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량 생산 성공시킨 ‘컨베이어 시스템’ 
-효율적 생산방식으로 탄생한 ‘T형 모델’ 

▲헨리 포드(1863~1947) [출처=autoblog.com] 
▲헨리 포드(1863~1947) [출처=autoblog.com] 

자동차가 부를 과시하는 사치품이었던 시절, 자동차를 부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닌 서민들의 생필품으로 바꾼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헨리 포드'인데요. 둘도 없는 절친이자 멘토였던 토마스 에디슨도 그의 업적에 찬사를 보냈다고 합니다. 헨리포드를 ‘자동차 왕’으로 성공시킨 요인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에디슨에게 인정받은 남자 
동네 사람들이 보기에 헨리 포드는 괴상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었어요. 에디슨 회사의 최고 기술자인 그는 회사에서 돌아오기만 하면 무엇을 하는지 헛간으로 들어가 새벽까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동네 사람들은 포드를 제정신이 아니라고 ‘미친 헨리’라고 부를 정도였어요.
“도대체 뭘 하는데 밤낮없이 헛간에만 틀어박혀 있는 거야?”
“무슨 기계를 만든다는데? 모를 일이지, 뭐.”

사실 포드는 헛간을 연구실로 쓰며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10여 년 동안 밤새 연구를 하고 있었어요. 그의 꿈은 자신의 손으로 성능 좋은 자동차를 만들어 내는 것이었어요.

1896년 6월 4일 새벽 2시, 동네 사람들은 시끄러운 소리 때문에 잠에서 깼어요. 그리고 무슨 일인가 싶어 두 눈을 비비며 집 밖으로 나온 사람들은 입을 다물 수가 없었어요. 뿌연 어둠 속에서 ‘미친 헨리’라고 불리던 포드가 자신의 자동차에 아내를 태우고 동네 거리를 달리고 있었던 거예요. 이 사건은 바로 미국의 자동차왕, 포드를 세상에 알리는 신호탄이었어요.

▲에디슨(좌), 포드(우) [출처=fordeurope.blogspot.com]
▲에디슨(좌), 포드(우) [출처=fordeurope.blogspot.com]

그리고 그해 겨울, 포드는 백발의 노인이 된 토머스 에디슨과 악수를 하게 되었어요.
“자네였군. 정말 만나고 싶었네.”
포드는 수줍은 얼굴로 에디슨을 향해 손을 내밀었어요. 자신이 평생 존경해 온 에디슨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만나 악수를 하게 된 것이 꿈만 같았어요.
“자네의 꿈은 정말 훌륭하네. 절대 그 꿈을 포기하지 말게.”
에디슨은 포드에게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어요. 이처럼 포드는 혼자 힘으로 자동차를 만들고 에디슨을 비롯한 많은 사람을 깜짝 놀라게 했어요. 

말이 필요 없는 마차 꿈꾼 ‘꼬마 천재 기술자’
포드는 1863년 미국 미시간 주의 작은 농장에서 태어났어요. 그의 아버지는 아일랜드에서 이민을 와서 미국에 정착한 사람으로 농사를 짓고 살았어요. 아버지는 농사일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지만, 포드는 농사일에 전혀 흥미가 없었어요. 대신 포드는 기계만 보면 눈을 반짝거렸어요. 그래서 포드의 집에는 자명종 시계가 하나도 남아나지 않을 정도였어요. 눈에 띄기만 하면 포드가 순식간에 분해해 버렸기 때문이었어요. 포드의 이런 재능 때문에 동네 사람들은 그를 ‘꼬마 천재 기술자’라고 불렀어요.

포드는 열두 살 때 석탄으로 움직이는 증기 엔진을 본 후 ‘말이 필요 없는 마차’를 만드는 것을 꿈꾸게 되었어요. 그래서 그 후 더욱더 기계에 빠져들었어요. 하지만 아버지는 포드가 기계에 관심을 두기보다 농사일에 매달려 주기를 바랐어요. 하지만 어머니는 아들의 뜻을 이해하고 아들이 자신의 재능을 키워 가는 것을 도와주었어요. 

그런데 포드가 열여섯 살이 되었을 때, 그를 유일하게 이해해 주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말았어요. 이때부터 포드의 아버지는 그에게 농사일 배우기를 강요하기 시작했어요. 결국 포드는 어쩔 수 없이 아버지를 피해 집을 떠나 디트로이트로 가서 기계 견습공이 되었어요. 그리고 나중에 에디슨의 회사에 들어가서 점차 자신의 재능을 인정받아 수석 기사가 되었어요. 

포드는 서른네 살 때 자신의 힘으로 엔진을 고안해 에디슨의 인정을 받았고, 그 여세를 몰아 자동차를 만들어 내었어요. 포드가 자동차를 만들었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 나갔어요. 당시 자동차 산업은 성장 가능성이 높은 떠오르는 산업이었어요. 그래서 자동차를 만든 포드에게 투자하겠다는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포드는 그 돈으로 자신의 이름이 붙은 자동차 회사인 ‘포드 자동차 회사’를 세웠어요.

자동차 회사를 세운 포드는 더 빠르고 더 좋은 자동차를 만들어 사람들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어요. 그 결과 포드가 만든 자동차는 자동차 경주 대회에서 1등을 거머쥘 수 있었어요.

이를 바탕으로 포드는 850달러짜리 ‘A형 모델’이라는 이름을 붙인 새로운 자동차를 세상에 내놓았어요. A형 모델은 나오자마자 큰 인기를 끌어 첫 해에만 2,000대 가까이 팔렸어요. 하지만 포드는 보다 많은 사람이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세상을 꿈꾸었어요.
“5퍼센트가 아니라 95퍼센트를 위한 자동차를 만들어야 해.”

▲포드 자동차 생산 공장 [출처=autoblog.com]
▲포드 자동차 생산 공장 [출처=autoblog.com]

당시 자동차는 만드는 기술과 과정이 너무 복잡해 값이 매우 비쌌어요. 그래서 자동차는 정말 돈 많은 부자들만 탈 수 있는 것으로 여겨졌어요. 그리고 이때 미국은 유럽보다 기술 발달이 늦어 미국에서 생산된 자동차는 유럽에서 생산된 자동차보다 성능이 뒤쳐졌어요. 그래서 부자들은 대부분 유럽의 자동차 회사에서 만든 자동차를 타고 다녔어요. 이에 포드는 반드시 유럽의 자동차보다 값싸고 성능 좋은 자동차를 만들어 자동차 시장의 판도를 바꾸어 놓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포드 자동차 회사의 투자자들은 포드의 생각에 반대했어요. 자동차를 비싸게 팔아야 이익이 많이 남으니 값싼 자동차보다는 값비싼 자동차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하지만 포드는 아랑곳하지 않았어요.
“나는 서민들을 위한 자동차를 만들겠습니다. 현대 기술의 무한한 힘으로 지금까지 누구도 만들지 못했던 최고의 자동차를 만들 것입니다. 그리고 이 자동차를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여 누구든 자동차를 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포드가 자신의 생각을 사람들 앞에서 선언했을 때, 그는 비웃음을 살 수밖에 없었어요.
“헨리 포드는 곧 망하게 생겼군.”
“그러게 말이야. 자동차 사업이라는 게 얼마나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고 큰돈이 들어가는 일인데…….”

포드의 생각대로 자동차 가격을 낮추기 위해서는 자동차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비용이 적게 들어야 했어요. 포드는 생산비를 낮추려고 고민했지만, 좀처럼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어요. 

대량 생산 성공시킨 ‘컨베이어 시스템’ 
어느 날, 포드가 값싼 자동차를 만들 방법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며 거리를 걷고 있었어요. 이때 우연히 푸줏간 주인이 도살된 소를 손수레로 실어 나르는 모습이 포드의 눈에 띄었어요. 
푸줏간의 고기는 손수레에 실려 첫 번째 사람 앞에 도착했어요. 그러자 첫 번째 사람은 고기의 뒷다리살만 발라냈어요. 또 고기가 손수레를 타고 이동하자, 두 번째 사람은 갈빗살 부위만 발라냈어요. 이렇게 세 번째, 네 번째……. 고기는 담당자별로 아주 빠른 속도로 부위별로 나뉘어 포장되고 있었어요. 

▲ 헨리 포드가 고안한 컨베이어 시스템 [출처=npr.org]
▲ 헨리 포드가 고안한 컨베이어 시스템 [출처=npr.org]

그 장면을 바라보던 포드는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바로 저거야! 저 과정을 반대로 하면, 적은 노동력으로 많은 자동차를 만들 수 있어!” 
그날 이후 포드는 자신의 생각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 4층짜리 자동차 제조 공장을 지었어요. 그리고 4층부터 1층까지 연결되어 차례로 움직이는 작업대를 만들었어요. 이것이 바로 물건을 연속해서 옆으로 운반하는 ‘컨베이어’ 장치였어요. 당시 컨베이어 장치는 백화점 진열장 등에서 부분적으로 사용되었지만 이것을 공장에 전면적으로 실시한 사람은 포드가 처음이었어요.

처음 자동차를 만들던 때는 한 명의 기술자 혼자 각각의 부속품을 모두 조립해서 차 한대를 만들었는데 이런 방식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어요.
하지만 포드가 도입한 컨베이어 시스템은 이런 문제를 해결해 주었어요. 4층 컨베이어에서는 자동차의 몸체만을 조립했어요. 몸체만 조립된 자동차가 3층으로 내려오면 타이어가 달리고, 페인트가 칠해졌어요.

타이어가 달리고 페인트가 칠해진 자동차가 2층으로 내려오면 의자와 그 밖의 부속품들이 조립되었어요. 그리고 1층으로 내려온 자동차는 최종 검사를 받았어요. 이렇게 한 사람이 자동차 전체를 모두 조립해야 했던 이전 생산 방식과 달리 한 가지 과정만 전문적으로 맡아 일하는 방식이었어요. 그러자, 자동차 한 대 만드는 시간이 엄청 줄어들게 되었어요.

효율적 생산방식으로 탄생한 ‘T형 모델’ 
포드는 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썼어요. ‘생산성 향상’이란 적은 비용과 노동력을 들이고도 생산량을 더 늘릴 수 있도록 하는 거예요.
포드는 한 가지 자동차만을 대량 생산하면서 생산 과정을 통일시켰어요. 그래서 노동자는 숙련된 솜씨로 단 한 순간도 업무에 불필요한 동작을 하지 않고, 작업장의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면서 자동차를 생산할 수 있었어요. 

노동자들은 더 이상 공구를 들고 작업대로 가서 제품을 만들고 조립할 필요가 없어졌어요. 그 대신 끊임없이 돌아가는 벨트 앞에 일렬로 서서 다가오는 부품을 가지고 똑같은 작업을 반복해 제품을 만들게 되었어요. 예전에는 한 시간에 한 대의 자동차를 만들었다면, 새로운 방법으로 24초당 한 대의 자동차를 만들게 된 거예요.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포드 회사의 대표적인 자동차가 바로 ‘T형 모델’이에요. 

▲T형 모델 자동차 [출처=wordpress.com]

자동차를 만드는 데 시간이 적게 걸리자, 생산 비용도 줄어 들었어요. 그래서 T형 모델은 1908년에 900달러였지만, 점차 가격이 낮아져 1914년에는 400달러가 되었어요. 그 덕에 T형 모델은 무려 1,500만 대가 넘게 팔렸고, 당시 미국 땅을 누비던 자동차의 절반 이상이 T형 모델이었을 정도였어요.

자동차의 가격이 낮아지자, 많은 사람이 자동차를 살 수 있게 되었고, 포드 자동차 회사도 노동자에게 주는 임금이 많아졌어요. 그래서 당시 포드 자동차 회사의 노동자들은 다른 회사 노동자들보다 두 배가 넘는 임금을 받았어요. 포드는 노동자의 수입이 많아야 소비가 늘고, 소비가 늘어야 생산도 늘어난다고 생각했어요.
포드의 고집과 열정 그리고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생산 방식은 T형 모델을 성공적으로 이끈 원동력이 되었어요. 

글 제공. 아름다운사람들

-이 기사는 <톡톡 매거진> '똑똑 라이브러리-인문'에 실린 내용입니다. 
놀기 좋아하는 우리 아이, '책'과 놀게 할 수는 없을까? 재밌는 잡지를 읽었더니 두꺼운 책도 술술 읽혀요! 독서능력이 쑥쑥! 다양한 분야에 걸친 흥미로운 기사로 아이의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톡톡으로 내 안에 숨은 잠재력을 깨워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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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듀진 기사 URL: http://www.eduj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5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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