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이 중에서도 최초로 명궁으로 기록된 영웅

[사진=동이영웅전]
[사진=동이영웅전]

이예(夷羿)는 활을 잘 쏘는 동이 중에서도 최초로 명궁으로 기록된 영웅이다. 이예라고 하여 이름 앞에 ‘이(夷)’가 붙은 것은 그가 동이인 것을 의미한다.

때로는 임금이라는 뜻의 후(后)를 붙여 후예라고도 하는데 이는 그가 하나라를 빼앗아 임금이 되었기 때문이다. 예는 소호의 후손 가운데 요·순시대에 형벌을 주관하는 대신을 지낸 고요(皐陶)의 가까운 자손이며, 고요의 성씨와 같은 언(偃)씨라 한다. 그는 유궁(有窮)이란 나라에 살았는데 그 나라에 대하여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으나, 이예의 선조 고요가 세운 나라로 생각된다.

고요는 대단히 훌륭한 인물이었다. 공자의 언행을 기록한 대표적 저서『논어』에 보면 “순 임금이 천하를 얻은 후 무리 중에서 선발하여 고요를 기용하였다”는 구절이 있다. 또 『사기』에는 “우 임금이 즉위하자 고요를 천거하여 정사를 맡기려 하였으나 고요가 사망하였다”고 사마천이 기록하였지만, 고요는 단군 임검이라 불가하였다는 또다른 표현이 아닐까?

중국측 사서의 기록과 우리 『규원사화』 및 『단군세기』의 기록을 연결시켜 찾아볼 필요가 있는데, 요·순시대에 고요는 형법과 교칙을 제정하여 ‘오형과 오교’를 시행하였고, 이때부터 사회가 화합하고 천하가 크게 다스려졌다 하였다.

유궁은 지금 산동성의 곡부에 가까운 지역으로 곡부의 옛 이름은 궁상(窮桑)이라 하였다. 유궁을 궁석이라 한 기록도 있으므로 이 궁석과 궁상은 동일한 곳으로 보아야 한다.

이런 추정을 뒷받침하는 사실은 예의 조상 소호 금천씨가 궁상에 도읍하였고 그 후손 고요가 곡부(궁상)에서 태어났으므로, 후손인 이예가 그 가까운 곳에 산 것은 아주 자연스럽다. 복희씨의 후손 풍씨, 소호의 후손 영씨와 언씨 등이 모두 곡부에서 멀지 않은 산동지역에 살았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예의 영웅적 면모를 한 마디로 보여주는 기록이 『산해경』에 들어 있다. “적수(강 이름) 사이에 인예(仁 ; 仁은 夷와 같음)가 아니면 오를 수 없을 만큼 험준한 산이 있다.” 이 구절에 대해 어진 사람이거나 이예와 같이 재주있는 사람만이 오를 수 있다는 해설이 있다. 이예의 영웅적 행적은 여러 기록에 산발적으로 보이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을 살펴보자.

요가 제왕이 되기 전 하늘에 열 개의 태양이 나란히 나타나 오곡을 태우고 초목을 마르게 하여 백성들은 먹을 것이 없고, 그 와중에 여러 이상한 짐승들이 출현하는 대재앙이 일어났다. 요는 활을 가장 잘 쏘는 이예에게 그 재앙을 해결하도록 부탁하였다.

이예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9개의 태양을 활로 쏘아 떨어뜨려 하나만 남겨 두고, 이상한 짐승들을 모두 죽이거나 사로잡았다. 천지가 정상으로 돌아와 만민이 기뻐하는 가운데 요를 임금으로 삼았으니 이예가 그 일등 공신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10개의 해가 나타날 수는 없으므로 태양은 삼족오, 해를 의미하며 해는 동이의 왕을 상징하므로 9개의 태양은 구이족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겠다. 동이는 대단히 강성하였기에 화하족 왕의 요구에 의해 이예가 동이 왕들을 무찌른 것으로 파악된다. 그 후에야 요가 제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위 이야기는 요가 제왕이 되기 전이라고 하였으나, 당시는 이예가 살던 시기가 아니라 그의 선조 고요의 시기였으므로 잘못 전해진 것이다. 실제로는 몇 대를 더 지나 하나라 시조 제우의 손자 태강 때가 이예의 활동한 시기이다. 그러나 이처럼 오래된 이야기에서 몇 대 정도 건너뛰는 것은 흔한 일이다.

태강이 사냥만 좋아하고 백성을 불쌍히 여기지 않아 이웃 나라 유궁국의 이예가 그를 몰아내고 하나라의 왕이 되었다는 것이 정사(正史)의 기록이다. 중국 정사란 동일한 사건에 대해 해석을 달리하는데, 이처럼 포장을 잘 하는 것이 한족의 특기이다.

그런데 이예는 오만해져 자신의 특기인 활만 믿고 태강처럼 백성을 돌보지 않았으며 들판에서 사냥하는 재미에 빠졌다. 이예는 또 어진 신하를 버리고 한착이란 좋지 않은 자를 재상으로 등용했다. 한착은 아첨을 하고 뇌물을 베풀며, 백성을 우롱하고 이예를 사냥의 즐거움에 빠지게 했다. 그의 목표는 말할 나위도 없이 나라를 빼앗는 데 있었다. 한착은 왕후인 이예의 부인과 공모하고 사냥에서 돌아오는 이예를 부하를 시켜 죽여버렸다.

한착은 그 시신을 삶아서 이예의 아들 왕자에게 먹이려고 하였지만, 그는 차마 아버지의 고기를 먹을 수 없어 굶어 죽고 말았다. 한착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예의 처첩을 차지하여 아들까지 낳았다. 아들 요는 짐관과 짐심의 두 중신을 제거하였으나, 미가 중신들을 따르는 무리를 모아 20년 만에 한착을 쳐부수고 태강의 혈육인 소강을 옹립함으로써 하나라는 다시 왕실을 잇게 되었다.

이예는 대재앙을 해결한 영웅으로 등장하였지만, 최후는 매우 비극적인 이야기로 끝나는데 동이인 그가 9개의 태양을 활로 쏘아 떨어뜨렸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예가 한착의 부하에게 죽었다고 했는데 그를 죽인 사람은 다름이 아닌 그의 제자 봉몽이라는 설도 있다.

일반적으로 봉몽은 이예와 함께 어깨를 나란히 했던 명궁으로 알려져 있다.『맹자』에는 봉몽이 이예의 제자였는데 천하 제일의 명궁이 되기 위해서는 스승인 이예가 없어야 하기 때문에 그를 죽였다고 했다. 여기에서 믿는 가까운 사람에게 배신당하는 경우를 비유하는 속담이 생겼으니 그것은 ‘이예를 죽인 자는 바로 봉몽’이라는 것이다. 한착설보다는 봉몽설에 더 신빙성이 간다.

이예에 관하여 『초사』「천문」에는 다음과 같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예는 어째서 해를 쏘았는가? 까마귀는 어째서 깃털을 떨구었는가?” 『초사』는 서기 전 4~3세기 초나라의 굴원이 쓴 것으로 「천문」은 우주에 대한 의문을 하늘에 묻는 형식으로 되어있다.

여기의 까마귀는 해 속에 산다고 믿는 세 발 달린 까마귀 즉 삼족오를 말한다. 그러므로 이 의문에 대한 답은 해 속의 삼족오가 이예의 화살에 맞아 죽으며 그 날개를 떨어뜨린 것이 된다. 당시 붓을 잘못 놀려 죽임을 당하는 소위‘필화의 난’을 당하지 않으려면 은유적으로 표현하거나 동일 음가를 지닌 다른 뜻의 한자를 써야 했다.

『초사』에는 이예에 대하여 또 이렇게 썼다.

제(帝)는 이예를 시켜

하족(夏民)이 재앙을 이겨내게 했다.

그러나 어찌 그 하백을 쏘고

또 그의 낙빈을 아내로 삼았는가?

하나라 백성들의 재앙을 고치게 했다는 것은 앞에서 본 해와 짐승의 재앙을 말한 것으로 그것이 하나라 때이며 요 임금 당시가 아님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그런데 이예는 부탁으로 재앙을 해결하는 외에 쓸데없는 짓까지 하고 말았으니 하백을 쏘고 그 아내를 취한 것이다.

하백은 황하의 신인데 그를 쏜 것은 그의 아내를 취하기 위해서였을까? 낙빈은 복비라고도 불렸는데, 굴원은「이소」에서 그녀를 미모나 자랑하고 교만하며 매일 놀기만 하는, 예의를 모르는 미녀로 묘사했다. 한편 이예가 이렇게 남의 아내를 취한 사이에 정작 자신의 아내는 멀리 달나라(월지?)로 달아나 버렸다.

『회남자』에는 이예의 아내를 항아라고 했으며 상아라고도 쓴다.

이예는 서왕모에게서 죽지 않는 약을 얻었는데,
항아가 훔쳐 달로 달아나 아쉽게도 잃어버렸다.

이예의 이야기는 신화나 전설적인 요소가 섞여 있어 그가 실재한 역사적 인물이었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을 수 있다. 이 부분이 특히 그렇다. 예는 곤륜산에 사는 서왕모에게 불로불사의 약을 달라고 졸랐는데 만약 그가 신선의 세계에 속했다면 그런 약은 불필요했을 것이다.

불사약을 간청한 것으로 보면, 9개 해를 쏜 벌을 받아 이예는 신선의 세계에 속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닐까? 일설에는 이예가 쏘아 떨어뜨린 아홉 태양이 상제의 아들들이었기 때문에 상제의 노여움을 샀다고 한다. 어쨌든 죽지 않는 귀한 약을 단 한 번의 조건부로 서왕모로부터 어렵사리 구했는데, 그의 아내가 이를 훔쳐 달로 달아나 버렸다.

항아는 이예에게 복수로 이렇게 한 것으로 해석되는데, 달로 도망친 그녀의 모습도 아름다운 자태가 아니라 두꺼비로 변해버렸다고 한다. 이를 통해서 보면 남편을 저버린 항아의 행위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 못했다는 것인데, 고구려 고분벽화의 천정에 달 속의 두꺼비가 표현된 것은 이러한 이야기 때문인가?

여기서 확실한 점은 9개 태양은 동이의 9명의 왕(9이족)을 의미하며, 이예가 사주를 받아 처리함으로써 동이의 세력이 위축되었다는 것이다. 동이의 전설적인 명궁 이예는 순진하여 한족 왕의 간교한 묘략에 그만 넘어갔다. 또 미녀에 넘어가고 아내에게 버림받는다. 명궁이기에 기구한 인생을 살았던 이예를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게 되었고 이 이야기를 신화에 담아서 이처럼 전승하게 된 것이 아닐까?

곤륜산 서왕모에게 가서 죽지 않는 약을 달라고 졸랐다는 것은 동이인 이예가 서왕모가 친분이 있다는 뜻이다. 서기 전 10세기 중원 전역을 말 타고 돌아다녔다는 주 목왕도 서왕모를 만나 연회를 하였다는데, 서왕모란 인물의 등장은 민간사상으로 고조선의 도교 즉 신선 사상이 밑바탕에 깔려 있었음을 뜻한다.

단군의 선가사상을 조사하려면 『포박자』 및 갈홍의 『신선전』을 연구해야 한다. 신선전에 수많은 신선이 나오는데 모두 동이다. 또 치세 말년에는 단군들은 대부분 신선이 되었다고 한다. 『산해경』「해내북경」에는 "봉래산은 바다 가운데 있다. 대인의 시(市)가 바다 가운데 있다"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봉래는 발해에 있고 구름과 같이 보인다고 한다.

명나라 때의 간행본에서는 봉래를 해면의 상공에 떠 있는 누각으로 그렸다. 상서로운 구름이 아래를 받치고 있는데 신선들이 사는 곳이 모두 금과 옥으로 되어있다. 새와 짐승은 모두 흰색이며 신선들의 손에는 불사약이 들려있다.

상나라의 동이가 강제 이주되어 서쪽에서 살았고 그들이 진나라 지배층이 되었다는 ‘진인의 동래설’이 현재 확실시되는데 이는 부사년이 가장 먼저 제기한 것으로 상나라때 영성(嬴姓)의 동이가 서쪽으로 이주하였다는 이론이다.

백익(영성)의 후손인 진시황은 나중에 서복을 바다로 보내 봉래에서 불사약을 구하라 명하였으며 봉래의 선종은 진시황 이전부터 있었던 신앙이다. 전국시대에도 물 위의 해상선산(海上仙山)에 관한 전설이 있었다. 『사기』 「봉선서」에 따르면, "제 위왕, 제 선왕, 연 소왕 등은 사람을 바다로 보내어 봉래, 방장(方丈), 영주(瀛州)를 찾았다. 이 삼신산은 전설에 따르면 발해의 가운데 있다."

이들도 일찍이 신선을 찾아서 바다로 사람을 보냈지만 아무런 수확도 얻지 못했다. 『열자』 「탕문」 에도 바다 가운데 5개의 신선 산, 대여(垈輿), 원교(員嶠), 방호(方壺), 영주(瀛州), 봉래(蓬萊) 등이 있다고 한다. 원교산은 오색의 빙금(氷錦)이 산출되는 산동의 산이다.

외부에서 봉래에 진입하는 것은 어렵기에『습유기』에는 이렇게 적고 있다. “봉래의 구조는 호형(壺形)이다. 삼호란 바다 가운데의 3개의 산, 즉 방호, 봉호, 영호이다." 봉래를 봉호라고 부르는 것은 그 안에는 운행규칙이 다른 세계가 존재하는데 외부 사람은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또 선인호공(仙人壺公)이란 단어도 있다.

『후한서』에는 비장방이 늙은 신선 약장수를 만난 일화가 나온다. 각종 약을 파는 노인이 밤에는 호리병 속으로 뛰어 들어가는 것을 보고 비장방은 기이하게 여겨서 다음 날 노인을 따라서 호리병 속으로 들어갔다. 그 속의 세계는 집이 화려하고 술과 음식이 가득했는데, 같이 다 먹고서 밖으로 나왔는데 그동안 바깥의 시간은 많이 흐른 것이다. 호리병은 ‘박’으로 발음하는 발·조선과 관련이 있다.

신라는 유독 해로로 진입하기가 힘든 산악지형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같이 별천지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비밀통로가 『쿠쉬나메』에서도 나타난다. 아브틴 왕자가 바실라로 들어갈 때에도 산악지형이 험하므로 미로의 입구를 통해서만 신라로 들어갈 수 있었다는 기록으로도 신비로운 신라를 연상케 한다.

선인은 한번 뛰어서 선도로 들어갈 수 있지만, 우리 사람은 기연을 만나야만 들어가 볼 수 있다. 가끔 봉래 선인이 속세에 오기도 하였다. 유명한 안기생 이야기가 있는데, 『사기』에 그 이야기가 나온다.

안기생이 중국 동해에서 약을 파는 것을 사람들이 보았는데, 몇 대에 걸쳐 후세의 사람들도 계속해서 안기생이 약을 파는 장면을 보게 되는 것이다. 안기생의 얼굴은 전혀 늙지 않았기에 당시 사람들은 안기생이 봉래의 선인이라고 하였다.

한 무제 때의 방사 이소군은 봉래산에 들어가 약을 캐다가 선인 안기생을 만났는데 안기생이 먹는 대추는 참외만큼 컸다고 한다. 이를 먹으면 불로장생할 수 있다는 기이한 이야기는 봉래산의 신비로움이 널리 전해지게끔 하였다.


[발췌=우리 고대 역사의 영웅들]
저자 황순종, 나영주
펴낸곳 시민혁명 출판사

* 에듀진 기사 URL: http://www.eduj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9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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