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보다 아이의 건강한 성장이 먼저

   
▲ 학교와 학부모가 학생들을 위한 교육의 동반자로 맞손잡은 서울 압구정고

한국에서 입시는 무소불위의 힘이다. 어떤 문제가 불거져도 입시 앞에서는 옳고 그름도 없다. 이는 최근 충암고 급식비리를 둘러싼 일부 학부모들의 행동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서울시교육청은 5일 충암중·고에 대한 급식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교육청은 이번 감사에서 급식운영 전반에 관한 심각한 문제점과 함께 최소 총 4억 1,035만원의 횡령 의혹을 적발했다고 밝히고, 관련자 파면을 요구하고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고 밝혔다.

충암고 급식비리는 “학생들에게 한 끼라도 제대로 먹이고 싶었다”는 한 교사의 용기 있는 내부 고발로 인해 백일하에 드러났다. 그런데 충암고 일부 학부모들이 이 교사에 대해 ‘해교 행위’를 했다며 비난하고 나서 충격을 주고 있다.

더구나 지난 4월 벌어진 충암고 교감의 ‘급식비 막말 사건’ 당시에도 서울시교육청이 학생들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 대해 충암고 학교운영위원회 학부모위원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나서며 학교측을 감싸는 모양새를 취해 논란이 일어난 바 있다.

폭로 교사에 대한 재단 이사장과 교장, 업체 등 비리 관련자들의 전방위 압박이 가해지고 있다고 알려져 공분을 사고 있는 가운데,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학생들을 위해 내부 고발에 나선 교사를 학부모들이 감싸지는 못할망정 해교행위라고 비난하고 나선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는 반응이 주를 이루고 있다. 6일 충암고 동문회·학부모 등이 뜻을 모아 비대위 구성하고 급식비리를 철저히 점검하겠다고 나선 것도 잘된 일이다.

앞서 지난 7월 서울 서대문 ㄱ고교에서 발생한 성추행 사건으로 전국이 들끓었을 때도 학교 측과 일부 학부모들이 성추행 피해 사실을 털어놓은 교사와 학생들을 비난하고 나서 물의를 빚은 적이 있다. 피해 교사와 학생들을 비난하는 학부모들의 논리는 “입시를 코앞에 두고 있는 대다수의 학생들이 이 사건 때문에 피해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피해자들을 두 번 죽이는 ‘나만 아니면 돼’라는 학부모의 이기심이 학생들의 눈에 어떻게 비쳐졌을지 생각해 보자. 학교의 부정부패를 온몸으로 겪은 것도 모자라 제 자식만 위하는 학부모의 비도덕적인 행태를 목도한 학생들이 거기서 무엇을 배우고 느꼈을지, 그것이 과연 교육의 요람이라는 학교와 가정에서 벌어질 만한 일인지 자문해 보자.

예전 제주 대정여자고등학교에 강의를 가서 저녁 급식을 먹은 적이 있다. 그곳에서 10년째 급식을 책임지고 있는 주방장과 영양사가 8가지나 되는 반찬을 내놓고도 학생들을 더 잘 먹이지 못해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던 모습을 보게 됐다.

학교 급식이라면 대정여고의 경우처럼 맛, 영양, 정성 모든 것이 빠짐없이 함께 아우러져 학생들에게 제공돼야 한다. 우리 미래를 짊어질 동량들에게 기름에 절어 가축에게도 못 먹일 음식 말고 한 끼 알찬 식사를 사랑으로 전해야 하는 것이다.

   
▲ 제주 대정여고 1식 8찬 급식(좌, 사진=에듀진)과 충암고 급식(우, 사진=jtbc 방송 캡처)

충암고와 ㄱ고교 사건을 관통하는 하나의 사실은 많은 교사와 학생들의 피해 사실을 알면서도 대부분의 교사와 학부모, 관계자들이 침묵했다는 것이다.

우리의 교육이 진정 아이들을 위한 교육으로 바로서기 위해서는 침묵하는 다수가 입을 열어야 한다. 침묵은 무언의 긍정이자 묵인이다. 침묵은 문제를 더 곪게 만들 뿐 해결해주지 않는다. 우리 교육을 바꿀 수 있는 것은 바로 우리이다. 누군가 대신 해주겠지 하며 침묵으로 일관한 결과가 바로 충암고와 ㄱ고교 사건으로 돌아온 것이다.

학부모는 학교에서 발생하는 부당한 사건에 대해 침묵하지 말고 학교와 관리자들에게 항의하는 한편, 부당과 맞서 싸우는 교사와 학생들 편에 서서 그들에게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대다수의 대학들이 수시 학생부종합전형으로 신입생을 선발할 때 책임감과 리더십, 배려심, 희생정신 등을 선발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는 참고서 문제를 풀고 학원을 하나 더 다닌다고 해서 배울 수 있는 덕목이 아니다. 교사와 학부모에게서 학생들은 보고 배운다. 학생들이 닮고 싶은 어른이 될지, 아니면 절대 닮아서는 안 될 반면교사가 될지는 학부모 자신의 손에 달려있다.

‘내 아이만 아니면 돼’라는 이기적인 사고로는 21세기의 주인인 청소년들을 올바로 가르칠 수 없다. 아직 자아정체성이 확립되지 못한 어린 청소년들에게 세상은 착한 사람은 상을 받고 나쁜 사람을 벌을 받는 상식이 통하는 곳이라는 것을 실제로 체험하게 해주고, 세상은 살 만한 곳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해줘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이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건강한 사회인으로 자라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사건이 터질 때마다 올바른 사고방식을 가지고 문제제기에 나서며 문제의 심각성을 공유하는 학부모의 단합된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옳지 않은 것에 침묵으로 일관하는 침묵의 문화는 이제 청산해야 할 때이다.

나치에 저항한 독일의 목사 마틴 니뮐레는 “그들이 왔다”라는 제목의 시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처음에 나치가 공산주의자를 잡아갈 때/나는 침묵했다/나는 공산주의가 아니었기에//그들이 유태인들을 잡아갈 때/나는 침묵했다/나는 유태인이 아니었기에// (중략) //마침내 그들이 나를 잡아갈 때/세상에는 날 위해 싸울 이들이/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침묵은 금이 아니다. 침묵하는 자는 방관자나 동조자가 될 수밖에 없으며, 결국 그 곁엔 아무도 남지 않게 된다. 깨어있는 학부모가 필요하다. 올바른 사고와 실천을 하는 학부모가 많아질 때 한국의 교육은 달라질 수 있다. 니뮐레 목사의 시가 주는 교훈을 다시금 곱씹어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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