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대 문명의 발상지 '이집트'   
- 3천년 역사의 ‘고대 이집트’ 
-  지식과 권력 독점 위해 ‘문자’를 사용하다 
- 이집트의 놀라운 기술력…‘전기에너지’ 활용했나? 
- 바그다드 ‘전지’ 발명한 이집트? 
- 덴데라 사원 발견된 ‘전구?’ 
- 피라미드가 ‘발전소?’ 

▲[나침반 36.5도] '인문 다이제스트'에 실린 콘텐츠 이미지
▲[나침반 36.5도] '인문 다이제스트'에 실린 콘텐츠 이미지

“제가 옛날이라고 하면 ‘기원전’을 말하는 거예요”
- 이집트 출신 방송인 새미의 말  


고대 이집트는 세계 4대 문명 발상지 중 한 곳이다. 기원전 3200년경부터 기원전 30년까지 약 3천년간 세계에서 가장 긴 나일강 유역에서 부흥했다. 한 방송인의 말처럼 이집트 역사는 아주 오래됐기 때문에 고대인들에게도 이집트는 고대 국가로 인식되는 것이 당연했다.   

실제로 이집트가 피라미드를 만들 시기는 한반도가 청동기에 막 돌입할 때였고, 이집트인들이 피라미드를 만든지 천년이 지나고 나서야 매머드가 멸종한다. 또 기록에 의하면 기원전 8세기 즉, 한국의 고조선보다 역사가 오래된 고대 로마제국 사람들이 ‘이집트 관광을 하러 갔다가 바가지를 쓴 이야기’가 꽤 발견되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이집트의 놀라운 점은 역사가 오래된 만큼 아직 현대과학으로 풀지 못한 수많은 수수께끼가 남아 있다는 것이다. 고대인들의 고대국, 이집트는 어떤 신비로움을 품고 있는지 탐험해 보자.  

고대 문명의 발상지 '이집트'   
B.C. 4000~B.C. 3000년경 큰 강 유역에서 발달한 최초의 인류 문명 발생지를 말한다. 티그리스·유프라테스 강 유역의 ‘메소포타미아’ 문명, 나일 강변의 ‘이집트’ 문명, 인도의 인더스 강 유역의 ‘인더스’ 문명, 중국 황허 유역의 ‘중국’ 문명(황허 문명)이 있다.  

이들 지역은 큰 강의 유역으로, 교통이 편리하고, 관개 농업에 유리한 물이 풍부하며, 공통적으로 청동기, 문자, 도시 국가라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3천년 역사의 ‘고대 이집트’ 
고대 이집트 왕조는 크게 고왕국, 중왕국, 신왕국 3시기로 나누는데, 이 각각의 시대는 대략 우리나라의 삼국 시대부터 조선 시대를 합친 시기보다 더 길다. 이집트에서 클레오파트라가 등장하기 이전의 시기가 클레오파트라 사후부터 현재까지의 시기보다 더 긴 것만 보아도 그 역사의 길이는 가늠하기 어렵다.  

이집트 역사는 기원전 3200년부터 기원전 343년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막을 내리기까지, 무려 3천년 동안 이어졌다. 멤피스에 수도를 두었던 고왕국 시대는 기원전 3000년부터 기원전 2100년까지의 제1왕조부터 제10왕조 시기를 이르며, 테베에 수도를 두었던 중왕국 시대는 기원전 2100년부터 기원전 1550년까지의 제11왕조부터 제17왕조를 이른다. 신왕국 시대는 기원전 1550년부터 기원전 525년까지를 말하며 제18왕조~제26왕조에 존재했다.   

이집트의 26왕조는 ‘파라오(Pharaoh)’라는 왕이 다스렸다. 이집트인은 여러 신을 섬겼는데, 특히 태양신 ‘라(Ra)’를 숭배하였고 파라오는 ‘라’의 아들이라고 생각했다.   

수많은 파라오 가운데 최초의 이집트 왕으로 알려진 메네스(제1왕조 창시자)와 기자 지역에 피라미드를 세운 쿠푸(제4왕조 2대 파라오), 정복왕으로 이름을 떨친 람세스 2세(제19왕조 3대 파라오), ‘왕가의 계곡’에 있는 왕묘가 발굴되면서 유명해진 투탕카멘(제18왕조 12대 파라오) 등은 여러분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한편, 고대 이집트에는 여성 파라오도 있었다. 바로 가장 성공적인 파라오 중의 한 명으로 추앙을 받는 하트셉수트다. 그는 제18왕조의 다섯 번째 파라오였으며, 이집트 여왕 중 가장 오랜 기간 동안 통치를 했다.   

 지식과 권력 독점 위해 ‘문자’를 사용하다 
석기시대 사람들은 굳이 문자가 필요하지 않았다. 동굴 벽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니까 일기도 쓰지 않고, 편지도 쓰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이집트인은 지배층을 피지배층과 구분하기 위한 ‘정치적인 목적’으로 문자의 필요성을 깨달았다.  

지식과 권력을 독점하려는 지배 계층은 성각문자가 일반 민중에게 경외의 대상이 되기를 바랐으며, 쉽게 해독되는 것조차 용납하지 않았다. 의도적으로 틀리게 새긴글자도 있었을 정도니까 말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사용한 문자는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한글이나 영어와 같은 형태가 아니라 사자나 창, 새, 채찍과 같은 그림에 가까웠다. 이를 상형문자라고 한다. 상형문자는 지금으로부터 약 5,000년 전에 사용된 문자이기 때문에 마치 수수께끼와 비슷하다.  

이들은 주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파피루스(Papyrus)라는 식물의 잎사귀에 갈대 끝을 잘라서 물과 그을음을 섞어 글을 썼다. 이 식물은 종이처럼 부드럽기 때문에 두루마리를 말듯이 둘둘 말아서 사용하기도 편리했다. 원래 종이를 뜻하는 영어‘Paper’는 바로 이 최초의 종이 파피루스에서 유래했다.  

이집트에서는 성각문자가 가장 먼저 등장했고, 뒤 이어 사제(司祭)문자와 민용문자가 등장했다. 성각문자는 종교적 또는 정치적인 목적으로 기념비적인 건물의 석벽이나 비문에 새겨졌으며 오직 지배 계층만이 그 뜻을 알 수 있었다.   

후대에 등장한 사제문자와 민용문자는 성각문자와 달리 실용적인 목적으로 발전했다. 획수도 점점 줄어들었고 빠르게 흘려 쓸 수 있는 필기체 형식으로 바뀌었다. 구상에서 추상으로, 그림에서 기호로 문자가 진화한 것이다. 세월이 흘러 상형문자는 수수께끼가 되고 말았다. 뜻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19세기에 이르러서야 상형문자를 해독하는 법을 알아냈다. 이집트를 원정 중이던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이 나일강 서쪽의 로제타 마을에서 발굴 작업을 하다가 상형문자를 해독할 수 있는 문자 비석 ‘로제타석’을 발견한 덕이다.   

로제타석 맨 위에는 상형문자가 새겨져 있고, 그 아래에는 똑같은 내용을 민중문자와 그리스문자로 새겨 두었기 때문에 그리스문자를 보고 상형문자를 해독할 수 있었다. 이 비석 덕분에 고대 이집트에 누가 살았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낼 수 있게 됐다.   

파라오 | 고대 이집트의 최고 통치자로 이집트의 정치적·종교적 지도자 역할을 했다. 
성각문자(聖刻文字) | 고대 이집트의 상형 문자. 표의 문자와 표음 문자의 성격이 모두 있다. 로제타석에 있는 것을 1822년에 프랑스의 이집트어 학자 샹폴리옹이 처음으로 해독했다.  
민용문자(民用文字) | 필기체로 된 이집트 신성 문자. 후기 이집트어의 구어체에서는 민용어와 콥트어의 두 단계가 나타나며 초기 그리스에 민용어가 많이 반영 되었다. 
 

이집트의 놀라운 기술력…‘전기에너지’ 활용했나? 
고대 이집트 하면 뛰어난 수학, 과학적 기술력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파라오의 무덤 ‘피라미드’를 건축하고, 시신을 수천년 이상 보존 가능한 ‘미라’를 제작, 우리가 달력에 쓰이는 ‘태양력’ 사용, 최초의 ‘종이’를 발명 등이 그 예다. 이 외에도 접착제, 염료, 피임법 등 다양한 일상적 과학기술이 고대 이집트로부터 기원됐기 때문이다.  

이미 몇천년 전에 수준급의 기술 사회를 이룩한 고대 이집트에서 현대사회엔 없어선 안 될 가장 중요한 에너지인 ‘전기에너지’는 활용하지 못했을까? 고대 이집트에서 전기에너지를 자유롭게 활용했을지도 모른다는 가설을 뒷받침 하듯 관련 유물들이발굴됐지만, 아쉽게도 이는 확실한 증거가 되지 못했다.  

바그다드 ‘전지’ 발명한 이집트? 
1936년 이라크 바그다드 근교 유적에서 독일 고고학자 빌헬름 쾨히니가 진흙으로 만든 항아리 한 점을 발견했다. 기원전후 이라크 파르티아 왕조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항아리는 지름 8㎝, 높이 14㎝로 겉보기엔 평범하게 생겼다.  

하지만 이 항아리 속에는 놀라운 비밀이 숨어 있다. 아스팔트로 밀봉돼 있던 항아리 내부에는 중심에 철봉이 꽂혀 있는 원통형 구리판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원통형 구리판 안에는 액체가 들어 차 있었던 흔적이 발견됐다. 이 구조는 바로 완벽히 현대의 ‘전지(電池)’ 즉 배터리 형태를 띠고 있었던 것이다.  

학자들은 이 항아리가 전지의 일종이라면 항아리 속 액체는 포도로 만든 식초였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구리판은 양극, 철봉은 음극이 되며 식초는 전해액 역할을 한 것이다.  사람들은 이 항아리에 ‘바그다드 전지’라는 이름을 붙였다. 학자들은 파르티아 사람들이 이 전지를 활용해 통증 완화용 전기침 시술, 신전 내 보안용 전기 충격, 전기도금 등에 이용했을 거라 추측했다.   

당시 파르티아 왕조의 문명 수준은 높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어떻게 바그다드 전지 같은 놀라운 발명품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이 대목에서 드디어 고대 이집트가 등장한다.  

기원전 2,500년경 고대 이집트 제5,6왕조 시대의 금속 물병과 대접에서 전기도금의 흔적이 발견된 것이다. 당시는 청동기 시대였지만 이집트에서는 그대도 이미 철을 사용했다는 사실이 증명돼 다음 가설에 신빙성을 높여주고 있다. 바그다드 전지는 파르티아 왕조가 발명한 것이 아니라, 기원전 고대 이집트에서 발명한 것을 계승해 사용한 것이라고 말이다.  

덴데라 사원 발견된 ‘전구?’ 
기원전 2,500년경 이집트에서 가장 번성했던 고왕국 시대 건축물인 ‘덴데라 사원’ 안에서 특이한 그림이 발견됐다. 그림 속 수행자들이 커다란 전구 모양의 형상을 들고 서있는 것이다. 이 형상은 각각 상자에서 나온 전기 선 모양의 줄에 연결돼 있고, 형상 안에는 마치 백열전구의 필라멘트처럼 보이는 길고 구불구불한 뱀 모양이 들어가 있다.   

고대 이집트에서 전기를 사용했다고 가정하면 덴데라 벽화 속 형상이 전구라고 충분히 짐작해볼 수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덴데라 전구 이야기를 사실로 뒷받침해주는 발견은 아직까지 없다. 이 같은 전구를 사용하려면 엄청난 양의 전지가 필요할 텐데 아직 어디에서도 그런 흔적을 찾지 못했다.   

피라미드가 ‘발전소?’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피라미드이자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쿠푸왕의 대 피라미드.’ 쿠푸왕(기원전 2551~2528)을 안치한 무덤으로, 바닥면 길이는 동서남북 약 230m, 높이는 146m나 된다. 2.5톤의 돌덩이 230개가 쓰였고 무게는 거의 700만t에 이르기에 현존하는 세계 최대의 피라미드로 불린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은 이 쿠푸왕 피라미드가 ‘발전소’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이런 주장에 신빙성을 더해 주는 발견이 공인된 물리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이루어졌다.  

국제이론물리연구팀은 대 피라미드가 내부에 있는 왕의 방과 기단 아래에 전자기 에너지를 모은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우리는 햇빛, 라디오파, 마이크로파 등 수많은 전자기파 속에 둘러싸여 있다. 피라미드는 이런 전자기파 에너지를 흡수해 한 곳으로 모이게 한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피라미드와 전자기파 반응 모형을 만들어, 전자기파가 피라미드에 의해 어떻게 산란하고 흡수되는지를 계산했다. 그리고 산란한 전자기파가 쿠푸왕이 잠든 ‘왕의 방’과 왕비가 잠든 ‘왕비의 방’, 기단 아래에 있는 또 다른 방 세 곳에 응축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러나 연구팀은 이 발견이 피라미드 발전소 설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아니라고 선을 그엇다. 우연의 일치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그렇지만 이 발견이 첨단 나노입자 연구에 큰 보탬이 될 것은 확실해 보인다. 연구진 중 한 명인 러시아 ITMO대학 물리학자 폴리나 카피타노바는 “피라미드 설계와 전자파 응축 능력 사이의 관계를 밝히면 피라미드형 나노센서와 고효율 태양전지를 만들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에듀진 기사 URL: http://www.eduj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8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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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는 '나침반 36.5도' [인문 다이제스트]에 실린 내용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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