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 찾기보다 생각 자체를 즐기라

   
 

인공지능이 인간을 이기는 시대
인간과 최초로 정식 대결을 펼친 컴퓨터는 1989년 IBM사가 만든 체스 전용 컴퓨터 ‘딥 소트(Deep Thought)’였다. 이 컴퓨터의 실력은 프로기사의 제일 아래 단계인 엑스퍼트(expert) 정도였다.

이 딥 소트와 대결을 벌인 상대는 당시 체스 세계 챔피언이며 최고의 체스 그랜드 마스터인 아제르바이잔 출신의 가리 카스파로프였다. 단판 승부로 치러진 인간과 컴퓨터의 대결에서 승자는 인간이었다.

이에 자극을 받은 IBM사는 딥 소트를 더욱 개량해 1991년에는 세계 2위인 아나톨리 카르포프와, 1993년에는 세계 체스 여자 챔피언인 주디스 폴가와 시합을 펼쳤다.

이 두 번의 시합에서 딥 소트는 인간과 대등한 경기를 펼치다 간발의 차이로 패배했다. 이에 자신을 얻은 IBM사는 1993년 딥 소트보다 월등한 성능을 가진 새로운 컴퓨터 ‘딥 블루(Deep Blue)’의 개발에 착수했다.

1997년, 체스 세계챔피언 카스파로프와 IBM 컴퓨터 ‘딥 블루’가 체스 대결을 벌였다. 결과는 딥 블루의 승리였다. 2011년 미국 ABC TV 퀴즈쇼 <제퍼디>에서는 IBM 컴퓨터 ‘왓슨’이 인간 퀴즈 챔피언을 이겼다.

그리고 2016년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는 이세돌 9단을 이겼다. 체스나 퀴즈, 바둑처럼 사고와 판단력이 중요한 영역에서도 컴퓨터가 사람을 능가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컴퓨터가 인간의 생각과 판단을 대신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인터넷이 뇌를 바꾼다
오늘날은 궁금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인터넷을 검색하면 답을 구할 수 있는 검색 시대다. 생각하고 사유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다. 무엇이든 인터넷 검색 포털에 물어보면 즉시 답이 나온다. 컴퓨터와 스마트폰만 있으면 이 세상 모든 지식과 정보를 다 알 수 있다.

풍부한 상식을 뽐내며 ‘걸어다니는 사전’이라고 불리던 이들도 인터넷 검색을 따라갈 수는 없다. 머리 싸매고 외울 필요가 없다 보니 인간의 지적 능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경고가 들려오기도 한다. 거기에 더해 검색된 정보의 홍수 속에서 옳고 그름의 판단조차 흐려지고 있다는 게 문제다.

니콜라스 카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책에서 미디어혁명과 인간 사고의 확장, 그리고 인터넷의 발달이 인간에 미치고 있는 영향을 정리하고 있다. 인터넷이 숨 가쁘게 발전하고 있어, 처음에는 인터넷이라는 정보의 바다를 헤엄치면서 여유 있게 즐기다가 이제는 정보의 양이 폭주하면서 저자의 말대로 제트스키를 타고 달리는 식으로 겉만 핥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는 인터넷 사이트와 서비스에 익숙해지고 의존하게 되면서 생활습관과 삶이 많이 변했을 뿐 아니라 뇌가 기능하는 방식도 바뀐 것 같다고 고백하고 있다. 마치 이전의 뇌를 잃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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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통해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정보를 수용하기 위해 우리 뇌는 오늘도 혹사당하고 있다. 인터넷 문서를 읽을 때도 아날로그적 방식으로 천천히 읽는 것이 아니라 스캔하듯이 읽게 된다. 이렇게 몇 줄을 한꺼번에 대충 읽다보면 글의 맥락과 전체문서의 개요를 정리하는 능력이 현저하게 감소한다.

검색의 시대, 생각하는 힘을 길러라
간단한 키워드 몇 개를 가지고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은 인터넷의 긍정적인 힘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생각과 기억을 아웃소싱할 수 있다는 생각은 우려스럽다.

오래된 기억을 불러내 새로운 시냅스의 말단을 만드는 작업을 반복하는 것으로 기억을 강화하고, 기억의 유연성과 깊이를 더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터넷을 통한 자료검색도 좋지만 지속적인 독서를 통해 기억에 지식을 저장하고, 생각하는 과정을 통해 지식과 지식을 연결해 나가야 한다.

손끝에서 이루어지는 간편한 검색으로 다른 사람의 지식을 빌려올 수는 있지만 생각의 힘, 지혜를 키울 수는 없다. 검색의 시대일수록 생각하는 힘의 중요성은 더 커진다. 검색보다 사색이 오늘을 살아가는 가장 든든한 생존무기이며 세상을 변화시키는 원동력이다.

제대로 사유하기 위해서는 정답을 찾기보다 생각하는 것 자체를 즐겨야 한다. 아이들에게 질문을 하거나 문제를 풀게 하면 많이 묻는 것이 “맞았어요? 틀렸어요?”다. ‘혹시 틀리면 어떡하나, 정답이 아니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

내가 생각하고 의심해서 도출해낸 것에 자신이 없다. 내 생각에 자신이 없다면 진짜 세상에서는 남이 만들어 놓은 기준에 기대어 살아가야만 한다. 도대체 그렇게 해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충분히 틀릴 수도 있고 정답을 찾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들이 자신이 시간을 들여 생각한 것들이라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칭찬받을 만하다. 그리고 그런 경험들이 쌓여간다면 다음번에는 더 발전된 생각과 지혜를 생산해 낼 것이다.
 

정형권 B2B교육연구소장
해외진출 1호 학습코치, 진로학습 전문가, 인문교육 작가, 드림트리연구소장
저서: <거꾸로 교실 거꾸로 공부>, <거꾸로 학습코칭>, <나를 표현하는 글쓰기, 나를 대신하는 책쓰기> 외 다수

 

*에듀진 기사 원문: http://www.eduj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6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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