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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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대학 작곡과 정태봉 교수(작곡전공)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에 발을 디디면 보통 사람들에게는 무척 생소한 광경이 펼쳐진다. 피아노, 바이올린, 플루트, 호른 같은 악기들을 조율하는 소리가 들리고 성악가들이 음색을 고르는 소리가 음악대학을 가득 메우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음악대학에서도 아름다운 선율보다는 거무튀튀한 연필 냄새가 더 강하게 느껴지는 곳이 있다. 바로 그곳은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 오늘도 많은 학생들이 밤을 새우며 과제를 하고 있으며, 심지어 일부 학생들은 음대 학생인지 인문대 학생인지 헷갈릴 정도로 많은 책을 보고 글자로 빼곡히 차있는 과제를 쓰기도 한다.

작곡, 지휘, 전자음악, 이론 네 개의 세부 전공으로 나뉘는 작곡과. 작곡과 사람들이 말하는 작곡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Q. 안녕하세요. 먼저 개괄적인 질문부터 드릴게요. 작곡과에는 작곡전공, 지휘전공, 전자음악전공, 이론전공이 있는데요, 작곡전공은 어떤 전공인가요?

먼저, 작곡과에 대해 설명하기에 앞서 음악이 무엇인지를 알아야겠죠. 음악은 음을 소재로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표현하는 예술입니다. 작곡전공에서 하는 일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신적인 것, 감성적인 것을 음악적 매커니즘으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통 오선지로 많이 작업을 하는데, 20세기에 들어서는 오선지를 이용하지 않는 작업도 생겨났죠.


Q. 지휘전공은 어떤 전공인가요?

지휘 전공에서는 오케스트라나 큰 악기 편성을 지휘해 작곡가가 의도한 것을 표현하는 일을 합니다. 지휘자들은 음악의 기술적인 면을 단련해야 합니다. 악보를 볼 줄 알아야 하고, 악기도 다룰 줄 알아야 하며, 음악학을 하는 사람들처럼 음악에 대한 철학적 접근도 해야 합니다.

연주자들을 컨트롤하는 능력도 중요해요. 오케스트라의 단원이 백 명 가까이 되는데, 그 중 몇 명이라도 엉뚱한 소리를 내거나 지휘자의 지시에 응하지 않으면 곤란하지요. 리더십이 굉장히 중요한 겁니다. 많은 사람들을 조율하고 다듬어 하나의 모양을 만들어낸다는 게 나라를 경영하는 것과 비슷한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Q. 전자음악전공은요?

전자음악은 1940년대에 본격적으로 등장했습니다. 옛날부터 음악가들에게 고민이 있었어요. 많은 예술(장르)들이 있잖아요? 문학이라든지 미술이라든지요. 문학은 책을 통해서 사람들과 소통이 가능하고, 미술은 작품을 보면서 어렵게 느껴질 수는 있어도 확 들어오는 무언가가 있죠. 심지어 연극도 대본만 보면 직접 전달될 수 있어요. 하지만 베토벤의 악보만 보면 뭔지 모르겠죠. 음악은 매개체가 필요한 거예요. 연주자가 필요한 것이죠.

*사진 출처=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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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점차 음악이 어려워지고 복잡해지면서 연주자들이 아무리 연주를 잘 해도 작곡가들의 생각을 완벽하게 재현하기 힘들어졌어요. ‘연주자들에 의해 작곡가의 의도가 왜곡될 수도 있겠다. 연주자 없이 바로 소통을 할 수 없을까? 소리를 바로 전달할 수 없을까?’

그래서 등장한 것이 전자음악이에요. 처음에는 테이프 녹음을 이용했지만 컴퓨터의 개발 이후 이를 이용해 소리를 조합하고 변형합니다. 전자음악은 그런 면에서 컴퓨터 음악이라고 부르는 게 더 와닿을 수 있겠네요.


Q. 이론전공에 대해서도 간단하게 설명을 부탁드릴게요.

이론전공은 음악학 전공이라고도 불립니다. 음악을 미학적, 철학적 측면에서 연구하죠. 가령, 베토벤의 작품이 어떻게 사람을 감동시키는가, 어떤 음악이 좋은 음악인가와 같은 것을 논합니다. 인문학적 성격을 강하게 지닙니다.

따라서 이론 전공에서는 예술에 대한 전반적인 소양과 관심은 물론이고 인문학적인 소양도 필요해요. 인문계열 학생들이 공부하는 사고력과 논리력 분야에 음악을 더한다고 생각하면 될 겁니다.

당장의 입시에서는 학교에서 배우면서 익히는 사고력과 논리력에 더해서 교양이 좀 있으면 좋을 거예요. 가령, 현대음악은 듣기 싫은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런 질문에 자기 생각을 조리 있고 차분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죠.


Q. 전자음악전공은 2012년에 처음 만들어졌더라고요. 이전에도 대학원에서는 전자음악을 많이 다뤘다고 알고 있는데, 이제야 학부에 전자음악전공을 설치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옛날에는 컴퓨터를 다루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일종의 유예의 개념으로 대학원에서부터 전자음악을 다뤘습니다. 하지만 요즘 학생들은 컴퓨터를 다루는 능력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능성이 있는 학생이 있으면 학부 때부터 받아들이겠다는 취지로 전자음악전공을 만든 거죠.


Q. 그런데 최근 3년(2012~2014)동안 전자음악전공에서 딱 한 명만 선발됐더라고요. 정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을 선발하지 않는 이유가 있을까요?

컴퓨터를 다룰 수 있는 능력이 있더라도 예술적인 사고가 부족하다고 판단할 경우 선발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음악을 하려면 꽤 어린 나이 때부터 두각을 드러내야 한다든지 어린 나이 때부터 공부를 시작해야 한다는 편견이 많습니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 교육과정에서도 예술중학교, 예술고등학교 같은 특수목적 학교도 많아지고 있고요.


Q. 늦게 음악을 시작하거나 일반고에서 음악을 하고 있는 학생들에게는 음악을 배우기가 불리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이런 학생들에게 조언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옛날부터 지금까지 작곡과에 들어온 학생들은 기악과에 비해 예술고 출신 비율이 낮은 편이에요. 예술고에서도 잘 지도를 해주긴 하겠지만, 작곡과에서 요구하는 것은 폭넓은 범위의 지식과 사고의 경험을 지닌 학생들입니다. 작곡이라는 분야 자체의 성격이 그러니까요.

문제는 지원자 간의 경쟁이지 예고에서와 같은 체계적인 교육을 받았느냐는 염두에 두지 않습니다. 창의적인 사고, 자유로운 상상력 등 이 작곡을 위해 필요한 소양들입니다.

어린 나이에 작곡을 공부하는 건 장단점이 있겠죠. 장점은 학교에서 요구하는 시험 과목을 훨씬 효과적으로 공부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음악에 대한 기초 사고 능력은 결국 스스로 쌓아가야 하는데, 너무 이른 시기부터 작곡을 공부할 경우 자율적으로 공부할 시간이 많이 없을 것이라 생각해요. 그게 단점일 겁니다.

많은 음악을 들으면서 감상은 물론 생각도 많이 하고, 상상력을 펼쳐보는 시간도 충분히 가져야 하며, 좋은 책, 좋은 영화, 좋은 예술작품들을 많이 접하려는 스스로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면접을 보면 모범적인 대답을 하는 학생들은 많지만 기발한 생각들을 가지고 있는 학생들은 적은 편이에요. 교과서적이고 모범적이기만 한 게 아쉽죠. 물론 기발한 생각을 가진다는 게 어려운 일인 건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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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작곡을 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 있을까요?

주어진 과제들을 잘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음악에 대한 폭, 예술의 폭을 넓히면 좋겠습니다. 깊이 있는 사고, 상상력, 감수성을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을 많이 갖춘 사람이 작곡과에서 함께 공부하면 좋겠어요. 음악을 많이 듣고 책을 많이 읽는다든지….

인간적인 사고의 폭을 넓히는 책은 많아요. 유행하는 베스트셀러를 말하는 게 아니라 많은 걸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 고전들이 있죠. 입시에서 아쉬운 건, 자기소개서에 읽은 책 목록이 있는데 면접에서 거기에 있는 책에 대해 물어보면 학생들이 깊이 생각하면서 책을 읽은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는 거예요. 좋은 음악도 많이 들어야겠죠.

하지만 좋은 작곡가가 되려면 위대한 작곡가들의 작품을 많이 들어야 하는데 학생들이 제대로 안 듣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아쉽게도 많은 학생들이 입시 도구에 대한 것만 단련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죠.

학생들이 깊이 있는 사고력, 창의력, 상상력, 감수성에 대한 걸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많이 가졌으면 좋겠어요. 그게 본질이거든요. 그래서 오히려 철학자가 되려는 꿈을 가지고 있다가 작곡으로 진로를 바꾸는 사람들이 좋은 작곡가가 될 가능성이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물리학자나 철학자가 꿈이고 취미 삼아서 피아노를 쳤는데 갑자기 사춘기에 작곡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쭉 밀고 가는 사람이 있다면, 기술적인 작곡만 공부한 사람보다는 좋은 작곡가가 되지 않을까요? 정신이 없는 기술은 예술이 될 수 없어요. 그렇다고 정신만 가지고 있다고 해도 안 되고요.

정신적인 것은 어릴 때부터 소양을 길러야 해요. 좋은 책을 읽고 마음의 충격을 받을 수 있는 사람, 많은 걸 경험할 수 있는 사람이 좋은 예술가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연주가로 클 수 있는 사람과 작곡가로 클 수 있는 사람은 달라요.

연주는 일종의 스포츠랑 비슷할 수 있습니다. 조기교육을 받고 어렸을 때부터 두각을 나타내야 하는데 나이가 들면 기량이 쇠퇴할 수밖에 없죠. 하지만 작곡은 그렇지 않습니다.


Q.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를 해주신 거 같아요. 보통 사람들이 예술을 하려면 영감이 있어야 한다고 하잖아요? 교수님은 그런 영감을 어디서 얻으시나요?

요즘에는 영감이라는 말은 잘 안 쓰고 음악적 아이디어라고 표현하죠. 나는 개인적으로 책 읽는 걸 좋아했고 눈에 보이는 사물에 대해 호기심이 컸어요. 반대를 무릅쓰고 음악을 한 거라 집에 피아노도 없었죠. 그런 핸디캡 때문인지 ‘눈에 보이는 건 다 아이디어를 던져줄 수 있는데 사람들은 모르고 지나치고 있고 나는 찾을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주어진 조건이 열악하니까 사람들이 못 찾는 것에서 찾아야 한다는 거죠. 그래서 의도적으로 다가갑니다. 자연이라든가 앞서가는 사람들의 뛰어난 생각들을 말이에요. 아이디어의 원천은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 그런 데서 하나둘씩 찾으면 되지 않나 싶어요.

또, 이렇게 작곡을 하다 보니 작곡을 어디서나 할 수 있는 습관이 몸에 배었어요. 좋은 피아노가 놓여있고 조용하고, 그런 환경일 필요가 없는 거죠. 좀 더 자세히 얘기하자면, 나는 요즘 관심을 두고 있는 게 역사적 문제에요. 종교에 대한 것도 좋아하죠.

크리스천인데 도교, 불교 같은 걸 배척하지는 않고 오히려 철학적으로 좋아하죠. 동양 사상에 대해 작곡과에 진학하기 전부터 좋아했고요. 그래서인지 언제부터인가 작품의 제목이 단군이라든가 백두대간, 한강, 고구려 이런 식으로 나오기도 하네요.


Q. 좋은 예술가가 되려면 무엇이든지 생각하게끔 하는 것들이 필요하다는 말씀이군요. 작곡을 한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일 거 같아요. 작곡을 포기하는 학생도 많겠네요?

매년 열 명 안팎의 작곡 전공생이 들어오는데 모두 작곡가의 길을 걷지는 않아요. 어떤 해는 작곡가로 남아있는 졸업생이 없기도 하죠. 학교에서는 음악적 상상력, 사고력을 가르쳐 줄 수는 없고 표현에 대한 것만 교육합니다.

좋은 작품을 쓰기 위해서는 좋은 음악적 아이디어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을 찾기 힘들어지면 작곡하기 힘들어져요. 그래서 펜을 놓고 다른 일을 하게 되겠죠. 내 생각에 열 명 중에서 두 세 명만 작곡가가 돼도 좋지 않나 싶습니다.

꼭 작곡가가 되지 않아도, 작곡과 출신이 다양한 분야로 진출해서 능력을 발휘하는 건 참 좋다고 생각해요. 대중음악 같은 것도 원래는 터부시했는데 지금은 하고 싶으면 가서 하라고 이야기하죠. 대신 잘 하라고 하고요. (웃음) 어쨌든 작곡이라는 것은 의욕만 가지고 하는 것도 아니고, 아이디어도 사고를 넓게 해야 찾을 수 있는 거죠.


Q.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작곡과 입시를 치를 학생들에게 해주실 말씀이 있다면요?

화성법이나 청음 같은 걸 등한시하라는 건 아니지만, 그 외에 작곡을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놓치지 말았으면 좋겠네요. 그것을 많이 한 사람들은 그게 진학한 이후에 많이 도움이 될 겁니다. 직접적으로 말하면 좋은 음악 작품을 많이 듣고, 음악이 아니더라도 어떤 계기에 의해 생각의 폭을 넓히고 깊이를 깊게 하는 걸 많이 해야죠. 그러면 훌륭한 작곡가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출처=서울대 아로리 ‘2018 전공 돋보기’

 

*에듀진 기사 원문: http://www.eduj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4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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