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본질과 내면을 탐구한다”
-  “자신의 얼굴을 조각낸 화가들” 
- “끔찍한 삶의 고통을 이겨내리라” 

자화상(自畫像), 말 그대로 자기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예술가들은 누구나 한 번쯤 자신을 모델로 한 그림을 그렸고 저마다 그린 이유도 달랐다. 그들은 왜 스스로를 위해 붓을 들었을까. 

“나의 본질과 내면을 탐구한다”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 
전 세계가 사랑하는 화가 빈센트 반 고흐. 강렬한 색감, 두껍게 발린 물감의 표현, 사실주의적이면서도 독창적인 관점을 가졌던 그는 후기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화가다. 

고흐만큼 자기 자신을 그린 자화상을 많이 남긴 화가도 없다. 그는 항상 무뚝뚝한 얼굴로 거울을 보면서 자신의 얼굴을 그렸다. 그렇게 남긴 자화상의 개수만 43점에 달한다. 

자화상 속의 고흐는 각양각색의 모습을 하고 있다. 대부분 단정한 차림을 하고 있지만 머리는 밀짚모자나 페도라, 군밤모자를 쓰거나 아예 머리카락이 없을 때도 있다. 때로는 수염을 덮수룩하게 기르고 파이프를 물기도 하고, 수염 없이 말끔하게 앉아 있거나 심지어 귀가 잘린 모습을 남기기도 했다. 

그가 이렇게 많은 자화상을 남긴 이유는 인물의 본질과 내면을 표현하는 인물화를 그리며 그림 실력을 늘리려고 했기 때문이다. 고흐는 자신의 여동생에게 보낸 편지에 ‘나는 사진가가 포착한 사진 속 내 모습보다 더 심도 있는 나의 초상을 탐구하는 중이다’라고 적었다. 

그는 강렬한 색과 보색대비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기 위해 자화상을 그리며 연습했다. 물론 가난해서 모델을 쉽게 구하지 못했다는 점도 하나의 이유다. 

“자신의 얼굴을 조각낸 화가들” 
미술이 추구하는 사상은 시대적 상황과 분위기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 서양의 경우 19세기가 지나고 나서부터는 산업화에 의해 사회가 빠른 속도로 발전하면서 한 층 업그레이드 된 각양각색의 미술 사상들이 등장한다. 

그 중에서도 ‘입체주의(Cubism)’는 전통적인 화풍에서 벗어나 대상을 분해하고 다시 조립하면서 그야말로 ‘틀을 깬’ 완전히 새로운 미술의 길을 열었다. 입체파 혹은 큐비즘이라고도 하는 입체주의는 20세기 초 프랑스에서 시작해 회화를 비롯해 건축, 조각, 공예 등 국제적으로 퍼져 전파된 미술 운동이다. 

특징은 원근법과 명암법, 다채로운 색채의 사용 등을 지양하고, 형태의 본질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자 대상을 앞·뒤·옆·위·아래 등 다시점으로 보고 입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입체주의를 대표하는 화가는 파블로 피카소, 조르주 브라크 등이다. 입체주의의 영향을 받은 화가들은 모든 것을 조각낸 뒤 재구성한다. 심지어 자신의 얼굴마저도...! 원뿔, 원통, 구 따위의 기하학적 형태로 거칠게 깎여나간 그림은 작가의 주관에 따라 화면 안에 질서 있게 배치된다.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 
<아비뇽의 처녀들>(1907), <우는 여인>(1937), <게르니카>(1937)등 이름만 들어도 화풍이 연상되는 입체파의 거장 파블로 피카소. 그의 회화실력은 성인이 되기 전 이미 대가의 반열에 올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신의 출생 이전에 있었던 모든 고전 기법을 마스터 한 그는, 당시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새로운 기법을 시도했다. 눈에 보이는 것을 ‘있는 그대로’ 그려야 한다는 편견을 부순 것이다. 

마르크 샤갈(Marc Chagall, 1887~1985) 
샤갈은 그 시대의 가장 독창적인 미술가 중 한 사람이었다. 그의 작품은 당시 유행하던 유파의 영향은 받았지만, 특정한 어느 한 경향을 있는 그대로 좇지 않고 자신의 상상력에 근거한 작품을 제작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샤갈의 입체주의는 다채로운 색채 사용을 지양하는 기존의 경향과 달리 몽환적인 색채로 그려진다.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 1898~1967) 
벨기에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 그는 화면 내의 친숙한 사물을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엉뚱한 곳에 배치해 놓거나, 모순 혹은 대립되는 요소들을 한 곳에 결합해 사람
들을 혼란하게 만드는 초현실주의 화가다. 

그런데 르네 마그리트가 처음부터 초현실주의자였던 건 아니다. 조르조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의 영향을 받기 전까지, 마그리트는 원래 입체주의와 미래주의 성향의 그림을 주로 그렸다. 

“끔찍한 삶의 고통을 이겨내리라” 
프리다 칼로(Frida Kahlo, 1907~1954) 
짙은 검은색 눈썹과 콧수염, 강한 눈빛, 굳게 다문 붉은 입술… 멕시코를 대표하는 예술가 프리다 칼로의 모습이다. 

6세에 소아마비에 걸려 한 쪽 다리를 절던 소녀는 16세에 타고 있던 버스가 전차와 충돌하는 대형 교통사고를 겪었다. 그는 가까스로 살아났지만 평생 하반신 마비로 살아야 했으며, 30번의 수술, 3번의 유산, 불임 등 죽을 때까지 육체적 고통 속에 살아 간다. 

프리다의 고통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의 연인 리베라(Diego Rivera)로 인한 정신적 고통이 더해진 것이다. 멕시코의 대표적인 민중화가 디에고 리베라는 여성편력이 심해 결혼 이후에도 외도를 멈추지 않았고, 심지어 프리다의 여동생과도 바람을 피웠다. 

그러나 프리다는 육체가 무너지고 영혼이 고통받는 와중에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는 ‘자기 자신’을 주제로 삼은 자화상을 그리면서 삶에 대한 강한 의지를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프리다의 그림에는 초현실주의, 상징주의, 그리고 현실주의가 멕시코 문화와 함께 복합적으로 나타난다. 정식으로 그림을 배워본 적은 없지만, 끊임없이 스스로를 관찰하면서 내면에 꿈틀거리는 강한 생명력을 표현했다. 

- 이 기사는 '나침반 36.5도' [인문 다이제스트]에 실린 내용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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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듀진 기사 URL: http://www.eduj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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