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흑백분리 정책의 문제
-나는 왜 가까운 학교에 갈 수 없어요?
-분리되었으나 평등하다?
-여전히 끝나지 않은 길고 힘든 싸움

나는 왜 가까운 학교에 갈 수 없어요?  
“아빠, 오늘도 학교에 가려면 한 시간도 넘게 걸려요. 너무 힘들어요.”  
1951년의 어느 화창한 봄날, 캔자스주 토피카 시에 살고 있는 초등학교 3학년 린다는 오늘도 어김없이 한숨을 내쉬며 아빠와 함께 현관을 나섰다.  

“아빠, 이 앞에 있는 섬너 초등학교에 다니면 5블록만 걸어가면 되는데 왜 21블록이나 떨어져 있는 먼로 초등학교에 가야 하는 거죠? 한참 걸어가서 또 버스까지 타고 가려면 너무 힘들어요.”  
“얘야, 섬너는 백인 학교잖니. 우린 흑인이니까 흑인 학교인 먼로에 가야 하는 거 알면서 또 왜 이러니.”  
“왜 그래야 해요? 흑인과 함께 공부하면 백인들에게 무슨 병균이라도 옮길까봐 그러나요? 내년이면 셰릴도 초등학교에 입학할 텐데 그럼 어린 셰릴도 이렇게 걸어다녀야 해요?”  

동생 셰릴의 이야기가 나오자 아빠도 말문이 막혔다. 린다의 동생 셰릴도 이렇게 힘든 등교를 반복해야 한다면 더 이상 이대로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벌써 수백 년에 걸쳐 반복 되어온 차별이지만 이제 다음 세대의 아이들에게는 이런 고통을 넘겨주면 안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용접공인 올리버 브라운(Oliver Brown)은 연장 가방의 손잡이를 힘껏 움켜쥐었다. 그는 퇴근길에 전미유색인지위향상협회(NAACP) 사무실에 들러 도움을 요청할 생각이었다.

분리되었으나 평등하다?  
린다의 고통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이해하려면 시계를 1951년에서 59년 전인 1892년으로 돌려야 한다. 1865년에 끝난 남북전쟁의 가장 큰 쟁점 중 하나는 흑인노예의 해방 문제였다. 결국 전쟁에서 승리한 북부의 주장대로 전쟁 직후 의회를 통과한 수정헌법 제13조로 노예 해방이 공식화됐다.

제14조에서는 흑인을 포함한 모든 시민들이 법 앞에 동등한 보호를 받을 권리를 명시했으며 제15조에서는 동등한 투표권까지 보장했다. 이로써 흑인들은 인간이자 시민으로서 완전한 권리를 보장받게 되는 듯했다.

하지만 헌법 조항이 만들어진 이후에도 KKK단을 비롯한 백인우월주의자들의 테러가 한동안 기승을 부렸고, 과거처럼 광기 어린 폭력까지는 아니더라도 흑인을 차별하는 사회제도는 여전히 곳곳에 남아 있었다.

특히 루이지애나주에는 기차에서 백인이 타는 칸과 흑인이 타는 칸을 분리하는 ‘차량 분리 법령’이라는 악법이 있었다. 1892년 호머 플레시(Homer Plessy)라는 흑인은 백인 칸에 탔다가 체포되어 재판을 받게 됐다. 플레시는 흑인 칸을 따로 분리한 것이 법 앞에 동등한 시민권을 보장하도록 한 수정헌법 제14조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플레시 대 퍼거슨 사건’으로 불린 이 재판에서 연방대법원은 8대 1의 압도적 찬성으로 흑백분리가 합헌이라고 판결했다. 흑인이 사회적으로 백인보다 열등할 뿐 아니라, 흑인과 백인을 분리했을 뿐 흑인 차량이 더 나쁜 것이 아니라면 평등하게 대우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논리였다.

‘분리되었으나 평등하다(separate but equal)’라는 유명한 표현을 만든 이 판결로 인해 이후 미국 내에서는 기차뿐 아니라 학교, 극장, 화장실, 물을 마시는 수도꼭지까지 백인 전용, 흑인 전용으로 구분하는 것이 일반화됐다. 린다가 섬너 초등학교에 갈 수 없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가까운 섬너 초등학교는 백인 전용 학교였고, 멀리 있는 먼로 초등학교는 흑인 전용 학교였다.

아빠인 올리버 브라운은 전미유색인지위향상협회의 도움을 받아 같은 처지의 학부모 12명과 함께 토피카 시 교육위원회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역사적인 ‘브라운 대 토피카 교육위원회’ 사건의 막이 오른 것이다.

여전히 끝나지 않은 길고 힘든 싸움  
하지만 예상대로 쉽지 않은 싸움이었다. 캔자스주 지방법원은 앞선 플레시 사건의 판결을 근거로 교육위원회의 손을 들어주었다. 통학 거리가 좀 멀어서 불편할 수는 있으나 섬너 초등학교와 먼로 초등학교의 시설, 교육 과정, 교사 수준 등이 비슷하기 때문에 ‘분리되었으나 평등하다’라고 볼 수 있어 차별이 아니라는 것이다.

올리버 브라운과 학부모들은 여기에 굴하지 않고 주 고등법원, 주 대법원까지 항소를 거듭했으나 결론은 바뀌지 않았다. 사건은 마침내 소송이 시작된 지 3년이나 지난 1954년 연방대법원까지 올라갔다. 당시 연방대법원은 얼 워런(Earl Warren) 대법원장을 필두로 많은 대법관들이 인권을 확장하기 위한 진보적인 판결을 쏟아내기 시작하고 있었다.

이 사건에서도 대법관들은 흑백분리 정책이 지닌 문제점들을 깊이 인식하고 있었고 마침내 만장일치로 위헌 판결을 내렸다. 판결문에서는 ‘분리되었으나 평등하다’라는 판결이 지닌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다음은 『미국을 발칵 뒤집은 판결 31』이라는 책에 나오는 판결문의 일부이다.

학교에서 순전히 인종 때문에 한 그룹의 어린이들을 비슷한 연령대와 자격 조건을 갖춘 다른 어린이들로부터 격리하는 것은 그들의 공동체에서의 지위와 관련해 열등감을 조장하여 도저히 회복할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줄 수 있다. (……)

이는 인종 간 격리 정책이 보통 흑인들이 열등한 족속이라고 이해되기 때문이다. 열등감은 어린이의 학구열을 감소시킨다. 따라서 법률에 따른 격리는 흑인 어린이들의 교육적, 정신적 발달을 늦추고 인종적으로 융합된 학교 제도에서 받을 수 있는 혜택을 박탈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

우리는 공교육에서 ‘격리하되 동등하게’라는 정책은 설 자리가 없다고 결론짓는다. 격리된 교육 시설은 근본적으로 동등할 수가 없다.

이 재판을 ‘길고 힘든 싸움’이라고 표현한 것은 판결이 나오는 데 3년이나 걸렸기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는 흔히 법이 만들어지고 판결이 나오면 그 자체로 강력한 힘을 발휘해서 금세 세상이 바뀌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급격한 변화는 잘 일어나지 않거나 끝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경우도 있다.

연방대법원의 판결 이후 미국 사회가 보인 첫 번째 반응은 흑백 통합 학교를 만든다면 백인 학생들을 따로 빼내어 자기들끼리 따로 수업을 하고 졸업식도 따로 하겠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1957년에는 아칸소 주지사가 백인 고등학교에 등교하려는 흑인 학생들을 막기 위해 주 방위군을 동원하는 엄청난 사태가 일어났다.

이에 맞서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미 육군 공수부대를 투입하면서 학생을 등교시키기 위해 군대와 군대가 맞붙는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벌어지게 되었다.

진짜 변화는 법과 판결 그 자체로부터가 아니라 언제나 그랬듯이 시민들의 힘으로 시작되었다. 브라운 판결로 자신들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확신하게 된 흑인과 이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1년 후인 1955년, 백인 좌석에 앉았다는 이유로 체포된 로자 파크스(Rosa Parks) 사건을 계기로 미 전역을 휩쓴 흑인 민권운동의 횃불을 피워 올렸다.

이 과정에서 운동을 이끈 대표적인 인권운동가 중 한 명이 바로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목사이다. 1963년 흑인차별을 철폐하는 법의 제정을 요구하며 전국에서 25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모인 워싱턴 대행진이 있었다. 이때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라는 제목의 유명한 연설을 했다.

(……)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 이 나라가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것을 자명한 진실로 받아들이고, 그 진정한 의미를 신조로 살아가게 되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언젠가는 조지아의 붉은 언덕 위에 예전에 노예였던 부모의 자식과 그 노예의 주인이었던 부모의 자식들이 형제애의 식탁에 함께 둘러앉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이런 노력들이 모여 마침내 1964년 린든 존슨 대통령의 주도로 어떤 형태의 차별도 금지하는 민권법(Civil Rights Act)이 제정되었다. 민권법이 제정된 지 50년이 넘게 지난 지금까지도 흑인이 미국 사회에서 완전히 평등한 지위를 보장받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백인 경찰관들이 무방비 상태의 흑인들을 사살하고도 무죄로 풀려난 것에 분노한 군중들이 소요를 일으킨 ‘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 BLM)’ 운동만 봐도 그렇다. 이 운동은 2012년 촉발되어 현재까지도 간헐적으로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길고 힘든 싸움은 여전히 끝나지 않은 것이다.

*자료 제공=해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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