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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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성장과정은 결국 부모로부터 독립해가는 과정이다. 아이가 태어나 기어 다니다가 걷게 되고 자라는 과정은 점차 부모와 멀어져서 홀로 서는 과정이다. 양육의 최고 목표는 ‘아이의 행복한 독립’이다.

독서교육도 이와 마찬가지다. 아이가 행복한 책 읽기의 경험을 가지고, 부모 품을 떠나 나름의 자기 색깔로 독립해가도록 응원하는 것이다. 독서교육의 최종 목표는 ‘아이의 행복한 독서 독립’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아이의 성장과정에서 부모의 역할이 그러하듯, 아이의 독서 변화도 신중하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 다음은 아이의 독서를 보면서 느꼈던 고민과, 이것을 해결할 단초를 찾아가던 ‘개입’에 대한 이야기다.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이 왜 생소할까?
초등 6학년 말에 이과형 아이가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을 집어들었다. 엄마가 잠이 안 올 때 자주 꺼내 보는 책 중 하나였으니 궁금했던 모양이다. 이 아이는 초중등 때 독서를 좋아했다. 그런데 『임꺽정』 1권을 3분의 1 정도 읽더니 더 이상 읽지 않았다.

『대지』 같은 책은 읽고, 그 얼마 전에 『이윤기의 그리스·로마신화』 시리즈 다섯 권도 재미있게 봤는데, 왜 이 책은 그만 읽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이유를 물어보았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생소하고 어려워서 읽기 힘들어.”

마치 조선시대의 전기수(직업적 낭독가)가 이야기판을 벌이듯, 우리나라 최고의 이야기꾼인 벽초 홍명희가 술술 풀어놓은 이 재미난 이야기 책을 왜 어렵다고 하지? 아이의 말을 듣는 순간 의아했지만 생각해보니 수긍이 갔다.

‘아, 얘네들 세대에는 그럴 수 있겠구나.’

『임꺽정』 1권은 ‘봉단편’인데, 조선시대의 관청, 벼슬 이름들이 줄줄이 등장한다. 아이에게는 어휘도 생소할 뿐더러 배경 역사지식도 부족했다.

한자어 어휘가 난무하는데다가 지금은 별로 사용되지 않는 순수 토박이말들도 우후죽순 등장한다. 구성지게 읊어가는 문체는 엄마 세대에게는 읽을 때마다 맛을 느끼게 하지만, 요즘 아이에게는 생경할 수 있었다. 어린이나 청소년을 위해 최대한 쉽게 풀어쓴 글, 현대어 문투에 익숙한 아이들이 아닌가.

아이 독서, 문학·교양서로 잘 확장되지 못하는 이유
초등 저학년까지 우리 부모들의 독서교육 열기는 자못 뜨겁다. 적어도 독서량에 관한 한 아이들에게 책을 충분히 읽히고 있다(아이들이 행복하게 읽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독서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듯이, 초등 고학년부터 독서가 줄어든다. 본격적으로 학원 공부에 매달리는 시기와 궤를 같이 한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의 독서 이력은 그림책과 동화책, 어린이 교양서적, 과학이나 역사 만화책 정도에 머물고, 이후 문학책이나 교양서적으로 잘 확장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나마 일부 최상위권 아이들이 특목고, 대학 입시를 대비해 생활기록부에 올리느라 소설책 및 교양서적, 과학책을 좀 읽는 정도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마저도 아이가 목표하는 진로와 노력의 일관성이 보여야 한다는 명목 아래 문과 지향 아이는 소설책과 인문책, 이과 지향 아이는 과학책만 주로 읽게 된다는 것이다.

요즘 아이 독서, 과거와 무엇이 다른가?
지금의 중장년층이 어릴 때인 40여 년 전에는 책이 흔하지 않았다. 어린이, 청소년을 위한 책은 더욱 적었다. 그나마 많이 보급되던 초등학생용 위인전집도 한자어 어휘가 엄청 많았고, 중간에 시조나 한시가 많이 등장하는 것들도 제법 있었다.

이처럼 어린이, 청소년용 책이 부족하다 보니, 아이들은 그나마 구할 수 있는 성인용 책을 좀 일찍 손에 들게 됐다. 세계문학이나 한국문학, 『삼국지』 같은 방대한 소설책 말이다.

아이들이 세계문학전집을 읽기란 쉽지 않다. 찰스 디킨스, 에밀리 브론테, 제인 오스틴 정도는 그래도 수월하게 읽어낼 수 있지만, 제프리 초서, 괴테, 도스토예프스키에 이르면 난해하고, 시적 표현으로 가득한 셰익스피어의 맛을 잘 느끼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인내심을 가지고 읽어냈다. 이해가 잘 안 되면 읽고 또 읽었다. 책이 너무 없어서 아쉬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나마 손에 잡힌 이 소중한 책들을 기를 쓰며 읽어내는 과정에서 어려운내용과의 간극을 스스로 메워가고 글맛도 터득해갔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굳이 생경하고 어렵게 느껴지는 책을 쥐고 인내심을 발휘할 필요가 별로 없다. 책이 너무 많아 아쉬울 것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학원 공부 등으로 시간이 없으니 소설책이나 교양서적으로 확장해갈 여력과 의욕도 적다.

우리 어휘와 정서를 잃어가는 아이들
우리집 아이에게는 코난 도일이 벽초 홍명희보다 친숙하고, 서양 신화의 가이아가 우리 신화의 마고할미보다 친숙하고, 셜록 홈스가 걷던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의 런던이 임꺽정이 걷던 16세기 조선 명종 때의 양주보다 훨씬 친숙했다. 어휘력, 독해력의 문제보다 그 ‘정서의 갭’이 더 인상적이었다.

언어는 문화다. 우리글, 우리 문학 속에는 우리 정서와 문화가 녹아 있다. 그런데 아이들이 풍부한 우리 어휘와 멀어지고 있고, 우리 문체의 한쪽을 빠르게 잃어가고 있으며, 이에 따라 우리 정서도 잃어가고 있다. 그리고 ‘우리 문학을 향유할’ 아이들이 점점 적어지고 있다.

이야기와 상상력의 방
SF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우주여행을 떠났던 과학자 쿠퍼(매튜 맥커너히)는 지구에 있는 딸(앤 해서웨이)과 시공간을 초월해서 접속하게 된다. 영화 속에서 쿠퍼는 이상한 공간에서 딸의 ‘수많은 방들’을 맞닥뜨리게 되는데, 각 방은 각기 다른 시간 속의 딸의 방, 다른 세계다.

소설은 작가가 창조하는 또 하나의 세계다. 때로는 우리를 조선시대 한반도 곳곳으로, 1897년 경상도 하동의 평사리로, 16세기 영국 런던으로, 아이작 아시모프가 50여 년간 집필한 『파운데이션』 시리즈의 미래 은하제국 공간으로 이끌고 간다.

때로는 ‘돋보기’를 들고, 나와 같은 시간을 사는 어떤 사람의 일상과 사건, 내면의 풍경으로 끌고 들어가 깊이 천착한다. 시대는 같으나 역시 낯선 방이다.

소설의 책장을 열면, 작가가 만든 세계의 문이 열린다. 우리는 그 속에서 낯선 세계와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의 이야기와 사건을 따라가고, 그들의 감정을 느끼고, 그들의 생각을 엿본다.

우리는 문학이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하는지를 알고 있다. 많은 세계, 많은 방을 볼수록 내 방 또한 풍요로워지고 섬세해진다.

만약 우리 아이들이 우리 어휘, 우리 문체, 우리 정서를 잃어버린다면, 어느 날엔가 소설가 이문구의 문체가 살아 있는 『관촌수필』은 잊혀진 소설, 국어 문제집에서나 어쩌다 발견되는 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표현이 사라지고 문장이 짧아지는 시대
나는 『임꺽정』이 생경하고 어렵다는 아이의 말을 듣고, 고민 끝에 일단 단편소설을 한 편 골랐다.

물론 아이가 성장해 우리 소설을 즐기는 날이 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생에서 한 번쯤, 우리 단편소설 몇 편을 낭독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보를 빠르게 읽는 시대, 정보만이 중요한 듯한 시대, ‘손가락으로 글을 넘겨버리며 눈으로 훑는 시대’, 상세한 묘사나 표현, 깊이 있는 사고 표현들이 사라지고 문장이 계속 짧아지고 있다.

그리하여 아이들은 호흡이 긴 문장, 묘사가 치밀한 글, 사고를 깊이 파는 글과 점점 멀어지고 있다. 글의 호흡이 조금만 길어져도 읽기 어려워한다.

단편소설 낭독은 이러한 아이들이 우리 문체들에 빠르게 익숙해지기 위한 디딤돌이 될 수 있으며, 어휘력도 빠르게 높여준다. 또한 중고등, 대학 및 성인 때 우리 소설을 즐길 수 있는 기초 체력을 키울 수도 있다.

단편소설 몇 편 낭독하기, 실제 시간으로 치면 많이 잡아도 겨우 수십 시간이다. 하지만 효과는 크다. 유럽의 가난한 귀족 가정에서는 어머니나 언니가 책 한 권을 매일 조금씩 읽어주고, 아이에게 읽게 하는 연습을 통해 외국어를 가르치기도 했다.

우리 어휘와 문체를 위한 빠른 접근법
문체와 표현이 아름다우면서도 한국적 정서가 잘 드러나며, 아이가 읽기에 무난한 글을 선택했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이었다. 낭독했을 때 아름다운 단편 중 하나이다.

글맛도 좋을 뿐더러 순수 우리 어휘와 토속어가 많이 등장하고, 문체가 너무 예스럽지‘만’은 않아서 이질감도 덜하다.

배경지식도 많이 필요 없다. 아울러 낭독 과정에서 달밤, 하얗게 핀 메밀꽃 들판, 푸른 달빛이 눈에 떠오르는 시각적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글이기도 하다.
 

중략) 대화까지는 팔십 리의 밤길. 고개를 둘이나 넘고 개울을 하나 건너고 벌판과 산길을 걸어야 된다. 길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붓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중략)

우리집 아이들에게 소리내어 읽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분명 읽다 보면 우리글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느낄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아이들은 나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이 단편소설을 몇 번에 걸쳐 낭독했다.

묵독과는 느낌이 또 다르다. 낭독하면 자신도 모르게 음률을 갖게 된다. 명문은 소리내어 읽으면 맛이 새롭다. 그러하기에 명문이다.

낭독은 에너지가 많이 든다. 우리 인체의 각 기관을 사용하여 정신을 집중해서 읽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역설적으로, 단기간의 짧은 훈련과 그에 따른 효과가 좋은 편이다. 우리는 틈틈이 단편소설 몇 편을 낭독했고 나름 효과가 있었다. 어휘력, 문체 등을 단기간에 익히는 데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다.

아이가 어느 날엔가, 우리 어휘와 정서, 작가만의 독특한 문체로 빛나는 이문구의 『관촌수필』 같은 한국 소설을 읽을 때, 적어도 그리 생경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아이들의 한국 소설 읽기는 한국 문학과 문화의 토양을 키우는 데 낱알 하나라도 보탬이 될 것이다.

나는 그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한다. 스토리텔링을 위한 가장 기초적인 토대를 키울 수 있다면 금상첨화이고 말이다.
 

위 내용은 평범한 직장인 맞벌이 엄마가 성장이 느린 아이들을 교육해 서울대에 입학시킨 김선 님의 이야기이다. 저자 김선은 자녀들이 서울대에 가게 된 힘은 '문해력교육'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김선님이 얘기하는 소리내어 읽기 방법, 모르는 문제 두번 낭독법, 강의식 공부법 등등 책에 나와있는 내용들은 자타가 인정하는 교육법이다.  그것을 실천하게 해주는 내용이 책에 담겨있다. 
책명: 국어머리 공부법(김선, 스마트북스 출판) 


*에듀진 기사 URL : http://www.eduj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2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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