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힘과 권력을 상징하는 ‘빨강’ 
- 신분 상승한 성스러운 색 ‘파랑’ 
- ‘초록’ 독 품은 두 얼굴의 색 
- 희소성 끝판왕 신비로운 ‘보라’ 
- ‘분홍’ 원래 남성 상징하던 색 
- 성별에 따른 특정 색 선호 현상, 기업 ‘마케팅 전략’ 때문? 

우리가 사는 세상은 수 없이 다양한 색으로 칠해져 있다. 동식물을 막론한 많은 생물들은 색채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며, 그 중에서도 특히 시각에 대한 의존도가 절대적으로 높은 인간에게 색깔의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사람들은 색이 가진 느낌, 의미, 상징 등을 활용해 비언어적 소통 수단으로 활용해 왔다.   

그런데 이는 흥미롭게도 시대 상황 혹은 각국의 역사와 문화에 따라 조금씩 달라져 왔다. 왜 주인공격의 캐릭터는 항상 빨간색으로 표현될까. 자연을 상징하는 녹색은 어쩌다 독을 상징하게 됐을까. 남녀의 색깔은 왜 파랑과 분홍으로 나타날까.   

여러 가지 색깔이 상징하는 의미를 문화사적인 관점으로 들여다본다.   

힘과 권력을 상징하는 ‘빨강’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보면 주인공 혹은 히어로의 역할로 등장하는 캐릭터는 빨간색으로 그려지곤 한다. 또 모든 이들의 주목을 받는 사람은 레드카펫 위를 걸어가며, 전 세계 국기 중 가장 많이 들어 있는 색은 빨간색이다. 이유는 빨강이 가진 상징성에서 기인한다.   

아기는 태어난 후 얼마가 지나면 색을 구분하기 시작하는데, 그 중 가장 먼저 인식하는 색 중 하나가 삼원색인 빨강이다. 빨강은 사람의 뇌에 무의식적으로 강렬한 인상으로 자리하고 있고, 실제로도 명도와 채도가 높아 시인성이 높다. 

게다가 빨강은 ‘불’과 색이 같다. ‘빨갛다’라는 우리말의 어원도 불의 환하고 붉은 속성에서 나온 ‘밝다’와 ‘붉다’라는 형용사에서 비롯됐다. 때문에 빨간색은 강렬함, 힘, 정열, 활동, 용기, 에너지, 기쁨, 사랑 등 생동감이 넘치는 긍정적 의미를 가진 색으로 인식됐다.   

그러나 빨강은 몸에 흐르는 ‘피’와도 색깔이 같아서 위험, 폭력성, 잔인함, 충동, 공포 등의 부정적 이미지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래서 빨강이 때로는 식욕을 돋워주거나 사람들을 흥분시키지만, 신호등이나 교통안전표지 등에 활용되는 것이다.   

중세 이후부터 빨강은 유럽에서 힘과 권력을 상징하는 ‘귀족의 색’으로 여겨졌다. 순수한 빨강은 연지벌레라는 곤충이나 꼭두서니라는 식물 등에서 얻었는데 염색공정이 매우 복잡하고 까다로웠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루이 16세는 자신의 초상화에서 굽이 빨간 구두를 신어 그 위엄을 뽐냈으며, 나폴레옹 또한 붉은 옷을 입고 있다. 염색 방식은 다르지만 조선 시대의 왕도 평소 정무를 볼 때 대홍색 비단에 황룡이 수놓인 곤룡포를 입었다. 순수하고 빛나는 빨강은 오직 황제나 교황만 입을 수 있었고, 서민은 능력이 돼도 함부로 입을 수 없는 권위적인 색이 됐다.   

시간이 흘러 빨강 염료를 대량생산할 수 있게 되자 빨강은 힘과 권위의 상징에 용기, 저항 등의 의미가 더해졌고 군복이나 다양한 이념 운동에 쓰이게 됐다.   

삼원색 |  여러 가지 색깔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기본색 세 가지를 말하며, 빛의 경우에는 빨간색(Red), 초록색(Green), 파란색(Blue) 빛이고, 염료나 색소의 경우에는 남색(Cyan), 자홍색(Magenta), 노란색(Yellow)이다
시인성(視認性) |  먼 거리에서도 대상물의 모양이나 색이 식별하기 쉬운 성질 


신분 상승한 성스러운 색 ‘파랑’ 
파랑은 다양한 분야에서 친근함과 신뢰, 희망과 성공의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사용되는 색이다. 공격적이지 않고, 무난해서 유행을 타지 않으며, 사람을 모아 주는 덕에 유네스코, 유럽연합 등 많은 국제기구, 기업에서 상징색으로 채택하고 있다.   

그런데 과거 파랑은 색으로 취급되지도 않을 정도로 미천한 색으로 여겨졌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파란색 자체를 인식하지 못해 문헌을 보면 파랑에 대한 언급을 찾아볼 수 없었다. 또 고대 로마에서는 파랑을 피지배자의 색, 이방인의 색으로 보고 미개하다고 여겼고, 파란 눈을 가진 사람은 추하다고 말한 기록도 남아 있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는 12세기에서 13세기를 지나면서 완전히 뒤바뀐다. 바로, 아들 예수의 죽음을 슬퍼하는 성모 마리아의 옷이 파란색으로 표현되기 시작하면서다. 성모 마리아의 인기에 힘입어 기독교를 국교로 하는 나라의 왕, 신하, 귀족들이 파란색에 관심을 가졌고 나중에는 많은 사람들이 파란색을 선호하게 됐다. 이처럼 미천한 색이었던 파랑은 성모 마리아 덕에 고귀함, 성스러움의 상징이 되었다.   

이후 파란색은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 픔>(1774)에서 주인공 베르테르의 연미복 색, 프랑스혁명(1789~1794)의 상징색 등으로 활용되며 낭만과 자유, 중립 등의 색으로 의미가 풍부해졌다.   

‘초록’ 독 품은 두 얼굴의 색 
풀과 나무를 연상시키는 초록은 사람들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주며, 자연, 환경, 평화, 치유, 건강, 중립 등의 이미지를 상징한다. 강렬한 느낌보다는 중성적인 느낌이 들어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초록색은 그 이면에 무시무시한 ‘독(毒)’의 이미지를 품고 있기도 하다.   

과거 서양에서는 자연의 선명한 녹색을 변색 없이 사용하고 싶어 했다. 그러던 중 1775년 스웨덴의 화학자 카를 셸레가 실험 도중 맑고 밝은 녹색을 발견하고 이를 ‘셸레그린’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한다. 셸레그린은 변색되지 않는 선명한 초록색인데다 제조 방식이 쉽고 비용도 저렴해서 대중들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그러나 이 인공염료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으니 바로, 독성 금속인 비소(As)가 대량 포함돼 있던 것이다. 셸레그린은 비소 화합물인 아비산나트륨과 황산구리를 반응시켜 제조한다. 극미량의 비소는 사람을 포함한 많은 동물의 필수 영양소가 되지만 남용될 경우 비소 중독 및 암 유발의 원인이 되며 심하면 사망에 이르게 만든다. 

우리나라는 조선 시대에 비상(砒霜)이라는 비소 화합물이 사약의 핵심 재료로 쓰였으며, 서양에서도 사람을 독살하는 데 더러 사용됐다. 현재 비소는 국제적 규제 대상 금속으로 분류돼 제초제, 살충제 등의 원료로 극소량, 한정적으로 쓰인다.

당시 셸레는 비소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하지만 제조업자들은 셸레를 설득해 이염료를 대량생산하게 된다. 자연의 색감을 완벽히 살린 이 셸레그린은 벽지, 옷감,물감,심지어 식용색소에도 사용됐다. 사람들은 지금껏 본 적 없는 초록색에 매료돼 너 나 할 것 없이 셸레그린으로 만든 제품을 구매했다. 앞으로 다가 올 비극을 예견하지 못한 채 말이다.   

어느 날부터 사람들이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유로 사망하기 시작했다. 셸레그린으로 만든 제품에서 비소가 스며 나오면서 사람들의 피부와 호흡기를 거쳐 체내로 흡수돼 비소에 중독된 것이다. 실제로 1850년 영국 런던에서 각각 다른 장소, 다른 시간에서 사망 사건이 발생했다.   

하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는데, 시신에서 모두 독성물질이 검출된 것이다. 알고보니 사망자들은 셸레그린을 쓴 벽지를 바르고, 드레스를 입고, 크레파스를 사용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또한 19세기 인상주의 화가 폴 세잔은 만성 비소중독 증상인 당뇨를 앓았고, 클로드 모네의 백내장 역시 물감의 비소 성분 때문에 말년에 백내장으로 시력을 잃은 것으로 보인다. 이 외에도 고흐의 신경증, 나폴레옹의 사망 원인도 비소 중독에 의한 것으로 추정된다.   

셸레그린은 합성염료의 등장으로 사라지게 됐다. 하지만 초록에 덧씌워진 ‘독’과 ‘죽음’의 이미지는 지금까지 전해져 게임이나 만화에서 캐릭터가 독에 감염돼 중독되거나 독극물을 나타낼 때, 저주를 내릴 때 효과적으로 사용된다.    

희소성 끝판왕 신비로운 ‘보라’ 
신비롭고 고급스러운 이미지의 보라색. 보라는 예로부터 신의 색, 왕족, 특별함, 명성 등을 의미해 왔다. 특히 고대 로마에서는 황실을 상징했던 색으로 보라는 황제만 사용할 수 있었다. 카이사르는 자신을 상징하는 색을 보라색으로 정하고 자신 이외에는 아무도 보라색 옷을 입지 못하게 했으며, 네로는 자신 이외에 보라색 옷을 입는 사람을 사형에 처했다.   

보라색이 가치 있는 색으로 여겨진 이유는 염료의 희소성 때문이 가장 크다. 오늘날 시리아 지방에 살던 페키니아인들은 기원전 1600년 보라색을 만든 것으로 알려진다. 이들은 지중해에 서식하는 다양한 종류의 고둥을 잡아 보라색 염료를 뽑아냈는데, 보라 염료 1g을 만들려면 약 1만 마리의 고둥이 필요했다. 그러니 평민들은 일생에 단 한 번도 구경하기 쉽지 않은 색이었을 것이다.   

신성한 보라색의 명성은 1453년 중세 로마 제국 중 동로마 비잔틴 제국이 함락되면서 위상도 함께 잃게 된다. 그 대신 보라에 빨강을 섞은 진홍색이 황제를 상징하는 색으로 새롭게 떠오른다. 고대 로마에서 시작된 가톨릭은 이러한 영향으로 인해 주교들이 보라색 옷을 입는다.    

한편, 서양에서 이토록 귀한 대접을 받는 보라색은 동양에서 독을 상징하기도 한다. 종종 동양에서 제작된 만화나 게임 등을 보면 독이 보라색으로 표현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 이유로 과거 독약으로 쓰였던 보라색의 투구꽃의 색의 영향인 것으로 추정된다.   

투구꽃은 한국, 중국, 일본 등지에 널리 퍼져 있는 식물로 뿌리에 강한 독성이 있다. 당나라 때부터 대표적인 독약으로 쓰였고 우리나라에서는 사약의 재료 중 한 가지였을 것으로 본다.  

‘분홍’ 원래 남성 상징하던 색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인 1918년, 미국 여성 잡지 [더 레이디스 홈 저널에서는 분홍과 파랑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조언했다.

“분홍(Pink)은 강렬한 색이기 때문에 남자아이에게 더 어울린다. 하지만 파랑(Blue)은 섬세하고 얌전해서 여자아이에게 잘 어울린다”  

놀랍게도 성별을 지칭하는 색깔의 의미가 지금과 완전히 반대이다. 당시에는 남성들이 분홍색 옷을, 여성들이 파란색 옷을 입는 것이 당연한 분위기였다. 

17세기 유럽, 귀족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분홍색 옷을 많이 입었다. 분홍은 빨강에 하양을 섞은 색이다. 당시에는 빨강이 강인한 생명력을 상징하는 색이었기 때문에, 주로 군복에 빨간색을 넣어 입었다. 따라서 빨간색이 섞인 분홍색은 귀족의 ‘권위’를 상징하는 동시에 ‘앞으로 강인해질 소년’을 상징하는 색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하지만 서구 사회에서 전쟁이 잦아지면서 붉은 계열의 군복이 전쟁터에서 쉽게 눈에 띄자, 남성은 파랑을 선택했고 여성은 자연스레 분홍을 택하게 됐다.   

조선 시대에도 분홍색은 지금과 다른 의미로 사용됐다. 조선 시대 문신(文臣) 허목과 채제공의 초상화를 보면 연분홍색의 의복을 입었는데, 이는 조선 시대 신하들의 위상과 기품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한다. 

성별에 따른 특정 색 선호 현상, 기업 ‘마케팅 전략’ 때문? 
나이가 어릴수록 파란색은 남자, 분홍색은 여자 색이라고 인식하는 경향이 크다. 똑같은 모양에 색만 다른 인형을 두고도 남자아이들은 대부분 파란색을 고르고 여자아이들은 대부분 분홍색을 고른다. 하지만 이처럼 남자아이가 파랑을 여자아이가 분홍을 선호하게 된 이유는 아이 용품 판매 회사들의 ‘마케팅 전략’에서 기인한 것으로 분석된다.  

의학이 발달하면서 배 속에 있는 아이의 성별을 알 수 있게 되자, 기업은 아이 용품을 미리 구매하려는 부모를 대상으로 성별에 맞춘 물건을 더 많이 판매하려는 전략을 펼쳤다. 이러한 전략은 아이 용품뿐 아니라 애니메이션, 패션업계 등으로 확산돼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노출됐다. 그 결과 100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머릿속에 ‘분홍은 여자, 파랑은 남자’라는 색상 이미지로 굳어지게 됐다.  

실제로 지난 2014년에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끈 애니메이션 영화 [겨울왕국]이 개봉했는데, 영화를 본 후 한국 여자아이들은 주인공 ‘엘사’가 입은 드레스를 따라 입느라 분홍색보다 파란색을 선호하는 경향이 훨씬 더 늘었다고 한다.  

그러나 여성과 남성 용품의 색을 구분하는 것은 자칫 ‘성 역할 고정관념’을 심어줄 우려가 있다. ‘성 역할 고정관념’은 여성과 남성을 구분해 성별로 다른 사회적 역할을 기대하는 사고방식을 말한다.   

성 역할 고정관념을 학습한 아이들은 ‘여성은 연약하고 소극적이며, 남성은 강인하고 진취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이런 아이들이 나중에 크면 무의식적으로 행동이나 가치관 및 직업선택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한 시민단체는 영유아용품 업체들이 제품의 기능과 상관없는 색깔로 성별을 구분하고, 소꿉놀이를 여아 놀이로 취급하는 등, 아이들에게 ‘성 역할 고정관념’을 강화하고 있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개선을 요구했다.   

이에 인권위는 아이들이 행동이나 태도를 보이거나 놀이와 직업을 선택할 때, 스스로 원해서 또는 자신의 재능이 있고 가능성이 있어서가 아닌 사회가 정해둔 틀 안에 갇힌 관점에 따른 선택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우려했다. 영유아용품 기업 8곳은 모두 이 같은 의견에 동의했고, 앞으로 제품에 성별 표기, 성차별 문구 등을 삭제하거나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 이 기사는 '나침반 36.5도' [색으로 보는 문화사]에 실린 내용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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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듀진 기사 URL: http://www.eduj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8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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