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 문자는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주요 종교는 모두 문자를 전제로 한 경전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어느 의미에선 오직 종교나 문자를 가진 집단만이 역사의 주도권을 갖거나 장기간 생존하는 것이 가능했다는 논지도 설득력을 갖는다. 종교와 문자는 민족의 생존을 위한 ‘와룡’이나 ‘봉추’인 셈이다.

유대교는 천지를 창조한 조물주인 야훼(여호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통해 유대인을 선택했다고 믿는다. 유대교는 모세가 썼다는 모세 5경(구약성서 가운데 창세기·출애굽기·레위기·민수기·신명기의 다섯 율법서)을 히브리어로 기록해 전승해오고 있다.

이 히브리어로 쓴 성서의 존재와 전승이 유대인과 유대교의 생존을 가능케 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히브리어로 된 유대인의 성서는 기원전 250년 무렵 알렉산드리아에 살던 유대인에 의해 당시의 국제어이던 그리스어로 번역됐다.

이것을 보통 ‘70인역’이라고 한다. 오늘날에도 유대인들은 전 세계에 퍼져 있는 회당인 시나고그(synagogue)를 중심으로 히브리어로 된 토라(모세 5경)를 읽고 기도하면서 정체성을 유지해나간다. 민족적으로나 혈통적으로 엄청난 변화를 겪었을 수천 년 세월 동안 그들의 정체성을 하나로 확립해준 것은 바로 이 히브리어의 토라인 것이다.

나아가 초기 이슬람교의 확산 시기 중동 지역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은 코란이 시기적으로 자신들의 경전보다 훨씬 늦게 나온데다, 내용상으로도 자신들의 경전에 상당 부분 의존했다는 점에서 평가절하하는 입장을 취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입장이 두 종교간의 화해에 적잖은 부정적 역할을 했다.

그리스도교는 히브리어로 기록된 구약을 그대로 채용하고, 다시 예수 이후의 신약을 헬라어라고 불리는 그리스어로 기록했다. 이 통용 그리스어는 고전 그리스어가 아니라 당시 일반인들이 상거래 등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던 언어 문자다. 유대인 출신으로 신약의 절대 분량을 기록한 바울이 유대인의 문자인 히브리어가 아닌 당시 세계어인 그리스어를 선택했기 때문에 그리스도교의 세계종교로의 비상이 가능했다는 측면도 강하다.

만일 이 신약을 히브리어로 기록했다면 그리스도교의 세계화는 결정적으로 제약받았으리라는 가정도 가능하다. 어느 의미에선 그리스어로 기록했다는 사실 자체가 보편종교, 세계종교로의 강렬한 의지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이슬람교는 코란을 통해 종교적 교리를 확립하면서 동시에 이 문자(언어)를 만들고 쓰는 민족인 아랍인의 정체성도 강화할 수 있었다. 코란은 그 원래 뜻인 ‘읽다’ ‘읊다’에서 알 수 있듯이,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 마호메트에게 온 하나님의 계시를 그대로 읽거나 읊은 것이라는 데서 나왔다.

114장 6천절로 신약성서의 약 5분의 4 정도 되는 분량의 내용을, 그것도 매우 시적으로 아름다운 말로 읊은 뒤 마호메트 사후 20년 뒤에 기록을 완성했다는 것이다. 어쨌든 코란은 스스로를 아브라함의 똑같은 자손으로 인식하면서도 유대인과 달리 유일신도, 그 유일신을 담은 자기 말로 된 경전도 갖지 못한 아랍인에게 ‘기적’으로 받아들여졌다.

나아가 코란의 권위는 코란 자체를 하나님의 직접적인 계시로 간주한다는 점에서 다른 어떤 종교보다 신도들에게 더 절대적인 권위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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