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항쟁 추념일] 72년 전 오늘, 제주에서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됐다
[제주 4·3항쟁 추념일] 72년 전 오늘, 제주에서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됐다
  • 김은빈 기자
  • 승인 2020.04.03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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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항쟁'이란? 
-진상규명은 여전히 거북이걸음…유족회, '4·3특별법' 개정 촉구 
*제주 4.3 평화기념관 [사진 출처=wikipedia]

오늘 4월 3일은 한국 현대사의 비극, 제주 4.3항쟁 72주년을 맞는 날이다. 72년 전 오늘, 제주에는 억울하게 희생된 무고한 사람들이 있었다. 잊지 말아야 할 우리 역사, 제주4.3항쟁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제주 4.3항쟁'이란? 

제주 4.3항쟁은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해 1948년 4월 3일에 발생한 사태와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 등을 군·경이 무력 진압하는 과정에서 다수의 제주도민이 희생당한 항쟁이다. 

발단은 1947년 3.1절 기념행사에서 발생한 경찰의 발포 사건이다. 말을 탄 경찰의 말발굽에 채여 어린 아이가 다쳤는데 경찰은 그냥 지나쳤다. 군중이 돌멩이를 던지며 항의했고, 경찰은 경찰서를 습격하는 것으로 오인해 군중을 향해 발포했다. 이 일로 6명이 죽고 6명이 부상을 입었다. 

민심이 격앙된 제주도민들은 3월 10일부터 제주도청을 시작으로 민관 총파업을 시작했으며 이 파업에는 제주도 대부분의 행정기관과 학교 등 제주 직장인 95%에 달하는 4만여 명이 참여했다. 경찰은 3월 15일부터 파업 관련자 검거에 나섰고, 이 과정에서 수감자 석방을 요구하는 군중에 또 다시 발포한다. 

한편, 1947년 11월 14일 유엔총회는 한반도에서 인구비례에 의한 총선거를 실시하자는 미국 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이 안이 소련의 거부로 실현될 가능성이 희박해지자 남한만의 단독선거가 대두됐고, 한반도가 남과 북으로 분단되리라는 우려에 좌파 진영뿐 아니라 우파 일부와 중도파까지 격렬히 반발했다. 

1948년 4월 3일 새벽, 남조선로동당(남로당)은 남한 단독선거 및 단독정부 수립 반대와 조국의 통일 독립, 반미 구국투쟁 등의 일환으로 350명의 무장대를 이끌고 도내의 경찰서 및 우익단체 주요인물의 집을 공격했고, 이로 인해 경찰 4명과 민간인 8명, 무장대 2명이 사망했다. 

경비대와 무장대는 이후 전투를 중단하기로 합의하는 듯 했으나, 강경 진압 정책과 방화항쟁 등으로 합의가 파되면서 사태는 더욱 악화됐다. 5월 10일 치러졌던 남한 단독선거에서 제주도는 투표수 과반수 미달로 전국에서 유일하게 무효 처리됐고, 11월 17일에는 제주 전역에 계엄령이 선포됐다. 

1948년 8월 15일 남한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다음달 9월 9일 북한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립되면서 남한의 이승만 정부는 제주도 문제를 정권의 정통성에 대한 도전으로 인식한 것이다. 토벌대는 무장대에 협조한다며 양민들을 학살했고, 무장대도 협조하지 않은 마을 주민들을 살해했다. 

현재 4.3 항쟁의 공식 희생자는 1만 4,232명으로, 이 중 사망자는 1만 244명에 달하고 유족은 5만 9,426명이다. 2003년 발간된 ‘4.3 진상보고서’는 “인구 동향 등의 자료를 고려하면 4.3으로 인한 인명 피해는 총 2만 5,000~3만 명이 될 것”이라고 추정했다. 4.3은 7년 간 당시 제주도 인구의 10%가량이 희생된 현대사의 비극이었다. 

*4·3특별법 개정 촉구하는 시위대 [사진 출처=kuwu.or.kr] 

진상규명은 여전히 거북이걸음…유족회, '4·3특별법' 개정 촉구 
4·3항쟁은 박정희와 전두환 대통령의 군사정권 시절까지만 해도 ‘북한의 사주에 의한 폭동’으로 규정돼 왔다. 그러다 1980년대 후반부터 진상 규명 작업이 시작됐고, 2000년대가 돼서야 정부 차원의 조사와 보상이 이루어졌다. 

2013년 6월에 제주 지역 국회의원들이 발의한 ‘4·3특별법’ 개정안이 통과됐지만, 지금까지 이렇다 할 구체적인 진행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에, 제주 4·3희생자 유족회는 2019년 3월 10일 4·3특별법 개정 촉구 성명서 발표와 함께 4·3특별법 개정을 촉구했다. 

개정안에는 국가공권력의 잘못으로 희생당한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보상, 4·3사건 당시 군사재판의 무효화를 통한 수형인의 명예회복, 추가 진상조사, 가족기록부 정정 특례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유족회는 “4·3항쟁의 가슴 아픈 역사를 정의롭게 해결하고 치유해 나가기 위해 반드시 특별법 개정이 필요하다”며 “정부는 4·3특별법 개정안 처리에 적극적으로 나서 줄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그러나, 2020년이 된 지금도 제주 4·3의 완전한 해결의 기반이 되는 '4·3특별법' 개정은 여전히 거북이걸음이다. 여전히 국회에 머물러 있어 법에 의한 배상과 보상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제주 4·3 사건은 개별 소송으로 일부 배상을 받거나, 정부의 의료지원금과 생활지원금을 지급받는 것에 머무르고 있을 뿐이다. 

오늘(3일) 제주 4·3 평화공원에서 열린 '제72주년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은 "그날, 그 학살의 현장에서 무엇이 날조되고 또 무엇이 제주를 죽음에 이르게 했는지 낱낱이 밝혀내야 한다"며, '4·3특별법 개정'에 대한 특별한 관심과 지원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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