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시 문항 ]

■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김달채 씨는 퇴근하기 무섭게 뽀르르 집으로 달려가던 묵은 습관을 버리고 밤늦도록 하릴없이 길거리를 배회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새로운 습관을 몸에 붙였다. 지하철이나 버스 혹은 공중변소나 포장마차 안에서, 백화점에서 사지도 않을 물건을 흥정하거나 정류장에서 토큰 아니면 올림픽복권을 사면서, 그리고 행인에게 담뱃불을 빌거나 더욱 과감하게는 파출소에 들어가 경찰관에게 길을 묻는 시늉을 하는 사이에 마주치는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상대로 달채 씨는 실수를 가장하기도 하고 때로는 또렷한 목적의식을 드러내기도 해가며 우산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갖가지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했다. 그런 다음 상대방의 눈에 과연 우산이 어떻게 비치는지, 그리하여 상대방이 우산 임자인 자기를 어떻게 대우하는지 반응을 떠보는 작업을 일삼아 계속해 나갔다. 참으로 긴장과 전율이 넘치는 뻐근한 나날들이었다. 구청 호적계장의 직위에 오르기까지 여태껏 전혀 몰랐던 세계가 구청과 자기 집구석 바깥에 따로 있음을 그는 우산을 통해서 비로소 실질적으로 체험할 수가 있었다. 그는 사람들의 반응을 종합해서 몇 가지 결론을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첫째는, 진짜 무전기에 익숙한 일부 극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한 거개의 서민들은 의외로 쉽사리 우산에 속아 넘어간다는 사실이었다.
 둘째는, 상대방이 무전기를 지니고 있다고 알아차리는 그 순간부터 사람들의 태도가 확 달라진다는 사실이었다. 일껏 하던 이야기를 뚝 그치거나 얼렁뚱땅 말머리를 돌리는 등으로 지은 죄도 없이 공연히 겁부터 집어먹고는 꾀죄죄한 몰골의 자기한테 갑자기 저자세로 구는 것이었다. 밤늦도록 수고가 많다면서 한사코 술값을 받지 않으려 하던 어떤 포장마찻집 주인의 경우가 단적인 예였다.
 셋째는, 노골적으로 손에 쥐고 보여 줄 때보다 그냥 뒤꽁무니에 꿰찬 채 부주의한 몸가짐인 척하면서 웃옷 자락을 슬쩍 들어 케이스의 끝부분만 감질나게 보여 주는 편이 오히려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데 훨씬 더 효과적이고 반응도 민감하다는 사실 이었다.
 김달채 씨는 그러잖아도 짧은 머리를 더욱 짧게 깎았다. 옷차림도 낡은 양복에서 스포티한 잠바 스타일로 개비했는가 하면 구청 밖에서는 항상 선글라스를 끼고 다녀 버릇했다. 달채 씨는 그처럼 달라진 모습으로 짬만 생기면 하릴없이 길거리를 나다 니며 청명한 가을날에 우산을 이용해서 사람들을 떠보는 색다른 취미에 점점 깊숙이 빠져 들어가기 시작했다.

(중략)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뭔가 벌어지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하자 까닭 모를 흥분과 기대감이 그를 사로잡아 버렸다. 한 건 올리는 정도가 아니라 뭔가 이제껏 맛보지 못한 엄청난 보람을 느끼게 될 일대 사건을 만날 듯싶은 예감 때문이었다. 그는 다른 행인들이 종종걸음으로 달아나는 방향과는 정반대 편을 향해 정신없이 달려가기 시작했다.
 예상했던 그대로의 살벌한 풍경이었다. 깨진 보도블록 조각이나 돌멩이들이 인도와 차도 가릴 것 없이 사방에 흩어져 나뒹굴고 있었다. 시커먼 그을음 연기를 피워 올리며 불타는 자동차와 창유리가 박살 난 건물도 보였다. 김달채 씨는 주체 못할 지경으로 쏟아지는 눈물 콧물도 돌볼 겨를 없이 여전히 선글라스를 착용한 채 최루 가스에 심하게 오염된 지역을 향해 가까이 접근했다. 중무장한 전경대에 의해 도로가 완전 차단되어 더 이상 접근이 불가능해지자 달채 씨는 구경꾼들 뒷전에서 작은 키를 한껏 발돋움하고는 시위 현장의 분위기를 살폈다. 어디선가 보이지 않는 저쪽 건물 모퉁이에서 어기찬 함성이 아직도 기세를 올리는 중이었다. 사복 경찰관들한테 붙잡혀 끌려오는 학생의 모습이 구경꾼들 어깨 너머로 내다보였다. 달채 씨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앞사람들 틈바귀를 비집고 전면으로 썩 나섰다. 

 "이봐요, 거기!"
 김달채 씨는 창문마다 철망이 쳐진 버스 안으로 학생들을 마구 밀어 넣는 사복들을 향해 느닷없이 목청을 높였다.
 "아직도 어린애야! 다치지 않게 살살 좀 다뤄!"
 어디서 그런 용기가 솟아나는지 김달채 씨 자신도 깜짝 놀랄 지경이었다.
"당신 뭐야?"
 옷깃에 비표를 단 사복 차림의 청년 하나가 달려와서 김달채 씨의 가슴을 떼밀 었다.
 "나 이런 사람이오."
 김달채 씨는 엉겁결에 잠바 자락 한끝을 슬쩍 들어 뒷주머니에 꿰찬 우산 케이스를 내보였다. 하지만 상대방 청년은 그런 물건 따위는 애당초 거들떠볼 생심조차 하지 않았다.
 "당신도 저 차에 같이 타고 싶어? 여러 소리 말고 빨리 집에나 들어가 봐요!"
 이른바 닭장차에 어린 학생들과 함께 실리고 싶은 생각은 물론 털끝만큼도 없었다. 옷깃에 비표를 단 청년이 우산을 우산 이상의 것으로 보아 주지 않는다면 그건 어쩔 도리 없는 노릇이었다. 김달채 씨는 남의 채마밭에서 무 뽑아 먹다 들킨 아이처럼 무르춤한 꼬락서니가 되어 맥없이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 윤흥길, 「매우 잘생긴 우산 하나」 -

* 2022학년도 수능 국어 영역 공통과목 홀수형 27번

 [ 평가 요소 ]
이 문항은 외적 준거를 참고하여 현대소설 작품의 의미를 이해하고, 이를 바탕에 두어 작품을 종합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지를 평가하기 위해 출제했다. 2015 개정 교육과정 '[12문학04-01] 문학을 통하여 자아를 성찰하고 타자를 이해하며 상호 소통하는 태도를 지닌다.'에 근거하고 있다. 

[ 문제 풀이를 위한 주요 개념·원리 익히기 ] 
이 문항의 정답을 찾기 위해서는 <보기>에서 설명하고 있는 주인공의 소시민적 특성에 주목하여 작품 속 주인공의 행동이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지를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작품을 종합적으로 감상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문항에서는 <보기>를 통해 인물의 소시민적 특성과 인물 간 권력관계의 문제를 초점화한 뒤, 이를 적용하여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지 묻고 있다.

지문 내용 중 "이른바 닭장차에 어린 학생들과 함께 실리고 싶은 생각은 물론 털끝만큼도 없었다. 옷깃에 비표를 단 청년이 우산을 우산 이상의 것으로 보아 주지 않는다면 그건 어쩔 도리없는 노릇이었다. 김달채 씨는 남의 채마밭에서 무 뽑아 먹다 들킨 아이처럼 무르춤한 꼬락서니가 되어 맥없이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에서 나타나는 것은 김달채의 소시민적 면모, 즉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타산적 태도이다.

이러한 행위를 학생들과 맺은 유대관계를 단절하려는 것으로는 볼 수 없다. 김달 채의 항의는 학생들과의 관계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발적이고 독자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⑤의 내용은 작품을 감상한 결과로 적절하지 않다.  

이 문항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현대 소설에서 드러나는 다양한 인물상을 폭넓게 학습하고 작품 속 구체적인 맥락에서 인물의 특성이 어떻게 형상화되고 있는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 비슷한 유형 정복하려면 이렇게 공부하라! ]  
이러한 유형의 문항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현대소설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의 특성과 유형을 이해하고, 그것들이 구체적인 작품 속에서 어떻게 형상화되고 있는지를 파악하여 작품을 감상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학교 수업에서는 문학 교과서 등을 통해 서사 갈래의 인물에 대한 이해를 바탕 으로 갈등 전개 과정에서 확인되는 인물의 구체적인 말과 행동 등을 해석하여 인물의 유형과 그 형상화 방식의 관계를 파악해 보는 연습을 할 필요가 있다. 

 *출처=한국교육과정평가원 'Q&A 자료집'

*에듀진 기사 URL: http://www.eduj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0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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