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쓴 시간과 돈이 너무 아까워!”
-판단을 흐리게 하는 매몰비용
-차마 매몰비용을 잊지 못하는 심리

“내가 쓴 시간과 돈이 너무 아까워!”  
이번에는 기필코 성적을 올려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겠노라 굳센 다짐을 하고 시험 기간이 시작되기 일주일 전부터 한국사 공부를 시작했다. 그런데 한국사 공부를 한지 사흘째 되던 날, 한국사 선생님의 사정(?)으로 시험을 보지 않는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됐다. 

마음을 가다듬고 내일부터 어떤 과목을 공부해야 좋을지 생각했다. 한국사 공부를 하던 중이었고 하루만 더 하면 근대사까지 마무리할 수 있으니 내일도 한국사 공부를 계속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학생은 없을 것이다. 시험을 보는 다른 과목의 공부를 시작하는 게 합리적이다.

시험을 치르지 않는 한국사 공부를 계속하기로 하는 선택은 당장 코앞에 닥친 시험 점수를 높이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흘 동안 한국사 공부를 하느라 내가 투자한 시간과 흘린 땀은 어차피 돌이킬 수 없는, 회복이 불가능한 매몰비용(sunk cost)이다. 깊은 물속에 잠겨 밑바닥에 파묻혀 버렸으므로 포기하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들인 시간과 흘린 땀이 매우 아깝기는 하지만 과감하게 떨쳐버리고 다른 과목을 새로 공부하기 시작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데에 반론을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러한 논리는 매몰비용이 시간이나 노력이 아닌 돈일 경우에도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들은 매몰비용이 돈일 경우에는 하던 일을 계속하기로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지금까지 투자한 돈이 아깝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돈이든 시간이든 다를 것은 없다. 매몰비용은 잊어야 한다.

어떤 결정을 내리는 시점에서 우리가 고려해야 할 비용과 편익은 앞으로 ‘추가로 지불할 비용’과 ‘추가로 얻을 편익’뿐이다. 매몰비용은 과거에 이미 지출했고 돌이킬 수 없는 비용이므로, 그것이 돈이든 시간이든 땀이든 잊고 포기하는 것이 경제적 사고방식이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른다. 과거를 떨쳐버리고 미래를 위해 어떤 선택이 합리적인지만 따져야 한다. 소설이나 드라마를 보면 등장인물이 “포기하기에는(되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왔어”라며 독백을 하는 장면이 종종 나온다.

매우 의미심장하고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실은 지극히 비경제적인 말이다. 경제적 사고방식을 가진 우리의 주인공이라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더 멀리 가기 전에 멈춰야지!”

판단을 흐리게 하는 매몰비용  
“나는 절대 매몰비용 때문에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지 않아!”라고 자신하는가? 다음의 몇 가지 사례 가운데 하나라도 공감한다면 매몰비용의 오류에 빠지는 것이다.

사례1) 식당에서 떡볶이를 주문했다. 절반 정도 먹었는데 생각보다 맛이 없어서 더 이상 먹기가 힘들다. 게다가 너무 매워서 속도 쓰라려온다. 하지만 남기자니 비싼 돈을 내고 주문한 건데 싶어 아깝다. “음식을 남기면 쓰레기를 만드는 거야”라고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며 끝까지 그릇을 비운다.

사례2) 수십만 원의 돈을 내고 수학 학원에 등록했다. 총 20회 특강 가운데 5회를 수강했는데 도저히 따라가지 못할 수준의 내용을 가르치는 게 아닌가. 더 이상수업을 듣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지만 수강료가 아까워 계속 학원을 다닌다.

사례3) 텔레비전으로 영화를 보다가 재미가 없으면 주저하지 않고 꺼버린 후 낮잠을 자거나 다른 일을 한다. 그러나 표를 구입해 들어간 영화관에서는 영화가 재미없어도 끝까지 버티고 앉아 영화를 보는 이율배반적인 행동을 한다

기업가, 정치인, 정부 역시 매몰비용 때문에 판단이 흐려질 때가 있다. 미국은 2003년에 이라크와 전쟁을 시작했다. 전쟁이 예상보다 길어지자 일부 국민들이 그만 군대를 철수하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부시 대통령은 “이미 2,000명에 가까운 미군이 이라크 전쟁에서 희생되었다. 그들에게 빚을 지고 있으므로 전쟁을 끝까지 수행해야 한다”라고 답했다.

이라크 전쟁을 계속해야 하는 것이 테러를 막고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면 몰라도 지금까지 희생된 군인의 수라는 매몰비용 때문이라면 이는 명백히 비합리적인 판단이다.

차마 매몰비용을 잊지 못하는 심리  
왜 사람들은 매몰비용에 연연하게 될까? 계속해봤자 승산이 없고 더 많은 비용과 희생을 치러야 하는 것이 불 보듯 뻔한데도 중단하지 못하는 행동은 경제학자들에게 하나의 수수께끼였다. 이 수수께끼에 대한 해답으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 싫어하는 심리 때문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하던 일을 중단하면 자신이 애초에 잘못된 결정을 내렸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니 그 일을 계속하려는 집착을 보인다는 것이다.

최근 이 가설을 확인하는 실험이 있었다. 연구진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인공지능을 상대로 컴퓨터 게임을 하게 했다. 인공지능 쪽이 무조건 이기게 설정되어 있어서 게임을 하면 할수록 사람들의 손해가 커질 수밖에 없었다. 즉, 승산이 없는 게임이므로 빨리 포기하는 것이 합리적인 결정이었다.

연구진은 실험 참가자들을 세 집단으로 임의로 분류한 후 각각 ‘직장에서 지위가 추락할 수 있는 상황’, ‘지위가 상승할 수 있는 상황’, ‘지위에 변동이 없는 상황’에 놓인 것으로 설정했다.

실험 결과는 지위가 추락할 수 있는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승산 없는 게임을 더 오랫동안 지속했고 더 큰 손실을 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위와 체면을 상실할까 봐 두려워하는 사람일수록 매몰비용에 의한 의사결정의 오류에 빠질 가능성이 높음을 의미한다.

사람들이 매몰비용에 연연하는 성향이 있음을 안다면 오히려 이러한 심리를 이용할 수도 있다. 전라남도 화순군은 상수원 보호 구역으로 지정되어 30년 동안 일반인의 출입을 제한해 온 화순적벽을 2014년에 시범적으로 개방했다. 절경을 보려는 관광객들의 성화로 10분 만에 인터넷 예약이 마감될 정도로 인기였다.

하지만 관람일이 되자 예약자 가운데 22퍼센트가 오지 않았다. 화순적벽을 보고 싶어 했지만 예약이 마감되어 신청하지 못한 많은 사람들의 관람 기회가 허공으로 사라진 것이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고민 끝에 화순군은 인터넷 예약 때 관람비 5천 원을 미리 결제하도록 제도를 변경했다. 그러자 예약 당일에 나타나지 않은 관광객이 전체 예약자의 5퍼센트로 크게 감소했다.

예약금 5천 원은 매몰비용에 해당한다. 관람 당일에 더 중요한 일이 생기면 예약금을 포기하고 그 일을 하는 편이 합리적이다. 그러나 5천원이라는 매몰비용이 아까워서 만사 제쳐놓고 화순적벽을 관람하러 오는 사람들이 늘어났음을 알 수 있다. 화순군은 매몰비용을 포기하지 못 하는 사람들의 성향을 적절히 이용해 예약 부도를 줄이는 데 성공했다.

한 가지 예를 더 들어보자. 바로 인형 뽑기 게임이다. 예전에 극장에서 영화 관람 시간을 기다리다가 근처에 있는 인형 뽑기 매장에 들어간 적이 있다. 인형이 잡힐 듯 말 듯 사람들의 애간장을 태우자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졌다. 벌써 꽤 많은 돈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어떤 사람은 성공할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이는 인형만 노리다가 몇 번이나 실패하고도 오기가 발동했는지 동전을 추가로 교환해 와서 계속 매달렸다. 그러고 나서도 상당한 돈을 더 잃은 후에야 비로소 포기하고 자리를 떴다.

매몰비용을 잊고 보다 일찍 과감하게 포기했더라면 그토록 많은 돈을 잃지는 않았을 텐데. 인형 뽑기는 매몰비용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해서 돈을 버는 대표적인 방법이다.

*매몰비용 : 이미 지출해서 회수할 수 없는 성격의 비용.
*화순적벽 : 무등산에서 시작하는 영신천이 흐르면서 자연적으로 만들어낸 수려한 절벽이다. 1519년 기묘사화 후 동복에 유배 중이던 신재 최산두가 이곳의 절경을 보고 중국의 적벽에 버금간다 하여 이름했다고 전해진다. 1985년 동복댐 준공으로 절벽의 일부가 수몰되었다.


*자료 제공=해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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