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 무성영화로 만들어진 최초의 로봇 영화
-완벽한 휴머노이드, 여성형 ‘안드로이드’가 나오다
-100년 후 미래, 2027년을 그려내다

아주 먼 옛날에는 당연히 영화라는 것이 없었다. 영화는 기계 장치로 영상을 촬영하고, 그것을 편집하는 과정을 거쳐 많은 사람에게 공개된다. 길고 긴 인간의 역사 중에서 이런 기계장치를 개발한지는 사실 얼마 되지 않았다.

영사기를 사용한 최초의 영화는 1895년에 대중에 공개된 <열차의 도착>이라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프랑스의 기계 개발자인 ‘뤼미에르 형제’가 만들었다. 자신들이 개발한 촬영 장비를 이용해 열차가 기차역으로 들어서는 장면을 찍은 50초짜리 아주 짧은 영상이다.

이 영화는 요즘 기준으로 소위 ‘움짤’ 수준도 못 되는 조악한 영상이다. 하지만 일평생 ‘사진이나 그림이 움직인다’는 생각을 못 해 본 당시 사람들은 이 짧은 영상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뤼미에르 형제는 프랑스의 한 야외 카페에서 이 영상을 소개했다. 영상을 보던 사람들은 갑자기 어디서 나타났는지도 모를 열차가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니 너무도 놀랐다. 그래서 “열차가 우리에게 달려온다. 열차가 우리를 덮친다!”라고 외치며 사방으로 도망을 갔다.

당시 사람들에게 이 짧은 영화가 요즘 유행하는 ‘가상현실 입체영상’ 이상의 생동감을 전해 준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영화 기술은 점점 발전한다. 영화에 소리를 녹음해 동시에 들려주는 영화, 즉 소리가 있는 유성영화(有聲映畵)는 1901년에 처음 등장한다.

최초의 영화가 등장하고 불과 6년 만에 사람들은 소리를 녹음해 들려주는 방법을 고안한 것이다. 이른바 기초 기술이 있을 경우 과학 기술이 얼마나 빨리 발전하는지를 알 수 있는 사례이다.

유성영화 이전에는 그냥 움직이는 영상만 보여줬다. 소리를 듣지 않고 어떻게 영화의 줄거리를 알 수 있었을까? 감독이 영상만으로 이해되도록 여러 가지 배려를 한다. 짧은 자막을 넣거나 ‘변사’라고 불리는 사람이 무대 뒤에서 마이크를 들고 줄거리를 설명했다.

유성영화를 만드는 기술은 1901년에 나왔지만, 이것이 널리 퍼진 건 1900년대 중반을 넘어서이다. 할아버지, 할머니 가운데 극장에서 소리가 없는 ‘무성영화(無聲映畵)’를 본 분도 계실 것이다. 그때는 변사가 “자 보시라. 보시라. 이다지도 슬픈 주인공의 심정을 알겠는가~!”와 같은 낯 뜨거운 대사를 외치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굉장히 촌스럽고 어색하지만, 그 시절엔 그런 감성이 인기가 있었다.

참고로 최초의 컬러영화가 등장한 것은 유성영화 기술이 개발되고 1년 후인 1902년이었다. 하지만 컬러영화 제작 기술도 1900년대 중반에야 널리 퍼진다. 두 시간 남짓한 이른바 ‘장편영화’ 중 컬러로 제작된 최초의 영화는 1938년 미국에서 개봉된 <스윗하츠>였다.

흑백 무성영화로 만들어진 최초의 로봇 영화   
최초의 ‘로봇 영화’는 어떤 것이었을까? 1927년 1월 10일 독일에서 개봉된 영화 <메트로폴리스(Metro￾polis)>를 꼽는 사람들이 많다. 이 시절에는 컬러영화도, 유성영화도 아직 흔하지 않았다.

당연히 이 영화는 흑백영화이면서 무성영화였다. 이런 시절에 ‘로봇’을 주제로 영화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보면, 사실상 로봇은 영화의 역사가 시작되고 나서부터 줄곧 함께했던 친구인 셈입이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인정받아서 이 영화는 독일 표현주의를 대표하는 영화로 여겨진다. 2011년에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록되기도 했다. 문화적 가치가 아주 높은 영화이다.

영화 <메트로폴리스>는 당시로선 대단히 큰 포부를 가지고 대대적인 투자를 한 작품이었다. 연출자는 프리츠 랑(Fritz Lang) 감독으로 기록돼 있다. 총 상영 시간이 2시간 33분에 달한다. 요즘에도 찾아보기 힘든 장편영화인 셈이다. 영화 촬영을 위해 대규모 세트장을 여러 개 제작했고, 아주 많은 단역배우(엑스트라)도 고용했다. 제작 기간만 1년 6개월이 넘었다고 한다.

이런 작업을 하려다 보니 510만 마르크(독일의 과거 화폐, 현재 독일은 주변 나라와 같이 ‘유로화’를 사용한다)를 투입했다. 현재로 따져도 몇십억 원이 넘는 비용으로, 그간 영화제작 비용이 점점 오른 것을 감안하면 실로 막대한 제작비였던 셈이다.

이 정도면 흔히 말하는 ‘블록버스터 영화’에 들어가고도 남을 것 같다. 즉 최초의 로봇 영화 <메트로폴리스>는 최초의 블록버스터 영화이기도 한 셈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개봉 당시 그리 인기를 끌지 못했다. 큰 재미가 없었는지 흥행에 실패해서 투자한 회사가 결국 파산했다는 말도 들은 적이 있다.

흥행에 왜 실패했는지는 특별한 기록이 없어서 알 수 없다. 하지만 제가 영화를 몇 차례 보면서 생각해 보니, 작품성에만 너무 치중한 것 같다. 많은 관객이 원하는 흥행성 높은 줄거리를 넣지 않은 것이 원인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엄청난 공을 들여서 만들었고, 개봉한 지 거의 100년에 다다르는 지금에 와서도 높은 평가를 받는 영화인 것은 확실하다. 다만, ‘재미있는 영화를 보고 싶다’는 관객의 기대에도 어느 정도 부응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든다.

*영화 '메트로폴리스' 포스터
*영화 '메트로폴리스' 포스터

완벽한 휴머노이드, 여성형 ‘안드로이드’가 나오다   
이 영화에는 그 누구도 로봇임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인간과 똑같은 외모를 가진 여성형 로봇이 등장한다. 영화 속에 마리아라는 여성이 나오는데, 그 여성과 똑같이 생긴 로봇, 즉 ‘로봇 마리아’를 만들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로봇 마리아는 인간을 닮은 ‘휴머노이드’ 로봇 중에서도 ‘안드로이드’ 형태, 즉 완전히 사람처럼 생긴 로봇이다. 이 로봇은 사람처럼 연기하며 주위 사람들을 완전히 속일 수 있다. 사람 이상으로 똑똑한 인공지능을 갖춘 로봇이다.

영화가 만들어진 시기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제2차 세계대전이 본격적으로 벌어지기 전 소강상태였던 시절이다.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 진영과, 소련(현재 러시아)이 중심인 공산주의 진영의 신경전도 적지 않았다. 영화에도 그런 사회 분위기가 반영된 것으로 보였다.

영화는 욕심이 많고 부유하게 사는 사람들과 착취당하며 일하는 사람들이 서로 싸우는 모습을 그려 낸다. 부자들은 대부분 지상에 살고 있다. 지하에 사는 사람들은 도시를 유지하기 위해 공장에서 계속 일을 한다. 인간 여성 마리아는 지하 세계 사람이지만, 우연찮은 기회에 도시의 통치자 ‘프레드슨’의 아들 ‘프레더’와 만난다.

그리고 지하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모두 비참한 생활을 한다는 사실을 전해 준다. 이 사실에 충격을 받은 프레더는 아버지에게 지하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간 마리아는 지상과 지하의 사람들이 화목하게 지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서로 정보를 주고받고, 이야기를 나누면 사이좋게 지낼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마리아의이런 계획을 알게 된 과학자 ‘로트방’은 인간 마리아와 꼭 닮은 로봇을 만들어 지하로 내려 보낸다.

한마디로 ‘로봇 마리아’는 진짜 마리아 대신 지하 세계 사람들을 선동하고 혼란을 일으키는 ‘스파이’이다. 하지만 이 계획은 노동자들이 가짜 마리아(로봇)의 정체를 알아내면서 실패로 돌아간다. 프레더가 노동자들과 아버지 사이의 중재자가 되어 화해를 끌어낸다는 것이 이 영화의 줄거리이다.

새삼 써 놓고 보니, 오락 영화로 보기엔 주제가 너무 무겁다는 느낌도 든다. 로봇을 매개로 삼지만, SF 영화라기보다는 미래 사회에 생길지 모를 사회 구조의 부조리함을 지적하는 철학 영화에 가깝다. 미래를 배경으로 쓴 고전 같은 느낌도 받았다.

*영화 '메트로폴리스'의 한 장면
*영화 '메트로폴리스'의 한 장면

100년 후 미래, 2027년을 그려내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로봇 마리아’는 진짜 여주인공 ‘마리아’를 복제한 인조인간이다. 영화 초반에 로봇 마리아의 개발 모습이 나와서 금속으로 구성된 몸체를 볼 수 있다. 지금 보아도 촌스럽지 않고 미려한 모습이다.

본격적인 메카닉(기계) 디자인이 생겨난 것은 어림잡아 1950년대 이후이다. 그 이전에는 ‘로봇처럼 보이면 됐지.’라고 생각했는지 영화에는 거의 깡통처럼 생긴 로봇이 등장한다. 그런 사실을 떠올리면 로봇 마리아의 디자인은 정말 시대를 몇 단계는 앞서갔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 <메트로폴리스> 속 세상은 ‘100년 후 미래’를 그리고 있다. 영화가 1927년에 개봉됐으니, 영화 속 배경은 2027년 정도일 듯하다. 2020년인 지금, 몇 년 이내에 마리아만큼 고성능 인공지능과 로봇이 등장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1920년대 사람들이 로봇의 미래를 이 정도로 멀리 내다봤다는 점은 굉장히 칭찬할 만 하다. 저는 이 영화를 여러 번 보았지만, 볼 때마다 1927년이라는 제작 시기가 무색하게 느껴진다. 영화에 깔린 풍부한 상상력, 로봇을 스파이(?)로 활용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 세련된 로봇 디자인, 미래 도시의 모습 등을 90년 전에 생각해 냈다는 것 자체가 놀랍기만 하다.

특히 영화 속 도시 모습은 현재의 모습과 비교해도 전혀 촌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사실 많은 SF(사이언스 픽션) 영화를 보면 미래의 모습을 너무 과도하게 표현해서 도리어 촌스럽게 느껴지는 일이 많다.

예를 들어 1987년에 개봉한 영화 <로보캅> 1편을 보면, 첨단 미래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는지, 당시에는 없던 TV 모니터가 붙어 있는 전화기가 나온다. 이미 미래가 된 현시대에 스마트폰을 쓰며 사는 우리가 보기에 그 TV 전화기는 굉장히 촌스럽고 어이없게 생긴 물건이다.

<메트로폴리스>는 그런 느낌이 거의 없다. 어느 시대에나 있을 법한 빌딩과 도시, 공장 등을 시각적으로 아름답게 묘사해 낸다. 컴퓨터 그래픽은 커녕 제대로 된 촬영 장비조차 없는 시절에 이 정도의 영상미를 구현했다는 점이 경이롭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은, 영화 <메트로폴리스>에 로봇 마리아가 기술적으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로봇의 동작 원리 등이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니 기술적으로 옳냐, 그르냐를 설명하기도 어려울 것 같다.

만약 이 영화가 기술적 고증을 거쳐 제작되고, 그에 대한 영화적인 설명 등을 볼 수 있었다면, 그 시절의 사람들이 로봇 기술 중 어떤 점을 중요시했는지 정도는 되짚어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영화 <메트로폴리스>는 이미 90년 전 걸작으로 역사에 남은 기록물이다. 모든 것을 제쳐 두고, 최초의 로봇 영화라는 점 하나만으로도 로봇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꼭 한번 보기를 바란다.

과거의 무성영화는 어떤 방식이었는지, 최초의 영화 속 ‘로봇 마리아’는 어떻게 묘사됐는지를 쉽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속 로봇의 시작, 마리아를 볼 만한 가치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자료 제공=팜파스 출판사

■ '나침반 36.5도' 해당 페이지 안내  

*에듀진 기사 URL: http://www.eduj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5716
기사 이동 시 본 기사 URL을 반드시 기재해 주시기 바랍니다. 
 

- 이 기사는 '나침반 36.5도' [인문 다이제스트]에 실린 내용의 일부입니다. 
경쟁력 있는 나만의 학생부 만드는 비법이 매달 손안에 들어온다면? 학종 인재로 가는 길잡이 나침반 36.5도와 함께라면 가능합니다. 매달 선명해지는 대입로드를 직접 확인하세요! 

차별화된 콘텐츠 중·고등학생 필독서 '나침반 36.5도' 구독 신청 [배너 클릭!]
차별화된 콘텐츠 중·고등학생 필독서 '나침반 36.5도' 구독 신청 [배너 클릭!]

 

저작권자 © 에듀진 인터넷 교육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