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교육의 보고 ‘태백 장성여자고등학교’

   
▲ 태백 지역 독서 캠페인에 나선 장성여고 학생들

어려서부터 꾸준히 책을 읽는 것은 교육에 있어서 투자 대비 고효율을 내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우리나라 초등학생들만큼 책을 많이 읽는 아이들이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엄마들이 독서의 중요성을 매우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뜨겁던 자녀에 대한 독서열이 중학교에만 올라가면 여지없이 사그라진다.

중학교에 들어가도 학부모들이 책값으로 지출하는 비용은 여전히 많다. 다만 독서를 위한 것이 아니라 참고서, 자습서, 학원 책 등 학업과 관련한 것들뿐이다. 학업과 관련된 것이 아니면 책이 팔리지 않는다고 출판업자들이 하소연할 정도다. 중학생이 되면 대학 입시 사정권 안에 들어간다고 생각하는 학부모들은 자녀들의 손에서 책을 빼앗고 대신 영어 자습서와 수학 참고서를 쥐어준다.

‘책을 읽는 곳’이 도서관이지만 요즘은 어느 도서관을 가든 순전히 책을 읽기 위해 도서관 열람실에 앉아있는 학생은 찾아보기 어렵다. 대부분이 학교공부에 필기와 암기에 열중하고 있을 뿐이다. 아이들의 미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독서활동이 진학과 입시라는 틈바구니에서 실종된 것이다.

고교에서 의미 있는 학교활동을 하는 교사들은 학생들이 책과 멀어지는 것에 대해 매우 안타까워하고 있다. 대학이 학생들의 독서역량을 높게 본다고 하여도 이를 제대로 알고 전파하는 교사들의 절대수도 부족하고 당장 학업에 초점에 맞춰진 학교의 학부모 상담에서 독서활동의 영역은 뒷전이기 일쑤다.
 

   
▲ 책 읽는 입학식

이처럼 독서역량의 중요성을 깊이 체득하고 누구보다 앞선 걸음을 내딛은 학교가 있다. 독서역량 강화로 학생들의 역량을 알차게 키워가는 태백 장성여자고등학교(교장 박진석)가 그곳이다.

교직 생활 내내 독서의 중요성을 설파해온 김영화 선생님이 부임하면서 이 학교는 혁신적인 변화를 맞이한다. 물론 이 모든 것은 박진석 교장이 나서준 덕택이다.

박 교장은 함께 교편을 잡았던 예전 학교에서 학생들의 독서활동을 열정적이고 성실하게 이끌어 주었던 김영화 교사를 떠올리고 장성여고로 모셔오게 된다. 박 교장과 김 교사의 열정이 다른 선생님들에게 이어지고, 이런 노력의 결과 교사들의 합심된 노력이 결실을 맺어 독서로 행복한 장성여고가 된 것이다. 변변한 동아리 활동을 찾아볼 수 없었던 장성여고에 지금은 독서 동아리만 해도 41곳이 만들어져 있을 정도다.

장성여고의 독서활동이 왜 이토록 활발해질 수 있었을까? 많은 고등학교에서는 성적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독서는 필요 없는 일 가운데 하나로 낙인찍혀 있다. 그 시간에 문제집 한 권이라도 더 풀어서 성적을 올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장성여고에서는 그런 모습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장성여고는 학생들의 학업역량이 독서로부터 키워진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장의 입시가 아니라 학생들의 미래를 꽃피울 씨앗을 심어주는 학교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독서가 해답이다

장성여고에는 독서 동아리 41곳 외에도 학술 동아리 37곳, 창체 동아리 21곳 등 수많은 진로 및 자율 동아리 활동이 활발하다. 한마디로 동아리 천국이 된 셈이다.

30학급 이상의 대단위 도시 학교에서도 동아리 활동을 잘하는 학교라고 해도 동아리가 많아야 70여개이고 이 가운데 활발히 활동하는 동아리는 손에 꼽을 정도인데 반해 전체 12개 학급을 갖고 있는 작은 시골학교에 거의 100개나 되는 동아리가 움직이고 있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다.

더구나 독서 동아리와 학술 동아리의 경우 학교에서 구성하고 학생들을 배정해서 만든 것이 아니라 학생들 스스로 만들고 운영해가는 조직으로 움직이고 있다. 결국은 이런 독서역량 증대가 성적 향상으로 이어지게 되고 학생들이 자신의 꿈을 위해 열정적으로 활동하게 하는 결정적 계기도 마련해 주는 것이다.

장성여고 동아리 활동은 대부분 평일에는 점심과 저녁시간을 활용해 짬짬이 행해지고 있으며, 토요일에는 누가 나오라고 강제하지 않아도 동아리활동을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학교 어디를 가나 책 한 권씩 들고 앉아 책을 읽는 학생들의 모습을 쉽게 마주칠 수 있으며, 삼삼오오 둘러앉아 함께 읽은 책에 대해 토론하는 모습도 심심치 않게 목도할 수 있다.

   
▲ 독서 골든벨

그렇다면 장성여고는 어떤 방법으로 학생들의 독서역량을 키울 수 있었을까? 장성여고의 독서 활동은 독서의 내실을 다지는 ‘횡적 활동’과 독서의 재미를 더하는 ‘종적 활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횡적 활동이란 내실과 재미를 더해 독서 교육의 기본을 다지기 위한 활동을 말한다. 아침 독서 활동, 독서 동아리 활동, 독서 기록장 쓰기 등이 여기에 속한다.

아침 독서 활동은 1, 2학년 모두가 참여하는 시간으로 아침 8시 20분부터 8시 35분까지 실시한다. 자투리 시간을 소중히 활용할 수 있고 늘 책을 가까이 하는 정숙한 분위기가 조성돼 일거양득의 효과를 톡톡히 맛보고 있다.

동아리 학생들은 매일 일지를 구체적으로 작성하는데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 등을 이용해 모임을 갖고 ‘책 대화’도 나누고 있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독서역량 강화를 위해 읽고 싶은 책을 1권씩 무상지원해주고 있으며, 13명의 ‘울타리 교사’들이 동아리 학생들에게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고 있다.

또한 독서 기록장을 모든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고 전교생 모두 학기당 20편씩의 독서 기록을 작성하게 해아침 독서 활동과 독서 동아리 활동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했다.

독서의 재미를 더하는 이벤트에 해당하는 종적 활동으로는 ‘동아리 오리엔테이션’, ‘독서 캠프’, ‘교과통합형 지역 독서기행’, ‘문학 기행’, ‘고교생 인문학 독서 토론캠프’, ‘작가와 함께 하는 독서 동아리 발표회’, ‘교과와 연계한 독서 수업’, ‘도서실 행사’, ‘독서 교육 장학 협의’, ‘인문학 교실 ‘책 읽는 태백’, ‘독서 동아리 발표 대회’ 등 흥미로운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마련되어 있다.
 

   
▲ 작가와의 대화

장성여고는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부터 12월까지 진행하는 학교행사의 많은 부분이 '책 사랑'에 집중되어 있는 학교이다. 작년에 있었던 장성여고의 책 사랑 활동을 되짚어 보면 놀랄 만하다.

3월에는 ‘책 읽는 아이들’이라는 주제로 동아리 오리엔테이션을 실시하여 독서 활동을 안내하고 7월에는 독서 캠프도 열었다.

100여명이 참가한 독서캠프에서는 자신들이 읽은 책 홍보와 댓글 써 주기, 독서 골든벨, 책 속의 음식 경연대회, 독서 플래시 몹, 시낭송대회, 밤새워 책읽기 등의 행사가 펼쳐졌으며, 이튿날에는 발원지 탐방도 함께 했다.

오는 9월에는 교과통합형 지역 독서기행이 준비돼 있다. 지난해 같은 행사에는 30여명 내외의 학생들이 참가했으며 자료집을 제작해 사전 세미나를 열고 양구 지역에서 제 4땅굴, 을지전망대, 이해인 문학관, 안병욱 김형석 철학의 집, 박수근 미술관, 국토정중앙지점, 펀치볼 등을 보며 철학, 문학, 미술, 지리, 통일에 대한 통합적 지식을 체험하고 돌아왔다.

10월에는 문학 기행이 기다리고 있다. 지난해 20여명의 학생이 참가했으며, 자료집을 통해 사전 교육을 받은 후 경북 영양의 조지훈 생가와 서석지, 석계고택, 음식디미방에 들렀고 이문열 선생의 강연을 들으며 사진도 찍고, 유교음식 축제장도 둘러보았다.

고교생 인문학 독서 토론캠프’에도 참가할 예정이다. 지난해에는 9월 평창에서 열린 토론캠프에 독서 토론 동아리 학생들이 캠프 선정 작가의 책을 읽은 뒤 비경쟁 토론에 나섰다.

11월에는 ‘작가와 함께 하는 독서 동아리 발표회’도 참가한다. 지난해 홍천에서 열렸던 발표회에는 독서 동아리 학생들이 참가하여 독서활동에 대한 PPT를 발표하고 작가와 대화를 나눴다.

8월부터 11월까지 교과와 연계한 독서 수업도 예정돼 있다. 2학년을 대상으로 고전읽기 프로젝트를 진행할 예정이다. 지난해에는 수업을 통해 열하일기와 삼국유사를 읽게 하고 좋은 활동을 보인 학생은 시상도 했다.10월에 열리는 도서실 행사도 학생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축제이다.

지난해 예쁜 책갈피 나눠주기 행사, ‘독서의 달’로 사행시 짓기, 도서관 이름 공모, 책 반납 후 도서부원과 ‘가위 바위 보’로 퀴즈 풀기 등의 이벤트가 학생들에게 대단한 인기를 모았다. 장성여고는 올해에도 이런 이벤트를 통해 학생들이 도서관과 더욱 친해지는 기회를 만들어갈 예정이다.
 

   
▲ 황순원 문학관 탐방

12월로 예정된 독서 동아리 발표 대회는 독서동아리를 대상으로 열리는 PPT 발표 대회이다. 가장 인상 깊었던 책과 그동안의 동아리 활동상황을 정리해 동아리별로 PPT를 제작해 발표하고 시상식을 가진다.

또 다양한 교과 교사 13명으로 구성된 교사독서동아리 ‘한울타리’에서는 교과외 과정으로 ‘책사랑’을 비롯한 자발적 학생독서동아리 41개의 독서활동을 적극 지원하고 있어 사제간의 훈훈한 정을 자아내고 있다.

입시전형이 바뀌니 독서가 자란다

입시전형에서 독서역량을 보기 시작한지 수 년이 흐른 지금 입시 공부에만 치중해 책 읽는 학생을 찾아볼 수 없었던 학교의 풍경도 차츰 달라져가고 있다. 어느 순간부터 학교들이 학생들에게 책을 찾아 읽도록 장려하는 분위기가 점점 확대돼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달라진 학교풍경을 만든 것이 바로 입시전형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달라진 입시환경이 공교육을 살찌우고 있는 것이다. 독서역량은 모든 학문의 기초이다. 기초를 튼튼히 하는 교육이야말로 공교육이 지향해야 할 방향이다.

이런 교육이 점차 널리 확대될 때 우리나라의 미래도 더욱 밝아지게 될 것이다. 강원도 산골의 이름 없는 작은 학교가 한국 교육계의 당면 과제인 공교육정상화를 이끄는 새로운 대안모델을 제시하고 있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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