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과 ‘민족’의 개념  
- 단일민족, 편견과 차별로 작동하기도 
- ‘한국인’은 순수한 단일 혈통일까? 
- ‘K-컬처’ 공유하는 우리는 같은 민족! 

▲[나침반 36.5도] '인문 다이제스트'에 실린 콘텐츠 이미지     
▲[나침반 36.5도] '인문 다이제스트'에 실린 콘텐츠 이미지     

지난 7월 통계청이 발표한 ‘2020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2020년 다문화 가구는 37만 가구로 2019년에 비해 1만 4,000가구 증가했고, 다문화 가구원은 109만 명으로 2019년에 비해 3만 명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여전히 국제결혼 가족이나 이주민을 차별하거나 그들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이 시선의 뿌리를 따라가 보면 우리나라의 단일민족 신화와 그로 인한 차별이 얽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국민’과 ‘민족’의 개념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일까 한‘민족’일까? 이 질문에 많은 사람이 둘 다에 모두 해당한다고 답하겠지만, 사실 그렇게 쉽게 답할 질문은 아니다. 왜냐하면 여기서 사용하는 국민과 민족은 명확하게 정리하기가 어려운 개념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국민이나 민족에 대응하는 영어는 모두 ‘nation’이다. 그런데 영어에서 nation은 대체로 ‘국민’ 혹은 ‘국가’를 표현할 때 많이 사용한다. 국민은 ‘주권, 영토, 국민’의 국가의 3요소 중 하나이며, 해당 국가의 국적(시민권)을 가진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대한민국 국민은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사람이다.  

영어 nation과 같은 표현의 독일어나 프랑스어에서는 국민만이 아니라 ‘민족’이라는 의미도 들어 있다. 그런데 영어로 민족은 ‘folk’나 ‘ethnic group’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들 단어는 특정 집단의 문화나 예술을 말할 때에도 사용한다. 이렇게 보면 ‘민족’의 영어식 표현에는 문화적인 측면이 반영돼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민족을 ‘혈통에 의해 형성되는 집단’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치학이나 인류학에서는 ‘오랜 기간 특정 지역에서 함께 살아가면서 언어, 풍습, 문화, 전통 등에서 공통성을 가진 집단’을 민족이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점에서 민족은 구분 경계가 명료하지 않은 상상의 공동체이다. 민족이 상상의 공동체라는 것은 유대인의 경우를 보면 더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유대인은 이스라엘 혈통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다른 지역에 흩어져 살더라도 유대교를 믿고 그 교리에 따른 삶을 사는 사람들을 말한다. 이렇듯 국민은 국적 여부에 따라 명시적으로 구분할 수 있는 반면, 민족을 구분하는 경계는 조금 모호하다.  

단일민족, 편견과 차별로 작동하기도  
사실 국민과 민족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국민’은 근대 국가가 형성된 이후에 나온 개념이다. 시민혁명 이후 유럽의 근대 국가에서는 공동체의 결합을 위해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하게 된다. 바로 이 시기에 국민 개념이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이 과정에서 유럽 국가 대부분이 동일한 역사와 전통을 공유한 민족을 중심으로 형성됐기에 민족국가라는 표현을 국민국가와 함께 사용한다. 반면 미국은 여러 민족으로 구성된 국가이기 때문에 국민의 개념과 민족의 개념을 구분하는 경향이 있다.  

대한민국의 경우 임시정부 수립(1919) 이후 대한민국에 대해 국민국가보다 민족 국가라는 표현을 더 많이 적용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단일민족 국가’라는 표현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는 대한민국 국민 대다수가 한반도에서 오랜 기간 동일한 문화권을 형성해 왔다는 점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민족이라는 표현은 혈통을 강조하는 개념이 아니다. 오랜 기간 한반도에서 한국어와 한글이라는 동일한 언어를 바탕으로 유사한 의식주 생활을 공유하면서 살아왔기에 한민족(韓民族)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언제부터 한민족이 단일민족임을 강조했는지에 대한 명확한 답을 찾기는 어렵다. 다만 한민족이 단일민족이라는 논의는 단군신화와 관련이 있다. 민족의 시조를 단군으로 보기 시작한 것은 고려 시대의 역사서 [삼국사기]이다. 단군이라는 단일 시조를 바탕으로 해 단일한 민족임을 강조하는 인식은 외세의 침략 등을 경험하면서, 특히 일제강점기에 일제에 대한 대응 방안으로 활용됐다.  

그리고 1945년 독립 이후 북한과 남한 각각의 정부 수립으로 인한 분열을 막기 위한 방안으로 단일민족이라는 주장은 지속적으로 강조된다. 1948년 남한에서만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 1949년에 10월 3일을 개전철로 정하면서 단군이 한민족의 혈통적 뿌리라는 점을 국가에서 공식화했다.  

한민족의 시조인 단군이 하늘을 열고(開天) 신단수에 내려와서 홍익인간을 이념으로 제시한 시점을 환산한 날인 10월 3일은 원래 단군을 신앙적으로 모시던 대종교의 기념일이었다. 이 날을 개천절로 칭해 국경일로 기념하고 학교의 공식 교육에서 단군신화를 배우는 것은 단일민족 신화를 단일민족 공통의 역사로 인정하는 중요한 정책이었던 셈이다.  

역사적 의미로만 보면 단군을 시조로 삼은 한반도의 오랜 역사는 그 자체로 자랑스러운 것이다. 단군신화를 바탕으로 한 혈통적 개념이 담긴 단일민족 신화는 외세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한 민족국가로서의 좋은 전략이었고, 광복 이후에는 남과 북이라는 분열을 막기 위한 방안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남북통일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전략으로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한반도에 사는 모든 사람이 단군을 조상으로 한 단일민족이라는 것은 한 민족을 ‘동일한 문화를 공유하는 집단’이 아니라 ‘한 조상을 뿌리에 둔 집단’이라고 오해하게 한다. 비록 단일민족 신화가 한국의 근현대사에 미친 긍정적인 역사적 의의가 있다고 할지라도, 현재 한국에서 발생하는 편견과 차별의 원인으로 작동한다면 문제의식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한국인’은 순수한 단일 혈통일까? 
혈통적으로 단일민족이라는 것은 이민족과의 결혼으로 인한 후손 없이 순수한 혈통을 이어 왔다는 의미가 된다. 그런데 인류 전체의 역사를 고려했을 때 순수 혈통으로 민족 혹은 국가가 유지돼 왔다고 믿는 역사학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2017년 한국인의 게놈을 분석한 울산과학기술원(UNIST) 연구팀에 따르면, 한국인은 수천 년 전 아시아 남방계와 북방계 인류가 섞여서 탄생했다고 한다. 또한 단군신화 이후 한반도 역사 기록이나 유물 등을 보면, 이 땅에 수많은 이민족이 살았고 그들과의 혼인도 있었던 것을 파악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아랍인으로 추정되는 신하 석상이 있는 신라 원성왕의 괘릉 유물, 인도의 아유타 공주와 결혼한 것으로 알려진 가락국(금관가야) 김수로왕, 고려 시대 몽골인과의 국제결혼, 조선 시대의 네덜란드인 박연(Jan Jansz Weltevree) 등. 또한 외세 침략 시기에 한반도로 들어온 이주민 중에 이곳에 남아서 결혼하고 후손을 낳은 경우도 많다.   

이렇게 보면 한반도에서 살아온 한민족의 역사는 혈통적으로 한 뿌리라기보다는 다양한 혈통이 결합해 기존 문화에 새로운 문화를 더하면서 문화를 발전 및 공유하며 살아왔다고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이고 과학적이다. 즉, 한민족은 단군이라는 시조를 바탕으로 하는 혈통적 단일민족보다 동일한 언어와 비슷한 문화 양식을 공유하는 측면의 단일민족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혈통적으로 민족국가라면 한민족은 단군이라는 부계(父系) 혈통을 바탕으로 하게 된다. 또한 혈통적으로 ‘단일’이라는 점을 강조하면 다른 민족과 피가 섞이지 않은 순수 혈통이어야 한다. 그래서 다른 민족과의 결혼이나 한국 여성이 이민족과 결혼해 낳은 자녀를 한민족으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개천절을 공식 국경일로 정하면서 단일 혈통의 반만 년 역사를 내세우던 시기에, 이에 걸맞지 않는 아이들이 태어났다. 바로 한국에 주둔했던 미국 군인 남성과 한국인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이다. 사람들은 이들에게 ‘순혈(순수한 혈통)’에 대응하는 ‘혼혈’이라는 차별적 이름을 붙이게 된다.    

1950~1960년대 당시에 어머니가 한국인임에도 아버지가 외국인이면 그들의 자녀를 ‘혼혈아’라고 불렀을 뿐만 아니라, 한국 국적도 부여하지 않았다. 아버지 나라인 미국 국적도, 어머니 나라인 한국 국적도 못 가진 혼혈 아동이 생기자, 정부가 나서서 이들을 미국으로 입양 보내는 정책을 실시했다. 더구나 혼혈 아동은 성장한 후에도 외국 취업이나 이민을 갈 수 있도록 입대를 면제해 주고 국가가 직업 훈련까지 지원했다.  

혼혈에 대한 차별이 과거에 비해 개선됐다고 하지만, 유럽계 혼혈 아동과 달리 아프리카계 혼혈 아동에 대한 차별은 여전한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1970년대 이후에도 이런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한국인 어머니와 스페인계 미국인 아버지를 둔 한 혼혈 여자 연예인은 당시 어머니의 자녀로 합법적인 주민등록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외할아버지의 자녀로 등록됐고, 이로 인해 법적으로 어머니와 자매가 됐다. 그 후 30여년이 지난 2005년이 돼서야 호주제가 사라지면서 한국인 여성이 외국인 남성과 결혼해 태어난 자녀도 어머니 나라인 한국 국적을 갖는 것이 가능해졌다.  

그리고 1990년대 이후 국제결혼이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혈통적 단일민족이라는 신화의 영향력도 약화되고 있다. 또한 국제결혼으로 태어난 자녀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변하면서 ‘혼혈’이라는 표현도 사라지고 있다.   

사실 혼혈이라는 차별적 명칭이 사라진 것은 UN에서 “이 명칭이 매우 차별적이어서 이 명칭으로 불리는 사람들의인권을 침해하고 있다”라는 문제 제기를 한 덕이지만 말이다. 이에 혼혈이라는 말은 점차 사라지고 대신 ‘다문화 가정 자녀’라는 명칭이 자리 잡게 됐다.  

그러나 국제결혼 가정을 일컫는 ‘다문화’라는 단어 역시 한국에서만 쓰이는 단어이며, ‘다양한 문화를 포용한다’가 아닌 ‘우리와 문화가 다르다’에 초점을 맞춘 차별적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K-컬처’ 공유하는 우리는 같은 민족!  
문화의 공유성 면에서 민족을 이해하면 한민족의 문화는 어느 시점의 문화를 말하는 걸까? 일반적으로 문화의 속성을 이야기할 때, 변동성과 축적성을 강조한다. 문화는 일정하게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이 더해지고 변하는 것이다. 이 점을 고려하면 한민족의 고유한 문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삼국시대의 문화, 고려시대의 문화, 조선 전기의 문화, 조선 후기의 문화, 1960년대의 문화…. 이 모든 문화가 전통 문화로서 한민족의 문화이면서, 이것을 이어받은 지금의 문화도 한민족의 문화이다. 과거 한반도의 어느 시기의 문화만이 한민족의 문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여전히 ‘민족’의 판단에서 문화의 공유가 아니라 혈통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한민족의 혈통과 관련한 객관적 자료를 같이 살펴보자.   

UNIST 연구팀은 “유전자의 흐름을 살펴보면 한국인은 아시아 북방계보다 아시아 남방계 특징이 더 많이 남아 있다. 일만 년 전에 아시아 남방계가 이동하면서 한반도에서 아시아 북방계를 만나서 현재의 한국인 유전자가 형성돼 한국인 유전자에 남방계 특징이 더 많이 남았을 것이다. 아마도 전체 동아시아인을 단일민족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동일성이 높다”고 했다.  

한민족, 한국인으로써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타민족과 타인종,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들을 배려하고 포용할 수 있을 때 더 건강하고 굳건한 대한민국 사회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제공 | 해냄출판사


*에듀진 기사 URL: http://www.eduj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7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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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는 진로 진학 매거진 '나침반 36.5도' [인문 다이제스트]에 실린 내용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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