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기과' 공대 교수도 우려…"학문 기초 없이 전공 진입"
- 자유전공 학생들 "돌연 학부 통폐합"…'전공 쿼터' 걱정도

[사진,기사=연합뉴스, 전국 인문대학장_무전공 모집 추진에 반발]
[사진,기사=연합뉴스, 전국 인문대학장_무전공 모집 추진에 반발]

서울대가 2025학년도부터 신입생 100∼400명을 대상으로 '열린전공'(무전공)을 운영하는 방안을 검토중인 가운데 학내 구성원들 사이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교수들은 학생 쏠림현상과 교육의 어려움을 걱정하고, 학생들은 논의 과정에서 배제됐다는 불만을 제기했다.

25일 대학가에 따르면 서울대 인문대 교수들은 신입생 일부를 열린전공으로 받을 경우 이 학생들이 상경계열, 공학계열 등 취업에 유리한 과로 쏠릴 것을 우려한다.

강창우 서울대 인문대 학장은 "1년간 교양수업을 듣고 자기 적성에 맞는 전공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학생이 얼마나 되겠느냐"며 "시류에 따라 사회적으로 인기가 있는 전공을 선택하는 비율이 훨씬 높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 대학 자유전공학부에서 전공을 선택하는 학생의 절반 가까이가 경영학과, 경제학과, 컴퓨터공학과 등 취업에 유리한 학과로 몰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유전공학부 학생들이 몰리는 이 세 전공을 일컬어 '경경컴'(경영·경제·컴공)이라는 말까지 통용된다.

열린전공생들이 학과에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면서 의대 진학을 위해 반수, 재수를 하느라 학교를 그만두거나 쉬는 경우가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강 학장은 "지금도 서울대 인문대 신입생 정원의 50%가량은 광역단위로 모집해 2학년 때 전공을 선택하게 하는데, 인문대 휴학·자퇴생 대다수가 이 광역 모집 학생들"이라고 말했다.

취업에 유리한 '인기과'가 몰려 있는 이공계 교수들은 다른 이유로 고민이 깊다. 열린전공 학생들이 다양한 전공을 탐색하느라 기초 수학·과학 과목을 듣지 않은 채로 전공에 진입할 경우 학업에 차질이 생긴다는 우려다.

홍유석 서울대 공과대학 학장은 "공학은 기초와 심화 단계에서 각각 꼭 갖춰야 하는 소양이 있어서 공대 신입생들은 수학, 과학 수업을 들어야 한다"며 "열린전공으로 들어와서 1학년 때 전공 탐색을 하느라 수학, 과학 수업을 듣지 않으면 전공 선택 시 공학에 대한 심리적 진입장벽이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 자연대학 교수도 "2028년 수능부터 수학과 과학이 문과 수준으로 축소되면 학생들은 이과 교육을 못 받은 채로 입학해서 또다시 1년 동안 배경지식을 쌓을 기회를 놓치는 것이다"라며 "배경지식이 부족하면 이공계는 기피하고 경영대, 사회대 등으로 쏠릴 수 있겠다"고 말했다.

재학생들은 교육의 질이 떨어질 우려를 제기하면서, 열린전공 도입 논의에서 학생들의 목소리가 배제됐다고 비판한다. 소속 학부가 열린전공에 편입될 자유전공학부 학생들은 열린전공 확대 선발 방안이 언론 보도로 처음 알려지자 "학생들이 논의 과정에서 배제됐다"며 대학본부를 규탄하는 성명서를 냈다. 열린전공 학생들이 전공을 선택할 때 각 학과 측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선발권'을 가질 수도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학생들은 "각 전공에 선발권을 부여한다면 자체적인 기준으로 학생을 평가할 권리를 부여하게 될 것이며, 실질적으로 각 전공이 진입생의 정원을 제한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라며 "이 제도가 어떻게 자유로운 전공진입과 공존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이밖에 서울대 학부생들이 주로 이용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에브리타임' 등에서는 컴퓨터공학과나 경영학과는 이미 복수전공생, 전공진입생이 많아 과목당 수강생이 지나치게 많거나 강의실이 좁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사실상 컴공+경영대 학생이 400명 늘어나는 것 아니냐'라는 자조도 나온다.

지난해 8월 이 대학 자유전공학부를 졸업한 김모(27)씨는 "무전공 입학 확대가 대학 개혁에 필요하다는 측면에 공감하면서도, 인기 전공에 학생들이 몰리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수강신청 대란이나 강의실 부족과 같은 문제가 당장 내년부터 닥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는 2025학년도부터 신입생 정원 123명 규모의 현 자유전공학부를 학부대학으로 확대재편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애초 학부대학은 별도 정원 없이 기초교양교육과 글로벌 교육을 담당하는 교육기관으로 설계됐으나, 자유전공학부 기능까지 이관되면서 열린전공 정원이 별도로 배정될 전망이다.

학교 측은 의대 등 국가자격증과 관련 있는 학과 정원을 제외하고 서울대 입학정원 약 2천600명 중 일정 비율을 열린전공으로 선발하는 방안을 저울질하고 있다. 정원 규모는 5%(130명)에서 15%(390명)가량이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부는 앞서 당장 올해 고3 대입부터 주요 국립대 등에 대해 일정 비율 이상 무전공 선발을 재정적 지원 요건으로 내걸기로 했다가 전날 유보 방침을 밝혔다. 올해는 대학이 충분히 준비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준비도와 여건을 고려해 단계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취지다. 서울대는 이같은 교육부 방침과 별도로 열린전공 제도를 도입·운영할 것으로 보인다.

대학 측은 지난 16일 자유전공학부 학생들과의 간담회에서 "정부 정책 발표 이전부터 서울대는 기존에 발표한 2040년 중장기발전계획과 관련해 (열린전공 확대 방안을) 정했으며, 교육부가 먼저 계획을 발표한 건 아니다"라며 "처음 무전공 제도 논의를 시작할 때부터 정부 영향이 있던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에듀진 기사 URL: http://www.eduj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48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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