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은 ‘기준점’의 영향을 받는다 
- 닻이 내려진 위치가 결정의 관건! 
- 전문가도 피하지 못한 ‘정박 심리의 덫’ 

▲[나침반 36.5도] '인문 다이제스트'에 실린 콘텐츠 이미지     
▲[나침반 36.5도] '인문 다이제스트'에 실린 콘텐츠 이미지     

인간은 ‘기준점’의 영향을 받는다 
[서유기]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원숭이 손오공은 사람의 지식과 힘을 상징한다. 자만심이 강했던 손오공이 부처님과 내기를 한다. 신통력으로 땅 끝까지 가보겠다는 것이었다. 손오공은 근두운에 올라타 대륙을 뛰어넘어 오봉(五峰)의 산까지 날아가 자신이 이겼다고 확신했으나 부처님 손바닥에 머물러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마침내 손오공은 겸양을 배운다.  

사람의 능력은 손오공과 같다. ‘제아무리 뛰어봤자 부처님 손바닥’이라는 말처럼 문제 해결 능력에 한계가 있다. 행동경제학이 이 사실을 그냥 지나칠 리 없다. 다음은 고등학생을 임의로 두 집단으로 나눈 후 진행한 실험이다.  

다음 곱셈식의 값이 얼마인지 계산기 없이 5초 안에 답하시오.  
A집단: 8 × 7 × 6 × 5 × 4 × 3 × 2 × 1  
B집단: 1 × 2 × 3 × 4 × 5 × 6 × 7 × 8   


여러분의 답은 얼마인가. 참고로 두 곱셈식의 값은 똑같이 40,320이다. 여러분은 정답에 가까운 수치를 답했는가?  

암산으로 답하라 했으니 애초부터 정답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연구자들의 관심은 두 집단에서 나온 답에 의미 있는 차이가 있는지 없는지에 있었다. A집단에 속한 고등학생들이 답한 값의 중앙값을 구해보니 2,250이었다. B집단의 중앙값은 512였다. 두 집단의 대답에 매우 커다란 차이가 드러났다. 이유가 무엇일까? 왜 A집단의 답이 B집단의 답보다 4배 이상 컸을까?  

이제 학생의 시각으로 가보자. 5초라는 짧은 시간 안에 곱셈식을 암산하는 일은 특별한 재능을 보유한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애초에 불가능하다. 대개는 처음 몇 개 숫자까지 암산하고 그 이후에는 암산 값을 바탕으로 어림짐작해 답한다.   

A집단은 8부터 암산하기 시작한 탓에 7까지만 계산하더라도 56이라는 커다란 수치를 얻었다. B집단은 1부터 암산하기 시작한 탓에 4까지 암산하더라도 24에 불과하다. 이쯤에서 지금까지 암산으로 구한 값을 얼마로 불리는 것이 정답에 가까울지 순간적으로 판단한다. 이 고민과 조정 과정에서 지금까지 구한 암산 값이 이후 추측 작업의 기준점이 된다.   

A집단은 56이라는 기준점에서 수치를 늘리는 작업을 시작한다. 반면에 B집단은 24라는 기준점에서 수치를 늘리는 조정을 한다. 아무리 숫자를 늘린다 하더라도 원래 기준점의 영향을 받는다. 결과적으로 기준점이 작은 B집단이 제시한 답은 기준점이 큰 A집단이 제시한 답보다 작을 수밖에 없다.  

이런 현상을 닻 내림 효과(anchoring effect)라고 한다. 트버스키와 카너먼은 논문에서 이를 ‘닻(또는 기준점)으로부터의 조정’으로 명명했는데, 이후 닻 내림 효과라는 용어로 더 널리 쓰이고 있다. 기준점 효과, 앵커링 효과, 정박 효과, 기준점 휴리스틱 등 다양하게 번역된다.   

이 용어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배와 닻의 관계를 생각해야 한다. 배는 바다에서 한 곳에 멈출 때 닻을 내려 배를 고정한다. 이제 배는 닻을 중심으로 닻줄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만 움직일 뿐이다. 사람의 뇌가 하는 조정 작업도 이와 같다는 것이다. 닻이 처음 내려진 위치, 즉 기준점이 그 이후의 조정 작업을 구속한다. 그래서 최선의 해답을 구하는 노력이 한계를 드러낸다.    

닻이 내려진 위치가 결정의 관건!  
닻 내림 효과를 보여주는 유명한 실험이 하나 더 있다. UN 회원국 가운데 아프리카 국가가 차지하는 비율이 얼마인지를 실험 참여자에게 질문했다. 단, 실험 참여 전에 이들은 0부터 100까지의 숫자가 적힌 커다란 돌림판을 돌렸다. 이 돌림판은 10이나 65 가운데 하나에 멈추도록 연구자에 의해 사전에 조작돼 있었다. 물론 실험 참여자는 이 조작 사실을 모른다.  

이제 각 참여자에게 돌림판에서 나온 숫자가 자신이 생각하는 아프리카 국가의 비율보다 큰지, 작은지를 답하게 했다. 이 질문의 의도는 실험 참여자에게 돌림판 숫자를 기준점으로 각인시키려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각자가 생각하는 아프리카 국가 비율을 말하도록 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돌림판 숫자가 10이었던 참여자들이 응답한 아프리카 국가 비율의 평균값을 구하니 25퍼센트였다. 반면에 돌림판 숫자가 65였던 참여자들이 응답한 평균값은 45퍼센트였다. 참고로 실험 당시 UN 회원국 가운데 아프리카 국가의 비율은 32퍼센트였다.   

돌림판에서 나온 숫자는 이 문제의 정답과 아무 관계가 없다. 사람들에게 돌림판의 숫자가 아프리카 국가의 비율을 추론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지를 질문하면 분명히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고개를 저을 것이다. 그러나 실험 결과는 엄연히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닻 내림 효과 때문이다. 돌림판의 숫자가 무의식중에 닻으로 작용했고 실험 참여자들이 아프리카 국가의 비율을 추정할 때 닻을 기준으로 해서 조정한 탓이다.  

전문가도 피하지 못한 ‘정박 심리의 덫’ 
닻 내림 효과는 가치나 가격을 정확하게 평가하기 힘든 부동산이나 중고품 거래 협상 같은 경우에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몇 명의 행동경제학자는 오랫동안 부동산 중개업을 해온 전문가를 대상으로 어느 특정 주택의 가치를 평가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연구자들은 중개업자를 임의로 네 집단으로 나누고 그 주택의 상세한 정보가 담긴 10쪽 분량의 자료를 나눠줬다. 자료의 모든 내용은 한 가지만 제외하고 같았다. 유일한 차이는 주택의 희망 판매 가격을 다르게 설정했다는 점이다. 자료를 정독한 후 20분 동안 해당 주택의 내외부와 인근 지역을 살펴보도록 했다. 마지막으로 중개인에게 주택의 가치가 얼마라고 생각하는지 각자의 평가 금액을 제시하도록 했다.   

희망 판매 가격이 12만 달러라는 정보를 받은 집단에 속한 중개인은 주택의 가치를 평균 11만 달러로 평가했다. 반면에 희망 판매 가격이 15만 달러라는 정보를 받은 집단에서는 평균 13만 달러라는 후한 평가가 나왔다. 같은 주택에 대해서 해당 분야 전문가들이 내린 평가가 희망 판매 가격(닻 또는 기준점)에 따라 달라진 것이다.   

닻 내림 효과의 영향 말고는 해석하기 힘든 결과이다. 전문가도 닻 내림 효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방증이다. 집의 정확한 가치를 모르는 상황에서 높게 설정된 닻(희망 판매 가격)을 접한 중개업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주택의 긍정적인 측면이나 장점에 더 많이 이끌리고 주택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음을 보여준다.   

더 심각한 실험도 있다. 여러분은 이 세상에서 가장 공정하고 신중해야 할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판사의 판결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현실적으로도 정말 그럴까.  

이에 관심을 가진 연구자가 흥미로운 실험을 진행했다. 이번에는 경험이 풍부한 판사를 실험 대상자로 끌어들였다. 판사를 두 집단으로 나누고 특정 사건에 대한 자료를 제공했다. 여기까지는 집단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 이 상태에서 한 집단에는 이 사건에 대해 검사가 12개월을 구형했다고 알려주고, 다른 집단에는 검사가 34개월을 구형했다고 알려줬다.  

이제 판사에게 판결을 해보도록 했다. 동일한 사건이고 같은 내용의 자료를 읽었으므로 두 집단 사이에 형량의 차이가 없어야 한다. 그러나 검사의 구형량이 12개월이었던 집단에 비해서 34개월이었던 집단의 판사가 내린 형량이 평균 8개월이나 많았다.   

구형량이 닻이 됐기 때문이다. 경험이 풍부한 판사들조차 닻 내림의 영향을 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직 놀라기는 이르다. 판사에게 검사의 구형량이라고 알려준 것은 실은 법과 전혀 관계없는 컴퓨터 전공 대학생이 정한 구형량이었다. 헛웃음이 절로 나온다.    

방증(傍證) | 사실을 직접 증명할 수 있는 증거가 되진 않지만, 주변의 상황을 밝힘으로써 간접적으로 증명에 도움을 줌. 또는 그 증거   

교실 속 행동경제학 토론+ 
◆ 닻 내림 효과에 의해 자신의 선택이 영향을 받은 사례를 찾아보자.  
◆ 중고 시장에서 물건을 사면서 판매자가 제시한 높은 가격 때문에 결국 원래 생각보다 많은 돈을 지출한 적이 있는가? 이때 거래 결과에 만족했는가?  
◆ 닻 내림 효과를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제공 | 해냄출판사

*에듀진 기사 URL: http://www.eduj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8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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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는 진로 진학 매거진 '나침반 36.5도' [인문 다이제스트]에 실린 내용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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