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돌프 아이히만’ 전범 재판
- 냉혹한 독일군 장교 vs 평범한 공무원
- ‘범죄’의 성립 조건 세 가지
- 아이히만 재판의 법적 문제

아돌프 아이히만_[출처=jmagazine.joins.com]

냉혹한 독일군 장교 vs 평범한 공무원 
1960년 5월 11일 늦은 저녁,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거리에서 빠른 걸음으로 퇴근길을 재촉하던 신사의 앞을 건장한 청년 일곱 명이 가로막았다. 

“리카르도 클레멘트씨 맞습니까? 아니, 아돌프 아이히만(Adolf Eichmann)이라고 불러드려야 하나?” 
신사는 물끄러미 그들을 쳐다보더니 금세 체념한 듯한 말투로 대답했다. 
“당신들, 이스라엘인들이오? 운명을 받아들여야 할 것 같군요.” 

건장한 청년들은 이스라엘의 첩보부 모사드 소속 요원들이었다. 이들은 클레멘트라는 가명으로 15년간 추적을 피해온 전직 독일군 중령 아이히만을 자동차로 납치했다. 그리고 약물을 투여해 정신을 잃게 한 후 관 속에 숨겨 비행기를 통해 이스라엘로 옮겼다. 세계를 진동시킨 ‘아이히만 재판’의 시작이었다. 

아돌프 아이히만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친위대 장교였다. 나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나 군인 정신이 있었다기보다는 안정된 직장을 찾다가 나치에 가입한 것이기 때문에 전투보다는 행정 쪽 업무를 주로 맡았다. 

문제는 그가 맡은 행정 업무가 유대인의 추방과 학살에 관련된 일이었다는 점이다. 국가안보부의 유대인과 과장을 맡았던 그는 유럽 각지에서 유대인을 모아 강제수용소로 보내는 열차 수송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역할을 맡았다. 상대적으로 눈에 덜 띄는 역할이었기 때문에 독일이 패전하고 나서 열린 전쟁범죄 재판에 회부되지 않고 미군 포로수용소에 갇혀 있다가 탈출해 아르헨티나로 도주했던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의 기억이 사그라들던 시점에 이루어진 아이히만의 전격적인 체포와 유대인 국가인 이스라엘의 심장 예루살렘에서 벌어진 재판은 전 세계의 관심을 끌어모았다. 그런데 각국의 기자들이 운집한 가운데 방탄 유리로 둘러싸인 피고인석에 나타난 아이히만의 모습은 대중의 예상과 좀 달랐다.  

세계 최고 수준의 첩보부대가 2년간의 작전 끝에 겨우 체포한 전쟁범죄자라는 보도들이 나왔다. 이를 본 많은 사람들은 오만하고 냉혹한 독일군 장교, 수백만 명이나 되는 무고한 사람들을 거리낌없이 죽음으로 내몬 무시무시한 악당의 모습을 상상했다. 그러나 그는 의외로 평범하고 나약한 공무원의 행색이었던 것이다.  

그의 주장 역시 예상과 달랐다. 악명 높은 나치의 친위대 장교로서 학살을 정당화하는 인종차별적 주장을 펼치지 않았다. 대신 유대인들에게 벌어진 엄청난 비극에 사과하면서 다만 자신은 평범한 공무원에 불과했기 때문에 상부의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고 변명을 할 뿐이었다.  

“저는 권한이 거의 없는 ‘배달부’에 불과했습니다. 저에게 죄가 있다면 국가와 공무원 선서에 대해 복종했다는 것뿐입니다. 유대인을 학살한 것은 히틀러나 다른 상급자의 결정이었고 저는 거기에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초라하고 비겁한 변명에 분노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혼란도 느꼈다. ‘만약 내가 저 상황이었다면, 전쟁 중에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공무원의 입장이었다면 다르게 행동할 수 있었을까? 그렇다면 아이히만은 처벌을 받는 것이 옳은 것일까?’  

‘범죄’의 성립 조건 세 가지 
우리는 흔히 ‘죄를 지었다’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하지만 법률상으로 엄격히 따지자면 범죄는 ‘사회 질서를 문란하게 하는 행위’이며 이에 대해 국가는 ‘처벌’이라는 제재를 가한다. 다시 말하자면 개인과 개인 사이에 벌어지는 다툼이 아니라 국가가 나서서 질서 유지를 위해 강제력을 행사해야만 하는 상황이 벌어졌을 때 범죄로 규정하고 적절한 처벌을 부과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국가가 개인을 처벌하는 형벌권은 매우 강력한 권한이기 때문에 자칫하면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과도한 처벌을 하게 될 우려가 있다. 그래서 형법에서는 어떤 것이 범죄인지에 대해 매우 엄격하게 조건을 달아 국가가 형벌권을 남용하는 일을 막고 있다.  

범죄 여부는 마치 깔때기로 하나하나 걸러내는 것처럼 세 가지 단계를 거쳐 판단하는데 그 세가지 단계가 바로, 구성요건 해당성, 위법성, 책임성이다. 어떤 행위가 범죄가 되려면 먼저 법에서 금하는 범죄의 요건들을 갖추어야 한다.   

예를 들어 형법에 ‘사람을 살해하면 살인죄로 다스린다’라고 돼 있다면 사람을 대상으로 살해에 이르는 행위를 할 경우 살인죄에 해당한다. 이것을 구성요건 해당성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구성요건에 해당하더라도 범죄로 볼 수 없는 예외적인 상황도 있다. 어떤 사람을 칼로 찔러 상처를 입혔다면 상해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지만, 의사가 수술을 하기 위해 메스로 상처를 낸 경우라면 범죄라고 볼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예외에 해당해서 범죄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하는 경우를 어려운 말로 위법성 조각이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구성요건에도 해당하고, 예외로 볼 수 있는 상황도 아니라서 분명히 범죄에 해당하는 행위이기는 하지만 행위를 저지른 사람에게 책임을 묻기 곤란한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어린아이가 멋모르고 저지른 행위라든가, 정신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폭행을 한 경우가 그렇다. 처벌을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다시 그런 행위를 하지 않도록 막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이들을 사회적으로 비난할 수 없다는 의미로 책임성 조각 사유에 해당하는 것으로 본다. 

책임성 조각 사유 중 대표적인 것이 ‘강요에 의해 이루어진 행위이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 머리에 총을 겨누고 위협하면서 친구를 때리라고 강요했다면 분명히 폭행을 행사했다 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행위이므로 때린 사람을 범죄로 처벌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런 범죄의 조건을 아이히만의 사례에 적용해 보면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그는 분명히 유대인을 학살하는 범죄 행위에 가담했기 때문에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범죄를 저질렀다고 볼 수 있고, 사람을 살해하는 행위는 위법성이 조각될 수도 없다. 하지만 그는 군인의 신분으로 명령에 복종해야만 하는 입장이었다. 직접 사람을 죽인 일은 없고 단지 자신의 역할을 수행했을 뿐이다.  

재판에서 담당검사는 잘못된 명령에 저항하지 않고 따른 것 또한 범죄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과연 군인의 신분으로, 더구나 전쟁 중이라는 특수 상황에서 장교가 명령의 잘잘못을 따져가며 저항하고 심지어 명령을 거부하는 일이 가능했을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따라서 아이히만은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던 자신에게 법적으로 책임성을 물을 수 없으므로 무죄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정보 플러스   
책임성과 미성년자의 범죄 


범죄 요건 가운데 하나인 책임성의 문제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이 미성년자 문제다. 책임성은 자신이 하는 행위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는 미성숙한 단계에 있는 사람에게는 사회적으로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생각에서 비롯한 개념이다.  

미성숙한 판단 능력이 기준이라면 민법상 법률 행위가 가능한 연령은 만 19세라는 점을 고려해서 형법에서도 동일한 기준을 적용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중·고등학생에 해당하는 연령대의 범죄가 적지 않아서 형법상 책임 연령은 만 14세로 정해져 있다.  

대략 중학교 1, 2학년 이전까지는 범죄를 저질러도 형법상 처벌을 할 수 없다는 의미인데 왜 만 14세가 기준인지도 모호하고 학교폭력을 비롯해 더 낮은 연령대의 범죄도 심각하다는 이유로 기준 연령을 낮추어야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이런 사각지대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만 10세 이상 만 14세 미만의 범법행위를 한 사람은 촉법소년으로 형벌이 아닌 보호 처분을 받도록 하고 있다. 보호 처분에는 보호관찰, 소년원 수용 등의 조치가 있다.  


아이히만 재판의 법적 문제 
재판이 진행될수록 법적인 문제는 더 많이 드러났다. 앞서 말했듯이 현대 민주사회에서 형법은 국가의 형벌권을 최대한 제한하는 방향으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죄와 형벌은 법에 정한 바에 따른다는 ‘죄형법정주의’를 핵심 원칙으로 삼고 있다.  

따라서 행위가 이루어졌던 시점에 존재하는 법에 범죄로 규정되지 않은 행위를 사후에 법을 만들어 처벌할 수는 없다. 그랬다가는 내가 오늘 했던 평범한 행동이 몇 년 후에 법이 바뀌면 처벌의 대상이 될 수도 있는 불안한 상황이 벌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법률불소급 의 원칙’이라고 한다. 전쟁 중 아이히만의 행위는 당연히 당시 독일법으로는 문제가 없는 것이었다.  

재판이 이루어진 곳도 논란이 됐다. 법률이 효력이 미치는 범위에 관한 원칙은 크게 그 사람의 국적에 따른 ‘속인주의’와 현재 그 사람이 살고 있는 지역에 따른 ‘속지주의’로 나누어볼 수 있다. 미국을 여행 중이던 우리 국민이 범죄를 저지를 경우 속지주의 원칙에 따라 현지에서 재판을 받게 된다. 하지만 외교관 등 예외를 인정받는 사람일 경우 속인주의에 따라 국내로 송환돼 국내법에 따라 재판을 받게 될 수도 있다.  

아이히만 재판은 이 두 가지 원칙에 모두 벗어나는 재판이었다. 속지주의에 따르자면 아르헨티나에서 재판을 받았어야 했고, 예외적 상황으로 인정돼 속인주의에 따른다 해도 독일 국적이므로 독일로 송환돼 재판을 받아야 했는데 엉뚱하게도 제3국에 해당하는 이스라엘에서 재판이 열린 것이다. 따라서 아이히만의 변호인은 이스라엘 법원이 과연 재판 관할권이 있는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가장 큰 문제는 아이히만의 체포와 이송 과정이었다. 모사드는 아르헨티나에서 아이히만을 체포하면서 아르헨티나 당국에 통보하고 협의하는 과정을 전혀 거치지 않고 화물로 위장해 이스라엘로 데려왔다. 이는 명백한 불법 체포이자 납치였다. 아이히만을 데려오는 과정이 불법적이었다는 것은 재판 과정에서도 공식적으로 인정됐기 때문에 더욱 큰 논란을 불러왔다.  

큰 죄를 지은 중요한 범죄자를 체포하는 긴급한 작전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절차를 일부 생략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죄형법정주의에서 갈라져 나온 중요한 원칙 가운데 하나는 ‘적법절차의 원칙’이다. 이는 국가가 형벌권을 남용할 위험을 막기 위해 수사 및 처벌 등 형벌권이 행사되는 과정에서는 법이 정한 절차에 반드시 따라야 한다는 원칙이다.  

그래서 수사 과정에서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는 법정에서 증거로 사용할 수 없도록하고 있다. 과정이 잘못됐으면 그 결과도 인정할 수 없다는 뜻에서 ‘독나무에서 열린 열매는 독과일이다’라고 비유하기도 한다.  

과연 아이히만은 유대인들의 복수심에 의해 부당하게 처벌받은 희생자였을까. 아이히만은 그저 “상관의 명령에 복종했을 뿐”이라는 주장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그 명령이 수백만의 죄 없는 사람을 죽이는 것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그러나 아이히만의 주장대로라면, 과거 우리나라를 식민지배하고 온갖 범죄를 일삼은 일본의 전범들, 현재 미얀마에서 군 정부의 명령이라며 시민을 마구 학살하고 있는 군인들 또한 죄가 없다는 말과 다름없다.   

아이히만 재판은 종전 후 나치 정권이 몰락하고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도 전범을 재판정에 세울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7개월 간 국제적 관심 속 열린 재판 끝에 결국 아이히만은 모든 혐의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1962년 5월, 아이히만은 사형에 처해졌다.  

■ 나침반 36.5도 해당 페이지  

▲[나침반 36.5도] '인문 다이제스트'에 실린 콘텐츠 이미지  
▲[나침반 36.5도] '인문 다이제스트'에 실린 콘텐츠 이미지  


제공 | 해냄출판사

*에듀진 기사 URL: http://cms.eduj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7298  
기사 이동 시 본 기사 URL을 반드시 기재해 주시기 바랍니다.   

- 이 기사는 '나침반 36.5도' [인문 다이제스트]에 실린 내용의 일부입니다.   
경쟁력 있는 나만의 학생부 만드는 비법이 매달 손안에 들어온다면? 학종 인재로 가는 길잡이 나침반 36.5도와 함께라면 가능합니다. 매달 선명해지는 대입로드를 직접 확인하세요! 

나침반 36.5도 100호 출간 기념 [입시N 콜라보 이벤트] 바로가기 클릭!  
나침반 36.5도 100호 출간 기념 [입시N 콜라보 이벤트] 바로가기 클릭!  

 

저작권자 © 에듀진 인터넷 교육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