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학에서 인간 삶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이유 
- 미치광이 녹색 괴물 헐크도 실은 과학자 
- 세상을 위협하는 미친 과학자? 
- ‘엉뚱함’은 창의성 키우는 밑거름  

지금 이 순간 내 모든 걸
내 육신마저 내 영혼마저 다 걸고
던지리라 바치리라
애타게 찾던 절실한 소원을 위해
지금 이 순간 나만의 길
당신이 나를 버리고 저주하여도
내 마음 속 깊이 간직한 꿈
간절한 기도 절실한 기도
신이여 허락하소서

-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중 「지금 이 순간」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에 나오는 이 노래는 뮤지컬 곡으로는 드물게 대중적으로도 널리 사랑받는 곡이다. 노래 가사에서 알 수 있듯이 지킬 박사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지금 이 순간 무엇인가 중대한 결정을 내리려고 한다.  

지킬 박사가 육신과 영혼마저 걸어야 한다고 하는 이유는 자신을 대상으로 생체실험을 하려고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지킬 박사는 왜 이렇게 위험천만한 선택을 한 걸까? 그것은 병원 이사회의 반대로 생체실험이 좌절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최후의 방법으로 자신에게 실험을 하게 됐다. 

과학자로서 지킬 박사는 실험의 성공을 확신했지만 결국 이 약으로 인해 선과 악으로 분리된 이중인격이 돼 버린다. 점점 악한 인격인 하이드가 자신을 지배하자 지킬 박사는 결국 비극적인 선택을 하고 만다. 그렇다면 지킬 박사는 인간의 내면을 탐구한 비운의 과학자일까? 아니면 결국 파멸의 길을 걷게 된 미친 과학자의 전형일까?  

전형(典型) | 같은 부류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본보기    

과학에서 인간 삶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이유 
이 뮤지컬의 원작은 로버트 스티븐슨의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의 이상한 사건](1886)이다. 스티븐슨은 모든 해적 이야기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보물섬](1883)의 작가이기도 하다. 그는 이 소설에서 영국 빅토리아 시대 신사들의 이중적이고 위선적인 모습을 꼬집어냈다.   

당시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릴 만큼 막강한 나라였고, 도덕적이고 명망 있는 신사들이 지도층으로 행세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뒤를 캐면 이중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스티븐슨이 이 소설의 모티프를 얻은 것도 18세기 중엽에 일어난 ‘윌리엄 브로디 사건’에서다. 브로디는 낮에는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의원이자 실업가로 살았지만 밤이면 도둑질과 도박, 폭력 등의 범죄를 일삼았다. 결국 꼬리가 길면 밟힌다는 말처럼, 브로디는 공범이 체포되면서 범해잉 밝혀졌고 결국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스티븐슨은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의 이상한 사건]을 쓸 때 ‘맥각’이라는 약으로 치료를 받고 있었다고 한다. 맥각에는 LSD(환각제) 성분이 있어 이 경험이 작품 속 지킬 박사의 약물로 표현됐다는 주장도 있다. 그 정도로 이 소설은 스릴러 같으면서도 판타지 같은 느낌을 준다.  

하지만 이 소설이 기존 이야기들과 다른 부분은 바로, 인간 내면의 선악을 분리하는 방법이 마법이나 주문이 아니라 ‘약’이라는 화학요법을 쓴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 소설은 [프랑켄슈타인](1818)이나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1726)와 마찬가지로 과학적 상상력이 바탕인 초창기 SF 작품으로 평가된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의 이상한 사건’ 주인공 지킬 박사는 약으로 내면의 선과 악을 완전히 분리시키는 데 성공하자 점점 약의 유혹으로 빠져든다. 약에 의존하면서 지킬은 하이드에 대한 통제력을 잃어버린다. 결국 지킬 박사는 자신이 만든 약에 의해 파멸의 길을 걷는다는 작품의 플롯은 많은 영화에서 등장하는 ‘미친 과학자’의 전형이 됐다.  

물론 지킬 박사 역시 악한 의도로 연구를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실험 결과 예측이 빗나가면서 모든 것이 어긋나게 된다. 인간의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자유로운 삶을 원했던 지킬 박사는 결국 그 목적을 잊고 획기적인 과학적 성과에 집착하다 파멸의 길을 걷는다.  

이 작품은 인간의 이중성과 부조리함을 꼬집는 선구적인 작품으로 손꼽힌다. 그리고 과학자가 연구를 할 때 성과보다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앞서야 한다는 것도 보여준다. 과학자들이 연구에 몰두하다 성공에 눈이 멀어 연구의 목적도 잊어버리고 자신과 사회에 피해를 주는 선택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경우 파급력은 실로 무시무시하다.     

미치광이 녹색 괴물 헐크도 실은 과학자 
미치광이 녹색 괴물 헐크도 실은 과학자[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의 이상한 사건]보다 먼저 발표된 괴기 소설의 원조 격인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에도 지킬 박사와 비슷한 과학자가 등장한다. 그의 이름은 바로 프랑켄슈타인.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시체 조각을 모아서 전기를 이용해 생명체를 부활시키는 일에 성공한다.  

생명에 대한 탐구에서 시작된 프랑켄슈타인의 이 어마어마한 실험도 지킬과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성공한 듯 보였다. 하지만 그것이 불행으로 이어지는 데는 결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가 만들어낸 생명체는 사람들에게 결국 괴물 취급을 받았고, 그 결과 생명체가 사람들을 해치는 안타까운 일을 벌이게 된다.  

이러한 비극이 발생한 이유는 실험의 결과가 세상에 어떤 영향을 발휘할지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 작품 역시 과학의 어떤 실험과 발견도 결국 인간의 삶과 닿아 있으며, 이러한 고민이 과학의 앞날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잘 그려내고 있다.   

맥각(麥角) | 호밀이나 보리 따위의 씨방에 밀생한 맥각균의 균사를 말린 것. 자흑색의 뿔 모양이며, 단단하고 독이 있다. 이를 클로로폼 용액으로 침출(浸出)해 붉은 갈색의 농축액으로 만들면 자궁 수축제나 지혈제 따위로 쓸 수 있다  

이 두 소설은 미친 과학자의 전형을 만들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고전이 된 두 작품에서 직접적인 모티브를 따온 영화가 바로 그 유명한 <헐크>(2003)다. 마블 영화 [어벤져스](2012)에도 등장하는 헐크는 사실 과학자다. 브루스 배너 박사는 실험 사고로 인해 치사량 이상의 감마선에 노출된다.   

그 사고로 배너 박사의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발생하면서, 그에게 알 수 없는 일이 잦아진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집이 난장판이 되고, 실험실이 엉망진창으로 부서진다.   

배너 박사는 이 모든 것이 헐크로 변한 자신의 소행임을 알아내고, ‘내 속엔 통제 못할 또 다른 내가 있어’라며 동료들의 도움을 요청한다. 하지만 헐크의 엄청난 능력을 알아차린 군에서는 그를 무기로 쓰기 위해 추적한다.  

지킬 박사는 약에 의해 하이드로 변했고, 배너 박사는 감마선에 의해 헐크가 됐다는 점만 다를 뿐, 두 작품은 매우 비슷한 메시지를 전한다. 바로 선한 의도를 가지고 행한 실험이 오히려 인류의 위협이 될 수도 있으며, 실험을 행한 착한 과학자가 원치 않게 미친 과학자로 전락했다는 점에서 말이다.  

물론 지킬 박사는 자신의 의지로, 배너 박사는 의도치 못한 사고로 변했다는 차이가 있다. 또 점점 하이드의 매력에 빠져 스스로 통제를 못한 지킬 박사에 비해 배너 박사는 헐크를 통제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한다.   

그리고 가장 큰 차이점은 하이드가 자기 욕망을 위해 남에게 피해를 주는 괴물이었다면, 헐크는 악당들로부터 지구를 구하는 영웅이 됐다는 것이다.  

이 역시 인간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에 대한 고민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아닐까? 분명한 것은 과학적 호기심은 과학 기술이 지닌 엄청난 파급력에 따라 때로는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기도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과학자에게는 일반인들보다 더 큰 직업윤리와 사회적 책임감이 요구된다.  

세상을 위협하는 미친 과학자? 
TV 애니메이션 [피니와 퍼브]에 등장하는 하인스 두펀스머츠 박사는 전형적인 미친 과학자다. 두펀스머츠는 과학자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흰 가운을 입고 매부리코에 악당의 느낌을 주는 인상이다.

그는 항상 이상한 것을 발명해 사람들을 곤궁에 빠트린다. 만화 속 두펀스 머츠 박사는 흔히 우리가 가진 미친 과학자에 대한 전형적인 모습이다. 그렇다면 실제로도 이러한 미친 과학자들이 존재했을까.  

영화 [스파이더맨2](2004)에 나오는 닥터 옥토퍼스는 핵융합을 통해 실험실에서 인공태양을 만들어 내려고 한다. 닥터 옥토퍼스의 실험은 실패로 돌아가고 결국 그는 실험을 위해 만들었던 기계 문어팔과 결합돼 엄청난 힘을 지니게 된다.   

닥터 옥토퍼스의 의도가 처음부터 나쁜 것은 아니었다. 그는 핵융합을 실현시켜 보려고 실험을 진행했다. 하지만 실험이 실패하고 자신의 꿈이 사라지면서 악당으로 변한 것이다. 실제로 과학자들이 저지르는 실수와 파괴적인 결과가 나쁜 의도에서 출발하는 일은 거의 없다.  

물론 권력과 결탁해 무기를 만드는 등 명백하게 세상에 위협을 주는 과학 연구도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는 세상의 발전을 위해 시작된 연구가 거듭되면서 의도가 변하고, 결과가 예상과 다르게 흘러간 경우가 훨씬 많았다.  

영화에서는 핵융합 실험을 간단하게 실험실에서 재현해 보이려 하지만 사실 핵융합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현재도 활발하게 연구되는 분야이지만 실용화를 위해 갈 길이 멀다.    

많은 예산을 들였지만 아직 가시적인 성과를 얻지 못한 핵융합에 매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인류가 당면한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옥토퍼스도 처음에는 그러한 의도로 실험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실험이 실패하면서 모든 거싱 틀어지기 시작한다. 영화가 시사하듯 과학자들은 과학 실험에서 의도하지 않았던 결과가 세상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를 항상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 된다.  

현실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다는 이야기가 있다. 실제로도 영화에서보다 더 미친 과학자들이 실존했다. 그들은 정말 미쳤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인물들이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과 독일의 과학자들도 포로들을 대상으로 생체실험을 진행하는 등 도저히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만행을 저질렀다. 살아 있는 사람을 마치 실험용 쥐처럼 대했던 그들의 실험 역시 처음에는 과학적 호기심에서 출발했다.  

이러한 일은 전쟁 중에만 일어난 것이 아니다. 죄수나 장애인뿐만 아니라 무고한 시민을 대상으로 각종 생화학 무기 실험이 진행되는 일도 있었다. 정부나 기업과 결탁해 돈을 받고 보고서를 조작한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이러한 일이 과거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과학과 인문을 함께 연결 짓고 살펴야 할 이유를 이미 역사가 보여준 셈이다. 

‘엉뚱함’은 창의성 키우는 밑거름  
한편, 지금까지 이야기한 미친 과학자와 또 다른 의미에서 미친 과학자들도 존재한다. 우리는 너무나 엉뚱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보고 종종 ‘정신이 나갔다’라거나 ‘미쳤다’라고 말한다.   

특히 직업 특성상 남들과는 다른, 창의적인 생각이 요구되는 과학 기술 분야에서는 그러한 성향을 지닌 인물들이 많다. 그래서 그러한 엉뚱한 인물들을 위해(?) ‘이그 노벨상(Ig Nobel Prize)’ 이라는 상이 존재할 정도다.  

이그 노벨상은 ‘불명예스러운’, ‘품위 없는’이라는 뜻의 멼gnobel’과 노벨을 합성해 만든 말이다. 이그 노벨상은 상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불명예스러운 연구에 수상되는 상이지만, 때로는 ‘흉내 낼 수 없거나, 흉내 내면 안 되는’ 업적에 수상되기도 한다.  

이그 노벨상의 역사에서 가장 전설적인 실험은 ‘개구리 공중 부양 실험’일 것이다. 이것은 2000년 영국의 물리학자인 베리 교수와 미국 안드레 가임 교수가 전자석을 이용해 큰 자기장을 형성해 살아 있는 개구리를 공중부양시킨 실험이다.   

자석도 아닌 개구리를 공중에 띄워 이그 노벨상을 수상한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과학자들을 엉뚱한 사람이라고 단정 지어서는 안 된다. 이그 노벨상을 수상한 가임 교수는 그래핀 소재 연구로 2010년에 보란듯이 진짜 노벨상을 받았다.  

보통 사람이 보기에는 엉뚱한 연구들도 나중에 인류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는 아무도 모른다. 현대 전기 문명의 기초를 세운 패러데이조차도 자신의 발전기로 만든 전기가 어디고 쓰일지 몰랐다. 전기가 계속 공급되면서 전기를 활용한 발명품들이 하나둘씩 등장했고, 결국 오늘날과 같은 화려한 세상이 펼쳐지게 됐다.  

이그 노벨상은 불명예스러운 과학 연구에 수여되는 상이긴 하나 그만큼 과학자와 기술자 들이 다양한 연구를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엉뚱함에 대해 비난하지 않는 분위기야말로 창의성을 키우는 소중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자료 제공=팜파스

- 이 기사는 '나침반 36.5도' [영화 속 과학인문학]에 실린 내용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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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듀진 기사 URL: http://www.eduj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9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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