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한국인의 독창적인 도자기 문화 
-흔해 빠진 흙, 보물이 되기까지 
-실용성과 예술성이 결합된 고려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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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68호 '청자 상감운학문매병' [출처=문화재청 '나만의 문화유산 해설사'] 

지난해 2020년 12월, 전라남도 강진군에서 고려청자 생산을 지휘했던 관청의 터가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발굴됐어요. 400여년 동안 고려에서 최고급 고려청자를 생산해낼 수 있었던 비밀이 풀릴 수 있지 않을까 관심을 모았습니다. 청초한 푸른빛을 뿜는 우리의 고려청자. 과연 어떤 예술적 특성이 담겨 있을까요? 

슬기로운 한국인의 독창적인 도자기 문화 
우리 민족이 슬기롭다는 것은 돌 문화와 흙 문화만 봐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지금은 도기와 자기를 구분하지 않고 도자기라고 하지만 예전에는 도토, 즉 붉은 진흙을 낮은 온도에서 구운 질그릇을 도기라 하고, 진흙에 자토를 섞어 높은 온도에서 구운 사기를 자기라 했어요. 고조선 이래로 계승된 질그릇의 전통이 고려에 이르러 독창적인 자기 문화로 탄생한 것입니다. 비색 자기는 비취옥처럼 푸른 자기라는 뜻인데 우리나라의 맑은 하늘빛을 닮았고, 우리 민족의 깨끗한 심성과 정서를 잘 드러내지요. 

상감 청자는 그릇 표면에 나타내고자 하는 문양이나 글자 등을 파낸 뒤, 그 홈을 회색의 청자 바탕흙 또는 백토나 자토로 메우고 표면을 고른 후 청자 유약을 발라 구운 자기예요. 청자 외에 건축과 조각, 글씨와 그림 등에서도 고려 귀족 문화의 특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흔해 빠진 흙, 보물이 되기까지 
한 민족이 얼마나 번영했는가를 평가하는 기준은 영토 확장이나 강력한 군사력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일상적인 삶 속에서도 민족의 위상을 충분히 엿볼 수 있지요. 

우리 민족의 지혜와 슬기는 돌 문화와 흙 문화에서 잘 드러납니다. 한반도에 밀집된 고인돌은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됐고, 고려청자는 세계 최고의 자기로 인정받고 있답니다. 

▲국보 116호 '청자 상감 모란 넝쿨 무늬 조롱박 모양 주전자' [출처=wikipedia] 
▲국보 116호 '청자 상감 모란 넝쿨 무늬 조롱박 모양 주전자' [출처=wikipedia] 

고인돌이나 석탑, 고려청자 등의 원료는 돌과 흙입니다. 주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평범한 소재로 세계적인 수준의 예술품을 창조하는 것은 뛰어난 예술적 감수성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에요. 예술품을 만들 때는 재료를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일정한 형태로 가공하거나 정제하므로 재료 자체보다는 재료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지요. 

우리 민족이 돌과 흙 등 하찮은 재료를 가지고 예술품을 창조한 사실은 창조적 능력은 물론, 삶을 대하는 낙천적인 성격을 잘 보여 줍니다. 특히 고려자기의 경우가 그렇답니다. 

‘도(陶)’자는 좌변에 ‘언덕 부(阜)’, 우변에 ‘안을 포(抱)’, ‘흙항아리 부(缶)’자가 결합돼 만들어진 글자입니다. 즉, 가마 안에 질그릇을 쌓아 놓은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지요. 따라서 질그릇은 우리말이고 도기는 한자라는 점만 다를 뿐 의미는 비슷합니다.

토기라는 말은 20세기 들어 일본에서 처음 사용했으므로 신라 토기, 고려 토기 등은 신라 도기, 고려 도기 등으로 써야 올바른 표현이에요. 약 500~600도에서 구워진 것을 토기, 1,000도 이상에서 구워진 것을 도기라고 부르기도 하고, 유약을 입히지 않은 것을 토기, 유약을 입힌 것을 도기라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정확한 구분이 아닙니다. 

▲국보 97호 '청자 음각연화당초문 매병' [사진 출처=국립중앙박물관]

도기와 자기는 흙의 원료부터 다릅니다. 도기는 도토(陶土), 즉 찰흙이라고도 하는 붉은색 흙으로 만들고, 자기는 자토(瓷土), 즉 돌가루가 섞여있는 흙으로 만들어요. 대개 도토는 가마 온도가 1,200도가 넘으면 흐물흐물하게 녹아버리고, 자토는 1,300도 이상에서 완성된다고 합니다. 따라서 도토만으로는 자기를 만들 수 없었어요.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모래가 섞인 사토를 섞어서 만들었기 때문에 사기라고 불렀습니다.

백자를 백사기, 청자를 청사기, 일본 자기를 왜사기, 중국 자기를 당사기라고 했어요. 자기를 만드는 사람은 사기장이, 자기를 만들던 장소나 마을은 사기소, 사기 마을이라고 했습니다. 

토기와 도기를 대신해 질그릇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 도자기의 발달사를 이해하는데 보다 합리적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질그릇을 만들다가 다양한 기술을 습득하면서 자기를 만드는 단계로 나아갔으니까요. 단군 조선 이래로 사용해 왔던 질그릇의 전통을 이어받아 고려 시대에 독창적인 고려자기를 만들게 된 것입니다. 

실용성과 예술성이 결합된 고려청자
도기 중에는 떡시루처럼 물을 흡수하는 연질 도기가 있는가 하면 술 항아리 같은 경질 도기도 있습니다. 유약을 바른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지요. 녹색 유약을 바른 것은 녹유 도기, 잿물을 바른 것은 회유 도기, 색을 칠한 것은 가채 도기라고 합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얻어 낸 결과물을 새로운 단계로 발전시켜 탄생한 것이 바로 고려자기예요. 

고려자기에는 실용성과 예술성이 결합돼 있습니다. 이 점은 고려자기의 색과 모양, 문양에서도 잘 드러나지요. 고려자기의 모양은 찬, 병, 사발, 접시, 주전자, 단지, 화분, 향로, 연적, 벼루, 붓꽃 등 다양하고 무늬 역시 동식물이나 인물, 자연, 추상적 무늬, 글자 무늬 등 매우 다양합니다. 

고려자기에는 흰 자기도 있고 푸른자기도 있어요. 그 가운데 푸른 자기, 즉 비색 자기인 청자가 단연 으뜸입니다. 선인들은 비색청자를 보고 맑은 가을하늘의 푸른색과 비 온 뒤의 하늘색, 깊은 산중에 흐르는 푸른 물색, 금강산에 흐르는 맑은 물색 등을 연상했어요. 

​​▲국보 167호 '청자 인물형 주전자' [출처=문화재청] 
​​▲국보 167호 '청자 인물형 주전자' [출처=문화재청] 

송의 서긍(徐兢)은 “청자의 색을 비색(翡色)이라고 하는데 그 형태가 중국과 달리 독창적이다.”라고 했으며, 도자기 전문가인 윌리엄 하니는 “고려 도자기는 독창적일 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지금까지 만들어진 것가운데 가장 우아하고 꾸밈새가 없다.”라고 극찬했어요. 영국 대영박물관과 프랑스의 기메 박물관, 미국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과 보스턴 박물관에도 고려청자가 소장돼 있지요. 

고려자기의 가치는 은은한 비취색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고려인들은 그릇 표면에 나타내고자 하는 문양이나 글자 등을 파낸 뒤, 백토나 자토로 메우고 표면을 고른 후 청자 유약을 발라 구워 상감청자를 만들었어요. 상감 그 자체는 신비로운 것이 아니지만 도자기에 상감기법을 이용했다는 사실에서 고려인의 뛰어난 발상을 엿볼 수 있지요. 

후기 신라 말에 나타난 흰 상감 질그릇 수법을 발전시킨 것이 상감기법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상감 청자는 강화도에 도읍한 13세기 중엽까지 주류를 이루었지만 원 간섭기 이후에는 퇴조해갔어요. 

고려청자는 자기를 만들 수 있는 흙이 생산되고 연료가 풍부한 지역에서 구워졌는데, 전라도 강진과 부안이 유명했습니다. 특히 강진에서는 최고급 청자를 만들어 중앙에 공급하기도 했지요. 

▲국보 253호 '청자 양각연화당초 상감모란문 은테 대접' [출처=wikipedia]
▲국보 253호 '청자 양각연화당초 상감모란문 은테 대접' [출처=wikipedia]

고려청자에는 고려 귀족들의 사치스러운 생활상이 담겨 있지만 고려인의 세계관이 담겨 있기도 합니다. 게다가 뛰어난 예술 작품이지요. 하지만 안타까운 점은 우리보다 외국인이 먼저 고려청자의 문화적가치에 주목했다는 것입니다. 

고려청자가 세상에 알려진 시기는 1880년대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이 이루어지면서 철도와 도로가 설치됐을 때였어요. 개성 근처의 무덤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고려청자가 많이 출토됐지요. 고려청자의 우수성을 알아본 외국인들은 수많은 무덤을 파헤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1880~1920년대까지 고려청자는 끊임없이 도굴돼 세계 각지로 흩어졌어요. 이 사건을 통해 선조들이 이뤄 놓은 우수한 문화를 우리가 얼마나 허술하게 관리했는지 반성하게 됩니다. 

글 제공. 리베르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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