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독교와 결합한 전통노래, 캐럴 
- 캐럴, 청교도혁명 이후 ‘금지곡’되다!   
- ‘캐럴 금지령’에도 몰래 캐럴 부른 사람들 
- ‘순수한 즐거움’만을 나눌 수 있는 캐럴  
- “캐럴 소리에 거짓말처럼 전쟁이 멈췄다”  

▲[나침반 36.5도] '한눈에 쏙 인문학'에 실린 콘텐츠 이미지
▲[나침반 36.5도] '한눈에 쏙 인문학'에 실린 콘텐츠 이미지

12월 크리스마스를 맞아 거리에 울려 퍼지는 캐럴. 왜인지 듣기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즐거워진다. 그런데 이러한 캐럴이 한때는 ‘금지곡’으로 지정돼 함부로 부를 수 없던 적이 있다. 무슨 이유에서였을까?    

기독교와 결합한 전통노래, 캐럴 
캐럴은 원래 종교적 행사인 크리스마스만을 기념하기 위한 노래가 아니었다. 민속에서 전승되는 전통적 선율의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단순한 노래들로 축제를 즐기거나, 민속춤을 출 때 쓰는 음악을 부르던 말이었다. 어원은 둥글게 원을 그리며 추는 춤의 일종인 프랑스어 ‘carole’에서 파생됐다. 

캐럴은 5세기부터 교회 예배나 의식 등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악보에 음정을 기록하는 기보법이 7세기 즈음에야 등장하기 때문에 초기에는 입에서 입을 통해 전해져 오는 노래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12세기 이후부터 이 음악들이 기적적인 일이나 성사를 묘사하는 연극 등에 쓰이면서 종교적 캐럴의 기본이 갖춰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1521년 영국에서 첫 캐럴집이 발행되면서 캐럴은 본격적으로 종교 가곡의 한 형식으로 발전하기 시작한다. 이후 16세기 유럽의 종교개혁을 거쳐, 인쇄술의 발달로 성경이 민간까지 전해지면서 캐럴은 종교적 목적을 가지고 더 많이 만들어졌다. 

종교개혁의 아버지라고 알려진 신학자 마르틴 루터(1483~1546)는 독일어 성가를 보급시키면서 캐럴을 대중화 시킨 대표적 인물이다. 영국의 왕 헨리 8세(1491~1547)도 ‘호랑가시나무는 푸르게 자란다(Green Groweth the Holly)’라는 캐럴을 직접 작곡했을 정도로 캐럴은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캐럴은 영국을 중심으로 유럽 전역에서 널리 불리면서 기독교 문화를 가진 유럽인들의 일체감 형성에 많은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캐럴, 청교도혁명 이후 ‘금지곡’되다!   
중세 시대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크리스마스를 즐기는 모습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담쟁이나 겨우살이, 호랑가시나무 등으로 집안을 장식하고 가족과 친구들이 모여 칠면조 고기, 민스파이를 먹고 재미있는 공연을 보았다. 이런 분위기에 캐럴이 빠지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던 캐럴의 전성기는 청교도혁명(1642~1649)으로 인해 사라질 위기에 처하게 된다. 청교도혁명을 이끈 올리버 크롬웰(OliverCromwell)과 청교도인들은 “크리스마스 축제는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나온 대중적이고 낭비적인 전통”이라며 혐오하고 죄악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들은 예수의 탄생을 즐겁게 기념하는 건 ‘가톨릭스러운’일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영국 의회는 1644년 사실상 크리스마스 축제를 금지했고, 1647년 6월에는 12월 25일을 크리스마스 축제를 폐지하는 조례를 통과시켜, 크리스마스는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며 속죄하는 엄격한 날’이 된다.     

의회는 크리스마스에 사람들에게 금식을 하게 했는데, 이런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흥겨운 캐럴을 부르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캐럴은 자유롭게 부를 수 없는 금지곡이 돼 버렸다.    

청교도와 청교도혁명 
청교도(淸敎徒)란? 개신교의 교파. 칼뱅에 의해 발흥된 칼뱅주의 개신교가 영국으로 건너오면서 영국 국교회의 전통주의와 대립하게 되는데, 이때 우리는 ‘깨끗하다’라는 의미로 라틴어 Puritas에서 유래해 기존의 전통주의를 정화(purify)한다는 의미에서 복음주의자들이 퓨리턴(Puritan)이라고 자칭한 것에서 유래한다. 

청교도혁명이란? 1642년부터 1649년까지 영국에서 왕당파와 의회파 사이에 벌어진 내전. 크롬웰이 인솔한 의회파(의회를 지지하는 세력)가 왕당파(왕을 지지하는 세력)를 물리치고 공화 정치를 시행하면서 혁명이 절정에 이르렀다. 그러나 크롬웰이 1658년 죽자 1660년 왕정으로 되돌아갔다.  

‘캐럴 금지령’에도 몰래 캐럴 부른 사람들 
크리스마스 축제가 금지되고 캐럴을 부를 수 없는 상황이 됐지만 영국 사람들은 이에 굴하지 않았다. 그들은 크리스마스 축제 금지가 시행된 지 거의 20년이 지났어도 비밀리에 종교 조직을 만들어 12월 25일에 캐럴을 부르며 예배를 드리고 기쁨을 나누었다.   

1656년 12월 25일 영국의 한 의원은 사람들이 몰래 하던 크리스마스 축제 준비를 “바보 같은 날을 위한 준비”라고 비꼬며, 크리스마스를 즐기는 이웃의 소음 때문에 전날 밤 잠을 거의 자지 못한 것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기도 했다.  

금지된 크리스마스 축제는 1660년 영국 군주제가 부활하면서 함께 재개됐다. 그제야 영국 사람들은 매우 열광적으로 크리스마스를 기념할 수 있게 됐다. 캐럴들도 다시 인기를 얻기 시작했으며 새로 재구성되기도 했다.   

이후 18세기부터 빅토리아 시대까지가 캐럴의 황금기로, 이당시 작곡된 곡으로는 ‘참 반가운 성도여(O Come All Ye Faithful)’, ‘유쾌한 신사 여러분의 명복을 비옵니다(God Rest Ye, Merry Gentlemen)’등의 유명한 곡이 쏟아져 나오게 된다.   

‘순수한 즐거움’만을 나눌 수 있는 캐럴  
정치·종교적 탄압에도 캐럴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캐럴이 주는 ‘감동’덕분이다. 크리스마스에 모여 함께 캐럴을 부르는 일은 문화나 언어, 정치적 배경 등을 다 떠나서 타인과 ‘순수한 즐거움’만을 나눌 수 있다. 음악적 가치와 아름다움을 유지하면서 클래식 음악을 일반인에게 어렵지 않게 전파해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던 것이다.  

영국 캠브리지 클레어 대학의 음악교수 그레이엄 로스는 “크리스마스 캐럴은 사람들을 한데 모으는 힘이 있다. 사람들은 캐럴이 들려오면 하던 것을 멈추고 사람들이 함께 시간을 보내고 이 날을 축하한다. 잘 알려진 캐럴을 함께 부르는 것은 문화와 언어와 정치적 배경을 뛰어넘어 하나가 될 수 있게 한다.”고 했다. 
재개(再開) | 어떤 활동이나 회의 따위를 한동안 중단했다가 다시 시작함  

“캐럴 소리에 거짓말처럼 전쟁이 멈췄다”  
실제로 크리스마스 캐럴의 선한 영향력을 보여준 일화가 있다. 바로 ‘크리스마스 정전(Christmas Truce)’사건이다. 크리스마스 정전은 1914년 12월 25일, 1차 세계대전의 최전선 중 하나인 벨기에 이프르(Ypres) 지역에서 대치하던 독일군과 영국군이 함께 크리스마스 캐럴을 부르며 당일 교전하지 않기로 약속하고 양군 시신을 서로 수습해준 사건이다.  

당시 유럽은 대륙 전체가 철저한 기독교 문화권 안에 있었기에 독일과 영국인에게 또한 크리스마스는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때문에 참호에서 대치중이던 양군 병사들은 캐럴 ‘고요한 밤 거룩한 밤(Silent Night, Holy Night)’을 부르며 크리스마스 행사를 조촐하게 치르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 양군 병사들은 서로의 진영에서 언어는 다르지만 캐럴을 부르고 있다는 걸 알아채게 된다. 

그러자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일분일초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겨누고 있던 영국과 독일의 수많은 병사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참호 위로 올라와 서로 악수하고 포옹하며 담소를 나눈 것이다. 그들은 모여서 축구나 카드놀이를 했고, 서로 계급장, 군모, 식량 등 작은 선물을 교환하기도 했다.   

소부대 지휘관들도 이런 분위기에 동참해 상대방 지휘관과 만나 신사 조약을 맺고 당일에는 교전을 하지 않았으며, 참호 사이에 있던 양군 시신들을 수습할 수 있었다.  

20세기를 넘어 21세기에 이르기까지 캐럴의 인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대중가수들이 크리스마스 시즌을 겨냥해 캐럴을 발표하면서 종교적 색채가 옅어진 캐럴은, 이제 전 세계인이 즐길 수 있는 모두의 노래가 됐다.  

정전(停戰) | 교전 중에 있는 양방이 합의에 따라 일시적으로 전투를 중단하는 일 
참호 | 야전에서 몸을 숨기면서 적과 싸우기 위하여 방어선을 따라 판 구덩이  
 

 *에듀진 기사 URL: http://www.eduj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77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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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는 '나침반 36.5도' [한눈에 쏙 인문학]에 실린 내용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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