집무실인 사정전(思政殿)이 있어요. 매일 아침 업무보고나 회의, 국정 세미나, 경연 등이 모두 이곳에서 행해졌어요.

사정전에 숨어있는 천자문을 찾아라!
사정전에 들어서면 마당을 둘러싸고 있는 여러 개의 문을 볼 수 있어요. 궁중의 물건들을 보관하던 창고 문이에요. 문기둥 위에는 각 창고를 구별하기 위해 천자고, 지자고, 현자고, 황자고 등의 이름을 써놓은 명패가 달려 있어요. 그런데 이 순서, 뭔가 익숙하지 않나요?

맞아요. 바로 천자문 순서예요. 우리가 가나다, ABC, 123 등을 이름에 붙여 물건을 관리하듯 선조들도 천자문 순서를 활용해 체계적으로 물건을 관리했습니다.

왕과 왕비의 침소 강녕전·교태전
사극 드라마를 시청하다 보면 ‘강녕하시옵소서~’라는 대사를 자주 듣게 돼요. ‘몸은 건강히, 마음은 편안히 계시라’는 뜻이에요. 사정전을 지나면 왕의 침실 강녕전(康寧殿)이 나옵니다.

강녕전이라는 이름 역시 왕의 건강과 평안을 기원하기 위해 지어진 이름이에요. 왕은 이곳에서 독서를 하거나 휴식을 취하고, 때로는 신하들과 면담도 하며 일상생활을 했어요.

▲강녕전

강녕전 내부를 보면 생각보다 크거나 화려하지 않아요. 만백성의 어버이로 모범을 보이기 위해 사치나 허세를 부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강녕전 지붕에는 가로로 길게 지붕을 마무리해주는 용마루가 없어요. 용마루가임금을 상징하는 것이라, 용마루를 얹으면 왕이 둘이 되는 형색이 됐기 때문이죠.

강녕전은 좌우에 벽을 쳐 9개씩 총 18개의 작은 방을 만들 수 있는 구조로 돼 있어요. 이렇게 많은 방을 만들었던 이유는 자객의 습격으로부터 왕을 보호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왕이 침소에 들때 어떤 방에서 잠을 자는지는 직속 내관만이 알 수 있었대요.

왕비의 침실 교태전(交泰殿)은 왕 이외에는 남성이 절대 들어갈 수 없는 금남의 구역이었어요. 강녕전과 마찬가지로 지붕에 용마루가 없으며, 경복궁 건물 가운데 가장 화려하게 치장돼 있었죠.

교태전 뒤뜰에 있는 작은 언덕 ‘아미산’에는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 ‘아미산 굴뚝’이 있는데요. 주황색 벽돌을 육각기둥 모양으로 차곡차곡 쌓아올리고 보통의 건축물처럼 지붕까지 떡하니 얹어 놓았어요.

거기다 벽면에는 장수와 상서로움을 상징하는 학, 소나무, 매화, 사슴 등을 정교하게 새겨 넣었어요. 이 굴뚝만 봐도 당대 선조들의 조형적인 기교가 얼마나 뛰어났는지를 알 수 있답니다.

경복궁의 꽃 경회루
강녕전과 교태전의 서쪽에 있는 경회루(慶會樓)는 근정전만큼이나 유명한 곳이죠. 경복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로 손꼽히거든요. 경회루는 주로 나라에 큰 행사가 있거나 사신을 접대할 때 왕이 연회를 베푸는 장소로 쓰였어요.

그만큼 풍광이 아름다운 곳이죠. 연못을 사각으로 넓고 깊게 파고 그 가운데에 경회루를 세웠는데, 경회루를 세울 때 파낸 흙을 교태전 뒤뜰에 쌓아 만든 것이 아미산이랍니다.

▲경회루

경회루는 경복궁 내 건축물 중 가장 많은 ‘잡상(雜像)’이 있는 것으로도 유명해요. 잡상은 <서유기>의 등장인물인 삼장법사, 손오공, 저팔계 등을 형상화해 기와지붕을 장식하는 토우인데요. 액운과 화재를 막아준다는 의미가 담겨 있어요.

잡상은 근정전에 7개, 경회루에는 11개가 설치돼 있어요. 경복궁에서 가장 중요한 전각인 근정전보다 경회루에 잡상이 더 많은 것은 왜일까요? 확실하게 알려진 바는 없지만, ‘조선에 온 청나라 사신들이 경회루에 머무르면서 잡상이 적다고 혹시라도 기분 나빠 할까봐’ 그랬다고 하는 설이 있어요.

또한 ‘경회루가 술을 먹고 연회를 벌이는 곳인 만큼 악귀와 액운을 경계하기 위해’ 그랬다는 이도 있고요. 과연 진실은 뭘까요?

비운의 역사 간직한 건청궁
경회루를 나와 북쪽 후원에 있는 연못, 향원지를 따라 걷다 보면 이전에 본 궁 건축물과는 다른 느낌의 전각을 만날 수 있어요. 궁궐을 꾸며주는 오방색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고, 마치 사대부 저택처럼 오직 나무와 한지, 기와의 색만으로 가득찬 곳이죠.

이곳은 고종이 사비를 들여 휴식을 취할 목적으로 지은 건청궁(乾淸宮)이에요. 국내 최초로 전기 설비를 해 전등을 밝힌 곳도 이곳입니다. 고종은 건청궁을 건립한 후 명성황후와 함께 머물렀어요.

하지만 번잡한 궁 생활에서 벗어나 한적한 시간을 보내고자 했던 고종의 바람과 달리, 이곳은 구한말 정치적 혼란과 비극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명성황후가 일본인들에 의해 시해된 곳이 바로 이곳 건청궁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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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듀진 기사 원문:  http://www.eduj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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