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아이히만처럼 될 수 있다”  
-밀그램 실험, 악의 이유를 답하다  
-인간은 어느 순간에도 주체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    

*밀그램 실험 중인 피험자 
*밀그램 실험 중인 피험자 

한 대학교의 실험실. 체벌이 인간의 학습 효과에 미치는 영향을 실험하려고 한다. 실험에 참여할 사람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내고, 이에 응한 사람들에게 실험 내용을 설명한다.  

실험실은 두 공간으로 나뉘어 있다.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밖에서 볼 수 있으며, 밖과 안은 마이크를 통해 소리를 전달할 수 있다. 안에는 학습자 역할을 하는 사람이 들어간다. 그는 밖에서 묻는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 이때 답이 틀리면 전기충격이 가해지는 벌을 받는다.  

밖에는 안에 있는 사람에게 전기충격을 가하는 정도를 조정하는 장치가 있다. 이곳에는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예일 대학교의 교수로 이 실험을 총괄하고, 또 다른 사람은 교사 역할로 안에 있는 사람에게 문제를 내고 틀린 답을 할 경우에 교수의 명령에 따라 전기충격을 가하는 장치를 작동한다. 

실험이 시작되면 실험 대상자를 학습자 역할과 교사 역할로 나눈다. 실험을 총괄하는 교수는 밖에서 교사 역할을 할 사람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이 연구는 체벌을 가할 경우에 사람들의 학습 능력이 향상되는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에서 학습자가 학습을 제대로 못하면 전기충격이라는 체벌 을 가할 것입니다. 전기충격의 강도는 다른데, 어느 수준에 이르면 사람이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실험은 대학에서 허락을 받은 것이며, 안에 있는 사람이 죽는 경우를 포함한 모든 실험의 책임은 제가 질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이 실험에 참가해 교사 역할을 맡게 된다면 당신은 계속이 실험에 참여할 것인가, 참여를 거부할 것인가? 교사 역할을 하다가 만약 사람이 죽을지도 모르는 정도로 전기충격 장치를 작동하라고 하면 그 지시를 받아들일 것인가?  

“우리 모두는 아이히만처럼 될 수 있다”  
위의 실험은 예일 대학교의 스탠리 밀그램(Stanley Milgram) 교수가 행한 ‘복종 실험’이다. 그가 이 실험을 한 이유는 1961년 이스라엘에서 열린 아돌프 아이히만(Adolf Eichmann)의 재판과 관련이 있다.  

아이히만은 독일인으로 나치 독일 시절 정보부에 근무했는데 그의 임무는 유대인 학살이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을 비롯해 독일 군대가 점령한 유럽 지역에서 유대인을 모아 수용소로 보내는 일을 책임진 최고 실무자였다.  

나치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에 패망하자 전범으로 잡힌 그는 포로수용소에서 지내다가 탈출해 아르헨티나로 도망간다. 1960년까지 숨어 지냈던 그를 찾아낸 이스라엘 정보기관은 예루살렘으로 강제로 데려와서 유대인 학살 및 전쟁에 대한 죄를 묻는 재판을 열었다.  

제2차 세계대전과 종전 재판이 끝난 후 이루어진 1961년의 이 재판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매우 컸다. 500만 명에 달하는 유대인을 수용소로 이송시키는 책임을 전적으로 맡은 그에 대해, 사람들은 인간이 얼마나 악하면 그런 일을 할 수 있는지 궁금해 했다. 그의 재판 과정은 방송을 통해 여러 나라에 중계되었고, 기자들의 취재 열기도 대단했다. 

재판에 피고로 그가 들어오는 순간 사람들의 시선은 집중되었다. 그런데 피고석에 앉은 아이히만은 그저 50대 후반의 남루하고 자그마한 초로의 남자였다. 사람들은 그렇게 악랄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너무나 친숙한 모습을 하고 있어서 놀랐다.  

더불어 재판 중 “나는 유대인 친위부대 군인으로서 성실하게 명령에 따라 일을 했을 뿐이다”라고 한 그의 말에도 놀랐다. 국가가 수여한 직책을 맡은 사람으로서 위에서 내려온 지시, 즉 상부의 명령에 따라 성실하게 일을 했을 뿐이라는 그의 주장에 많은 사람이 분노했다.  

밀그램 교수 또한 동료들과 이 재판을 방송으로 보다가, 동료 교수가 “인간이 어떻게 저럴 수 있느냐?”고 하는 말을 듣는다. 이에 밀그램은 “우리 모두 아이히만처럼 될 수 있다”라고 답한다. 앞에서 보았던 실험이 바로 그의 답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실험이다.  

밀그램 실험, 악의 이유를 답하다  
밀그램의 실험 조건을 들은 사람들은 상당 부분 실험에 참여했다. 실험이 시작되자 사람들은 안에 있는 학습자가 틀릴 때마다 교수의 말에 따라서 전기충격 장치를 조작해야 했다. 예를 들어 “자, 5의 강도로 충격을 주세요”라고 하면 그 강도로 작동하게끔 기계를 조작하는 것이다.  

교사 역할자는 실험에 들어가기 전에 10의 강도로 전기충격을 주면 사람이 사망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실제로 안에 있던 학습자가 자주 답을 틀리게 되자, 교수는 교사 역할자에게 “자, 10의 강도로 충격을 주세요. 괜찮습니다. 그렇게 하기로 했으니 실행하면 됩니다”라고 말한다. 이때 실험에 참여한 교사 역할자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우선 이 실험의 본래 목적으로 돌아가 보자. 눈치챘겠지만 이 실험은 체벌이 학습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는 실험이 아니다. 아이히만의 재판을 보고 동료와 대화를 나눈 밀그램 교수가 악한 행동의 이유를 파악하려고 한 실험이다. 그러니 실험 목적은 사람을 죽이는 정도의 악한 일에 대해서 권위를 가진 사람이 명령을 내릴 때 사람들이 그 명령에 복종하는가를 살펴보는 것이었다. 

사실 밖에서 조작하는 전기충격 장치와 학습자의 몸에 부착된 장치는 연결돼 있지 않았다. 교수와 같은 연구진이었던 학습자 역할의 사람은 전기충격이 가해질 때마다 그 정도에 따라 실제로 고통받는 것처럼 연기했다. 그리고 최고 단계의 전기충격이 가해질 때는 마치 죽을 것처럼 연기하면서 더 이상 작동하지 말라고 애걸하고 살려달라고 호소했다.   

사람이 죽을 수 있는 정도의 전기충격을 가하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이 실험에 참여한 사람 중 몇 퍼센트나 그 명령에 따랐을까?  

실제 밀그램 교수도 이 실험을 하면서 동료들과 최고 단계까지 조작하는 사람들의 비율을 예측했다. 그들은 많아야 0.1퍼센트, 즉 천 명 중 한 명꼴일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나 실험 결과는 달랐다. 참가자의 65퍼센트 정도, 즉 백 명 중 65명이 최고의 고통을 주는 단계에서도 장치를 작동했다.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밀그램은 사람들이 고통을 호소하면서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부도덕하고 악랄한 행위를 선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바로 조직 내 권위 있는 사람이 책임을 진다고 하면서 명령을 내리면, 그 행위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지 않고 따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아이히만이 재판에서 말한 “명령에 따랐을 뿐이다”라는 말은 맞았다.  

여기서 말하는 명령에 복종했다는 것은 단순히 자기보다 직위가 높은 사람들의 말을 따른다는 것만이 아니다. 악한 일이지만 사회 전반의 수많은 사람들이 지지하는 것이라면, 사회적 권위에 따른 명령으로 인식해 따르는 것도 복종에 속한다.   

아주 선한 사람일지라도 자신이 속한 조직의 상부에서 혹은 사회적으로 주어진 상황에서 악한 행위를 하도록 종용받을 경우에, 대다수가 그런 상황에 복종하거나 굴복해 악한 행위를 할 수 있다. 즉, 개인의 선악이라는 측면이 아니라 사회적 상황에서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사회적 압력은 우리 개인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인간은 어느 순간에도 주체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    
당시 나치 친위대 일원으로서 어쩔 수 없이 명령을 따라야 했으니 그의 죄는 용서받아야 하는가? 아니다. 그는 공개 재판에서 교수형을 선고 받았다. 왜 그에게 무죄가 아니라 최고형인 교수형 선고가 내려졌을까? 

첫 번째 답은 밀그램 실험에 참가한 사람에게서 찾을 수 있다. 그들 중 35퍼센트, 즉 100명 중 35명 정도는 사람이 죽을지도 모르는 고통을 주는 행동을 선택하지 않았다. 밀그램이 자신이 모든 것을 책임진다고 이야기했고, 조작을 하지 않으면 아르바이트 비용을 받을 수 없다는 계약 조건도 말했다. 그러나 35퍼센트의 사람이 중간에 포기를 선언하고 그만두었다.  

그들이 그만둔 이유는 무엇일까? 단 하나, 자신과 마주하고 있는 사람이 겪는 고통을 보고 인간으로서 차마 그럴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실험에 참가하면서 한 계약, 교수의 명령에 따라야 하는 사회적 위치, 전기충격을 가했을 때 받을 보수 등과 같은 것을 고려해 보면, 35퍼센트의 사람들도 그 실험과 관련된 사회적 압력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 압력에 따르지 않고 자신이 받을 이익도 포기하면서 자신의 내면에 있는 인간으로서의 목소리를 듣고 악의 편에 서지 않았다.  

사회적 압력을 받아 어쩔 수 없이 행동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인간은 여전히 ‘주체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존재’이다. 이편 아니면 저편 중에서, 악인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선택지가 있는 상황에서, 개인은 여전히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으며 그런 선택에 대한 책임은 자신이 져야 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답은 정치 이론가 한나 아렌트의 주장에서 찾을 수 있다. 아이히만과 동일한 해에 독일에서 출생한 유대인인 아렌트는 독일에서 공부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나치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프랑스로 이주했지만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하면서 유대인 강제수용소에 갇혔다가,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미국으로 이주할 수 있었다.   

독일 나치 정권에 저항했던 그는 자신의 연구에서 “나치와 같은 파시즘은 정치의 한 형태로 인정할 수 없으며, 그러한 전체주의는 인간에게 가하는 폭력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아이히만 재판이 있을 때,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 여성 최초의 전임 교수였던 아렌트는 한 신문사의 취재 요청을 받아서 예루살렘으로 가게 된다. 그 재판을 본 후 집필한 책이 바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다.  

여기서 아렌트는 인간 속에 내재해 있는 ‘악의 평범성’에 주목한다. 악한 의도를 가진 악인이 악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히만처럼 누구나 사회적으로 자신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는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악을 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우리 모두 누구나 일상에서 의도하지 않아도 악을 저지를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이유로 용서받을 수는 없다. 재판 당시 검사 측은 아이히만이 명령을 받았을지라도, 인간으로서 “생각할 수 있었음에도 하지 않은 것”이 죄라고 했다. 아렌트 또한 아이히만이 인간으로서 ‘세 가지 무능함’을 가졌다고 말한다. 바로 타인의 위치에서 그 고통을 생각하지 않는 무능함, 말하지 않는 무능함 그리고 행동하지 않는 무능함이다. 따라서 그는 유죄이다.  

초로(初老) | 노년에 접어드는 나이. 또는 그런 사람. 예전에는 흔히 40, 50대를 일렀으나 수명이 늘어난 요즈음에는 주로 50, 60대를 이른다

*자료 제공=해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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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듀진 기사 URL: http://www.eduj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6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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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는 '나침반 36.5도' [인문 다이제스트]에 실린 내용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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