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양만이 고구려 수도가 아니다! 9번 수도를 옮긴 고구려
- 왜와 일본은 다른 나라이다!

우리는 학교에서 지식은 지식대로 얻으면서, 고정관념을 탈피하기 위해 자료를 찾아 정리하고 분석하면서 대안제시를 하는 과정을 배운다. 이러한 과정이 비판적사고를 하는 과정이고 창의력을 배우는 과정이다. 본지는 비판적 사고력 향상 프로젝트 특집으로 ‘한국사 바로알기’를 주제로 해 시민역사가 책보고 양지환님의 주장을 싣고 있다.

지금은 인터넷으로 원서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국사편찬위 인터넷 데이터서버 DB와 위성지도를 직접 교차 검증해 보고, 탐구보고서를 작성해 수업시간에 발표해보자. 고정관념을 탈피하고 분석을 통해 보고서가 잘 작성되었으면 ‘비판적사고력’이 매우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을 통해 대안 제시를 하게 되면 창의력이 있는 것이다.

삼국시대의 역사를 한반도 내로 한정해 만든 현재의 한국사 교과서, 그런데 중국 동부 지역이 모두 삼국시대의 영토라는 주장이 있다. 하나는 확실하다. 한국사 교과서를 만든 교수들은 삼국사기를 기술한대로 해석하지 않고 일제 강점기 ‘조선사편수회’가 만든 황국사관 위주로 한국의 역사를 해석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역사학자들이 현재까지 원문을 통한 교차검증보다는, 이미 그들의 스승으로부터 전승되는 이론 및 근거를 암기 위주로 연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실 역사는 이렇게 단순하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더더군다나 한국사는 기본적으로 일제 강점기에 시작된 것이다. 즉 상당 부분 왜곡된 부분이 많이 들어갔다.

당시 일본은 일본과 조선은 하나라는 ‘내선일체‘라는 사상을 주입하기 위해 한국사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당시 조선사는 가짜라는 것을 의미한다. 당시 조선사(여기서의 조선은 한민족의 모든 역사)를 맛사지하기 위해 만든 ‘조선사편수회’에 투입된 이마니시 류 등 일본 사학자들은 조선역사를 한반도 내로 철저히 가두었다.

그리고 당시 조선사편수회에서 심부름하던 한국인 이병도와 신석호 등은 일본이 패망하고 돌아간 1946년 지금의 서울대와 고려대의 교수가 된다. 그리고 한국사의 불행한 역사가 시작된다. 지금의 거의 모든 대학들에서 고대사와 중세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대부분은 이병도와 신석호의 제자 및 제자들의 제자들이다. 다른 이론은 받아들여지지 못한다.

만약 받아들여지더라도 한국을 더욱 일본에게 종속화하거나 그것을 더욱 한반도에 가두는 이론 말고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것이 한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고 있다. 고대사와 중세사를 연구하는 정식 교수들 중에 단재 신채호 선생을 비롯한 민족사학자들의 입장을 견지하는 교수들이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 이유이다.

그래서 고대사와 중세사 중 한국의 역사가 한반도를 벗어나 중국 내륙 깊숙이 들어간 연구를 하는 사람들은 모두 고대사나 중세사를 가르치는 교수들이 아니라 사회학과 교수, 천문학과 교수, 고대사나 중세사를 가르치지 않는 한국사 교수들이다.

삼국사기 원문에 나오는 고구려의 중심지를 생각해보자. 한국의 고대사가 조선사편수회로 시작되어 지금까지 그 논리대로 해석되고 기술되어 있는 교과서에서 배우는 한국사와는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보자.

1> 요동의 지배자 고구려, 요(遼)는 어디인가?

중국 25사의 최초 사서부터 등장하는 요(遼), 패하(浿河)가 흐르는 곳.
요가 중요한 지역인 이유는 고조선 말기, 고조선과 한나라의 격전지이기 때문이다. 요는 국경, 끝이라는 뜻으로 여러 지도에 표기된다.

송나라 때 비석지도인 우적도의 요수(遼水)를 기준으로 한다면, 현재 우리가 배우는 고구려 강역으로 비정된다. 또한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 개모성, 백암성, 요동성 등의 위치가 현재의 랴오닝반도로 교과서와 동일하게 추정된다.

하지만 요수가 아닌 요(遼)를 기준으로 고구려의 요동을 해석하면, 고구려뿐 아니라 백제와 신라의 위치도 모두 한반도가 아닌, 중국대륙에 존재하게 된다.

2> 고구려 영토의 기준은 어디인가?
고구려의 수도는 평양(平壤)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삼국사기(三國史)의 기록에 의하면 고구려의 수도는 총 9개가 기록되어 있다.

이들 중 동황성(東黃城), 장안성(長安城)이 현재 북경 아래에 존재하며, 서안평으로 우측인 안평(安平)도 존재한다. 물론 그 근처의 안동도독부인 신성(新城)도 존재한다. 또한 북경 근처에는 평양(平壤)과는 한자는 다르지만 평양(平陽)이 존재한다. 이 정도로 현재의 북경에 고구려의 지명이 많이 교차되면, 북경 주위를 고구려의 수도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 것은 아닌가?

3> 요동성이 요주(遼州)가 되다

당나라는 고구려 군사 1만 명, 주민 4만 명을 생포했고, 쌀 50만석을 노획했다는 기록이 있다. 당나라는 고구려 요동성(遼東城)을 요주(遼州)로 개칭하였다. [삼국사기, 구당서, 신당서 기록]

이 기록에서 요주(遼州)는 현재도 존재하는 지역으로, 오직 1곳에만 존재한다. 이곳은 요양(遼陽)이라고 불리며, 북경의 좌측에 있는 태행산맥이다. 현재는 좌권으로도 불리는 곳이다. 이 근처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백암, 개모, 안시 등의 지명이 현존하고 있다. 고구려의 중심지는 북경을 기점으로 한반도와 요서를 아우르는 대제국으로 해석해야 한다.

4> 고려영, 몽롱보탑과 대륙의 유적유물의 해석

고구려의 중심지가 현재의 북경일대라고 해석하면, 북경의 고려영(高麗營), 강소성의 연개소문 몽롱보탑이 쉽게 설명이 되며, 백제와 신라의 본토 또한 중국 동부이기에, 유적, 유물, 사서의 기록들이 쉽게 이해될 수 있다. 하지만 일제의 조선사편수회의 해석대로 한반도 내로만 한정하기 때문에 고대사의 지명들이 대부분 ‘비정한다‘라는 표현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삼국사기 46권 기록에 있는 ‘고구려, 백제가 전성기일 때, 유, 연, 제, 노, 오, 월나라를 정복하고 빼앗아 가졌다.’는 기록도 해석이 가능하게 된다. 그런데 현재의 한국 고대사를 연구하는 현직의 교수들은 삼국사기의 기록을 부인하고, 일제 ‘조선사편수회’의 해석대로 아무런 실존적 근거도 없는 ‘비정한다’고 추정하며 이를 교과서에 기술하고 있기 때문에 ‘식민사관학자들’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현재 한국의 식민사관 학자들은 실존사관이라고 지칭하지만 사실 그보다 더 정확한 표현은 ‘상상사관’ 또는 일제의 일왕에 종속하는 ‘황국사관’이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5> 선행되어야 할 ‘왜’와 ‘일본’의 기록
북경이 고구려의 수도 중에 하나라고 한다면, 백제와 신라의 본토 역시 중국동부 지역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왜와 일본은 어디일까? 구당서의 기록에 의하면 우리 한민족의 고대 시대 이름인 ‘동이(東夷)’는 5개국이다. 왜와 일본은 다른 나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렇다면 일식과학기록부터 삼국사기와 고려사의 모든 해석들이 술술 풀이가 된다. 현재 삼국사기와 고려사에서 기록된 대부분 지명들이 '추정 또는 비정한다'고 해석되는 그 위치들, 또 한국 역사학 교수들의 주장대로 예전에만 사용되었다는 그 지역명들은 모두 중국에 현존하는 지명들이다.

그 지역명들은 대부분 중국 동부지역에 실존하고 있다. 우리역사 교과서에는 ‘추정한다’, ‘비정한다’로 표현되는 지역이 중국 동부 어느 지역이라고 명확히 확정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삼국사기와 고려사의 해석은 그야말로 명약관화하게 해석이 되는 것이다.


*에듀진 기사 URL: http://www.eduj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4049
기사 이동 시 본 기사 URL을 반드시 기재해 주시기 바랍니다. 

* 대입 성공의 길 알려주는 '나침반36.5' 매거진 정기구독 이벤트 [배너 클릭]

저작권자 © 에듀진 인터넷 교육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