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동부 지역은 한국 역사의 본토
-고려 왕씨가 중국에 많고 한국에는 별로 없는 이유
-김유신 도로는 중국 양자강 근처에 있고, 박지성 도로는 수원에 있다

[사진=책보고 유튜브 방송 캡쳐]
[사진=책보고 유튜브 방송 캡쳐]

매월마다 나침반 36.5를 유튜브 방송에 소개하는 사람이 있다. ‘책보고’다. 한국 고대, 중세사의 역사적 본토가 중국 동부라며 겁 없이 확장하여 강의하는 인물이다.

책보고 이전부터 민족주의로 만주까지의 역사를 강조하는 전공자들이 있는데, ‘심백강’, ‘이덕일’, ‘복기대’, ‘STB상생방송’ 등이며, 최근 유튜브 방송으로는 ‘우리역사-History’, ‘문사’, ‘이용훈박사의 찐삼국사’, ‘고대사굴착기’ 등 수많은 방송 채널이 중국을 우리 역사의 본토로 해석을 하고 있다.

이들 방송이 주장하는 한국 고대, 중세사 지역은 약간의 다른 해석 차이가 있지만 한반도는 기본으로, 대부분 만주를 포함해 중국 동쪽이 우리 역사의 근원지며 본토라는 해석이다.

오늘날 역사책 원문과 역사적 지역들을 교차시키며, 가장 진보적인 역사 해석을 보여주어 국내를 떠들썩하게 만들며, 세간의 화제를 받고 있는 유튜버가 ‘책보고’다.

일반인에게는 매우 새로운 해석 시각을 전달해준다. 책보고가 나침반 36.5에 연재를 시작할 때쯤에는 전국 구독자가 3만여 명이였으며 현재는 약 9만 명으로 확대되었다. 구독자층도 세대별로 다양하게 분포한다. 나침반 36.5의 역할이라기보다는, 누구도 부정하기 어려운 새로운 관점에서 역사를 재해석하고 있어 인기를 끄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책보고가 나침반 36.5에 연재를 하면서 학생들에게 해주는 큰 역할이 있다. 학생들, 즉 배우는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깨는 사고이다. 우리는 배움과 경험으로 스스로를 고정관념에 가둔다. 하지만 이 고정관념은 미래의 발전을 막는 매우 무서운 존재이다. 이 고정관념은 창의력을 묵살하게 만든다. 이를 깨고 나와야 객관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며 비판을 할 수 있으며, 대안제시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학생들 중에는 공부를 못한다고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학생들이 의외로 많다. 바꾸려고 시도하지 않는다. 학생들을 상대하면서 느낀 점은 고정관념이 의외로 탄탄하게 굳어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공부시간이 적으면 공부를 못하는 게 당연한 듯 보이지만, 집중력만이라도 있으면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학창시절에 누구나 꿈꾸는 것이 소위 명문대의 진학이다. 명문대의 진학은 꿈이라고만 생각한다. 시간이 없고 늦었다고 도전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전혀 그럴 필요 없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학생들이 얼마든지 많이 있다.

사회에서도 늘상 일어나는 일이다. 알래스카 에스키모인에게 냉장고를 파는 일, 사막에 난로를 파는 일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냉장고와 난로 없이는 살 수 없다. 이제는 그들 모두가 필요한 물품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것도 고정관념을 깨트린 일이다. 이런 고정관념을 깬 사례는 우리 사회에는 너무도 많다. 스마트폰도 그 중에 하나다.

철학자 데카르트가 말했다. ‘이미 주어진 내용(전제)부터 의심하라.’ 창의력은 그냥 생기지 않는다. 기존의 해석을 의심하고, 다시 생각해야 한다.

과거 아니 현재에도 우리 성씨는 막연히 중국에서 왔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왜? 이유를 아는 사람은 없다. 그렇단다. 이유도 없이 누군가에 의해 전달되고 전달된 말을 당연한 듯 받아들인다.

중국은 예부터 큰 나라였다는 근거 없는 믿음도 존재한다. 따지고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조선시대 때 만들어진 터무니없는 역사 날조에 가깝다. 하지만 중국의 역사를 보면 통일왕조가 적으며, 각지에 찢어져 있던 나라들이었으며, 대부분 한족이 아닌, 이민족들이 세운 국가였다. 우리가 막연히 생각하는 중국이란 나라는 없었다.

한국의 중세시기인 고려의 수도는 중국 땅에 있었고, 고구려, 백제, 신라 모두 중국 동부에 중심 수도가 있었으며 그 유역에 모두 자리하고 있었다. 약 500여 년을 지탱했던 고려의 왕씨가 한국에는 별로 없는데, 중국에서 가장 많은 이유는 무엇인가? 조선이 건국할 때 왕씨를 죽이고, 고려의 지리지, 역사책을 불태웠을까?

현재 김해 김씨의 ‘김해마을’과, 신라 ‘김유신 장군 도로’, ‘천관녀’라는 기생집 앞에서 김유신이 말의 목을 베었다는 천관산, 당나라에 가본 적 없는 ‘원효대사’ 이름의 마을들이 모두 상하이 주변 양자강에 존재한다. 이런 연계되는 곳들이 정말 우연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중국이 우리 것을 베껴갔다는 주장을 할 수도 있지만, 이것도 상상하기 어렵다. 한국에는 없는 한국의 역사적 지명이 중국에 있는 이유에 대해서 한국 학계는 답을 못하고 있으면서 일제 강점기 시절 가르쳐 준대로 답을 하고 있다.

박지성 도로가 수원에 있다. 수원에 있는 이유는 박지성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김유신 장군의 도로가 중국에 있다면 중국이 그의 고향이지, 한반도가 아니다. 상식이다. 상식을 뒤엎으려니 해석이 복잡해진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한국사는 매번 추정하고 비정하며 상상하니 역사 내용도 도통 한반도내에서 일치하지 않는다. 삼국사기 기록에 백제왕이 사냥 나간 ‘부산’이 한반도에서는 신라 땅의 부산이며, 신라의 ‘공주’가 지금 백제의 ‘공주’다. 엉터리 해석으로 엮여진 책을 한국사로 배우고 있다.

고구려는 북한 쪽, 백제는 충청도와 전라도, 경상도는 신라 땅이라고 배웠으나, 실제 역사기록에는 중국 동남부에서 고르게 표기된다. 고동색과 초록색으로 구분하자면 초록색으로 그려진 동남부, 홍콩 근처에서 만주에 이르는 푸르른 해안가 지방은 모두 백제와 신라 땅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반도의 거의 모든 지역명은 이상하게 중국의 중서부의 지명들은 없는데, 오직! 중국 동부와 방위각부터 거의 동일하다. 이를 전문용어로 ‘데칼코마니’ 기법이라고 한다. 의도되지 않으면 나타날 수 없는 현상이다.

강릉, 양양, 광주, 나주, 대전, 충주, 제주, 해남 등, 삼국사기와 중국 기록을 보면 역사적 거리와 위치가 중국 땅에서 일치하고 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신라방이라고 중국 땅에 있는 신라마을이라고 들어봤고, 일시적인 거주 장소로 배웠을 테지만, 기록에는 신라말을 사용했고, 신라 장보고의 영토로도 기록되어 있다. 또 실제로 중국에는 56개 이상의 신라마을이 현재 존재하며 살아간다. 이들 지역이 우리 조상 땅이라는 것이 너무 당연한 주장이지만, 일제가 주입해준 한반도 역사관에 갇혀, 또는 그 이전 조선 시대 역사관에 갇혀 이렇게 당연한 해석과 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재 우리들이다.

나침반 36.5에 연재하고 있는 책보고의 한국사는 누구나 역사 기록의 원문을 보며 현장을 비교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중국 공산당 정부가 한자를 고쳐놓아 읽고, 검색하기 어렵게 만들어 놓았지만, 네이버 한자사전 등에서 간자체<->번자체로 역사기록의 한자들로 변경해 확인 가능하며, 여러 지도들과 구글 위성지도들로 누구나 역사의 현장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보여주며 일반인들을 계몽시키며, 큰 동조를 얻으면서 역사를 알리고 있다.

신라는 사자, 물소, 원숭이, 낙타가 유명했다는 역사기록, 고려는 낙타와 원숭이 등은 자주 등장하는 동물이지만, 한반도에는 없는 동물들이다. 한국과 중국의 정통 역사기록들을 근거로 책보고는 중국의 동남부 지역은 고려 시대까지 우리역사의 본토였다는 것을 주장한다.

한국사는 그동안 일제 식민지 시대 만들어진 역사 해석, 즉 식민사관의 관점에서 기술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비판을 받아왔고 지금도 역시 그렇다.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 역시 식민사관의 관점에서 쓰여졌다고밖에 볼 수 없다.

늘 중국과 일본의 역사공정에 쉬운 목표가 되고 있다는 문제가 대두된다. 그럼에도 전혀 수정되지도, 받아들여지지도 않는다. 그만큼 정부, 행정, 역사 관련 쪽 담당들이 그들이 암기했던 식민사관의 해석을 의심하지 않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몇 년 전 대한민국 국회에서 일본과 중국의 역사 공격에 대항해 ‘동북아역사재단’을 만들고, 한국 역사지도를 만들어 오라고 수백억을 지원했더니, 독도를 빼고 지도를 그려 온 사건은 유명하다.

당연히 동북아역사재단은 국가에서 운영하는 단체이다. 이렇게 주변국의 입김과 로비에도 쉽게 넘어가고 있다. 한국사, 특히 고대사와 중세사 (고조선부터 고려)를 연구하는 교수, 학자들이 식민사관을 근거로 논문을 받고, 박사학위를 받아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발생되는 현상이다.

배운 것과 다른 역사 해석을 가지게 되면, 박사 따기도 어렵고, 열외가 되어 교수도 될 수 없는 환경이 한국 학계에 자리하고 있다. 구조적 문제이다. 반드시 변화가 필요하다. 학계에서 일부 학자들이 노력한다고 달라지지 않는다. 오직 국민들의 관심만이 바꿀 수 있다.

우리는 우리 역사를 찾아야 한다. 우리 국민들이 아는 만큼 역사 기록도 되찾을 수 있다. 그동안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던 고정관념을 탈피하자.

 

* 에듀진 기사 URL: http://www.eduj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90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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