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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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2학년 겨울방학 어느 날, 모처럼 월차를 냈다. 이상하게도 그날의 기억은 거실에 앉아 있던 내 모습, 우리집 문과형 아이의 목소리나 표정까지 기억에 생생하다.

나는 거실의 탁자에 앉아 노트북을 정신없이 보고 있었다. 당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제가 요동치고 있었는데, 한창 경제 글에 빠져 있었다. 한 아이는 뭘 하고 있었는지 기억이 안 나고, 이 아이는 자기 방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당시는 우리집도 여느 저학년 맞벌이 집처럼 문제집들을 사주어 하루 몇 페이지씩 풀게 하고, 저녁에 퇴근해서 체크하고 가르치고 숙제를 내주곤 했다. 아이가 수학 문제집을 들고 왔다. 문장제 문제였다.

“엄마, 이거 모르겠어.”
설명해줬다.
그런데 불과 5분도 안 되어 또 문제집을 들고 왔다.
“엄마, 이 문제 모르겠어.”
아…, 여튼 가르쳐줬다.
“문제를 잘 읽어봐.”
근데 불과 5분도 안 지나 또 왔다.
“엄마, 이것도 모르겠어.”
이 아이는 어릴 때 사회성이 좋았지만, 국어력과 수학 이해력이 별로이고 좀 부산했다.
“문제를 잘 읽었니?”
“응.”
“진짜? 문제를 잘 읽으면 풀 수 있는 문제 같은데.”
“문제를 잘 읽었어. 그런데도 모르겠어.”
일단 가르쳐줬다. 그리고 말했다.

“○○아, 이제부터는 모르겠으면, 문제를 소리내어 천천히 생각하며 두 번 읽어봐. 이때 문제에서 중요한 것에 연필로 밑줄을 쳐. 엄마가 하는 걸 보여줄게, 잘 봐.”

초등 수학 문장제 문제를 두 번 낭독하며 연필로 중요한 것에 밑줄을 치는 요령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두 번 읽었는데도 모르겠으면, 그때 엄마한테 물어봐.”
“응.”

나는 다시 노트북을 읽고, 아이는 자기 방으로 갔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아마 얼마 안 됐을 거다.
“엄마, 엄마!”
아이가 큰소리로 외치며 방에서 뛰쳐나왔다.
‘아…, 한 20분만 엄마 좀 내버려뒀으면 좋겠구먼.’

나는 노트북에서 시선을 떼고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아이의 얼굴이 너무 환한 거다. 표정이 지금도 기억에 또렷하다.
“엄마! 문제가 풀려. 소리내어 읽었더니 이해가 돼. 세 문제나 풀었어.”
애가 흥분했다. 나도 환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렇지? 원래 소리내어 읽으면 이해가 더 잘돼. 적어도 초등, 중등 아이들은 그래. 과학자들의 연구결과도 그렇다고 해.”
“헤헤.”
아이는 웃더니 자기 방으로 갔다.

“모르겠는 문제는 두 번 소리내어 읽어봤니?”, 이것은 초등 때 우리집 아이들의 공부 지지대 중 하나였다.

한국 아이들이 글을 휙 보는 습관이 들기 쉬운 이유
사실, 초등 1~2학년 수학 문장제 문제는 아이가 ‘찬찬이’ 읽어보고, ‘진득하게’ 생각하면 거의 대부분 이해하고 풀 수 있다. 그런데 맘이 급한 아이는 문제를 후루룩 읽어버리고, 답이 금방 안 보이면 냉큼 “엄마!”부터 부르고 본다. 엄마한테 가르쳐달라며 교과서나 문제집을 가져와 내밀어버린다.

나는 이후로도 바로 덥석 가르쳐주지 않았다. 아이가 모르는 어휘를 물으면 얼른 대답해줬지만, 문제는 아이가 물으면 가르쳐주기 전에 이 말을 반복했다.
“지문과 문제를 소리내어 두 번 읽어봤니?”
아이가 두 번 낭독하면서 풀어봤는데도 모르겠다고 할 때만 가르쳐줬다.

특히 우리나라 아이들은 글을 ‘휙 보는 습관’이 들기가 쉽다.
뒤에서 따로 얘기하겠지만, 우리나라 아이들은 일반적으로 다른 나라 아이들에 비해 글자를 너무 일찍 배우고, 도움 읽기 과정은 짧고, 너무 어린 나이부터 너무 많은 문제풀이에 노출된다. 부모나 학원의 숙제로 나온 문제들을 빨리 풀어버려야 놀 수 있지 않은가. 이런 이유들로 인해 글을 후루룩 보는 습관이 생기기가 쉽다.

글을 휙 보는 습관은 이후 초등 고학년,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문해력, 이해력, 공부력의 성장을 가로막는 최대 장애물 중 하나이다.

디지털 시대, 읽어도 이해를 못하는 아이들
또 하나,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등에 일찍 노출되는 것도 글을 휙 보는 습관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이와 관련된 얘기를 잠깐 해보자.
우리나라 청소년 문해력에 관한 조사를 보면 눈길을 잡는 대목이 있다. 문해력이 우수한 나라에 비해, 우리 청소년들은 디지털 텍스트를 읽는 능력이 약한데, 사실과 의견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아이들도 꽤 있었다. 

이는 읽어도 독해는커녕 그 글이 사실을 전달하는 것인지, 의견을 쓴 것인지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청소년들에게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질까?

이제 책과 스마트폰 화면의 텍스트를 읽을 때, 우리의 안구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보자. 이와 관련된 연구들이 있는데, 여기서는 쉽게 접근하기 위해 저자가 임의로 이미지를 매우 단순화했음을 밝혀둔다. 세세한 것은 연구의 영역이고, 부모인 우리는 맥락만 알면 된다.

왼쪽은 종이책의 영어 텍스트를 읽을 때, 인간의 안구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안구 추적기로 따라간 것이다. 인간은 묵독을 할 때 글자를 덩어리로 읽는다. 안구가 별색 점 부분을 찍고, 나머지는 빠르게 스치면서 한 번에 쭉 빨아들이며 읽는다.

오른쪽은 스마트폰 화면에 익숙한 사람이 기사 등 텍스트를 읽을 때, 안구의 움직임이다. 시선이 몇 개의 눈에 띄는 핵심 단어들을 찍은 다음에 F자 형태나 지그재그 형태로 죽 흘러내리면서 읽는 경향이 있다. 디지털 미디어의 텍스트 읽기는 ‘훑어 읽기’ 양상이 뚜렷하다.

이런 읽기 방법은 매우 숙달된 독해자가 필요한 자료만 얻기 위해 목적성 읽기를 빠르게 할 때는 괜찮다. 하지만 초중고 학생들은 이렇게 읽으면 안 된다. 아직 독해에 숙달되지 않았고, 배경지식이 부족하며, 읽기 발달이 진행되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아이가 스마트폰을 통해 이런 읽기 습관이 들어버리면, 교과서를 읽어도 이해를 못하게 된다. 어린 나이에 ‘훑어 읽기’에 익숙해지면 ‘깊이 읽기’가 어려워진다. 따라서 디지털 시대에 글을 후루룩 보는 습관은 반드시 고쳐야 한다. ‘모르는 문제 두 번 낭독법’은 단순하지만, 이런 ‘훑어 읽기’ 습관을 고치고 글을 찬찬이 보는 습관을 키우는 방법이다.

오래 생각하는 끈기
공부, 그리고 문제 해결 능력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오래 생각하는 힘, 바로 ‘생각의 끈기’다.

문제를 모르겠으면 두 번 소리내어 읽어본 다음에 물어보라는 것은, ‘너의 머리로 두 번 더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데 시간이 더 걸려봤자, 초등 저학년 문제는 겨우 1~2분밖에 안 된다. 하지만 아이가 좀더 오래 생각할 수 있는 힘을 키워갈 수 있다. 이것은 시작이다.

이것이 성장하면, 중고등 때 어려운 수학 문제를 들고 30분, 1시간, 2시간 넘게 매달리는 끈기가 생기게 된다. 이러한 끈기는 나중에 어른이 되어 자기 일을 할 때까지 연결될 것이다.

공부를 통한 자기 효능감의 시작
당시 이 아이는 모르는 문제를 두 번 낭독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푸는 확률이 높아졌다. 3개 중 2개, 70% 정도는 낭독 과정에서 스스로 풀게 됐다. 초등 저학년이라 더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초등 고학년, 중고등생도 모르는 문제를 소리내어 읽어보면 스스로 풀 확률이 조금이라도 높아진다(이는 과학적 이유가 있다).

문제가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또는 문제를 못 풀었는데, 두 번 소리내어 읽어보니 스스로 이해가 되더라, 이 작은 경험이 이후 아이들의 ‘스스로 해낼 수 있다’는 믿음, 즉 자기 효능감의 기반이 되었다.

또한 자율학습 습관은 자기 효능감에서 출발한다. 아이가 ‘내가 스스로 해낼 수 있다’고 믿어야 자율학습 습관이 자리잡을 수 있다. 모르는 문제를 두 번 낭독하는 과정에서 자기 효능감이 커지고, 이게 자율학
습으로 가는 시작이 되었다.

부모가 편하다
‘모르는 문제 두 번 낭독’은 실제로 해보면 부모가 꽤 편해지는 방법이다. 일단, 아이가 부모에게 모르겠다며 물어보는 경우가 확 줄어들었다.
이것만도 고마운데, 이를 통해 자기 효능감이 생기고 자율학습 습관으로 연결되니 한결 더 편해졌다.

초등 2학년 겨울방학 그날 이후 과도기를 거친 다음, 초등 3학년부터 우리 부부는 공부를 매일 가르치거나 봐주는 것을 슬슬 그만뒀다. 시험공부든 수행평가든 뭐가 됐든, 애들이 알아서 하는 습관으로 발전했다. 엄마는 시험 날짜는 알지만, 그날 무슨 시험을 치는지 과목들도 잘 몰랐다. 시험 기간이 되면 국을 끓이고 과일이나 간식 등을 냉장고에 더 채우는 정도를 했다.

물론 자기 효능감과 자율학습 습관을 키우는 것이 쉽지 않았다. 어려웠다. 좌충우돌 할 때도 꽤 많았다.

유아 때는 유아 때대로, 초등, 중학, 고등 때 모두 고민과 좌충우돌이 있었다. 자잘한 선택의 기로에 자주 섰고, 초등 고학년이 되고부터는 변수가 늘어 이제 네 명이 선택을 놓고 옥신각신하기도 했다. 중학 때는 사춘기 애들과 부딪힐 생각을 하니 머리가 아파, 퇴근 시간인데 집에 가기 싫어 미적거린 날들도 있었다. 그 과정에서도 어떻게든 조금씩 성장해 습관이 자리잡아 온 것 같다.

위 내용은 평범한 직장인 맞벌이 엄마가 성장이 느린 아이들을 교육해 서울대에 입학시킨 김선 님의 이야기이다. 저자 김선은 자녀들이 서울대에 가게 된 힘은 '문해력교육'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김선님이 얘기하는 소리내어 읽기 방법, 모르는 문제 두번 낭독법, 강의식 공부법 등등 책에 나와있는 내용들은 자타가 인정하는 교육법이다.  그것을 실천하게 해주는 내용이 책에 담겨있다. 
책명: 국어머리 공부법(김선, 스마트북스 출판)  


*에듀진 기사 URL: http://www.eduj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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