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극 '프라이드'(사진제공=뉴시스)

사랑의 역사는 부정합이다. 퇴적이 중단된 뒤 다시 퇴적이 진행돼 시간의 공백이 있는 부정합과 같다. 서로에 대한 감정이 퇴적되다가 어느 순간 뚝 끊기지만, 돌이켜보면 부정합처럼 쌓여 있다. 

한국 라이선스 초연 중인 알렉시 캠벨의 연극 '프라이드(The Pride)' 속 연인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들 사랑의 퇴적층에는 외부 요인으로 부정합이 생긴다. 사회의 편견이 심한 동성애자들이기 때문이다. 

1958년과 2014년을 넘나들며 성소수자들이 사회의 억압과 갈등 속에서 사랑과 정체성, 자긍심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1958년 규율과 체면을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에서 자신의 정체성도 파악 못 하는 '필립'과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는 동화작가 '올리버'. 2014년 성실하고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다큐멘터리 사진가 필립과 미워할 수 없는 사랑스러움을 소유한 게이잡지 칼럼니스트 올리버.

눈길을 끄는 부분은 양 시대의 필립과 올리버를 배우 한 명씩이 연기한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필립과 올리버가 두 시대에 맺은 관계가 자연스레 역사의 퇴적을 보여준다. 

1958년에 동성애는 하나의 질병이다. '프라이드' 속에서 자신의 동성애적 정체성을 거부, 아내 '실비아'와 결혼한 필립은 결국 병원에서 동성애에 대해 억지로 구토를 유발하는 극단적인 치료를 받는다. 

2014년 동성 연인에게 생기는 문제는 사회적 시선보다는 당사자들의 개인적인 문제다. 올리버의 자유분방한 바람기가 문제다. 필립과 올리버 사이를 응원하는 친구 실비아의 말마따나 편견과 싸움 끝에 그나마 권리를 얻어낸 상황이다. 

56년 사이 성소수자들의 싸움에는 공백도 있었지만 그로 인해 부정합으로나마 모양을 갖춘다. 그렇게 동성애의 역사는 사랑의 역사, 더 나아가 정체성의 역사로 쌓인다. '프라이드'는 그래서 단순히 동성애 이야기가 아닌 자아를 찾는 소수자의 이야기가 된다. 

역사는 개인에게 폭력적이다. 개별적인 역사는 묻어버린다. 소수자의 이야기는 오죽하랴. '프라이드'는 성소수자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소수자 이야기에 숨결, 나아가 역사를 불어넣는 묘를 발휘한다. 

연극은 필립과 올리버가 게이, 레즈비언, 트랜스젠더 등 성 소수자들의 자긍심을 높이고 권리를 인정받기 위해 벌이는 행진인 '프라이드 퍼레이드'를 행복한 모습으로 지켜보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연극 제목 역시 이 퍼레이드에서 따왔다. 두 사람은 아흔이 넘어서도 '레이디 가가' 머리를 하고 퍼레이드에 참가한 노인을 보며, 저렇게 늙었으면 좋겠다고 웃는다.

연극 속 실비아가 이를 긍정하는 상징이다. 밝고 건강한 정신을 지닌 그녀는 소수자를 어떻게 지켜보고 응원해줘야 하는지를 증명한다. 

안정적인 목소리를 지닌 이명행의 필립은 신뢰를 준다. 사랑스런 박은석의 올리버는 안고 싶다. 청순함과 생기발랄함을 오가는 김지현의 실비아는 삶에 대한 긍정을 보여준다. 이들의 진심에 빠져들다 보면 동성애에 대한 낯섬은 잊혀진다. 러닝타임이 인터미션 15분을 포함, 무려 3시간이지만 역사가 퇴적된 시간에 비할 바 아니다. 노골적인 대사로 인해 18세 이상 관람가이나 생각보다 수위는 높지 않다. 

뮤지컬 '살리에르'의 정상윤이 이명행과 함께 필립, '블러드 브라더스' '그날들'을 통해 뮤지컬배우로 입지를 다지고 있는 오종혁이 박은석과 함께 올리버를 나눠 맡는다. 연극배우 김소진과 김지현이 실비아 역에 더블캐스팅됐다. 최대훈, 김종구가 출연한다. 연출 김동연, 번역 김수빈, 각색 지이선. 11월2일까지 아트원시어터 2관. 연극열전. 02-766-6007

소수자들의 역사를 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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